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묵상은 현악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줄이 너무 느슨하면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맑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줄의 장력이 정확히 맞추어질 때에야 비로소 악기는 제 고유한 울림을 찾고, 작은 떨림 하나도 악기 전체를 울리는 공명으로 번져 간다.
그 대목을 읽다가 문득,
영혼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조율되지 않은 마음은 세상의 소음에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하나님께 방향을 맞춘 마음은 같은 하루를 살아도 전혀 다른 울림을 낸다. 상황은 같아도 마음의 음정이
다르면 삶의 소리도 달라진다.
그런데 묵상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내 마음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특별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해야 할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빠져 버렸고,
남겨진 일들은 자연스럽게 내 몫으로
흘러왔다.
누군가는 연사를 챙겨야 했고, 누군가는 식사 준비를 확인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혹시 모를 혼선을 미리 살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책임을 맡아야 할 사람들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이 불편했다.
왜 늘 책임감 있는 사람이 같은 일을
반복해서 감당해야 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공동체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여기는가.
왜 나는 또 이 일들 앞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는가.
마음 한편에서는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그냥 두어라."
"네가 하지 않으면 저 사람들도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때때로 빈자리를 통해서만
자신의 책임을 배우기도 한다.
늘 누군가 메워 주면,
책임 없는 습관은 더 단단해지기 쉽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질문이 조용히 올라왔다.
"그렇게 해서 정말 네가 바라는
결과가 이루어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감정만이 아니었다.
나는 조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고, 행사가 어수선해지지 않기를 바랐고,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오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은 단지
서운함이나 분노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공동체가 질서 있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기준이 부딪치고 있었다.
하나는 인정받고 싶고 억울함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와 태도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준비하는 물 한 병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품격을 위한 것일까.
만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이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또 어떤 이는 "저 사람은 결국 또 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태도를 지킬 수 있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게 맡겨진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였다.
그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누군가는 고마워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수고를 이용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내 몫은 오늘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 다짐했다.
화를 내지 말자.
생색내지 말자.
억지로 희생하는 표정을 짓지도 말자.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담담히 하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기 위해 하자.
공동체를 위한 일 속에서 내 자아를
증명하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 나를
두신 하나님의 뜻 앞에 조용히
순종하자.
현악기의 줄이 바르게 조율되면 소리가 달라지듯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께
맞추어지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도 그대로였고,
준비되지 않은 현실도 그대로였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의 무게 역시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의 좌표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목표는 내 영혼의 장력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그 조율된 마음으로 물 한 병을 건네고, 미소 한 번을 나누고, 필요한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거창한 업적보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을 통하여 한 사람의 영혼을 더 깊고 단단하게 빚어
가시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났을 때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다.
"너는 오늘도 품격을 잃지 않았구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그 한마디조차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