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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2월25일(목요일) [임실산타축제&전주한옥마을] 여행일정

작성자soomountain|작성시간25.12.20|조회수519 목록 댓글 0
2025년12월25일(목요일) 임실산타축제&전주 [전동성당&경기전&풍남문&전주 남부시장&완산벙커 더 스페이스&서학동 예술마을&전주 한옥마을&오목대&전주 향교&한벽굴] 여행일정 
회비 16,925원 국민은행 노블레스 클럽 전진보 계좌인 국민은행 75060201190920로 11월13일 송금 완료  
좌석은 2열2번으로 예약  
신청방법 : 선입금하고 공지에 댓글로 참석/입금/좌석/탑승지를 적으면 됨
처음 참석하는 회원은 닉네임/성명/핸폰번호를 010-9662-9282로 보내야 함
 
탐방지 :  임실산타축제&전주 [전동성당&경기전&풍남문&전주 남부시장&완산벙커 더 스페이스&서학동 예술마을&전주 한옥마을&오목대&전주 향교&한벽굴]
 
탐방일 :     2025년12월25일(목요일, 성탄절)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10분 소요)
08:10~11:20    “노블레스 클럽” 버스를 타고 교대역 13번 출구 옆에 있는 스타벅스 교대점 앞에서 출발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도인2길 50 번지에 있는 임실치즈테마파크로 이동 [3시간 10분, 228.6km]
[임실치즈테마파크
지정환 신부의 임실 치즈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유럽풍 테마파크로, 매년 10월에는 임실N치즈축제가 열려 대한민국 치즈의 장을 만들고, 매년 12월 말 임실산타축제가 열린다. 테마파크 내부에는 임실치즈역사관, 치즈캐슬, 치즈레스토랑 등이 있으며 테마파크 앞에 유럽형 장미정원과 사계절 장미정원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치즈아이랜드가 조성 중에 있다. 또한 인근의 임실치즈마을과 연결하기 위하여 치즈테마파크 뒤에 농촌체험관광시설을 조성중에 있어 향후에는 임실치즈마을과 연계한 관광지가 될 예정이다.
바로 앞에 임실IC가 있어 접근성이 좋다. 임실역 및 임실읍내와도 매우 가까워 서부 지역에서도 접근하기에 편하다. 관광 목적 농어촌버스를 타고 갈 수 있고 정류장은 '당당마을 정류장'이 있는데 주차장에 있다. 운전시 동명의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관람시간 9시~18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신정, 설, 추석. 2004년 기획, 2008년 착공, 2011년 개장했다.
지정환홀, 아펜젤홀은 행사용으로 대여가 가능한데 아무래도 주최 측이 치즈 체험 + 자체 행사를 연이어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느라 그런 듯하다. 또한 자체 펜션도 있다.
치즈 체험은 치즈 만들고 가져가기, 1인분 피자 만들기, 혹은 둘다 하기만 개인 체험이 가능하고, 치즈 돈까스 식사 포함 조합, 3인분짜리 피자 만들기 등등은 단체로 예약을 잡아야 가능하다.치즈체험 안내 그외 서바이벌 총게임, VR 스포츠, 머그컵 만들기, 다도 체험도 가능.
또한 임실치즈테마파크가 2023년 한국 관광의 최고 권위인 "한국 관광의 별"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부문에 선정되어 전북특별자치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임실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11:20~13:00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 산타축제 참여   
[2025 임실산타축제
기 간 : 2025.12.25.~12.28.
장 소 : 임실치즈테마파크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도인2길 50)
문의전화 : 063-643-8850
주 관 : (재)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 산타축제, 크리스마스 동화속으로 초대합니다!
겨울 왕국 같은 임실에서 12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임실 산타축제가 열립니다.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 진행되는 이 겨울 대표 축제는 2017년부터 매년 많은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올해 더욱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구역별 다양한 프로그램과 선물 이벤트가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치즈테마파크에서 올겨울, 특별한 크리스마스 추억을 마음껏 즐겨보세요!
주요 프로그램
경 관 조 성 : 대형 트리 및 크리스마스 장식, 산타 및 눈사람 포토존 조성 등
대표 프로그램 : 산타퍼레이드, 대형·소형 눈썰매장 조성
체험 행사 : 가족트리, 치즈케이크 만들기, 군고구마, 빙어잡기 체험, 에어바운스 등
공 연(이벤트) : 가수 공연(라잇썸, 이보람, 짜이), 어린이뮤지컬, 선물 이벤트, 공연(마술,버블,난타) 등
먹거리 : 유제품 20%할인행사, 대형음식부스, 군밤·꼬치 요리존, 화덕피자, 겨울먹거리(붕어빵, 호떡 등), 장작닭구이, 치즈팥죽, 초코퐁듀, 푸드트럭, 뱅쇼 핫초코존 등]
 
