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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02월14일(토요일)~02월17일(화요일) 전남 [보성군&고흥군&완도군&장흥군&강진군] 여행일정

작성자soomountain|작성시간26.01.26|조회수280 목록 댓글 0

2026년02월14일(토요일)~02월17일(화요일) 전남 [보성군&고흥군&완도군&장흥군&강진군] 여행일정 

회비 299,000원 1월24일 국민은행 57860101308843 노블레스클럽 계좌로 송금 완료, 7열2번 좌석 예약

 

2026년02월14일(토요일) 여행일정 

08:10~12: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교대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천1길 49 1층에 있는 벌교부용산꼬막식당으로 이동 [4시간20분, 343.3km]

12:30~13:30   벌교부용산꼬막식당에서 꼬막정식으로 점심식사

[벌교부용산꼬막식당 메뉴

꼬막정식(2인이상) 20,000원

신선한 꼬막과 꼬막탕수육, 낙지호롱, 꼬막전 등이 포함된 정식

푸짐한 한상차림

꼬막회무침비빔밥 12,000원

새콤달콤한 양념과 무생채가 어우러진 꼬막회무침과 밥을 비벼 먹는 비빔밥

쫄깃한 꼬막 식감푸짐한 양과 감칠맛

갯장어 10,000원]

 

13:30~14:0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고흥군 점암면 팔봉길 21 번지에 있는 능가사로 이동 [32분, 29.2km]

14:02~14:30   능가사 탐방

[능가사

위치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팔봉길 21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417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 정현대사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종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능가사는 2018년부터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남쪽나라 바다 명상 여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팔영산 자락에 위치해 팔영산을 둘러볼 수 있으며, 능가사를 지나 팔영산 자동차야영장이 인접해 있다.]

 

14:30~14:5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고흥 능가사를 출발하여 전남 고흥군 영남면 해맞이로 840 번지에 있는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로 이동 [20분, 15.0km]

[고흥 우주발사대 입장요금 : 65세 이상 무료]

14:50~15:30   고흥 우주발사전망대 탐방

[고흥 우주발사전망대

소재지 : 전남 고흥군 영남면 해맞이로 840 번지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는 나로우주센터와는 해상으로 17㎞ 직선거리에 위치하여 나로호 발사 광경을 넓은 바다와 함께 볼 수 있다. 1층에는 VR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2층에는 우주도서관이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또 우주 발사전망대의 숨겨진 비밀 명소인 2층은 수려한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 7층에는 전망 턴테이블, 회전하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우주발사전망대 주변에는 남해의 용이 승천했다는 용바위, 사자바위, 팔영대교 등 해안절경이 뛰어난 곳이 많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입장료

[개인]

- 성인 2,000원

- 청소년, 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20인 이상)]

- 성인 1,000원

- 청소년, 군인 700원

- 어린이 500원

※ 50% 감면 대상자

전남사랑도민증 소지자, 남해안 남중권 거주민 등(신분증 제시 필수)

※ 무료

고흥군민, 만 6세이하, 만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신분증 제시 필수)]

 

15:30~17:00   걸어서 [우주발사전망대~다랭이논~몽돌해변~사자바위 포토존~미르전망대∼용바위](이동 거리 : 3.37km)의 동선으로 미르마루길 탐방

[승천한 용의 전설을 따라가는 고흥 미르마루길 가을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세계일보 기사 입력 : 2022-11-19 12:00:00,  수정 : 2022-11-19 11:42:57

고흥=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다도해 푸른바다 즐기는 고흥 미르마루길/우주발사전망대~다랭이논~몽돌해변~사자바위 포토존~미르전망대∼영남 용바위 걸어서 1시간/높이 120m 절벽 승천한 용이 훑고 지나간듯한 흔적 신기/대웅전 너머 우뚝 솟은 팔영산... 능가사엔 만추의 낭만 가득

맑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드넓은 반석과 주위를 에워싼 기암괴석들. 서로 다른 빛깔로 켜켜이 쌓인 암반의 나이테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은 차가운 바다를 만나 버블이 꺼지면서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거대한 수직의 용바위. 마치 용이 바다에서 나와 절벽을 훑으며 하늘로 오른 듯, 아주 선명한 자국을 남겨 놓았다. 자연이 빚은 위대한 조각작품, 고흥 영남 용바위 앞에 서자 전설이 사실로 다가온다.

