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목마름
칠월의 아침,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진주 사봉면의
낡은 기와집에서,
여든두 살의 최정수 노인은 마루에
앉아 먼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 여전히 흘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오래전에 말라버린 것이 있었다.
"물 한 잔 드릴까요, 할아버지?"
손녀 은수의 목소리였다.
스물다섯 살.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왔다고 했다.
왜 내려왔는지 물으면 그냥 쉬고
싶어서요, 라고만 했다.
정수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가 내온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노인의 눈에 무언가가 스쳤다.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서늘한 감각.
얼마나 오래 목말랐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것.
"고맙다."
세 글자였다.
그러나 은수는 그 세 글자에서
파도를 느꼈다.
할아버지가 이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한 적이 없었다.
정수 노인의 삶은 단단했다.
6·25 때 아버지를 잃고,
두 손으로 농사를 일으키고,
자식 셋을 키웠다.
아내 순남이 떠난 지 오 년.
자식들은 대구와 서울과 부산으로
흩어졌다.
명절에 잠깐 다녀가고,
전화도 가끔이었다.
노인은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냥 나이 든 것이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은수가 마당에 평상을 꺼내 별을
보자고 했을 때,
정수 노인은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옆에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그냥.
남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물 냄새가 났다.
제 2 장 | H₂O
은수는 사실 도망쳐 온 것이었다.
서울의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편집 일은 좋았다.
문장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열 달 전부터 그 기분이
사라졌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다 현관문 앞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병원에서는 번아웃이라 했다.
약을 처방해 줬다.
약은 잠을 재워줬지만,
아침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댁에 내려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은수는 강가에 혼자 앉았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주 당연하게, 아주 쉬지 않고.
'물은 어제 여기 있던 물이 아니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기 발 앞을 지나가는 이 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강은 같아 보이지만,
물은 계속 새것이다.
강은 끊임없이 새 물로 자신을 채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언제부터 흐르기를 멈췄지?
저녁에 정수 노인이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무릎에 성경을 올려두고 읽고
있었다.
은수는 가만히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갈증이 나는데 물이 없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해?"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노인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흘러가는 데로 가면 물이 있지."
은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제 3 장 | 출력
마을 아래 읍내에 손명희라는 여자가
있었다.
일흔 살.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은 이십 년 전에 가고,
아들은 일본에 있었다.
명희는 한 달에 한 번,
시내 복지관에서 노인들의 식사를
도왔다.
가끔 은수도 따라갔다.
처음에는 그냥 몸이라도
움직여보자는 마음이었다.
"왜 하세요? 힘드실 텐데."
은수가 물었다.
명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좋아서."
"좋으세요?"
"응. 이상하지?
나도 처음엔 그게 이상했어.
받는 쪽이 행복해야 하는데,
주는 쪽인 내가 더 행복하니까."
그날 밤, 은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명희의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어떤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흘려보내는 것이 먼저 나를 채운다.
뇌과학 책에서 읽은 것이 떠올랐다.
옥시토신, 도파민.
타인에게 사랑을 줄 때 뇌가 먼저
반응한다는 것.
과학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명희
할머니가 몸으로 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은수는 할아버지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 오늘 산에 같이 가요."
정수 노인은 잠시 은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없이 등산 지팡이를 찾기
시작했다.
오십 년간 혼자 다녔던 산이었다.
제 4 장 | 흐름의 방향
그들은 사봉면 뒤편 야산을 올랐다.
오래된 소나무 숲이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걸었고,
은수는 그 걸음에 맞추었다.
중간쯤 오르다 작은 샘을 발견했다.
바위 틈에서 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작은 물줄기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게 거기까지 흘러가요?
강까지?"
은수가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다.
흉년에도, 가뭄에도,
다 마른 해에도.
이건 멈춘 걸 못 봤어."
은수는 그 말을 받아 적고 싶었다.
편집자의 습관이었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받아 적는 것.