13:00~13: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를 타고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출발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번지에 있는 전주 전동성당으로 이동 [35분, 30.9km]
 
13:35~13:50     전주 전동성당 탐방  
[전주 전동성당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번지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으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 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해 지은 것이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며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다. 성당 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 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 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13:50~13:56     걸어서 전주 전동성당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번지에 있는 경기전으로 이동 [6분, 385m]
 
13:56~14:15     경기전을 탐방
[경기전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경기 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 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 (1442년)에 전주는 경기 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경기 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 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실 사당임을 감안할 때 신문(神門)이라고 호칭되며 홍살문 안쪽 내·외신문의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다시 말해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는 태조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이기 때문이다. 경기 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 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 21년)의 일이다. 경내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 전(유형문화재)과 그의 22대 조이며 전주 이 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肇慶廟·유형문화재)가 있다. 특히 태조 어진(국보)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경기전이 오랫동안 관광객과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도심 속에 담긴 고풍스러운 모습과 우거진 수목 덕분이다. 경기 전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있다. (출처 : 전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도심 한가운데 있는 조선 시대의 고풍스러운 공간으로 정전, 돌담, 대나무숲 등이 사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먹거리, 놀 거리가 풍부한 전주한옥마을 안에 있어 전동성당과 함께 돌아보기 좋으며 주변에 한복대여소가 많아 한복을 입고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3월~5월] - 09:00~19:00 (입장 마감 18:00)
[6월~8월]- 09:00~20:00 (입장 마감 19:00)
[9월~10월]- 09:00~19:00 (입장 마감 18:00)
[11월~2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가능
문의및안내 : 063-281-2788
입 장 료
[일반]
어른 3,000원
청소년, 대학생, 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전주시민]
어른 1,000원
청소년, 대학생, 군인 800원
어린이 500원
※ 무료 :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 6세 이하 / 65세 이상 /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장애인 수첩 및 국가유공자증 소지자) / 전주시 다자녀 우대증 소지자 등 ]
 
14:15~14:23     걸어서 경기전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번지에 있는 풍남문으로 이동 [8분, 483m]
14:23~14:28     풍남문을 사진촬영
[전주 풍남문
풍남문은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으며,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 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평면상에서 볼 때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좁아 보이는 것은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모서리 기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14:28~14:30     걸어서 풍남문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있는 전주 남부시장으로 이동  [2분, 162m]
 
