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은 제가 5월 24일에 시작한 성지순례에서 1차 말씀의 길을 완주한 날입니다.
발바닥에 불이나고 발가락들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너무 기쁜 마음에 가회동성당에서 끝내고도 한시간여를 광화문쪽을 걸었습니다.
더운 날씨지만 저녁 시간에 시작하고 마침 하늘에 구름이 끼어 따가운 햇살을 비껴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1차 짧은 코스를 마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과거의 선인들을 통해 오늘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눈사람의 자리에 세우셔서 하늘나라의 꽃으로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머니와의 시간을 통해서 그리고 다시 선인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꽃이 되지만 죄인은 나비가 된다고..
믿음의 씨앗에서 의인은 자라고 어둠의 그림자에서 죄인은 빛가운데로 변화된다는..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어쩌면 잠깐 빛을 가리운 그림자 그늘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의인과 죄인은 빛 가운데서 다시 만나 하나의 생명을 바라보며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것이구나..
하나의 생명.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과연 이 세상에서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할런지요..
모든 욕망의 끈을 단절하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한 신부님과 수녀님들도 힘들어 하시는 육신의 정화가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네 평신도들에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디즈니랜드가 방송되던 TV를 너무 좋아해서 수녀가 될 수 없었던 저는 부르심이 있다면 providence 도 있다는 믿음으로 그 가능성에 도전을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나부터 데려 가시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는 그런 내가 돌아서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해 풀리지 않는 화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와 화..
부등호가 바뀌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화는 슬픔으로 이어지고 그 슬픔은 낙심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슬픔이 현재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성지를 밟을 때마다 새롭게 느끼며 역사를 호흡하는 법을 배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33절)
죄인이 그림자에서 깨어나 나비처럼 빛 가운데 당당히 설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같습니다.
하늘의 능력과 하늘의 부를 세상에 풀고 가신 예수님..
마음이 가난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몸이 가난한 자를 도우시며..
놀라운 하늘나라의 영광을 약속하신 그 말씀 중에는..
이미 누에고치에서 나비로의 변화처럼 죄인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그리고 그것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선이 머무는 공동체의 것이라는 단호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지요..
세상은 기회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모여 죄인의 짐을 내려 놓고 무엇으로 다시 세상을 향하는 걸까요?
나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죄인으로..
여전히 그림자로..
세상에서 빛나기라도 하면 벗을 수 있을까요..
죄의 올무를 벗지 못하고..
죽음의 십자가가 아닌 생명의 십자가가 무거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깨우시고 부추겨 일으키시는 것인지도..
예수님의 승리는 기회를 넘어서는 것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의인의 믿음처럼 죄인의 작은 행동 하나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지건 주어지지 않건 매 순간의 행동을 우리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라는 강한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인의 자리는 후손의 힘이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가 깨닫게 된 가르침입니다.
정말 귀한 고인들의 자리에 서면서 그 힘으로 남은 여생을 화풀이에서 화플기 (병을 깨기 보다는 병을 채워 갇힌 나를 자유롭게 하는) 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아침에 새롭게 다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