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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고전 15:35-49).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16|조회수7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6일(화)

 

* 시작 기도

(21:18, 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주님...

눅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오는 탕자를 보고 아버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아버리는 것은 신 21장의 말씀처럼 동네 사람들이 그 아들을 돌로 쳐 죽여도 아무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탕자를 향하여 던지는 돌을 아버지가 대신 맞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임을 믿습니다.

하여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동행하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의 은혜이오니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5:35-49

제목 :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나의 묵상

어떤 사람들이 묻기를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또 그들은 어떤 몸으로 나오게 되느냐?”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씨를 뿌릴 때 그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고 또한 뿌리는 것은 장래에 얻을 그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밀과 같은 알맹이나 씨를 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씨들마다 전혀 다른 형체를 주신다.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다.

사람과 짐승 그리고 새나 물고기와 같이 육체라도 전혀 다르다.

또한 해나 달 그리고 별도 다른데 이와 같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는 반면에 땅에 속한 형체도 있다.

그뿐 아니라 각각의 형체에 따르는 그 영광도 다르다.

해의 영광이나 달의 영광 그리고 별의 영광이 다 다르며 심지어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도 이와 똑같다.

썩을 몸을 심지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욕된 것 곧 비천한 몸을 심지만,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연약한 몸을 심지만 강하고 능력 있는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육신의 몸 곧 자연적인 몸을 심지만 거룩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와 같이 육신적인 몸이 있으면 또한 영적인 몸 거룩한 몸도 있다.

 

창 2:7절에 기록된 것처럼 첫 사람 아담이 생령 곧 살아있는 존재, 만들어진 생명이라면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 곧 생명을 주는 영이다.

그런데 신령한 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신령한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땅의 흙 곧 먼지와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이나 둘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태어나신 생명이다.

따라서 흙에 속한 사람들은 흙에 속한 아담과 같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곧 아들의 생명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흙에 속한 아담의 형상을 가진 것처럼 하늘에 속한 아들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여러 가지를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부활이 사실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한 마디로 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반드시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 부활체는 이 땅에서 가졌던 몸과 전혀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는 부활하여 변화된 거룩한 몸으로 사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두 차원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아담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바울이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한 알의 밀을 심으면 그 밀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심는 것과 맺히는 열매는 전혀 다르다.

사과를 얻기 위해서 사과 열매를 심는 것이 아니라 사과 씨를 심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박을 먹기 위해서는 수박을 통째로 심는 것이 아니라 수박의 씨앗만 심으면 된다.

 

이와 같이 심는 씨와 거두는 열매는 전혀 다르다.

또한 사람 짐승 새 물고기와 같이 땅에서 사는 이런 생명체들도 그 형체가 다 다른 것처럼 이 땅에서 가지고 사는 육신의 몸과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부활체는 전혀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속해서 해 달 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는 이것들의 무슨 속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 그리고 별의 모양이 다르듯이 지상에서의 몸 역시 모두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심지어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지라도 이 땅에서의 몸과 부활체의 몸은 전혀 다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육신의 몸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썩을 몸, 욕된 몸, 연약한 몸, 육의 몸 등으로 묘사하는데 이런 몸들이 이제 부활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썩지 않을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임을 말한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것은 부활체로 새롭게 살아나는 그 몸을 가지기 이전에 이 땅에서도 두 차원의 생명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하여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땅의 먼지와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made of God)’이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아파르, 먼지 티끌)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생물, 살아있는 존재)이 되니라.

그러나 마지막 아담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태어난 존재, 곧 ‘태어난 생명(born of God)’이다.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은 사실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죽은 뒤에 변화될 몸이나 부활체인 거룩한 몸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이 땅에서 살 때 어떤 생명으로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담의 생명으로 살아도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진짜 부활을 믿는다면 아담의 생명이 아니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구속사건을 믿는 것이요 그의 구속사건은 십자가와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와 무덤 그리고 부활은 막연하게 어떤 지식적 관념적으로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예수님의 구속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구속사건에 함께 연합하여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바로 믿는 자요, 하늘에서 난 자에게 속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먼저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라 하였고 또한 흙에 속한 자들은 아담의 생명에 속하였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 모태를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물론 어머니를 통하여 태어나지만, 그는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아담에게 속한 ‘만들어진 생명’이다.

이 만들어진 생명은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면서 어떤 이유로든지 교회에 나오게 되고 또한 복음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면 그 생명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곧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말이다.

이것을 가리켜 거듭남이라 하며, 이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헬, 아노센)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들의 생명, 거듭남, 위로부터 태어남은 다 같은 의미이다.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에 나가지만 여전히 아담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만들어진 아담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창세전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영생이라고 한다.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아들의 생명, 거듭남, 위로부터 태어남’을 일컬어 영생이라 하는데 이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은 곧 사귐이요 교제이다(요일 1:1-4).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와 사귐은 다름 아니라 말씀으로 날마다 만나는 것이다(렘 31:31-34, 새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할 조건의 규정).

이것이야말로 영생의 참 의미이며 진리 중의 진리이다.

 

나는 이런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예수를 믿는 것도 성경에 나오는 지식적인 믿음이었으며 관념적 믿음에 지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고 했는데, ‘내 마음에 예수가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것’ 쯤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나의 삶에서 구체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헷갈렸었다.

그러니 이런 믿음은 예수 믿어서 이 땅에서 내가 잘 되고 나의 잘 된 그 모습을 불신자들이 보면서 예수 믿으니까 저렇게 잘 되는구나 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어렵고 힘든 고난이 찾아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으로 알았고 그래서 예수 믿는 자는 고난을 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나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어야 할 자이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는 것을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그것이 내 믿음으로 온전히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내게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 귀한 복음을 통하여 영생의 실재를 맛보게 되었고 지금은 날마다 그 영생의 삶을 살고 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만나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날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씀묵상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성령께서 그 자리로 인도하신다.

이 자리는 나보다 주님께서 더 원하시는 영생의 자리이다.

그래서 창세전부터 이 영생을 약속하셨음을 믿는다.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이끄셔서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저께는 주일이었는데 토요일 밤에 너무 더워서 잠을 설쳤더니 주일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하여 힘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뭘 잘못 먹었는지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하더니 급기야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겨우 인도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잠을 청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죽을 한 그릇 먹고 났더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작은 불편함조차 나를 무너지게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매일 매 순간,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시고 의심의 안개나 근심의 구름이 없는 기쁘고 참된 평화가 있는 그 나라를 현재적으로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여기임을 알기에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나이다.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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