14:30~14:40     전주남부시장 탐방
[전주 남부시장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 중기 때부터 전주성 남문 바깥에 섰던 남문장의 역사를 이은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일제강점기 때 전주성 동서남북에 섰던 장들을 하나로 통합해 남부시장이라는 명칭을 얻었고, 오늘날에는 시장 2층에 청년몰을 유치하고 한옥마을과 함께 야시장을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1길 19-3
시장 유형 : 상설시장
형성 시기 : 1978년(허가)
시장 현황 : 점포 수 794곳, 시장 면적 21,349m2
먹을거리 : 백반, 콩나물국밥, 피순대, 팥칼국수
같은 지역 다른 시장 : 중앙시장, 모래내시장
주변 볼거리 : 한옥마을, 전주향교, 전동성당, 풍남문, 덕진공원
전화번호 : 전주 남부시장 상인회 063-284-1344
목차
1. 전주 남부시장 개요
2. 전주 남부시장의 어원
3. 전주 지역의 특색과 시장 형성 과정
1) 전주장의 변화 과정
2) 약령시의 발달과 폐지
4. 전주 남부시장의 발달 및 변천 과정
5. 전주 남부시장의 위치와 거래 품목
6. 시장의 지리적 배경과 볼거리
7. 먹을거리
1. 전주 남부시장 개요
전주는 예부터 물산이 풍부해서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땅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전국에 장이 개설되는 초창기부터 많은 시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전주성 4개의 성문마다 장이 개설되었는데, 그중 남문장과 서문장이 큰 시장이었다.
1907년에는 서문이 헐리고 일본인들이 그 일대를 장악해 공설시장을 세웠다. 이후 1923년 서문장이 남문장과 통합되었고, 1928년에는 공설시장이 남문장과 통합되면서 전주를 대표하는 남부시장이 탄생했다. 한편 전주에는 지리산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팔기 위해 형성된 약령시가 유명했는데, 일제 때 폐지되고 말았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던 남부시장은 2000년대 들어서 변화를 도모하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시장 2층에 청년몰을 만들어 젊은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한옥마을과 연계해 야시장을 열며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과거 남부시장 인근에 섰던 노점들을 새마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비해 시장 특유의 활력을 찾고 있다.
2. 전주 남부시장의 어원
전주의 옛 이름은 완산이었다. 백제 이후 완산이라 불리던 이름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 전주로 바뀌었다. 전주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땅이라는 뜻으로, 이름에서도 물산이 풍부하고 살기에 적합한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부시장이라는 이름은 전주성 남문 바깥에 열린 남문장에서 비롯되었으며, 성문마다 개설되었던 4개의 시장이 통합하면서 1936년부터 남부시장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3. 전주 지역의 특색과 시장 형성 과정
전주는 대도시로 발전하기에 적합한 지리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땅이 기름지고 생산이 활발해서 천 개의 마을, 만 개의 마을의 삶에 이용할 생활필수품들이 다 갖추어진 곳’이라고 평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전주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은 ‘오곡, 뽕나무, 삼, 목화, 감 · 배, 왕대’이며 공물로 바치는 토산물은 ‘표범가죽, 여우가죽, 이리가죽, 종이, 모시, 족제비털, 칠, 꿀, 대추, 석류, 생강, 약재’ 등이었다. 특히 종이는 전주와 남원의 것이 좋다는 평가가 있고, 생강 농사는 전주 사람들이 업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되어 있다. 위에 열거된 다양한 품목들을 통해 전주에 물산이 얼마나 풍부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주는 일찍부터 상설 점포인 시전이 개설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1513년에 나온 《신동국여지승람》으로 ‘물건을 싣는 데 수레를 사용하며, 가게를 열어 상품을 교역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전주는 예부터 행정 도시인 동시에 상업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전주는 상업 도시로 성장하는 데 필수 조건인 교통 또한 매우 편리했다. 내륙 지방에 속해 있지만 만경강을 통해 물자 이동이 왕성했던 서해와 연결되어 있었고, 한양에서 전라도로 이어진 호남대로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주의 시장은 15세기 후반에 읍내장이 개설되었다. 시장 설립에 대한 내용을 적은 명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지만 이 무렵 전라도에서 시장이 생겨났고, 지리적인 위치를 생각해보면 전주에서도 이 무렵에 시장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전주에 처음 장이 개설된 곳은 아마도 전주성 주변이었을 것이다. 시장이 대개 포구나 성문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기에 그렇다. 전주에도 시장이 한 곳 생기자 우후죽순으로 봇물 터지듯이 생겨났다.
문헌에 전주의 시장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는 18세기가 되면 이미 11개에 이른다. 당시의 기록인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전주성의 4개 문마다 장이 있어 남문장(2일), 서문장(7일), 북문장(4일), 동문장(9일)이 섰다. 지역적으로는 봉상면에 봉상장(5, 10일), 소장면의 소장장(1, 6일), 양양소면의 인천장(2, 7일), 오백조면에 삼례장(3, 8일), 북일면의 옥야장(4, 9일), 우북면의 이성장(1, 6일) 등이 섰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전주성 4개의 문 앞에서 장이 섰다는 것과, 남문장과 서문장의 장날이 짝을 이루고, 북문장과 동문장이 짝을 이루어 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주에서는 5일장이 두 번 열린 셈이다. 이를 통해 전주의 시장들이 얼마나 수요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다만 2, 7일에 장이 서는 남문장과 서문장을 큰 장이라는 의미에서 대시라고 부르고, 북문장과 동문장은 사이에 열리는 장이라 해서 간시(間市)라고 불렀다. 명칭이 다른 것은 시장의 규모 차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 19세기 초반의 기록인 《임원경제지》에는 소장장과 이성장이 사라진 대신에 남이면의 상아장(3, 8일)과 동일면의 석불장(1, 6일)이 추가되어 나타난다.
1) 전주장의 변화 과정
전주 읍내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규모가 컸다. 대구와 평양, 또는 대구와 공주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후기 읍내장에서 거래된 품목들은 평야 지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쌀을 비롯해 생강과 종이, 부채, 칠, 자기, 죽세공품, 감, 석류 등과 모시, 연초, 해산물 등이었다.
읍내장은 앞에서 보았듯이 전주성의 동서남북에서 개설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남문인 풍남문 옆에 섰던 남문장이었다. 남문장에는 전주교 아래에 쌀을 파는 싸전이 있었고, 연죽다리라 불리던 매곡교 아래에서는 연초와 장죽을 팔았다. 또 전주교에서 매곡교로 이어지는 하천 부지에는 우시장이 섰고, 완산교 아래에는 소금장수들이 모여 있었다.
우시장이 섰던 쇠전강변은 큰돈이 오가는 우시장의 특성상 술판과 투전판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 일대는 술에 취한 사람, 돈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까지 다양한 상태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우시장은 1914년 전주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지금의 교대부속초등학교 남쪽 자리로 이전했다가 힘을 잃고 말았다.
또한 서문장에는 소금을 파는 소금전이 있었고, 동문장에서는 특용작물이 거래되었으며, 북문장에서는 비단을 비롯한 포목이 많이 거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전주장도 큰 변화를 겪었다. 상설시장이 개설되었지만 시장의 점포를 차지하고 상권을 장악한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이때부터 시장에서는 기존의 거래 품목 외에 공장에서 생산된 포목이나 성냥, 고무신 등이 팔려나갔다.
