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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14:13-25).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10|조회수14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0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그’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임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천명하셨습니다(요 8:24, 28).

이는 곧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요 8:32).

이 진리는 다름 아니라 ‘내가 그’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이사야 43:10, 13절에서 ‘내가 그’임을 알고 믿으며 깨닫게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그’는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히브리어로 ‘아니 후’로서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당신을 계시하신 이름입니다(출 3:14).

진리는 우리 주님의 이름을 바르게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진리를 알지 못하였던 자입니다.

막연히 관념적이고 지식적인 개념으로만 붙든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 분이 ‘내가 그’이신 우리 주님이시며 또한 삼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그 진리의 복음을 온전히 붙잡고 사는 날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 외에는 구원자가 없사오니 내 마음이 이리저리 갈팡질팡 흔들리지 않게 장악하여 주소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게 하소서(히 12:28).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죽사오니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4:13-25

제목 :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나으니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 나의 묵상

여러 가지 은사들 중에서 특별히 인기가 높은 방언의 은사를 고린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선호하였다.

이에 사도 바울은 방언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는 자랑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하나님의 심판까지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방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방언은 자기 자신의 덕만을 세우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이것이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방언 통역을 구하라고 권면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지만 통역을 하지 못하면 마음으로는 무엇을 기도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음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14절).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으로 기도하면 통역을 통하여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할 것이며 영으로 찬양을 하면 또한 그 통역을 통해서 마음으로 찬송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안에서 아직 믿음이 부족한 초신자에게 방언으로 축복할 경우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또한 축복하는 사람에게 무어라 반응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축복과 감사를 잘 하였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그것으로 인하여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여러분들보다 더 많이 방언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나 초신자들을 가르칠 때 깨달은 언어 곧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일만 마디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따라서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말한다.

지혜에 관해서는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 곧 어른이 될 것이며 악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가 되어라.

이사야 28:11-12절에 의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른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나 외국인의 입술을 통해 이 백성들에게 말할지라도 저들이 여전히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다.

 

만약 공적인 예배에서 모든 사람이 다 방언으로 말한다면 초신자들이나 불신자들이 그것을 봤을 때 모두가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다 예언을 하면 초신자나 불신자들이 예언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하고 판단을 받기도 하면서 마음속에 숨겨온 죄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서 정말 여러분 가운데 계신다고 증거할 것이다.

 

방언은 아주 귀한 은사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곧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유대인이긴 하지만 유대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태어난 2-3세들이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여 제자들이 전하는 말이 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들의 귀에 들리는 것 아닌가?

이들의 귀에 들리는 것은 자기들이 태어난 곳 방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한다.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초대교회 당시 방언은 이렇게 아름다운 복음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린도교회에서는 성령께서 주신 귀한 은사들 중에 이 방언의 은사만을 높게 평가하여 성도들 사이에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나는 방언을 할 줄 안다고 하면서 자기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이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교회를 허무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각성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사야 28:11-12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이 전한 주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앗수르라는 침략자들의 소리를 통해 말씀하실 터인데, 그렇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앗수르 침략자들의 말을 통하여 주어진 경고를 유다 백성이 수용하지 않았던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주의 선지자들이 말해도 듣지 않는 유다 백성들을 꼬집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의 방언을 통해서는 복종과 믿음의 자세로 돌아가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심판만을 가져왔던 것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언 역시 아무런 유익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앗수르의 방언은 공교롭게도 고린도 교인들이 열광적으로 추구한 방언과 연결됨을 볼 수 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방언의 은사가 마치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심판을 의미하는 앗수르의 방언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다시 말하면 앗수르의 방언이 유다 백성들에게 회심이 아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방언 역시 그들에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권면을 하고 있다.

이런 바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획의 일환이며 축복인 방언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방언은 자기 자랑을 하는 은사가 아니라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되는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은사란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런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며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

집단적으로 질서 없이 방언을 할 때는 초신자나 불신자들이 와서 이를 보고 미쳤다는 반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질서 있게 하는 방언은 곧 방언을 하는 자신이 성령을 소유했다는 확신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줄 수 있다.

따라서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역사를 외부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표지가 되는 셈이다.

 

한편 예언을 가리켜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언이란 그저 단순히 한 사람의 미래를 미리 말해주는 사전적 의미나 점쟁이들 같은 그런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사적 진리(십자가, 장사, 부활, 현현의 복음)의 복음을 대언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교회에 들어오는 초신자들은 사실 이런 복음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저 사람이 좋거나 친분에 의해서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 함께 종교 생활을 하다가 이런 예언 곧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언은 이런 영적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의 길로 인도하고 자극하기도 한다.

그렇게 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교회에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복음을 들으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마음으로 책망을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이 나를 판단하여 심판하게 되고 초신자라도 그런 자신의 숨은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주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회개와 찬양을 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교회에 이미 나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복음이 필요 없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을 통해서 기적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에 나올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 복음의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이런 기적을 보았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계심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불신적 모습 곧 교회에 대하여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이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먼저 믿은 자들의 모습을 살피면서 교회 생활을 배우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게 교회 생활이란 지극히 종교 생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초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복음이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장사 그리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진짜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임을 믿으므로 그 생명으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전혀 이런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사실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진짜 복음을 기존 교회 공동체에 전하여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복음 안에서 더 성숙되며 믿음이 든든하게 되어 주님과의 교제를 날마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본문을 통하여 방언의 중요성과 예언 곧 복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에 대하여 무한 감사를 드린다.

이 본문을 통하여 주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매일 말씀 하시는 주님의 뜻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확인할 수 있음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미 오래전부터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녔으나 눈에 확연히 보이는 방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와 같은 기적적인 은사를 보기 원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신비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지만 사람은 연약한지라 그것을 본 시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에 대한 확신이 점점 희미해져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그런 기적을 보아야 자신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이 온전한 믿음일 수 없는 것은 보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언은 주님의 구속사건과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므로 이 진리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영을 깨우치고 자신의 잘못과 죄에 대한 책망을 듣고 말씀 앞에서 회개하여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는 참 신앙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로 교회의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복음 듣기를 힘들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할 때 예전의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지만 복음 전하는 일은 끊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원하나이다.

그 일에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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