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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요나 1:11-17).

작성자John Kim|작성시간26.06.21|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1일(주)

 

* 시작 기도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주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예언했던 이입니다.

그가 예언한 내용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못과 창에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온 몸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입니다.

과연 그 분이 십자가의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렸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양과 같이 그릇 행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흩어졌습니다.

그 길이 마치 가장 선한 길인 양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죄악을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은 주님께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는 오늘도 그런 주님을 신뢰하며 나를 맡깁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매번 넘어지지만 오늘도 다시 일어나 그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은 공동체로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예배하는 곳곳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나 1:11-17

제목 :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 나의 묵상

다시스로 항해하는 배에 탄 요나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큰 풍랑을 일으키신다.

그로 인하여 배에 탄 선원들은 배가 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가 한이 없다.

누구로 인함인지 알아보는 차원에서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렸고 선원들은 요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다.

그 때 요나는 히브리 사람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대답한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금 도망가는 중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다른 선원들은 더 두려워하면서 요나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런 무서운 행동을 했느냐고 다그치면서 묻는다.

 

한편 풍랑은 더 심해진다.

선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요나에게 묻는다.

그 때 요나가 대답하기를 요나 자기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 때문에 너희가 지금 이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원들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다해 노를 저어서 배를 육지로 돌리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그 때 사람들은 이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까지 멸망시키지 말 것과 우리가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질지라도 그 죄를 자기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 모든 일은 주의 뜻대로 일어난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부르짖은 다음에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맹세도 하였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하여 바다에 큰 물고기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으며 그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므로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냈다.

 

사람들은 갑자기 바다에 이는 풍랑의 이유를 몰랐지만, 요나는 알았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하는 것 때문이었다.

이로 인하여 자기가 타고 있는 배의 다른 선원들까지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고난의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있음을 이실직고 한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당신들이 고생을 하는 것이니까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면 이 고생이 끝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요나를 살려보려고 노를 저으면서 애를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진다.

 

여기서 요나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물론 요나는 자기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직고하면서 사람들 앞에 자백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내 탓이 아니라 누구누구 탓이라고 하면서 남에게 돌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요나는 담대하게도 자기의 죄라고 하면서 이실직고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선원들의 손에 의해서 바다에 빠진다.

그리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낸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3일간의 무덤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는 선지자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다.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속사역에 함께 연합하는 것이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런 십자가와 장사복음은 예수님이 죽고 장사되시는 것을 제3자의 방관자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십자가에 함께 죽고 또한 무덤에 함께 장사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장사되는 무덤은 나의 무덤이다.

아무리 내가 잘 죽는다 해도 그것이 나의 무덤으로 그치면 거기에는 아무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그 무덤이 주님의 무덤과 연합될 때만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며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다.

그곳 바다가, 아니 그를 집어 삼킨 큰 물고기의 뱃속이 바로 요나의 무덤이다.

그 무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것이기에 그는 주님과 연합하는 무덤에 들어간 것이다.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정말 좋아했던 것은 표적이었다.

예수님만 만나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기 원하시는 표적은 다름 아니라 요나의 표적 곧 요나의 무덤이었다.

 

나는 이런 유대인들처럼 표적보기를 좋아했으며, 예수님의 무덤이 나의 무덤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방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될 리 만무했다.

이런 나는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무덤에 장사됨, 부활과 승천 이 모든 일련의 구속사건 앞에서 구경꾼으로만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구경꾼이 아니라 주님의 삶을 따라가는 자이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여 연합할 때 진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늘 주님과 한 발짝 떨어져서 구경꾼처럼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가 복음을 듣고 알게 된 후로는 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를 믿어서 이 땅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했던 나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깨트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나님 나라 곧 영생을 현재로 누리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중국적자라는 말은 옛날부터 들었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그런 이중국적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이 땅에서 살지만 동시에 나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그런 자이다.

이것이 곧 두 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영생을 맛보는 삶인 것이다.

 

이런 삶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어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임하면 주님이 살아나심과 같이 나도 함께 새 생명으로 일으킴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날마다 사는 것이 바로 영생이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말씀을 떠난 영생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날마다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이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요나의 무덤은 주님의 무덤과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죽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으나 이제 날마다 죽습니다.

내가 들어갈 무덤이 곧 주님의 무덤이 되어 주님과 연합하오니 나를 받으소서.

아무리 나의 무덤이 잘 꾸며지고 멋지게 죽는다 할지라도 주님과 연합하지 않는 무덤은 생명이 있을 수 없음을 압니다.

하오니 내게 주님과 연합하여 생명으로 나오는 온전한 무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내 마음 아시지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말입니다.

나 비록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지만 파레시아로 다시 일어섭니다.

주님을 힘입어 담대하게 일어나는 나를 외면하지 마시고 오직 주의 것 삼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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