전주장이 위축된 가장 큰 원인은 교통의 변화였다. 그 중에서도 전군도로의 개통과 철도의 부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군도로는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였다. 이미 전주와 군산 사이에는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대단위 농장들이 있었고, 이들이 생산한 물자는 시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군산으로 향했다. 이렇게 보면 전군도로는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도로였다고 할 수 있다.
철도는 1914년 전주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철도는 전주와 이리를 연결하는 협궤열차로 기존 유통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철도 수송이 본격화되고, 1937년 일제에 의해 전주를 지나 여수항으로 이어지는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유통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전주장은 점점 약화되었으며, 인근의 남원이나 김제의 시장보다 거래액이 적을 정도로 위축되었다. 그것은 일본인들과 대지주들이 전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시장을 통하지 않고 곧장 군산이나 옥구로 반출했고, 그곳의 상인들이 전라북도의 상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주장은 전라북도의 중심 상권에서 내려와 전주 인근의 주민들을 상대하는 시장이 되었다.
도로 건설과 철도 부설이 시장의 쇠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1913년까지 남문장과 서문장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날개가 꺾이듯 시장이 약화된 것은 1923년경이었다. 그해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매출액이 높았던 서문장이 사라지면서 남문장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1923년 4월에 주로 일본인을 상대하기 위해 개설했던 공설시장을 1928년에 폐지하고 남문장으로 옮겼다.
이러한 상황은 1907년 전주성의 서문이 헐리면서 일본인 상인들이 그곳에 점포를 짓고 진출한 것과 관련이 있다. 1929년에는 생선과 채소를 파는 어채시장이 따로 생겼다.
1935년에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하자 남문장을 대대적으로 확장해서 1936년에는 8동에 36호의 시장 건물을 지었다. 또 다음해에는 1등 상설 점포 4동 25호, 2등 상설 점포 4동 11호, 보통 상설 점포 44동, 어채시장 1동을 지어 규모를 확장했다.
이렇게 남문장이 자리를 잡은 곳은 1894년 동학혁명 때 혁명군이 입성하면서 불에 탄 500여 채의 가옥이 있던 자리였다. 그곳에서 남문장은 1960년까지 장이 섰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시장》을 보면 당시 전주장은 5,725평의 면적에 상설 점포가 10동, 어채 점포가 1동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장 상인은 소매상인이 1,200명에 달했고, 월 거래액은 4만 1,460원이었다. 당시 주요 거래 품목은 곡물, 건어물, 염류, 해조류, 과일, 돗자리, 야채, 소금, 도기, 마포, 축우, 목재, 땔감 등이었다.
다음해에 출간된 《시가지의 상권》에는 연 거래액이 70만 7,200엔이었고, 이동 상인이 평균 1,222명에 달하며 장날 시장을 찾는 이용객이 3,000명에 달했다고 나와 있다.
1930년대 말 전주와 완주에 개설된 정기시장 현황
시장 이름        위치           장날                 연 거래액
전주장        전주부 본동       2, 7일               949,423원
삼례장        완주군 삼례면     3, 8일               175,580원
동산장        완주군 조촌면     1, 6일               10,650원
고산장        완주군 고산면     4, 9일               258,288원
봉상장        완주군 봉상면     5, 10일              11,660원
자료 : 《조선의 시장》 문정창, 1941년
2) 약령시의 발달과 폐지
1651년 효종 연간에 전주에서 개설되었던 약령시는 1730년 공주에 약령시가 들어서면서 기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다가 공주의 약령시가 약화된 20세기 초반에 다시 약령시를 열고자 했다. 하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고, 1923년에 한의약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침내 약령시 개설을 성사시켰다.
전주약령시는 크게 번성했는데, 장이 다시 선 1923년에 연 거래액이 41만 8,500원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때 최고의 약령시로 꼽히는 대구를 능가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연 거래액이 67만 5,800원을 기록할 정도로 번영했다. 이렇게 전주약령시가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인근의 지리산에서 귀한 약재가 많이 생산되고, 채취되었기 때문이다.
전주약령시가 유명해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약재 상인들이 찾아왔고, 그 수가 5,000명이 넘었다. 여기에 약재를 나르는 사람들과 일반인까지 더해서 말 그대로 약령시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음식점과 숙박업체, 상점들도 여기저기 생겨났다. 약령시가 한창일 때는 잠잘 방을 구하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호황을 누리던 약령시를 무너뜨린 것은 일제가 반포한 ‘생약통제령’이었다. 생약통제령은 1930년대 후반부터 한약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일제가 생약통제조합을 설립해 약재 유통을 통제하고자 만든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전주약령시는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4. 전주 남부시장의 발달 및 변천 과정
한때 전주성의 동서남북에 섰던 4개의 시장 가운데 홀로 남은 남문장은 1930년대 중반에 건물을 갖추고 상설시장으로 변화를 도모했다. 시장 한쪽에는 1,300여 평에 이르는 노점을 위한 공간도 확보되었다. 1937년에 남문장을 찾은 사람은 186만 9,000명에 달했다.
1936~1937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시장 건물을 확충한 것은 전주천 제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전주장은 천변에 섰는데, 홍수 피해가 심해서 제방을 만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천변에 있던 노점과 가설 점포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를 대신할 건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노점상들은 새로 쌓은 제방 위에 좌판을 벌였다.
남문장은 전주부에서 시장을 소유하고, 상가 건물을 지어 상인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61년 법이 개정되면서 개인이 시장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전국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문장은 시장의 현대화를 위해 1968년 11월에 착공해 1969년 2월, 870평에 141개 점포로 구성된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사유지와 민유지 등을 합쳐서 완성된 이 건물은 지금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신축한 남부시장이 좁아서 입주 상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 시장 주변에 노점들이 형성되었다.
한편 전주시는 1968년 상가 건축을 계기로 민영화 사업을 시작, 시장의 바깥쪽 상가부터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상가건물이 무허가임이 밝혀졌고, 건물 매각이 난항을 겪었다. 궁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은 개인에게 팔 수 없는 건물을 상인 조직에 단체로 분양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이유로 1976년 남부시장 번영회가 결성되었고, 1978년 남부시장의 민영화는 끝이 났다. 다른 시장들이 이미 형성된 시장 내에서 번영회가 만들어졌다면 남부시장의 경우 상가 분양을 받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남부시장의 결속력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번영회의 목적이 분양이었기 때문에 분양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회원이 되지만 분양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번영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시장 주변에 노점을 펼쳤다.
