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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

예수의 생애(엔도 슈사쿠)

작성자달팽이|작성시간20.02.28|조회수298 목록 댓글 0

 



일단 구하는데 힘들었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했습니다.

*

나자렛 생활을 떠나서


초대교회 당시 성스러운 사람의 얼굴은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경심과 겸허함의 염원을 담아 물고기, 어린양, 밀 이삭, 포도덩굴 등으로 묘사했다.  카타콤 시대와 5세기 비잔틴 이후,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예수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유다인의 종교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방인 치하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굴욕과 실의와 좌절 속에서 끈질기게 하느님 야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라든가, 메시아에 대한 갈망은 오늘날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해근처

산성화된 유다 광야 - 산성화된 민둥산엔 관목과 가시나무가 여기저기 자랄뿐,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갈생의 광야.

유다 광야는 유다인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곳은 그들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고독에 담기고, 명상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저항운동을 하는 이들의 피난처(에세네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대립하여 엄격한 금용과 기도 생활을 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구세주의 도래를 기다리던 고독한 집단이었다.  - 쿰란수도원 (1947년 사해문서의 발견)


르낭의 <얘수전>에 의하면,

예수는 요한 공동체에 머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후 예수가 독자적인 활동을 했을 때, 요한 공동체의 제자들은 그것을 분파 행동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그들이 예수 공동체와 어떤 알력을 가진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요한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부친의 이미지, 분노와 심판과 벌의 이미지 - 이런 엄한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의 분노를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28)


'四旬山'이라고 일컬어지는 광야는 석회질 땅으로, 다니엘 롭스 신부의 표현을 따르면 "독수리가 날아다니고 들개가 울부짖는, 유다 사막에서도 가장 황량한 곳의 하나이다. 인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경치다운 경치는 전혀 없는 땅"이다. (30)


이 산은, 에세네파의 쿰란공동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쿰란 공동체는 생활면ㅇ르로는 평화주의자였지만,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성서에 의하면, 광야에서의 예수에 대한 악마의 유혹은 현실 세게에서 구원을 찾으라는 것이고 그 대신에 모든 지상 권력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곧 쿰란 공동체의 에세네파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표는 그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결여된 것은 '사랑'이었다.

쿰란공동체도 요한 공동체도 사람들에게 회개와 하느님의 분노를 전할 뿐, 사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33).


위험한 초기 시대


유다교의 주류파인 수두개인과 바리새파와 세자와 율법학자들은 세레 요한의 운동뿐 아니라 예수의 운동이 확산라자 불안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도 유다에서 로마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추궁하여 그들의 지배권을 박탈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기득권에 대한 위협...(35)


비극...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오해

최조의 제자들은 예수를 반로마 운동의 지도자 혹은 로마와 타협하고 있는 유다교를 갱신할 인물로 기대/ 유다의 비극은 여기에서 부터 시작된다.(38)


젊은이들의 사랑의 혼인을 기뻐하는 예수! 웃으며 술을 마시는 그의 용모와, 모피와 가죽 띠를 두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분노만을 외치는 세례 요한의 용모를 비교해 보면...(40).

요한의 메시지는 구약적이고 유ㅣ협적인 의미의 무거운 짐, 혹은 멸망이었다. 그러나 예순의 메시지는 기쁜 소식이다(41).


바리새파는 세레 요한을 체포할 적당한 기회를 포착하고, 그의 애제자로 여겼던 예수도 체포하는 것이었다(44).


그리심산과 관련된 발언 / 이 말은 예루살렘 성전을 거룩하게 여기는 주류파들에게는 모독이었다(47).


갈릴래아의 봄


아름다운 자연과는 달리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 호숫가의 마을에는 이웃 사람이나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병자나 불구자가 많이 있었다(57).


'위로의 이야기'기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예수가 위대한 예언자들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이들의 애환을 못 본체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막의 예언자들은 고고한 자세로 훌륭한 이야기를 했지만, 예수는 갈릴래아의 빈곤한 마을의 불구자나 병자와 함께하며 창녀나 세리처럼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이들도 위로했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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