아내와 함께 살아오며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때때로 마음에 스치는 감정들이 있다. 서운함, 아쉬움, 그리고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어떤 감정들. 이 글에는 그중에서도 주로 섭섭했던 순간들이 담기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내는 단점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장점들이 있었기에, 내가 선택했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남는 감정들을 꺼내어 적어보려는 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따지고 들기보단,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부족함도, 넘침도, 그저 함께 사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결혼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그래도 ‘함께’라는 말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2024-08-18(일) 위기 모면이라는 이름의 다짐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나는 조용히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제 있었던 일들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맥주 한 캔을 따고,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틀었다. 하지만 화면은 흐를 뿐, 내 머릿속은 멈춰 있었다. 어제의 식탁, 그 대화, 그 감정들이 계속해서 되감기듯 떠올랐다.
어제밤 10시쯤, 아내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외출했다.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감정 소모조차 이제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앉아 있었고, 새벽 1시 무렵 아내가 집에 들어왔다. 별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새벽 2시. 아내는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이혼 생각에 잠을 못 자겠어. 내가 다 맞춰줄게. 그냥 우리, 같이 살자.”
순간, 나는 흔들렸다. 아내의 말에 어쩌면 아직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아내는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춰줄게’라는 말에 잠시 마음이 풀렸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리는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텅 빈 카페. 커피잔 위로 맴도는 김처럼, 우리 대화도 명확하지 않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서로의 표정 속에, 그동안 쌓여온 지침과 희망이 동시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의 말은,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다짐은 너무도 짧았다. 아니, 애초에 진심이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이후 아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생활비가 적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그것을 핑계 삼아 아이들을 집에 두고 외출을 계속했다. 돈을 벌기 위한 외출이라 말했지만, 실상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육아는 방임되었다. ‘내가 다 맞춰줄게’라는 말은, 단지 위기 앞에서 내뱉은 말뿐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갔고, 나는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내가 원하는 건 ‘화해’가 아니라, 다시 내가 참아주는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2024-08-26(월) 공황발작
새벽 3시 30분경,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났고 발작이 일어났다. 무언가 불안한 꿈을 꾼 것도, 특별히 걱정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몸은 깨어 있는데, 마음은 깊은 어둠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그 무력함이, 이 새벽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성적으로 몇분이면 끝난다는 걸 알면서 그 상황에선 언제 끝날지 모를 불안이 가득채워져있었다. 그렇게 나는 새벽의 고요 속에서,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2024-09-03(화) 공황 발작
02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04시 31분, 아내가 외출하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이 덮쳐왔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는 듯한 불안, 이유 없는 두려움. 몇분간의 발작이 끝나고 잠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저 새벽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06시 23분, 아내가 집에 들어왔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공황발작.” 하지만 돌아온 아내의 말은 싸늘했다. “화는 본인이 일으키는 거지. 좀 편하게 생각해. 그러니까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거야.”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나도 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하지만, 그 말을 건넨 사람이 바로 매일같이 내 마음을 흔들고 상처 주는 당사자일 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비수였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했을까…” 마음 한구석이 쓰리고, 동시에 화가 났다. 나는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꾸짖음 들어야 할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다. 공황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든 그림자였는데 말이다.
2024-09-08(일) 게임으로 인한 첫째 등교 거부
저녁 7시쯤, 첫째가 게임을 하던 도중 갑자기 엄마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학교 안가” 아이는 한창 자기 욕구에 충실한 시기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내는 곧장 내게 와서 말했다. “첫째가 학교 안 가겠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다. 아직 어리고 감정이 앞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양육자는 그럴 때 흔들리면 안 된다.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아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아내가 그 말을 아이의 한 순간의 감정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치 그 자체가 결정인 듯 나에게 전달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은 하되, 방향을 잡아주는 건 어른의 몫이다. 부모라면 아이의 말보다 더 넓은 시야와 단단한 중심이 있어야 하지 않나.