이후 남부시장은 남문장의 위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쇠락을 거듭했다. 그 원인은 외부적으로는 1990년대에 몰아닥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등장, 소비자들의 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인한 소비 패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1993년 도매시장의 밀집과 지역 상권의 균등한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농산물 공판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이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농산물 공판장을 통해 도매시장의 역할도 담당하던 남부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도매는 유통이라는 점에서 상권의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농산물 공판장의 이전으로 남부시장은 도매에서 소매로 전환해야 했고 매출도 줄었다.
또 하나 꼽을 수 있는 것은 남부시장 앞을 지나던 버스노선을 강 건너로 바꾼 것이다. 1988년 천변에 있던 노점들을 정리하기 위해 부스를 만들면서 길이 좁아지자 버스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그 이후 몇 차례 노선이 변경되었지만 교통의 편리성을 토대로 시장이 생성된다는 기본적인 조건이 변화하면서 시장은 점점 위축되기 시작되었다.
남부시장은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단장했다. 2001년에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2003년에 아케이드를 설치했으며, 2005년에는 100주년 기념으로 고객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등 시설의 현대화를 꾀하였다.
2011년에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환경 개선과 문화적 접근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를 추구했다. 이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청년 상인들의 등장과 예술가들이 시장에 입주한 것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상인들과 다른 품목을 다루기 때문에 경쟁이나 갈등의 요소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상인들과 예술가들의 동거는 숱한 화제를 낳았으며, 노인층에 머무르던 시장 고객을 20~30대 젊은 고객으로 확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었다.
청년 상인들은 청년몰이라는 이름으로 남부시장의 2층에 자리를 잡고, 예술가의 거리를 꾸미듯 시장을 꾸몄다. 이렇게 청년몰은 기존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물건과 내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야시장을 열기도 한다. 남부시장 1층에서 상점들 사이에 펼쳐지는 야시장은 잔칫날처럼 풍성하고 색다른 먹을거리로 시장 분위기를 돋우며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새마을시장과 청년몰
늘 그렇듯이 노점은 분쟁을 초래했다. 남부시장이 건물을 신축한 이후, 상인들의 민원으로 1971년에 300개에 달하는 남부시장 인근의 노점상들을 철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단속을 피하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특히 1988년에는 국제행사를 앞두고 부스를 설치해 노점상들을 수용하려고 했지만 상인들에 비해 부스의 수가 적어 새로운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기존의 남부시장 2층에 6동으로 이루어진 천막건물을 설치해 새마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수용했다.
그러나 새마을시장은 남부시장의 쇠락과 함께 유명무실한 시장으로 바뀌었다. 노점들은 하나둘씩 다시 전주천 천변에서 좌판을 벌였고 오늘날에는 160개에 이르는 부스 형태의 장옥을 만들어 남부시장과 길을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져 있다.
또한 새마을시장이 있었던 남부시장의 2층은 2011년부터 REAL+새마을을 합성해서 ‘레알뉴타운’이 들어섰고 이것이 이른바 남부시장 청년몰이다.
한편 2000년대에는 남부시장 인근 전주천변에 상인들이 모여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여는 새벽시장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천변에 길게 좌판이 펼쳐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중앙시장과 모래내시장
현재 전주에는 2개의 상설시장이 더 있다. 1948년에 진북동과 태평동 부근에 개설한 중앙시장과 모래내시장이다.
중앙시장은 전주중앙상가와 함께 공존하면서 시장에서는 야채나 과일, 생선과 같은 생활 먹을거리를 주로 팔고, 상가에서는 의류나 포목 등을 판매한다.
1970년대에 형성된 모래내시장은 덕진구 인후동과 진북동 일대에 있는 상설시장이다. 모래내시장 또한 야채나 과일, 생선과 같은 생활 먹을거리를 주로 팔고 있다.
5. 전주 남부시장의 위치와 거래 품목
남부시장은 전주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버스터미널에서 큰 도로를 따라 전주시청 방향으로 가면 전주천에 닿기 전 오른쪽으로 풍남문이 있고, 그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역에서 간다 해도, 역시 전주시청을 기점으로 찾아가는 것이 좋다.
남부시장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기존의 점포들이 있고 2층에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이색적인 청년몰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에서는 주단과 가구, 건어물, 채소, 과일, 약재, 잡화 등을 팔고 있다.
또한 시장 옆에는 노점상들로 구성된 새마을시장이 운영되고 있고, 그 너머 물가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농산물을 주로 거래하는 새벽시장이 선다.
6. 시장의 지리적 배경과 볼거리
전주시는 대부분의 땅이 완주군에 둘러싸여 있고 서남쪽 일부가 김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주가 위치한 곳은 노령산맥과 만경평야의 경계 지역으로 산지와 평지가 함께 있다. 평야는 북서쪽으로 전주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전주시는 만경강의 본류가 북쪽에서 흘러들고 소양천이 동쪽에서 흘러들며 완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주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전주천은 만경강의 지류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나간다.
전주에 있는 덕진공원은 그 유래가 흥미롭다. 전주의 땅이 서북쪽으로 열려 있어서 땅의 기운이 음지인 서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동쪽의 건지산과 서쪽의 가련산 사이에 큰 연못을 팠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덕진공원이다. 초여름이면 연못의 절반을 채울 정도로 활짝 피어나는 연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전주에서 첫 번째로 꼽는 관광명소는 단연 한옥마을이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한옥마을은 오랜 역사의 흔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전주의 이름난 음식들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한옥마을의 매력이다.
7. 먹을거리
전주의 음식 가운데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콩나물국밥일 것이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일제강점기 때 완산동에서 시작되었다. 인근에서 남문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점심으로 집에서 싸온 주먹밥을 먹어야 했는데, 마른 밥을 먹다가 목이 메기도 하고 한겨울에는 밥이 얼어서 먹기에 불편했다. 이런 이유로 뜨끈한 국물을 파는 장사꾼들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집에서 싸온 주먹밥을 국에 말아 먹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주 콩나물국밥의 시초이다. 결국 콩나물국밥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당시 남문장을 찾는 서민들이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셈이었다.
콩나물국밥이 서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한정식과 백반은 관료나 사업가 등을 상대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전주에 도청이 생기면서 행정적인 일을 보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전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고급 한정식을 내놓는 식당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서민들을 대상으로 반찬이 많은 백반을 한상 차려서 내놓는 식당도 많았다. 물론 재료의 대부분은 남문장에서 구입했다.]
 
