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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 12:21-31).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06|조회수1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6일(토)

 

* 시작 기도

(94: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주님...

마구 지껄이며 오만한 자들 곧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능멸합니다.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자들이 여호와가 이런 일을 알지 못하며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이심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어찌 듣지 못하시겠습니까?

눈을 만드신 이가 어찌 보지 못하시리요?

우리 주님은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아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반드시 의로 돌아갈 것이므로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따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이런 자였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내가 악을 행할 때에 하나님이 보지 못하셨으면 좋겠다고 독백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는 과연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으로 인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살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시고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2:21-31

제목 :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나의 묵상

사도 바울은 우리 각 지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육신의 몸과 그것을 이루는 지체에 대하여 설명한다.

눈이 가장 높은 머리에 붙어 있다고 해서 그보다 아래에 있는 손더러 너는 쓸데없다고 한다거나 머리가 가장 낮은 곳에서 온갖 희생을 다하는 발에게 너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몸의 지체 중에서 가장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하며 몸의 지체 중에서 좀 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더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덜 아름다운 지체를 더 아름다운 것으로 꾸며준다.

 

그러나 우리의 지체 중에서 아름다운 부분은 굳이 그렇게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의 지체를 그렇게 고르게 하셔서 부족한 지체에는 귀중한 것들로 꾸미게 하시며 몸의 지체들끼리 분쟁이 없도록 서로의 지체들끼리 잘 돌보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그것은 자기만의 고통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그것은 자기만의 영광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가 그 영광으로 인하여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 진짜 말하고 싶은 지체, 곧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성도 개개인이 곧 지체임을 말한다.

너희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을 이루는 지체의 각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루도록 여러 가지 직분과 은사를 주셨는데 첫째는 사도,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교사이다.

이는 이런 직분을 가진 자들의 중요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들 모두는 말씀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로서 영생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물론 위의 세 가지 직분 또한 은사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에 열거되는 것들은 은사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곧 기적을 행하는 자,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 서로 도와주는 자, 지도력을 가지고 잘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사도일 수는 없다.

또한 모두가 다 선지자나 교사일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기적을 행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방언을 말하거나 모두가 다 통역을 하는 사람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것인데 이제 바울이 큰 은사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알려 줄 것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지체 중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쓸데없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중요하면 중요한 대로 덜 중요하면 덜 중요한 대로 나름의 소용이 다 있기 때문이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은 아주 중요하다.

귀도 마찬가지로 없으면 들을 수 없기에 너무도 중요하다.

입이나 코, 손이나 발 등 어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그러므로 자기만 생각해서 너는 나보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너는 몸에서 쓸데없으니 사라지라고 하면 이처럼 바보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눈이 발더러 너는 쓸데없으니까 없어지라고 해서 진짜 없어진다면 아무리 잘 보는 눈이라도 계속 한 가지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이 있어야 이동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의 말을 듣고 진짜 발이 사라진다면 그 후에 눈은 아마도 후회막급일 것이다.

그러고선 입을 나무라겠지?

나는 생각만 했는데 네가 왜 발에게 말을 해가지고 발이 떠나가게 했느냐고 말이다.

이런 몸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오늘 말씀의 핵심은 크든 작든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하여 약하거나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지체들은 더 귀한 것들로 입혀 주어서 그 중요성을 높이므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경우 외출을 할 때 자신을 살펴서 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좋게 보이기 위하여 더 좋은 것을 골라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한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좀 더 잘 보이기 위하여 장롱 속에 있는 옷을 다 꺼내 입어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고 나서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 즉시로 한 행동이 무엇인가?

그들의 몸에서 가장 부끄러운 곳이 드러나므로 그곳을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가리지 않았는가?

그런 행동은 사람으로써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육신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짜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또한 그것을 친히 가려주신다.

그들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곳을 가린 무화과 옷을 벗기시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가 부끄러운 것임을 밝히 드러내시며 그곳에 가죽옷 곧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신 것이다.

 

오늘 교회 공동체는 바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런데 몸을 이루는 지체들은 각각 그 쓰임이 다 다르며 기능과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더 중요하기도 하고 덜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덜 중요하다 할지라도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덜 중요해서 자주 쓰임 받지 못할 뿐 정작 쓰려고 할 때 그것이 없으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교회를 이루는 기능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영적인 차원이다.

세상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 또는 낮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학력이 높은 사람과 학력이 낮은 사람 또한 있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모든 사람이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어 이루는 나라이다.

단순히 육신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를 넘어서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들이 모인 영생의 공동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요 또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교회라고 하면 건물을 먼저 생각했었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또한 한 차원 넘어서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육신적 그리고 믿음의 차원을 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러한 여러 가지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을 주신 목적은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함이라는 말에 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나의 일차원적인 교회 개념에 대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물론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런 일 또는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나 자신을 감추고 남을 세워주며 섬기는 곳이 교회 공동체여야 함은 다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 교회 공동체는 이런 섬겨주고 배려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생명의 공동체요 영생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갈등과 반목,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교회에 대하여 실망과 낙담에 빠지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나는 이 땅에서 완전하고도 완벽한 교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생명의 공동체요 영생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 땅에서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비록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었을지라도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갈등이 생겨서 서로 싸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기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나의 義나 나의 힘 그리고 나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보고 부끄러워 무화과 옷을 지어 입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담과 하와를 추적하여 찾아가셔서 가죽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셨다.

그로 인하여 아버지의 품에 다시 들어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더 큰 은사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어떤 은사가 주어졌든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버무려질 때 그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생명을 힘입어 아버지께 담대하게 나아간다.

나의 의, 나의 힘, 나의 능력은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를 절망 가운데 빠지게 할 뿐이다.

그러나 주님의 의, 주님을 힘입어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는 담대함만이 나를 나 되게 하는 힘임을 믿는다.

오늘 그 은혜를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교회를 몰랐고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것을 이용하여 나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무뢰한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나는 죽어 마땅한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주님께서는 그것을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며 가렸던 나만의 무화과 옷을 벗겨내시고 그 자리에 주님의 옷,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보혈의 옷을 입혀 주셨나이다.

무섭고 두려웠으나 그것이 은혜임을 아는 순간 그 보혈의 옷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담대하게 하는지 깨닫게 되었나이다.

오늘 나에게 주신 은사, 그것만으로 남을 판단하거나 무시하는 자, 그리고 만족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그 은사에 더 큰 은사인 주의 사랑을 잘 버무려 주님의 온전한 생명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덜 중요하게 보이는 교회의 지체가 더 중요한 지체임을 마음으로 온 몸으로 체감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지 못했던 이 악한 종을 주의 공의로 심판하시어 십자가의 은혜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그저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로 나아가오니 이 종을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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