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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26-40).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11|조회수1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1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린도전서를 묵상 중에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내 안에 찌들어 있는 이스라엘을 보았습니다.

내 안에 그런 교만함과 나의 義가 가득함을 봅니다.

하지만 이 하루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동행하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가 아니라 나를 품고 계시는 주님의 뜻인 영생을 이루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셨사오니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하여 주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은 진리시오니 나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라 하셨습니다(요 8:24, 28).

‘내가 그’라는 주님의 신명(神名)이야 말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모세에게 계시해 주신 그 이름임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토록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요.

나 또한 우리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자로 있길 원합니다.

날 주의 손으로 장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4:26-40

제목 :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 나의 묵상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 어떤 사람에게는 찬송할 것이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칠 것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고 방언을 통역하는 것도 있을 것이니 이 모든 것을 하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군가가 방언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두세 사람이 차례대로 할 것이며 그 중에 반드시 한 사람은 통역을 할 것이다.

만약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는 방언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만 말하라.

 

예언하는 자 역시 두세 사람이 말하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분별하도록 하라.

만일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임하면 먼저 말하던 자는 그 예언을 그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여러분 모두가 차례대로 예언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교훈과 격려를 받을 수 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기 절제에 의해서 통제를 받는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그리해야 한다.

여자는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 것이다.

여자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말하듯이 여자들은 복종해야 한다.

만약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 것인데 여자가 교회에서 말을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에게만 임하였는가?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인 선물을 받은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쓴 이 편지의 내용이 주의 명령인 줄 알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하는 것을 막지 말라.

그러나 모든 것을 지나치지 않게 적당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바울 당시 들려오는 고린도교회의 소식은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곧 성령의 선물을 많이 받은 것에 대해서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귀하고 소중한 은사를 분별없이 무질서하게 사용하므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하게 하며 교회를 무너뜨리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은사들을 사용하되 차례대로 질서 있게 사용할 것이며 내가 받은 은사만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자세를 피하고 적당히 질서 있게 할 것을 권면한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할 줄 알거나, 아니면 예언을 할 줄 알더라도 한꺼번에 모든 사람이 방언이든 예언이든 할 것이 아니다.

다만 많아야 두세 사람이 하되 순서를 정해서 차례대로 할 것이다.

방언의 경우 통역하는 사람을 세워서 통역을 하게하고 만약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방언을 하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만 방언으로 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언이 사람들에게 놀림감으로 비쳐질 것이며 어쩌면 미쳤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의 경우도 두세 사람이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예언의 말씀을 분별할 것이다.

만약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던 자에게 특별한 계시가 초월적으로 임하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예언을 그치고 후에 계시가 임한 사람으로 하여금 말하게 할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공적 예배의 형식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한 사람 교역자가 기도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한다.

예배는 찬송도 있고 기도도 있고 설교도 있는데 오늘날 공적 예배에서는 방언으로 찬송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서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적 예배에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 언어로 찬송과 기도를 하는 것이다.

 

설교의 경우도 방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담임교역자가 한다.

그런데 그 당시 고린도 교회와 같은 경우는 바울이 세우기는 했지만 바울이 고린도에서만 평생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 지도력이 있는 몇몇 사람을 세워놓고 또 자기는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이 때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설교를 하려면 차례대로 해야 했다.

만약 내가 설교를 하고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데 듣고 있던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임하면 먼저 전하는 설교자는 멈추고 긴급하게 계시를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설교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하는 것만이 옳은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교회가 질서 있게 세워질 수 있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를 하든지 계시로 받은 말씀을 설교하든지 차례대로 질서 있게 하며 품위를 유지하면서 모든 이들을 배려하며 적당하게 할 것이다.

 

이런 예배의 형식은 퀘이커교도들이 주로 행하던 예배의 방식이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 설교를 준비해 와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예배의 자리에 있을 때 특별히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 일어나 앞으로 나가서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곧 설교라고 한다.