14:40~14:57     걸어서 전주남부시장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완산5길 70 번지에 있는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로 이동 [17분, 1.1km]
 
14:57~15:17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탐방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에 위치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는 1973년 전시 행정대피용으로 만들어졌던 방공호를 미디어아트를 활용하여 문화관광시설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폐쇄된 다중우주와의 연결 통로라는 콘셉트로, 관람객들이 비밀의 공간을 탐험한다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된다. 시크릿 엔터, 스크릿 스토리, 우주의 지도, 차원의 문, 포털 등 총 10가지 테마의 콘텐츠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라이브 스케치가 가능한 멀티버스 공간 등 체험 콘텐츠룸도 존재한다. 화려한 LED 조명이 거울과 만나며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전시 공간 끝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카페와 기념품 판매점이 마련되어 있다.]
 
15:17~15:39    걸어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3길 67 번지에 있는 서학동 예술마을로 이동
[22분, 1.4km]
15:39~15:50    서학동 예술마을을 탐방
[서학동 예술마을
서학동 예술마을은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에 위치한 예술마을이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전주한옥마을이 있다. 전주한옥마을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분위기라면 서학동 예술마을은 그에 비해 덜 알려져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분위기이지만 이미 이곳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지 오래다. 서학동 예술마을은 과거, 교사와 학생이 많이 살고 있어 선생촌으로 불리던 곳이었으나 지역 상권의 쇠퇴와 주거시설의 낙후 등의 문제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0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부부가 한옥을 고쳐 ‘벼리채’라는 문패를 달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화가, 자수가, 사진작가, 도예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예술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30~60대의 예술가 30여 명이 마을 주민과 공존하고 있다.
1980~1990년대 옛 골목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오랫동안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떡집, 쌀집, 이발소 등과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공방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학동 예술마을에서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옥 갤러리 ‘서학동 사진미술관’을 비롯해 화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감성 가득한 카페와 갤러리들, 개성 넘치는 공방과 소품숍에서는 즉석에서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독특한 외관의 갤러리 ‘적요쉼쉬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게스트하우스, 한지패브릭아트샵, 뜨게공방 등 하루의 시간도 짧을 만큼 특색있고 개성 넘치는 곳들로 넘쳐난다. 홈페이지를 통해 원하는 공간을 검색해서 찾아가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골목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불쑥 들어가도 실패할 일이 없다.
전주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곳 서학동 예술마을에서 추억과 낭만을 재충전 해 보기를 추천한다.]
 