더 안타까운 건 이 상황이 예고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줄곧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여주는 걸 반대해 왔다. 하지만 아내는 내 의견을 무시한 채,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줬다. 그리고 결국 아이는 그 안에서 현실보다 더 재미있는 세상을 찾았고, 학교보다 게임이 좋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누가 부모이고 누가 아이인지 그 경계가 흐려질 것만 같았다. 책임져야 할 어른이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고, 아이는 점점 더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방임을 배우게 된다. 그날도 나는, 아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아내의 태도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2024-09-29(일) 또다시 반복되는 이야기, 차
오후 1시경,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근처 어린이 테마파크에 다녀왔다. 평소보다 밝은 아이들 표정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졌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또다시 차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에게 말했다. “아빠한테 가서 차 사달라고 해. 내가 운전하고 다닐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화가 났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마치 아이를 매개로 남편을 설득하려는 듯한 방식. 그리고 차라는 단어는 아내가 필요에 의해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게 받아내야 할 ‘권리’처럼 들렸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빨간펜 다니면서 몇 천만 원씩 할부로 결제했으면서, 스스로 차 하나 못 사? 중고차도 스스로 못 사고, 전에처럼 친정 차를 빌려서 탈 수도 있잖아.” 그 말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아왔는지, 얼마나 조율하고 타협하려 했는지, 그리고 아내가 자신의 소비엔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필요한 물건은 언제나 나에게 요구하는 모습에 쌓여온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부담이 나에게로 향하고, 책임이라는 단어도, 계획이라는 무게도 온전히 내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늘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필요한 순간마다 아이를 앞세운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날의 대화는 단순한 차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신은 뭘 해도 결국 날 책임져야 해’라는 암묵적 강요 같았고, 나는 또다시 그 말 앞에서, 외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불편한 침묵에 갇혀버렸다.
2024-10-10(목) 집팔고 퇴사해서 무인도 방4개 빌라로 이사하자
밤 11시경, 아내는 또 어디서 무엇을 듣고 왔는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무인도에서 살자. 이 아파트 팔고 방 4개짜리 빌라로 이사가자." 아내의 눈빛은 진지했다. 이어서 하는 말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당신은 퇴사해서 애들 좀 돌봐. 퇴직금 받아서 생활비 쓰고, 셋째 육아휴직도 신청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볍지 않았다. 내가 평생 쌓아온 직장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접으라는 말, 현실적인 고민 없이 생활비는 퇴직금으로 때우면 된다는 말, 그리고 아이 셋을 데리고 어디인지도 모를 무인도에서 살자는 말까지. 현실을 외면한 채 마치 이상향을 좇는 듯한 아내의 발상은, 내게 ‘책임’과 ‘희생’을 감당하라는 요구처럼 들렸다. 무언가에 대한 회피인지, 피로감의 분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 속에는 단 한 번도 ‘나’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내가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무게를 견디고 있는지, 지금 이 집을 마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왔는지, 그리고 그동안 아이 셋을 키우며 현실과 싸워온 나날들이 그날 밤, 단지 ‘무인도’라는 말 한마디로 모조리 무시당한 것 같았다.
그 밤, 나는 말없이 아내의 말을 들었다. 반박도, 지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비현실적인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아내를 바라보며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만 조용히 되뇌었다.
2024-10-13(일) 둘째를 향한 아내의 폭언
오후 2시 50분경, 아내는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집 근처 놀이터로 나갔다. 그날, 둘째는 감기에 걸려 기침을 자주 하고 있었고, 아내는 그런 둘째에게 마스크를 꼭 쓰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는 조심성이 어른처럼 완벽할 리 없었다. 잠시 후, 아내는 기침하는 둘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스크 안 쓰고 남들한테 피해 줄 거면… 다 같이 죽어!”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다고 해도, 아이에게 '죽자'는 식의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건 훈육이 아니라, 감정의 폭발이며, 언어의 폭력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아직도 엄마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그 말은 듣는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깊게 상처낼지, 그 상처가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 아이의 말과 행동에 남을지는 아내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아이를 향한 그 말은 단지 언성이 높았던 한순간의 훈계가 아니었다. 그건, 아이의 존재를 위협하는 듯한 언어였고, 나는 그날 아내가 아이에게 건넨 그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10-14(월) 첫째를 향한 아내의 폭언
아침, 나는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첫째가 “게임 시간 더 안 주면 학교 안 가겠다”고 투정을 부렸다.아직 철없는 말일 뿐이라 생각하며 넘기려던 그 순간,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냥 뛰어내려! 너 때문에 살기 싫으니까!” 그 말은 분노를 넘어서, 절망 섞인 폭언이었다.
이 무렵부터 아내는 아이들에게 종종 “죽어”, “차라리 뛰어내려라”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툭툭 내뱉었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안 하면 죽어”, “이럴 거면 다 같이 죽자”는 말이 아이들의 귀에 각인처럼 반복되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혹시 자기 내면에 스스로를 향한 죽음의 언어를 숨겨두고 사는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그 공포와 피로를 아이들에게 전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2024-11-12(화) 카톡 차단
오늘도 사소한 말에서 시작된 대화가 끝내 감정의 균열로 이어졌다. 시작은 아이들이 거실에 텐트를 치고 노는 문제였다.
