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는 시지프를 바라보며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했다.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존재. 희망도 없고 보상도 없으며, 끝내 성공할 수도 없는 노동. 까뮈는 그 부조리함을 외면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 해를 돌아보니, 내가 이해한 것은 시지프의 운명이 아니라 시지프의 손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나 역시 그랬다. 어떻게 하면 더 높이 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다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
돌은 언젠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해도, 내가 어떤 돌을 밀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의 돌은 너무 날카로웠다.
하루의 승패에 기뻐하고 절망하며 마음을 갈아 넣었다. 작은 성공에는 취했고 작은 실패에는 무너졌다. 손바닥은 늘 찢어졌고, 정신은 늘 지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을 깎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기대를 덜어내고, 과도한 욕심을 잘라내고, 감정의 모서리를 문질렀다. 확률을 공부했고 통계를 들여다봤으며,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손을 얹었다.
그 과정은 돌을 정상으로 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돌을 조금 더 둥글게 만드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은 세상을 완전히 이길 수 없지만, 세상과 부딪히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손바닥의 상처는 조금 덜 깊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사실을 배웠다.
아무리 둥글게 만든 돌이라도 결국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경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지식이 쌓이면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더 정교한 계산이 위험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세상은 늘 인간보다 크다.
인간이 만드는 질서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인간이 세우는 안전망에는 언제나 빈틈이 남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할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성공의 비밀이 아니다.
더 빨리 정상에 오르는 방법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돌은 결국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실패가 찾아올 수도 있고, 아무리 준비해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힘이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용기다.
돌을 놓아야 할 순간을 아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까지 함께 굴려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기술보다 먼저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다.
어떻게 밀 것인가보다 왜 미는가를 묻고 싶다.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보다 무엇을 배우며 올라갔는가를 묻고 싶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정상의 풍경이 아니라 손바닥의 굳은살이기 때문이다.
그 굳은살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다.
수없이 무너지고도 다시 일어났다는 증거이며,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를 통제하려 애썼다는 기록이다.
돌은 다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람은 남는다.
이제 나는 오래 밀어 온 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뒤를 따라오는 이들에게 말한다.
돌을 미는 법만 배우지 말라고.
돌을 고르는 법을 배우라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돌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이라는 땅을 쌓는 법까지 배우라고.
인간의 진짜 성취는 끝없이 굴러오는 돌을 밀어 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 돌에서 손을 떼고도 무너지지 않는 삶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