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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 15:1-11).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12|조회수10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2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마지막 때에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144,000명이 시온 산에 섰는데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들은 속량을 받아 구원받은 자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이며 어린 양을 따라 어디든지 가고 거짓과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계14:1-5).

이들이 구원받은 것은 자기들의 선한 행위로 인함이 아니요 어린 양의 보혈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선한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자가 없으나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인함은 그들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것이 바로 주님의 보혈의 옷이요 이를 가리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계 19:8).

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자녀 삼아 주시고 신부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그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5:1-11

제목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나의 묵상

고린도전서 15장은 일명 부활장이다.

이는 부활에 대한 말씀이 집중적으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부활만 아니라 십자가와 장사 그리고 부활과 현현의 복음을 드러낸다.

 

형제 여러분,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에 대해 자세하게 알리려고 한다.

이것은 여러분이 받아서 그 안에 굳건하게 선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내가 전한 그 복음을 잘 지키고 헛되게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

내가 주님과 사도들로부터 받았던 복음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하였다.

그것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한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먼저 보이셨고 그 후에 열두 제자들에게 또 후에는 500여 명의 형제들에게 보이셨는데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죽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마지막으로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 바울에게도 보이셨다.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대하게 박해하였기 때문에 감히 사도라는 직분을 감당하지 못할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고 더 많이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전했든 다른 사도들이 전했든 우리가 전한 복음은 바로 이런 내용이며 또한 여러분들도 이것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사도 바울이 3절에서 내가 받은 것을 너희들에게 전하였다고 하는데 그 ‘받은 것’이란 곧 다른 사도들로부터 받은 복음 곧 전승복음을 말한다.

바울이 처음부터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그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는 그가 다메섹에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의 말씀을 전했었다.

이 내용을 갈라디아서에서 잘 보여준다.

갈라디아서는 고린도전서보다 먼저 AD 53년경에 바울에 의해서 쓰여졌다.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처럼 사람들에게서 전해 받은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해 주신 복음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께로부터 직접 계시로 받은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큰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울 당신이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사도권에 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바울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과 같이 육신으로는 예수님과 함께한 사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물 위로 올라가신 이후에 바울에게 직접 복음을 계시해 주셨다.

 

바울은 이런 사도권의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직접 이 복음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보니까 자기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복음과 전혀 다르지 않고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울은 이제 자기가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않고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복음 곧 전승된 복음을 전한다고 명시한다.

이것은 복음의 진위여부에 대한 명백한 참 것임이 확증되는 것이며 바울이 직접 계시로 받은 복음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의 입으로 내가 전하는 복음은 사도들로부터 받은 복음이라고 미리 명시하기 때문에 그 복음은 객관적인 복음이 되는 것이다.

하여 바울이 전하는 전승복음, 곧 객관적 복음에 대하여 누구도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 3절 이하에서는 이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그것은 곧 4가지 복음인데 십자가 장사 부활 그리고 현현 복음을 말한다.

(3-5)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는 바울에 의해서 AD55년경에 쓰여졌다.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계시된 복음’에서 보다 더 확장된 복음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이는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 4가지 복음을 말하는데 십자가 복음, 장사 복음, 부활 복음, 현현 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2년 정도 늦게 쓰여진 성경이 바로 로마서인데 거기서는 여기서 말하는 복음보다 더 확장된 복음을 말한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도 동일하게 4가지의 핵심적인 복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예수님의 장사됨, 예수님의 부활만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로마서에서는 예수님과 내가 함께 죽고, 예수님과 내가 함께 장사되며,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예수님이 부활하심과 같이 나도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현 복음이란 육신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이러한 십자가와 무덤 그리고 부활 복음에 연합한 자는 그 안에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데 그것이 곧 현현복음인 것이다.

 

그리고 이 로마서보다 약 5-6년 정도 후에 쓰여진 골로새서에서도 동일하게 이 복음이 증거된다.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된 자들을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새 생명으로 일으켜 주시는데 이제 이처럼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제는 땅의 것, 만물 안의 것에만 천착하지 말고 오직 위의 것, 만물 위의 것, 창세전의 세계가 우리의 진짜 나라임을 알아서 날마다 그 나라를 살 것이다.

그 나라는 다름 아니라 이처럼 주어진 복음을 삶으로 사는 것이며 무엇보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7:24절에서 아버지가 주신 영광을 우리와 함께 보기를 원하셨다.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들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는 창세전이나 지상에 계실 때를 막론하고 주님은 오직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단 한 번도 분리되신 적이 없으시다.

오직 한 번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인데 그런 아들 예수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죄하여 죽는데 내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와 기도로 교제하고 있는 주님께서, 나 있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있고 또한 아버지가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보기를 원한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록 육신으로는 지상인 겟세마네 동산에 계시지만 그의 영은 날마다 아버지의 품에서 아버지와 함께 교제하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복종하신 아들에게 아버지로써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을 하셨으며 그 사랑이 곧 본질을 계시하시는 영광인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소원은 주의 자녀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 영광을 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것은 물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고전 15:2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았다면 그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이 땅위에 사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종할 것인가?

그것은 새 언약 백성으로써 날마다 큰 자나 작은 자를 막론하고 말씀 앞으로 나오면 내 안에 부어주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다는 예레미야서 31:31-34절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새 언약은 이미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주님의 피로 성취하셨다.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처럼 성취된 새 언약 백성으로써 지켜야 할 계명은 구약시대처럼 율법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 백성에게 주신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 백성으로써 날마다 지켜야 할 새 계명은 다름 아니라 날마다 말씀 앞으로 직접 나아가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것을 밝히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란 배워서 지식적으로 아는 앎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 되시는 우리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생의 삶이다.

바로 이 자리에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아버지의 영광의 빛이 비추고 그 영광의 빛 안에 거하는 자는 넉넉히 하루를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주의 영광의 빛이 내 마음과 이 말씀묵상의 자리에 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거짓되고 음탕한 고멜과 같은 자가 여기 있나이다.

주님을 알지 못하면서 주의 말씀을 이용하여 내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했던 무뢰한이 바로 나임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의 영광을 본다는 자가 늘 넘어지고 깨져서 주의 영광을 가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이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나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께서 주의 은혜로 하신 것이오니 나는 감추어주시고 오직 주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 영광의 빛 아래 거하여 내 심령이 환하게 밝혀지게 하시고 그 영광의 빛 아래서 날마다 주님과 춤추는 페리 코레시스(둥글게 손잡고 하는 강강수월래)를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 종은 감춰주시고 오직 주님으로만 채워주소서.

주의 새 언약 백성이오니 나의 악행은 사하시고 죄악은 기억지 말아 주소서.

오직 주님으로 영광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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