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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집, 그리고 마음의 엔트로피 (Entropy)

작성자술랑이|작성시간26.06.11|조회수32 목록 댓글 0

https://youtu.be/M8bbHICti0E


오늘 아침, 야고보서의 짧은 한 구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처음에는 참 단순한 말씀처럼 들린다.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신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맑고 곧은 문장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성경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생애만큼
깊어지는 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 말씀 앞에서, 오래전
부모님이 살던 고향집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그 집은
따뜻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의 기척이
있었고, 부엌에서는 밥 냄새가
피어올랐다.

벽에 밴 세월의 자국마저도
쓸쓸하지 않았다.

그 집에는 낡음조차 온기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모두 떠나신 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집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생각보다
빨리 늙었다.


장롱 속 이불은 눅눅해졌고,
옷들은 빛을 잃었으며,

부엌의 그릇과 살림들도 조금씩
시간의 먼지 속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누가 일부러 망가뜨린 것도 아니었다.
누가 훔쳐 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도 돌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집은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의
한 법칙을 떠올렸다.


닫힌 계의 무질서도 (entropy)는
증가한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으면
질서는 스스로를 오래 지키지 못한다.

집도 그렇고,
정원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고,
사람의 몸도 그렇다.

그리고 문득, 아주 조용한 깨달음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갔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어젯저녁, 몇 분의 선배 교수님들과
카페에 함께 있었다.


나는 대화에 거의 끼지 않았다.
그저 한쪽에 앉아 차를 마시고,
가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특별히 즐거운 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꼭 필요한 자리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남은 집은 고요했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쉬지 못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보고 싶어졌다.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졌고,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도
거의 아무 말 하지 않던 내가,

왜 혼자가 되자마자
사람을 찾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원한 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나는 말보다 먼저,
연결을 원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았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어느 정도 제 모양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혼자가 되자,
마음속 질서는 금세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생각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좋았던 기억보다 불편했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더 깊이 이해하기보다

더 쉽게 판단하고,
더 빨리 냉랭해지기도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주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진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방 안에
먼지가 쌓이듯,

돌보지 않은 마음에도 음영은
저절로 내려앉는다.

그래서 오늘,
그 말씀이 새롭게 들렸다.

“지혜를 구하라.”


이 말씀은 단지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마음이 무질서로 풀어질 때,
그 흩어진 생각을 하나님께 가져오라는 부르심처럼 들렸다.

사람을 쉽게 재단하는 생각 대신
사람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구하라는 말씀.

원망 대신 감사를,

불안 대신 평안을,

메마른 해석 대신

따뜻한 이해를 구하라는 말씀.


어쩌면 기도란 무엇을 알아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흩어진 내면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
쪽으로 돌려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면
이내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만,

한 줄기로 모이면 하늘을 향해 곧게
오른다.

생각도 그렇다.

붙들지 못한 생각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기도 속에서 정돈된 생각은
마음을 맑게 한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
괜히 불안해지는 것이
오직 내 믿음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수도 있다.

돌봄을 잃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무질서로 기울어지는 것,

어쩌면 그것 또한 인간의 연약한
본성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엔트로피가 전혀 증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닫힌 마음을 열고,

그 안으로 다시 생명의 에너지가
들어오게 하는 일이다.

그 에너지는
기도가 될 수 있고,
감사가 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따뜻한 얼굴,
잠깐의 안부,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동행이
될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지혜를 구한다.

더 많이 알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좋은 점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혼자 있어도
평안을 잃지 않는 지혜를.

마음이 흩어질 때마다
다시 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나를 조용히 돌이킬 수 있는 지혜를.

아마 그것이
하나님께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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