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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고전 15:29-34).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5일(월)

 

* 시작 기도

(107:25-30)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

이 세상에서 사는 인생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고난의 광풍이 있습니다.

이런 광풍을 맞는 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이 고난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이는 종교의 본질이지요.

나 역시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이 종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난을 주신 주님의 뜻에 역행하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그런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복음의 초청을 받고 복음 안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장사복음이었습니다.

십자가와 무덤이라는 고난은 다름 아닌 주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 고난의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바라는 항구 곧 소원의 항구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내 뜻대로 살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5:29-34

제목 :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 나의 묵상

시편 8:6절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둔다고 말씀하실 때, 만물을 그의 아래 두신 하나님은 그 만물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여 만물을,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실 때, 아들 역시 자기보다 크신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만유를 다스리시며 만유의 주인이 되신다.

 

그런데 만약 죽은 사람들이 절대로 부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냐?

왜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냐?

그리고 나와 우리 일행들은 무엇 때문에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왔는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자랑을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인들과 격렬하게 싸웠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것처럼 바울 자신의 용감무쌍함을 과시할 목적으로 해서 생명을 담보로 싸웠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것인데 무엇 하러 열심히 살아? 그냥 먹고 마시다가 죽자.’고 할 것이다.

 

여러분, 이제는 속지 말자.

나쁜 친구들을 사귀면 좋은 일을 행하던 것도 나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신을 차려서 의를 행하되 죄를 짓지 말 것이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 무지한 자들이 더러 있어서 여러분의 부끄러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아담으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위에 있는 로마서의 말씀은 아들의 생명을 현재적으로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전 15:22절의 말씀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생명을 얻을 것인데 그것은 곧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생명, 곧 영생은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이다.

여기서 영생을 현재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폐단을 알 수 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의 경우, 만약 내일 죽을 것이면 오늘 맘껏 먹고 흥청망청 마시면서 즐기다가 죽겠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오늘 현재 영생을 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흥청망청 사는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땅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죽어서 만큼은 천국에 가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 곧 “내가 이렇게 사는데 진짜 죽어서 천국에 가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는 이들은 죽어서 가는 천국 곧 미래적인 영생에 대해서 고민이나 갈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영생을 누리는데 나중에 얻을 영생에 대해서 하등의 질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9절의 말씀은 교리적으로 오해하기 쉬운 말씀이다.

잘못 이해하면 마치 바울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카톨릭에서 하는 ‘죽은 자를 위한 연도(기도)’와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믿지 않고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면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던 ‘죽은 자를 위한 세례’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는 언급이 없다.

다만 너희들이 왜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면서 그 목적은 다름 아니라 죽은 자가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이런 교리를 믿지 않는다.

또한 나 역시 이런 교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며 모순이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를 당했다(고후 11:23-27).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박해가 그를 염려하게 한 것이 아님을 그는 이어서 말한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여러 가지 고난과 박해들)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그의 염려는 죽음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염려였던 것이다.

그가 죽음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을 일컬어 미래적 영생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이 영생은 바로 오늘 이 시간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영생의 현재성이라 한다.

 

나는 예전에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많이 두려워했었다.

물론 교리적 지식적으로는 부활을 믿었지만 그 부활을 오해하기도 했다.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 가는데, 무엇 하러 굳이 몸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야 되느냐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활에 대한 기대도 소망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복음을 통해서 부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땅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 아니다.

온전한 구원은 창세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에 근거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전에 아들과 함께 약속하신 언약에 근거하는 것이다.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약속에 근거하여 아담을 지으셨고 흙으로 만들어진 생명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는 완전했지만 그러나 영생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야만 했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영생은 영과 육의 완전한 영생이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온 것이다.

그 죽음은 죄로 인한 육신의 죽음이며 이 땅에서 죄의 몸인 육신은 구속받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몸의 속량 즉 부활을 통하여 영과 육이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된다.

 

나는 지금 몸의 가치를 아주 가볍게 여긴 것에 대하여 회개한다.

그것은 내 육신의 몸을 학대라도 하듯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병들면 물론 병원에 가지만 그 병으로 인한 아픔 고통만 없다면 굳이 병원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감기 몸살로 인하여 입원도 하고, 불면증으로 인하여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도 하였으며,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하여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약을 받곤 한다.

최근에는 쇄골이 부러져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하기도 했었다.

이제 회복이 돼서 퇴원을 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이렇게 나는 몸이 연약하여 병원신세를 자주 지는 편이다.

그러나 그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만 없다면 그냥 지내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아무리 치료하고 건강해도 언젠가는 죽고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신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다.

부활을 통해서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되고 영생을 누리되 그 영생은 또한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의 몸 역시 주님이 주신 깨끗하고 건강한 몸으로 사는 것이 옳다.

물론 생명은 주님께 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님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사는 동안 할 수 있으면 건강하게 살되, 이것을 통하여 더욱 복음 전하는 일에 진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신은 죽으면 그만이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기에 항상 깨어 죄를 짓지 말 것이며 또한 이 죄는 육신의 지체로 짓는 경우가 많음을 깊이 깨닫습니다.

따라서 날마다 죄의 몸을 거룩한 불구자로 만들기 위하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되 체질 또한 건강하게 바꿔서 주님과 더욱 건강하게 만나길 소망합니다.

물론 썩어 없어질 육신에 투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활을 맞을 육신 또한 오늘 이 시간 현재적으로 잘 관리하여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과 육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주님께 있음을 믿기에 주님이 주시는 심판을 통하여 당하는 고난이 내게 더욱 유익이 되게 하옵소서.

건강이 나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말씀으로 더 가까워지는 영적 교제가 일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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