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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6월3일 경계를 넘은 나

작성자사자후|작성시간26.06.05|조회수34 목록 댓글 0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타인을 닮는다.
말을 많이 나누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웃음이 전염되듯 불안도 전염되고,

욕심도 전염된다.

한 사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떨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문이 되어 주변으로 번져간다.

그래서 어떤 공간의 공기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내면으로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더 많이 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어떤 이는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달리고, 어떤 이는 아직 손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렇게 두려움과 탐욕이 뒤엉킨 카지노라는
공간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공기 자체가 시끄럽다.
그곳은 돈 많은 이들을 호구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사냥터다.

무료로 주어지는 프리룸, 화려한 포인트, 눈을 멀게 하는 경품들. 카지노는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려 온갖 미끼를 던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대한 작전의 그물망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구조적 틈새가 발생한다.

카지노의 오류는 바로 그 틈새에 있다. 시스템은 일반인들을 올가매기 위해 굴러가지만,
매니지먼트의 한계를 이미 받아들인 생바인들만큼은 결코 올가매지 못한다. 그들은 그 사냥터의 가장자리, 아주 얇은 경계 위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몇 십 년 동안 치열하게 다투어본 자들이다. 어떻게 하면 시스템을 부술 수 있을지 밤을 새워 논쟁하고 부딪쳐 보았던 이들이다.

그리고 그 기나긴 전쟁의 끝에, 대부분의 결론을 이미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인간은 결코 카지노의 설계도를 이길 수 없다는 것.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통제에 있으며, 카드가 아니라 인간에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이 모인 공간에서는 드물게 전혀 다른 종류의 침묵을 만나게 된다.


그 침묵은 포기나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들에게서만 생겨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훈계를 하지 않는다.
얼마를 걸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싸움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가르치지 않는 대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옆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자신의 마음도 차분해진다.

욕심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누군가 말없이 균형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신 또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은 조언이나 설득이 아니다.

한 인간이 보여주는 절제의 형태가

또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영향력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하는 것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예술이란 본래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넘어서는 .순간에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억누르고, 욕망을 제어하며,
스스로 정한 선을 끝내 넘지 않는 일.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고

그것을 작품이라 부르지 않지만,
한 사람이 정해진 순간에 미련 없이 멈추고,
또 다른 사람이 조용히 자신의 원칙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반드시 무언가를 얻을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얻을 수 있음에도 멈출 수 있는 순간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경계를 단 한 번도 넘지 않는 무결한 인간은 없다.

바로 이틀 전인 2026년 6월 3일, 나 역시 그 경계를 살짝 넘어섰다.

몇 십 년을 치열하게 다투었고 이미 모든 결론을 받아들였다고 자부했음에도, 카지노가 뿜어내는 탐욕의 공기는 순간적으로 내 안의 브레이크를 흔들었다. 미끼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에 아주 잠시 눈이 멀었고, 발끝은 선(Line)을 넘어 통제할 수 없는 도박꾼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 수렁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대단한 비책이 아니었다.

내 옆 테이블에서 아무 말 없이 침묵의 규율을 지키고 서 있던 동료들의 실루엣,

그리고 내가 한 평생 기록해 온 차가운 문장들의 무게였다.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분노 없이 직시하고,
쥔 조각을 미련 없이 내려놓은 채 멈추는 것.

진짜 생바인의 독창성은 경계를 넘어선 순간,
스스로 그 비참함을 읽어내고 다시 차가운 규율의 자리로 걸어 돌아올 수 있는 '복원력'에 있다.

그 흔들림마저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이며, 여전히 이 공기 속에서 절제를 수련하고 있다는 선명한 증거다.

내가 이 모임을 주체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몇 십 년 동안 피 흘리며 다듬어온 노하우와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20대, 30대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면 단 6개월이면 배운다

기술은 본질이 아니다.
자격은 오직 하나,
'생바인'의 태도를 품은 자여야 한다.

거대하고 정교한 카지노라는 세상 속에서,
아니 카지노라는 외피를 쓴 이 불합리한 사회 안에서, 맹목적인 도박꾼으로 소멸하지 않고

'나만의 독창적인 룰'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살아아가려는 젊은 지성들.

1년에 두세 번,
나는 그들과 모여 이 침묵의 공기를 공유하고 싶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태도이며, 기술이 아니라 절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날에는 충분하다.

그 공간에는 승패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의 질서와 평온.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공기라는 이름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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