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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

꽃이 남긴 저녁

작성자술랑이|작성시간26.06.09|조회수14 목록 댓글 0

https://youtu.be/KvqizPyFJnE


살아가다 보면 같은 색을
두 번 만나는 날이 있다.
어제의 내 하루가 그랬다.

오후에 잠시 카페 앞을 지나는데,
길가에 피어 있는 분홍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색이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꽃잎은 생각보다
더 섬세했다. 옅은 분홍빛 위로
가느다란 맥이 퍼져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사람 손바닥의 생명선처럼 보였다.

나는 한동안 그 꽃들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예쁜 장면을 만나면 습관처럼 사진을
남기곤 하는데, 그날도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가 저물 무렵,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꽃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녁 무렵 창밖을 바라보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노을이 곱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
문득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낯익은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디에서 보았을까 잠시 더듬다가,
오후에 카페 앞에서 보았던 그 꽃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 눈앞의 붉은 노을은 단순한 하늘빛이 아니었다. 오후에 보았던
분홍 꽃잎이 하루의 끝에서 더 깊고
진한 색으로 다시 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꽃이 노을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때때로 서로 다른 두 장면을 이어 붙이며,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어쩌면 자연은 원래부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모습으로 반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꽃은 땅에서 피어나고, 노을은 하늘에서 피어난다. 꽃은 하루의 시작과 잘
어울리고, 노을은 하루의 끝과 가장
잘 어울린다.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서 피어나지만, 둘 다 아름다움이라는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한동안 그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의 마음에는 분홍빛 같은 설렘이 있다. 가볍고 맑고, 조금은 서툴지만
빛나는 색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그 빛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분홍이 붉음으로 옮아가듯,
삶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며 농도를
더해 간다.

젊음의 기쁨이 있었다면, 그 뒤에는
견딤과 이해와 기다림이 더해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움은
옅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 젊음도, 생기와
속도도, 한때의 찬란함도 결국은
지나간다고 여긴다.

하지만 어제의 하늘을 보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은 어떤 아름다움을 없애기보다 그것을
다른 색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닐까.

처음의 빛이 분홍이었다면,
오래된 빛은 붉음이 된다.
그것은 시들어 버린 색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러 얻은 색이다.

어제의 노을은 이미 사라졌고, 카페
앞의 꽃들도 언젠가는 질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시작에서 보았던 꽃과
하루의 끝에서 마주한 노을이
같은 색으로 내 마음속에서 이어졌던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장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조용히 건네준 하나의
비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꽃은 땅에서 피고 노을은 하늘에서
피지만, 둘은 어쩌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우리 곁에
오래 머문다고.

그리고 삶 또한 그러하다고.

어제 내가 본 저녁은,
자연이 하루 동안 천천히 써 내려간
한 편의 편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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