물론 진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성령께서 친히 주신 말씀이라면 그 말씀이 어떤 말씀보다 뜨거우며 내실 있는 예언의 말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자기의 의가 들어가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앞선다면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를 추켜세우는 일장 연설이 되고 말 것이다.

이는 예배가 중구난방이 되어 질서도 없어지고 엉망이 되지 않겠는가?

 

교회는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지혜나 사고방식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시므로 그런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이들이 절제하며 다른 사람들을 세워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가장 연약한 지체가 가장 요긴하게 쓰임을 받는다고 말을 하였다(고전 12:22).

또한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를 들어 세상의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연약한 자를 들어 세상의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없는 자 천한 자를 들어서 세상에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셨다(고전 1:27-28).

 

오늘날도 가만 보면 교회에서 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주로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이는 세상의 법칙이 교회에도 그대로 들어왔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아니다.

이처럼 세상적으로 지위가 있고 재력이 있으며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그와는 전혀 다르게 권위나 지위가 없는 사람에게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경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의 질서가 세워지고 평안하게 된다.

사회적인 지위가 곧 교회에서의 지위와 동일시된다면 이는 교회 공동체가 영적 공동체가 아니라 이익 집단으로 세워진 세상의 공동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는 보편적인 모든 교회 공동체에서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특수성 속에서 행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자들이 자기들이 받은 은사들로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또는 자기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이 은사를 받았을 경우 그들에게 배우기 위하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하여 교회 공동체나 예배를 어지럽히거나 소란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창 3:16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여자들이 질서 없이 교회 안에서 행동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여러 가지 은사들을 행하되 질서 있게 하고 분에 넘치지 않도록 절제하며 적당하게 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교회에서도 어떤 은사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권위를 주어 그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처럼 열심히 섬기는 것으로 인하여 열매를 많이 맺으면 그것이 획기적인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열매만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 공동체 구성원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은사를 행하되 차례를 지킬 것이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은사가 최고라는 자기 의에 대하여 철저하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임을 알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함을 말씀한다.

 

나는 받은 은사가 여러 가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은사를 교회에 사용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고 열심을 내어 섬겼고 그 결과 열매도 많이 맺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왜 뒤에서 말만 많으냐고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곤 하였다.

이런 나는 철저하게 나의 의로 똘똘 뭉쳐진 자였던 것이다.

 

주님의 교회는 결코 능력 있는 사람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이끌어 가신다.

사람들은 교회의 외형과 사이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교인의 숫자를 보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정말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를 보신다.

주님의 뜻이란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영생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적인 것은 결국 쇠락의 법칙에 적용을 받아 언젠가는 다 무너지거나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복음을 통한 아들의 생명은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으시지 무너지고 사라지고 썩어 없어질 것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6:40절).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오직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로 평가를 받으려고 했던 나를 이 시간 주님께 고발한다.

나의 의, 자기주장의지로 나의 존재감을 확장시키려고 했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이제 복음 안에서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리고 나는 죽고 오직 주님이 하셨음을 인정하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며 주님의 살아나심과 같이 나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요 영생의 삶인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세상은 자기 자신을 프로모션하고 홍보하여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차원이 전혀 다른 이 두 차원의 세계에서 나의 육신의 발은 이 땅을 딛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나의 영혼은 만물 위를 사는 것임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내게 주어진 은사가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과시하여 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사용하고 그 열매로 나를 얼마나 많이 높였는지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를 드러내고자 불철주야 애를 썼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죽기에만 합당한 일이라는 것을 복음을 통하여 알게 되었사오니 이제는 내 이름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나는 주님의 품에 감추어주시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만 부요하게 하소서.

동시에 두 존재가 드러날 수 없는데, 주님은 감추고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악한 자가 여기 있사오니, 이제 나는 주님으로 죽고 주님으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나 외에 다른 이들이 강하든 연약하든 주님의 쓰심에 적당하게 쓰임 받아 주님의 교회,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애쓰게 하옵소서.

나는 있어도 주님이 없으면 나는 없는 것이오니 오늘 이 찬양이 나의 주제 찬송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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