15:50~16:10   걸어서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17-10 번지에 있는 전주 한옥마을 역사관으로 이동 [20분, 1.2km]
 
16:10~16:25    전주 한옥마을 역사관을 관람
[전주 한옥마을역사관
전주 한옥마을역사관은 한옥마을의 역사와 변천 과정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역사관으로 옛 창작예술공간의 한옥 2개 동을 리모델링해 2018년에 개관하였다. 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나뉘며 상설전시실에는 한옥마을의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해 전주한옥마을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내부에 설치한 5개의 모니터에는 한옥마을에 오랫동안 거주한 주민 인터뷰, 한옥마을의 과거·현재 모습, 한옥마을에 얽힌 일화 등을 상영한다. 또 한옥마을 안 주요 명소를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으며 가상현실 체험도 가능하다. 기획전시실에는 한옥마을의 옛 사진과 한옥마을의 숨은 이야기,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에 관한 내용을 소개해 두었다. 한옥마을 역사관에서는 정기 해설과 수시 해설의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 해설은 관광객이 집중되는 주말에 전시실을 순회하면서 진행되며, 수시 해설은 관람객의 요청에 따라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사전 예약 한 20인 이상의 단체 해설은 우선순위로 진행된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900여 채의 한옥마을의 소소한 이야기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옥마을로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들러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의 시작이 될 듯하다.]
[전주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으로, 전국 유일의 도심 한옥군이다. 1910년 조성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 발달과정의 중요한 공간으로,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20여 개의 문화시설이 산재되어 있다. 향교길, 최명희길, 경기전길 등을 거닐면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골목길 모습과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 밤이 찾아오면 태조로를 밝히는 천사초롱과 한옥담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조명들로 감미로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전주난장과 자만벽화마을, 야시장, 청년몰 등 이색 여행공간도 만날 수 있다. 한옥은 아름다움은 지붕선에 있다. 지붕자락이 살짝 하늘로 향해 있는 것이 한옥의 특징이고 멋이다. 한옥의 구조는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져 있다. 한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온돌방이다. 한국은 주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바닥에 온돌을 깐다. 온돌의 구조는 방 밖에 아궁이(함실)를 만들고 구들(아궁이 안쪽) 밑으로 불을 때면 온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것이 온돌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옥마을에 가면 한옥생활체험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옥생활체험관 안에 있는 선비방과 규수방에서 직접 온돌방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한옥생활체험 중 이곳에서 제공되는 전통한식은 납청유기[納淸鍮器]에 담아 맛과 멋을 더한다. 전주한옥마을에서 직접생활도 해보고 맛있기로 유명한 전주비빔밥도 맛보는 두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16:25~16:34    걸어서 전주 한옥마을 역사관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번지에 있는 오목대로 이동
[9분, 577m]
 
16:34~16:40    오목대를 탐방
[전주 오목대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한벽당과 전주향교의 북쪽 4차선 노변, 벼랑같이 솟은 언덕에 세워진 오목대는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 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으로, 그 후 고종 황제가 친필로 쓴 태조고황 제주필유지비를 세웠다. 여기서 육교를 건너서 이목대가 있는데, 천주교의 성지 치명자산이 있는 승암산 발치에 위치한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70m 위쪽으로 이목대가 있는데 건물이 있는 80m 아래쪽에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이 비 속에는 목조대왕 구거유지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 황제의 친필이다. 목조는 조선조를 건국한 이태조의 5대 조로, 목조가 어릴 때 이곳에서 진법놀이를 하면서 살았던 유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내용이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나 있다. 목조가 당시의 전주 부사와의 불화로 이곳에서 함경도로 옮겨간 것이 이성계로 하여금 조선조를 건국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으므로, 이를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다 한다.]
 