◆다도해 푸른바다 즐기는 고흥 미르마루길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홍도, 흑산도, 완도 등 섬 1596개 놓인 바다는 마치 솜씨 좋은 작가가 빚은 작품처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런 바다와 섬들을 즐기며 늦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 전남 고흥군 미르마루길이다. 우주발사전망대~다랭이논~몽돌해변~사자바위 포토존~미르전망대∼용바위로 이어지는 길은 3.37km로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기에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미르마루길 끝에서 영남 용바위를 만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바다와 접한 높이 약 120m의 바위산 절벽 가운데 거대한 용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약 5m 너비의 신비한 자국이 바다와 만나는 바닥에서 절벽 꼭대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색이 좌우 암반과 달라 확연하게 구분된다. 용의 몸통 격인 가운데는 용 비늘처럼 암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또 양쪽 가장자리는 검은색 암벽에 여러 겹의 세로줄 무늬가 물 흐르듯 그려져 누가 봐도 용의 자국임을 확신하게 만들 정도다.

여러 전설이 담겼다. 어릴 때부터 활쏘기 솜씨가 뛰어난 류시인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용추에서 두 마리 용이 승천하려고 싸울 때 한 마리의 용을 활로 쏘아 죽이지 않으면 마을에 큰 불운이 닥친다고 전한다. 류시인은 꿈이 하도 기이해 활을 들고 용추에 가보니 실제 청룡과 흑룡이 서로 먼저 승천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물고 뜯으며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류시인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활을 쏴 흑룡을 명중했다. 류시인의 도움으로 싸움에서 이긴 청룡은 용바위를 발받침 삼아 승천했기에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단다. 전설은 미르마루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사자바위로 이어진다. 흑룡은 화를 참지 못하고 류시인을 공격해 죽였고 승천한 청룡은 류시인의 용맹에 감동해 몽돌해변 앞에 수호바위를 만들었다. 실제로 보면 포효하는 사자의 옆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다른 얘기도 있다. 태초에 신이 고흥반도 동쪽 땅에 신령스러운 팔영산과 우미산, 아름다운 영남해안을 만든 뒤 이곳을 영원토록 보전하기 위해 용과 사자를 보내 지키게 했다. 용은 공덕을 쌓아 승천해 용신이 됐지만 사자는 공덕이 부족해 사자신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바위로 굳어졌단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용바위와 사자바위가 영남해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믿었고 큰일을 치르기 전에 꼭 이곳에서 안전과 풍요를 기원했다. 사자의 이빨을 만지며 소원을 빌거나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액운을 막아 주고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사실 화산활동과 침식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워낙 신비하게 생긴 지형이다 보니 전설이 실제로 다가온다.

용바위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절벽에 커다란 동굴이 보이는데 승천하지 못한 흑룡이 사는 용굴이란다. 비 오는 날이면 분노로 가득한 흑룡의 울음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지는데 사실 너울성 파도가 용굴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 마을사람들은 울음소리가 들리면 얼마 뒤 태풍과 해일 등 큰 재난이 닥칠 것으로 여겨 대비했다. 용바위로 가는 길 입구에서 영락없이 용 머리를 닮은 용두암도 만난다.  마을 사람들이 승천한 용의 머리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빌자 하늘이 용두암을 내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여러 전설이 있지만 탁 트인 바다 풍경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때 찾기 좋다. 넓은 바위에 앉으니 바람이 분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의 파도를 따라서. 늦가을 눈부신 햇살은 실눈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은 사랑하는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물고기를 낚는 것인지 세월을 낚는 것인지, 드넓은 반석에 앉은 강태공은 한가로이 팔베개를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소풍 나온 어린아이는 입안에 아직 김밥이 남았는데도 볼이 터져라 한 개 더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늦가을 풍경들. 미르전망대에 오르면 다도해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사자바위 뒤쪽 몽돌해변도 달그락거리는 몽돌의 노랫소리가 정겹다.

