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 홍콩달러(HKD)가 내 앞에 쌓여 있었다. 객장의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칩의 표면에 부딪혀 눈이 멀 것 같은 기세로 번뜩였다. 사람들은 내 주변으로 모여들어 경탄 섞인 숨을 몰아쉬었고, 저 멀리서 지켜보는 장군의 눈에는 오랜만에 탐욕스러운 생기가 돌았다.
화면의 스코어보드는 기묘하다 못해 아름다운 기적을 그리고 있었다. 무려 50핸디가 진행되는 동안, 세로로 네 칸 이상 내려온 줄—즉 ‘4선’이 단 하나도 없었다.
오직 1선, 2선, 3선만을 정신없이 오가며 딱딱 꺾이는 극단적인 대칭의 연속. 카지노가 허락한 완벽한 규칙성 같았다.
나는 이 기묘한 흐름의 머리꼭지를 타고 놀며 하우스를 비웃고 있었다. 서울에서 나를 짓누르던 빚의 무덤도, 가문의 파멸도, 이 순간만큼은 내 손끝에서 조각나 사라지는 것 같았다.
테이블 저편에 사자후가 서 있었다. 그는 나와 달리 칩 한 개도 쥐지 않은 채, 마치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차갑고 고요한 눈으로 나를, 그리고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숨 막히는 평정심이 나를 안심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지독한 반발심을 충동질했다.
‘보란 듯이 이 지옥에서 완벽하게 살아남아 당신에게 증명해 보이겠어.’
마침내 스코어보드에 플레이어 3선이 찍혔다.
50핸디 동안 이어온 철칙대로라면 이번에는 예외 없이 꺾여서 뱅커가 나와야 했다.
승부욕과 확신이 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뜨겁게 솟구쳤다. 나는 주저 없이 10만 홍콩달러 상당의 칩 스택을 뱅커 위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내 구원과 자유를 정제해 만든, 승리를 확신하는 찬스 베팅이었다.
"베팅 클로즈."
딜러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카드가 오픈되었다. 뱅커의 첫 두 카드는 8과 9, 합산 스탠드 7이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력한 숫자였다. 이어 뒤집어진 플레이어의 카드는 6과 7, 합이 3이었다.
플레이어는 무조건 한 장의 카드를 더 받아야 하는 서드 카드 상황. 뱅커 7 대 플레이어 3.
승리는 내 것이었다.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카타르시스를 참지 못하고, 나는 테이블을 향해 격정적으로 외쳤다.
"도레미!"(1.2.3)
그림이나 123 떨어져 플레이어가 3점에서 6점사이 안에 묶이기를, 그리하여 내 완벽한 설계와 승리로 이 판이 마감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주문이었다.
10만 홍콩달러가 내 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뒤집어진 플레이어의 마지막 카드는 그림이 아니었다. 양옆으로 촘촘하게 구멍이 뚫린 세 줄짜리 카드, **쌈삥(三邊)의 6**이었다.
순식간에 플레이어의 점수는 9가 되었다. 플레이어 나인, 뱅커 세븐.
"플레이어 윈."
딜러의 건조한 목목소리가 내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50핸디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4선은 없다’는 세계가 무참히 깨어지며, 플레이어 4선이 시뻘건 낙인처럼 보드판에 내려앉았다.
내 10만 홍콩달러의 칩이 카지노의 거대한 갈퀴 속으로 흔적 없이 쓸려나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심장이 가파르게 요동쳤다.
아직 40만 홍콩달러를 이기고 있었다.
지성(知性)은 그것이 여전히 막대한 이득이라고 속삭였지만, 내 안의 타오르는 승부욕과 분노는 속삭임을 들을 리 만무했다.
빼앗긴 10만을 당장 복구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복수심, 이 흐름을 내 손으로 다시 꺾어놓겠다는 오만이 온몸의 호흡을 얕게 만들었다.
나는 이성을 잃은 채, 이전 베팅의 두 배인 20만 홍콩달러의 칩을 다시 뱅커에 거칠게 던졌다. 한 판으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파멸을 향한 폭주였다.
딜러가 나를 살짝 흘겨보더니, 손끝에 기묘한 힘을 주어 카드를 딜했다. 그리고 뽑아낸 뱅커 카드를 내가 베팅한 칩의 오른쪽이 아닌, 의도적으로 내 **왼쪽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카드를 잡으려던 내 오른손이 허공에서 찰나의 순간 꼬이며 멈칫했다.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칩 왼쪽에 놓인 카드를 집는 동선은 지독하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했다.
시각적 안정감이 단숨에 무너지며, 카지노가 의도적으로 던진 거대한 심리적 덫(넛지)이 내 평정심의 마지막 보루마저 사정없이 흔들었다.
내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렸다.
카드를 쪼기도 전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문득 곁을 보았다.
사자후는 그 불편하게 놓인 카드와 무너져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깊고 고요한 눈동자 속에는 승리도, 패배도, 흔들림도 없었다.
오직 거대한 무작위성의 심연을 묵묵히 견뎌내는 수행자의 서늘함만이 존재했다.
그 차가운 시선 앞에서,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無)의 심연 속으로 소리 없이 추락하고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