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지나자 어느새 가을 문턱이다.
지난 여름 폭염에 시달린 탓일까.
땡볕에 함부로 나서지 못했던 산행이 더욱 기다려진다.
강도 높은 산행에 앞서 워밍업 수준의 만만한 산이라면 용봉산(龍鳳山)이 제격이다.
해발 381m로 높지 않지만 산봉마다 기암을 이고 있는 옹골찬 산세가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그 풍광이 얼마나 뛰어나면 ‘용의 몸통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형국’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산행 후 온천욕과 제철 해산물을 지척에서 즐길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용봉산은 충남 홍성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금강과 나란히 달리는 금북정맥이 서해로 기어들기 전 살짝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이 산이다.
겉보기에는 아담하지만 산봉마다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세는 ‘작은 금강산’을 보는 듯 신비롭다.
홍북면 상하리 용봉초교를 들머리로 삼아 오르는 산행은 용도사를 거쳐 최고봉을 찍고 능선을 따라 용바위까지 간 후 마애석불과 용봉사를 둘러보고 구룡대로 내려선다.
여기서 마을 안길을 따라 원점 회귀할 수 있지만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방향을 잡으면 산허리를 따라가다 용봉폭포를 본 뒤 용도사를 거쳐 되돌아 올 수 있다.
주변 풍광을 탐하며 쉬엄쉬엄 걸으면 4시간쯤 걸린다.
등산로 초입은 완만한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정겨운 시골집을 지나 계류를 끼고 10여 분 정도 오르자 거대한 미륵불이 반긴다.
투석봉 아래에 터를 잡은 용도사 미륵불이다.
고려 때 만들어진 미륵불은 가늘고 긴 눈과 넓적한 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줄곧 돌계단이 이어진다.
숨이 할딱거릴 만큼 굽이굽이 가파르다.
힘겹게 오른 투석봉, 사방으로 시야가 터진다.
능선으로 이어진 산봉마다 기묘한 바위를 무더기로 이고 있다.
산자락에 뿌리박은 기암괴석 군락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투석봉에서 정상까지는 지척이다.
정상 표지석에 발도장을 찍고 노적봉으로 향하면 삼거리.
우측 동북쪽 능선 절벽 끄트머리에는 정자가 오롯이 서 있다.
일명 ‘최영 장군 활터’란다.
최영 장군은 용봉산 밑 홍북 출신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활을 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주능선이 한눈에 잡힐 만큼 풍광이 멋스럽다.
고려 말 권력의 정점에서 이성계와 각축을 벌였던 최영 장군을 생각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능선을 따라 노적봉, 악귀봉을 차례로 지난다.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은 용봉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불과 300여m 거리지만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기암괴석이 줄줄이 이어진다.
가는 길에 사자바위, 물개바위, 삽살개바위가 등반객을 반긴다.
노적봉에 걸터앉은 거대한 바위에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앙증맞게 뿌리박고 있다.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산릉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진다.
거대한 바위 군락을 넘어설 때마다 펼쳐지는 색다른 풍광에 넋을 빼앗겨 발걸음이 더뎌진다.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내포평야가 시원스럽게 다가오고 동쪽으로 금마천과 삽교천이 느릿하게 흐른다.
노적봉 아래 행운바위에 돌 하나를 던져 올리고 악귀봉으로 향한다.
발 아래 용봉저수지가 가을하늘을 머금고 눈부시게 파랗다.
악귀봉은 산봉 전체가 기암괴석의 집합체다.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우회해서 갈 만큼 험하지만 멋지다.
임간휴게소에서 잠시 산바람을 쐬고 용바위를 거쳐 신경리 마애석불로 내려선다.
마애석불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
오른 손을 다리에 붙이고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려는 듯 왼손을 든 모습이 온화하고 인자하다.
용봉사로 내려서는 길에서 병풍바위를 본다.
엿가락을 붙여놓은 듯한 바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저마다 우윳빛 때깔을 뽐낸다.
병풍바위는 밑에서 올려다보면 넓은 화폭처럼 펼쳐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마치 설악산 울산바위를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이 바위를 등지고 용봉사가 단아하게 앉아 있다.
백제 말에 지어진 절집은 온데 간데 없다.
1905년 새로 지은 용봉사는 대웅전과 지장전, 적묵당, 산신각, 일주문이 전부인 소박한 절이다.
대웅전에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영산회괘불탱화’(보물 1262호)가 보관돼 있다.
용봉사의 본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다.