아내: “애들이 거실에서 텐트 치고 놀잖아. 그게 뭐가 잘못된 거지?”
나: “넓은 집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놀려면 각자 방에서 놀도록 해. 나는 놀이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야.”
그 말이 발단이었다. 아내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자는 내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내: “좁은지 모르겠는데? 난 넓어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넓게 놔두라는 거야?”
애들이 정리를 스스로 하지 않으니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들이 늘어나고, 결국엔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점점 비좁아진다는 거고 책장이 책으로 가득 차 다른 필요한 물건을 수납할 수 없는 상황에 책이 넘쳐 책상 위까지 쌓여 있는 현실. 그런데도 아내는 ‘책장은 책 넣는 곳’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외의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화가 갈수록 날이 서기 시작했다.
아내: “넣을 수납방도 없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꽤 됐어. 자리 차지해도 넓어.”
나: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교회 다니고, 하고 싶은 대로 직장 다니고, 하고 싶은 대로 책 사고, 과도하게 영양제 사고, 애들방에 침대 사고, 애들한테 핸드폰 주고, 애들 키우는 방식도 거의 대부분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왜 살고 싶지 않다는 거지?” 그 말이 끝나자, 아내는 결국 폭발했다.
아내: “이렇게 카톡 보내는 당신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당신이랑 카톡하면 불쾌하다고.”
나: “그럼 말로 얘기할까?”
아내: “당신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 교회 다니는 거야.”
나: “나는 당신과 카톡이나 말도 안 할 때가 많았어. 그땐 왜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순간, 아내는 다시 돈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 “당신이 돈 제대로 안 줘서 내가 일하는 거야.”
나: “생활비는 한정돼 있어. 문제는 당신의 씀씀이가 늘어난 거지. 거의 다 당신이 스스로 결정해서 산 거고, 나한테 물어본 적도 없잖아.”
아내: “처음부터 생활비가 적다고 했잖아. 더 원했는데 당신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불쾌하니까 카톡 보내지 마. 죽지 못해서 당신은 산다며? 예전엔 당신이 그랬는데 이제는 안 그래? 차단할 거야. 중요한 건 문자나 메일로 해. 말로 하든가.” 18시 9분. 아내는 나를 카카오톡에서 차단했다.
그 대화는 단순한 다툼이 아니었다. 아내는 대화 속 어떤 조언도, 설명도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경향은 오래전부터 보였다. 카페에 글을 올리면 비판적인 댓글이 달릴까봐 곧바로 글을 삭제하고, 대화명을 바꾸거나 때론 탈퇴하고 한참있다가 다시 가입하는 패턴.
SNS에선 피드백을 받기 싫어 글을 잠시 공개하다가 비공개 처리하고 우리 둘만의 대화에서는, 내가 보낸 말이 불편하면 차단하거나 '죽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날,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이 관계는 감정을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지뢰를 피해 걷는 전장 같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대화’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이해의 수단이 아니란 것을. 그저 누군가의 피로와 거절, 회피와 차단만이 남게 되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지냈다. 평소 요구하는 건 늘 아내였고, 해결하는 건 늘 나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카카오톡 차단 이후, 나는 연락받아 처리해야 할 일이 사라졌고, 그만큼 마음이 편했다. 반면, 아내는 답답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무언가를 전달하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11월 18일, 아내는 문자로 먼저 연락을 했다.
아내: “카톡 차단 풀었어^^ 바로 풀어서 카톡으로 말하는데 왜 답 안 해? 나도 차단했어?”
나: “당신이 차단해서 나도 차단했는데.” 잠시 후, 아내는 다시 보냈다.
아내: “해제해. 난 차단하고 바로 푸는데ㅡㅡ”
그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본인이 먼저 차단하고, 본인이 먼저 풀고, 그걸 다시 나에게 ‘왜 안 풀었냐’고 묻는다. 본인이 휘두른 단절의 칼날에 베인 상대가 피를 닦을 시간조차 없이, 다시 칼집에 넣은 걸 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하니, 나는 다시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단도, 해제도, 그 모든 선택은 늘 일방적이었다. 아내는 감정이 격해지면 끊고, 풀리면 다시 잇는다.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내 마음 속 생각은 그저 수신자일 뿐, 발신자가 될 권리는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카카오톡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겉으로는 다시 이어졌지만, 나는 그 안에서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고, 침묵이 더 편하다고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