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토)
* 시작 기도
(신 25:5-6)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주님...
이 제도를 일컬어 계대결혼법 또는 시형제결혼법이라 합니다.
또한 형제의 관계를 넘어 친족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혼법을 고엘제도라 합니다.
고엘제도의 비근한 예가 바로 보아스와 룻의 결혼입니다.
시형제결혼법은 유다의 장자 엘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유다는 그의 차남을 며느리 다말에게 줍니다.
하지만 오난은 자기의 씨를 형에게 주기 싫어서 몸 밖에 설정을 합니다.
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오난을 죽이십니다.
셋째 아들 셀라가 남았는데 그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또 다말에게 주면 그 역시 죽을까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수절을 요구하면서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셋째가 장성하였음에도 자기에게 주지 않자 다말은 창녀로 분장하고 유다에게 접근을 합니다.
이는 어찌보면 세상에도 있을 수 없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인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유다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결정적인 일을 하는 것이지요.
나 또한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나 1:1-10
제목 :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은 곧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이 복음이란 심판의 복음인데 이 심판의 복음을 듣고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면 그들에게 유익이요 그렇지 않으면 진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그들에게 이 심판의 복음을 전하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선민이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인데 앗수르는 이방민족으로써 지옥의 땔감으로밖에 쓸 데가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배 아픈 일이 없을 것이다.
끝도 없이 자기들을 침략하고 괴롭혔던 앗수르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요나의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기로 작정하고 배를 타려고 욥바 항구로 갔다.
그런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지 않은가?
“그럼 그렇지. 니느웨놈들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말씀은 하셨지만, 하나님도 싫어하시는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스행 배를 준비해 놓으신 게지.ㅎㅎㅎ”
요나는 그 배를 타고 출항을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요나는 배의 제일 아래 칸에 내려가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원들은 큰 풍랑으로 인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배 안에 있는 자기들의 물건을 배 밖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가만보니까 요나가 배 밑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선장이 그에게 가서 당신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느냐면서 깨웠다.
그리고 네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요청한다.
그러고 나서 풍랑이 누구로 인함인지 알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데 마침 요나가 걸린다.
사람들이 요나에게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지 말하라고 한다.
그리고 너의 생업과 함께 어디서 왔으며 너의 나라와 민족은 어디인지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요나가 한 마디로 대답한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의 얼굴을 피하여 지금 이 배를 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자 사람들이 두려워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요나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요나는 선지자요, 신약으로 말하면 사도이다.
선지자나 사도는 보냄을 받은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분명 보내신 이가 있어서 그의 명령을 받고 보냄을 받은 것이다.
심부름꾼은 심부름을 시킨 사람의 말만 잘 듣고 행하면 된다.
어느 날 한 엄마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아멘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아들은 몰라~, 그러자 엄마가 말해주었다.
아멘은 예수님 말씀을 잘 들을께요, 하는 말이라고 말이다.
며칠 후에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아멘이 무슨 말인지 알아?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멘은, 예수님 말만 잘 들을게요. 라는 뜻이란다.
그렇다, 사도요 선지자는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
그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나는 자기 생각, 자기 의, 자신의 뜻이 앞서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제사장이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제사장 나라란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책임을 잊어버리고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인양 교만에 빠져서 이방 민족은 지옥의 불쏘시개쯤으로 하대(下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오늘 본문의 요나에게도 지배적으로 차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민족을 학대하고 침략을 일삼았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복음 전하기를 꺼린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행할 때 자기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까지 해를 받는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배에 탄 다른 선원들까지 목숨을 건 고난을 당하여야만 했다.
이런 요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선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 한다.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소?”
교회 세습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시골의 정말 열악한 교회를 대를 이어 그 교회를 섬기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아들 목사가 3,000명이 넘는 대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데 아버지 목사가 담임하는 더 큰 교회를 담임하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꼼수를 써가면서 세습을 한 MS교회는 교회 내에서보다 세상에서 더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목사가 있다.
그는 제법 큰 교회를 목회한다.
그런데 아들에게 그 교회를 세습하기 위하여 교회에 의견을 물었다.
교회는 공동의회를 통하여 부결시켰다.
이에 담임목사는 교회에 수십억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목사들의 성적 타락 문제며, 부를 축적하는 문제, 목회의 성공이란 것이 큰 예배당을 짓고 수많은 교인들을 모아서 재정이 빵빵하게 운영되는 그런 교회로 가늠되는 현실은 현재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중심축이다.
한편 선원들이 요나에게 한 마디 한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왜 그 말씀대로 따르지 않아서 애매한 우리들까지 개고생 시키느냐는 것이다.
내 안에는 이런 모습이 없는가?
왜 없겠는가?
나 역시 목회의 성공이란 것을 여느 목사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생각했던 자이다.
빨리 교인들 많이 모아서 큰 교회를 이루고 예배당 크게 지어서 사람들이 보기에, 이 교회 목사, 목회에 성공했네, 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목적이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전도도 정말 열심히 했었다.
문제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정작 복음은 전하지 않고 그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물론 그 때는 내가 복음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총알이 없으니 총이 있다한들 어떻게 쏠 수 있겠는가?
나는 선원들이 요나에게 했던 그 말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들어도 부족한 자이다.
주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이름이 드러나길 원하고 내가 알려지기 원했으며 때로는 하나님 위에 내가 올라서려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것은 상(賞)이 아니라 심판이다.
주의 심판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이것을 통하여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의 심판 아래 거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말씀을 대한다.
무엇보다 나는 심판을 받고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지금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교회랄 수도 없는 극히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작은 교회에서 하는 목회가 행복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의 의를 드러낼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신 복음 외에는 다른 것을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나의 의가 드러나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행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예수로만 부요해지기를 바란다.
오늘도 이 말씀이 내 폐부를 찌른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자입니다.
주님의 겉모습만 보고 그것이 좋아서 따랐던 자요 성령을 받기 전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잘 난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내가 행한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나는 주의 심판을 받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주님, 나를 심판하소서.
주의 간섭이 필요하며 주의 선하신 뜻대로만 행하는 자, 아멘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의, 나의 행동 하나하나, 내 손과 발로 행동하는 모든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다 잘래낼 수 있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옵소서.
나를 주의 오른팔로 주장하여 주옵소서.
하여 오직 예수만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