북서쪽으로 좀 더 올라간 지점에 있었지만 평양 조씨의 가문에서 조상묘를 만들면서 폐사(閉寺)하는 바람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절을 받치고 있는 축대의 돌 크기만이 당대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일주문으로 내려서기 전 우측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용봉사 마애불 입상도 산이 품은 보물이다.
용봉산은 산 자체가 명산일 뿐만 아니라 예부터 산자락 언저리도 명당으로 이름을 떨쳤다.
일찍이 도선국사는 ‘용봉산 아래는 명승지’라 했고, 정감록에도 '용봉산 아래 400년 도읍지가 된다'고 기록돼 있다.
산자락을 빙 둘러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성삼문, 남당 한원진, 이응로 화백의 생가가 터를 잡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발길은 다시 휴양림을 거쳐 용봉 폭포로 향한다.
산허리를 따라가는 이 길은 노적봉과 최영 장군 활터로 오르는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치는 오솔길이다.
발 밑에 철제다리 하나가 보일 쯤 세찬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용봉산 유일의 폭포다.
암반을 어루만지며 훑고 내려오는 폭포수는 모든 근심을 털어버리라는 듯 장쾌하다.
용도사를 거쳐 하산하는 길, 붉은 햇덩이가 서해로 넘어간다.
길섶에 핀 벌개미취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다.
내포평야를 훑고 지나온 한 줄기 바람에 땀으로 흥건한 등줄기가 서늘하다.
시나브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 주변 볼거리: 만해 한용운 생가, 김좌진 장군 생가, 성삼문 유허지,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 오서산, 광천토굴새우젓특화단지, 그림이 있는 정원 등이 있다.
홍성의 5일장도 볼거리다.
홍성장(1·6일, 041-631-4140), 광천장(4·9일, 041-630-9602), 갈산장(3·8일, 041-630-9610) 등이 열린다.
■ 축제: 9월13~16일까지 홍성읍 홍주성 일원에서 ‘제8회 홍성내포문화축제’가 열린다.
한용운 선사와 김좌진 장군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만해·백야의 주제공연과 체험행사를 선보이고, 올해는 특히 2013년 내포신도시 충남도청 이전과 맞물려 ‘제1회 도 무형문화재 합동공연 행사’를 함께 진행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람객 참여 행사로 백야 청산리 전투 재연과 만해 독립선언서 퍼포먼스 등을 진행하고 홍성한우 저잣거리에서는 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이외에 충청남도의 특산품 및 다양한 민속문화공연이 열린다.
■ 온천: 용봉초교에서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예산군 덕산 온천지구까지는 10㎞ 거리다.
가족단위 등반객은 온천과 스파, 물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리솜스파캐슬(041-330-8000)이 딱 좋다.
천연 게르마늄 온천수를 사용하고 보양온천의 명성에 걸맞게 수질과 수온 등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수압치료와 수압마사지를 체험할 수 있고, 20여개의 이벤트탕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또 다양한 물놀이시설이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마사지 테라피 존 ‘바이탈테라피 센터’와 신개념 스포츠바 ‘루키’도 인기다.
리솜스파캐슬은 대전·충남 지역민과 오후 5시 이후 입장객은 각각 40%를 할인해 준다.
이외에 용봉산에서 수암산으로 넘어가면 덕산 온천지구의 세심천온천호텔(041-338-9000)로 내려서고, 홍성 읍내의 홍성온천(041-633-6666)에서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 맛집: 홍성은 한우와 해산물이 유명하다.
구항한우(041-633-0243)와 삼거리갈비(041-632-2681), 대동식당(041-632-0277)이 맛있다.
남당항과 궁리포구에는 지금 꽃게와 전어, 대하가 나오기 시작했다.
석양횟집(041-634-9913) 등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 잠자리: 용봉산자연휴양림(041-630-1785)이 대표적이다.
한옥은 전용석가옥(041-632-7077), 조응식가옥(041-642-6065), 예당큰집(041-642-3833) 등에서 체험할 수 있고 홍성온천지구에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 가는 길: 승용차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홍성~용봉사 입구로 간다.
서울에서 2시간20분쯤 걸린다.
서울에서 홍성행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06:40, 08:30, 10:00, 11:40, 13:20, 14:40, 16:00, 17:10, 19:00에 있다.
기차는 용산역(장항선)→홍성역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매일 17회(05:30~20:55),
홍성터미널에서 용봉사 입구로 가는 시내버스는 매일 20분 간격(07:30~20:40)으로 운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