"할아버지가 그동안 힘드셨을 때,
어떻게 버티셨어요?"
노인은 한참 말이 없었다.
내려오는 바람에 소나무가 흔들렸다.
"사람 생각했지.
순남이 생각하고,
니 엄마 생각하고,
이웃집 박씨 할매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뭘 해줘야 할 것 같고,
그러면 몸이 일어나졌지."
"그게 사랑이잖아요, 할아버지."
노인은 고개를 돌려 은수를 보았다.
그의 눈에 무언가가 번들거렸다.
그것을 눈물이라 부를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물기가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노인이 말했다.
"너는 왜 내려왔냐, 진짜로."
은수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래서요."
노인은 더 묻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 5 장 | 페리코레시스
보름이 지났다.
은수는 매일 아침 할아버지에게
커피를 끓여드렸다.
노인은 처음에는 인스턴트도 되는데
번거롭게, 했지만,
열흘쯤 지나니까 은수가 조금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먼저 마당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희는 자주 들렀다.
셋이 마루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네 이야기,
날씨 이야기,
옛날 이야기.
어느 날 저녁,
은수가 명희에게 페리코레시스라는
신학 용어를 설명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사랑이 순환한다는 거예요.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는 거죠."
명희가 웃었다.
"그게 우리 셋이랑 비슷하네."
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뭔가를 주고
싶어서 기다리고,
나는 할아버지한테 뭔가를 드리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고,
나는 또 너한테서 뭔가를 받고,
너는 할아버지한테서 뭔가를 받고."
명희가 말했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냥 흐르는 거지."
그날 밤 정수 노인은 일기를 썼다.
사십 년 만이었다.
'오늘 마루에 셋이 앉아 있었다.
달이 밝았다.
순남이 없는 게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공허하지 않았다.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내 안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 나를 채웠다.'
제 6 장 | 시냇물
은수는 서울로 돌아갔다.
한 달보다 좀 더 있었다.
떠나는 날 아침,
정수 노인은 텃밭에서 오이
다섯 개를 따서 종이가방에 담아주었다.
"할아버지, 이거 기차에 못 가져가요."
"왜?"
"냄새나요."
"오이가 무슨 냄새가 나."
은수는 웃으면서 그것을 받았다.
가져갔다.
서울 집에 돌아와서 오이를 씻었다.
한 개를 먹었다.
여름 밭의 물 냄새가 났다.
눈물이 났다.
은수는 그날 이후 출판사에 복직
신청을 했다.
그리고 오래 미뤄두었던 원고 하나를
꺼냈다.
노인 작가의 수기였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정수 노인은 은수가 떠난 뒤에도
매일 아침 두 잔의 커피 재료를 꺼냈다.
그러다 혼자라는 걸 깨닫고 한 잔만
끓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
마을에 혼자 사는 박씨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에 커피 한 잔 하러 오겠소?"
박씨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러지요."
명희는 복지관 봉사를 계속했다.
어느 날 거기서 방금 남편을 잃은
칠십 대 여자를 만났다.
명희는 그 옆에 그냥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남강은 오늘도 흐른다.
어제의 물이 아닌 오늘의 물로,
변하지 않는 강바닥 위를 쉬지 않고
지나간다.
그 물은 들판을 적시고,
뿌리를 살리고,
바다로 가고,
다시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된다.
멈추지 않으면 썩지 않는다.
흘러야 맑다.
사랑도 그러하다.
어제 받은 사랑이
오늘을 살게 하지 않는다.
오늘 흘려보내는 사랑이
오늘을 살게 한다.
그것이 내게서 나가면서
먼저 나를 채운다.
그것이 당신에게 가면서
당신의 영혼을 적신다.
그것이 다시 어디선가로부터
내게로 돌아온다.
참된 사랑은 흘러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대와 세대 사이를,
시간과 시간 사이를.
멈추지 않고.
고이지 않고.
H₂O가 H₂O인 것처럼,
참된 사랑은 그냥 참된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