16:40~16:49    걸어서 오목대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번지에 있는 전주 향교로 이동
[9분, 577m]
 
16:49~16:56    전주 향교를 탐방
[전주향교(全州鄕校)
전주향교(全州鄕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당시의 위치는 현재 경기전(慶基殿) 근처였다.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경기전이 세워지자 1410년(태종 10) 향교에서 경기전에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여 전주성의 서쪽 6·7리 되는 황화대 아래 현재의 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전주시 교동 한옥보존지구와 접해 있는 전주향교는 제향공간인 문묘가 앞쪽에, 강학공간이 뒤쪽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하였다.
그 뒤 1603년(선조 36)에 부성(府城)과 너무 떨어져 있고 객사를 기준으로 하여 왼쪽에 문묘(文廟), 오른쪽에 사직단(社稷壇)을 두도록 한 좌사우묘(左社右廟) 제도에 어긋난다 하여 순찰사 장만(張晩)과 유림들이 힘을 합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향교 앞 교동 일대는 현재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이 때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1654년(효종 5), 1832년(순조 32), 1879년(고종 16), 1902년(고종 39), 1904년(고종 41)에 중수하였다.
조선 후기까지 전주향교는 경내에 대성전, 동무와 서무, 신문(神門), 외문(外門), 만화루(萬化樓), 명륜당, 동재와 서재, 계성사(啓聖祠), 입덕문(入德門), 사마재(司馬齋), 양사재(養士齋), 책판고(冊板庫), 제기고(祭器庫), 수복실 등 총 99칸 건물로 구성된 규모가 큰 향교로 서울의 성균관을 모방하였다고 하여 수도향교(首都鄕校)라고도 칭하였다.
전주향교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지나면서 향교의 영역이 전개된다. 전주향교는 나주향교와 마찬가지로 만화루, 일월문, 대성전, 명륜당이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전묘후학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계성사가 서북쪽 뒤에 위치하고 있다. 향교의 입구인 만화루를 들어서서 그 앞의 솟을대문으로 조영된 일월문을 지나면 제향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일월문과 만화루 사이의 마당에는 담장 주위로 은행나무와 작은 나무를 심었다. 이 마당은 향교의 외부공간과 제향공간을 연결시키면서 차단시키는 매개공간의 역할을 한다. 만화루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이고, 일월문은 정면 3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제향공간은 중앙의 대성전과 대성전 앞뜰 좌우의 동무와 서무로 구성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 앞에는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대성전은 1653년(효종 4)에 고쳐 세웠는데, 이기발이 쓴 중건기가 있다. 이후 1907년(융희 1)에 군수 이중익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인, 10철학자, 송나라 6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 9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퇴칸을 구성하여 뜰 쪽으로 트이도록 하였다. 동무와 서무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유약(有若)·복불제(宓不齊)·복승(伏勝)·동중서(董仲舒)·한유(韓愈) 이통(李今)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 뒤에 조성된 강학공간은 대성전 서북쪽 뒤에 낸 일각문을 통해 출입할 수도 있지만, 향교 좌측의 골목길을 지나 입덕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강학공간의 중심을 이루는 명륜당은 1904년(광무 8)에 군수 권직상이 고쳐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마루를 깐 대청이고 좌우 협칸은 실(室)로 구성되어 있는 평면을 하였다. 명륜당은 좌우 1칸씩에 도리를 뺄목으로 길게 뽑아내어 눈썹지붕을 이어 단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명륜당 앞뜰 좌우에는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고 그 뒤로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보며 있다. 동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에 반 칸의 퇴를 두었는데 6칸 모두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의 가운데 4칸 앞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으며 양 측면의 방에는 툇마루가 없다. 서재의 평면은 동재와 같으나 실의 구성이 다르다. 평면은 5칸의 방과 1칸의 대청으로 이루어지며 방 앞에는 모두 툇마루를 시설하였다. 서재의 북쪽 뒤로는 장판각이 있고, 내부에는 9,600여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강학공간 서쪽에는 계성사가 있는데 주위를 담으로 둘러 별도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계성사는 원래 명륜당의 동쪽에 있었으나 1929년 철도 부설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계성사 앞쪽에는 신삼문(神三門)이 자리하고 있다.]
 
16:56~17:05    걸어서 전주향교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 7-2 번지에 있는 한벽굴로 이동
[9분, 543m]
 
17:05~17:10    한벽굴을 탐방
[한벽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주팔경의 하나였던 한벽당의 정기를 자르고자 철길을 만들었고 한벽굴은 그때 만들어진 전라선 터널이다.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을 달리거나 느리게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사랑을 받던 장소이며 바로 옆에서 1급수인 전주천의 깨끗하고 시원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로 두 주인공처럼 한벽굴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으며 드라마를 추억하는 방문객들이 많아 한참 동안 줄을 서야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17:10~17:30   전동성당으로 원점회귀하여 탐방 완료 [20분, 1.4km]
 
17:30~20: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를 타고 서서학동 예술마을을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귀경 [3시간, 20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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