◆팔영산 능가사엔 만추의 낭만 가득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야외 분청공원에서 서로 얽혀 싸우는 두 용과 활시위를 당기는 류시인의 청동조각을 만난다. 강상훈 작가의 작품. 국내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터인 운대리 가마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고흥의 모든 역사문화자원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분청사기와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도 만난다.

팔영산 능가사로 들어서자 연못 주위로 단풍이 곱게 들어 만추의 낭만을 더한다. 바위에 적힌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문구가 심오한 깨달음을 전한다. 인간은 본래부터 마음에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평소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부처라는 뜻. 대웅전 뒤로는 고흥의 랜드마크 팔영산이 웅장하게 솟아 올라있다. 중국 위왕이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해 찾아와 제를 올리고 그 이름을 ‘팔영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고흥군 점암면과 영남면에 걸친 팔영산은 8개 봉우리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팔영산 정상에 오르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유서 깊은 능가사의 대웅전과 동종(범종)은 보물이며 사적비와 목조사천왕상, 추계당과 사영당 부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특히 능가사 범종은 1698년(숙종 24)에 주조된 것으로 이 종을 치면 인근 점암면 일대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탐을 내 헌병대까지 끌고 가 종을 쳐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마복산 흔들바위 오르니 다도해가 한눈에

팔영산 편백치유의숲으로 들어서자 파란 하늘 아래 한들거리는 분홍색과 하얀색 코스모스가 여행자를 반긴다. 올해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는데 가을이 천천히 지나가는 남도를 여행하는 덕분에 예쁜 풍경을 덤으로 얻어간다. 팔영산 편백치유의숲은 전국 최대 규모의 편백숲 국립공원으로 488ha에 이른다. 편백은 다른 나무보다 피톤치드 성분을 대량으로 내뿜어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데 30~40년생 아름드리 편백 숲을 따라 산책로 10km가량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서자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편백들이 빽빽해 햇살이 어렵게 비집고 들어온다. 나무침대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눈을 감으니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바람이 연주하는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뿐. 싱그러운 피톤치드는 마음에 고요한 힐링을 안긴다.

자연이 선사하는 숲의 기운에 힘을 얻어 마복산을 오른다. 말이 엎드린 형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복산은 해발 약 540m 높이로 아담하다. 수많은 지릉마다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의 바위꽃이 활짝 피어 ‘소개골산(小皆骨山)’으로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 단풍이 물든 요즘 산행하기 좋다. 내산마을에서 출발해 마복사를 지나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올망졸망한 섬들과 해안선, 포구가 아름다운 다도해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흔들바위가 이곳의 매력 포인트. 경사진 절벽 끝 매달린 바위는 금세 굴러떨어질 듯 아찔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암반에 올라 두 팔을 하늘로 향해 쭉 뻗어 신선한 공기를 폐 안에 잔뜩 불어 넣으니 온몸이 늦가을 향기로 가득하다.]

17:00~17:07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미르마루길의 용바위 입구 주차장을 출발하여 전남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 175-2 번지에 있는 남열해돋이해수욕장으로 이동 [7분, 4.0km]

17:07~17:30    남열해돋이해수욕장 탐방

[남열해돋이해수욕장

소재지 : 전남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 175-2 번지

일출명소로 매년 1월 1일이면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해수욕장 주변으로 펼쳐진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의 풍광을 볼 수 있으며 서핑으로도 큰 명성을 얻고 있다. 백사장 길이 700m, 수심은 1~2m로 영남면 동남쪽에 있다. 모래가 곱고 바닷물이 맑지만, 파도가 높아 주의해야 한다. 백사장 뒤편에 30~40년 된 곰솔 25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주차장과 야영장·화장실·샤워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17:30~18:2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3907 번지에 있는 녹동항으로 이동 [50분, 44.0km]

[녹동항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3907 번지

녹동항은 고흥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어항으로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소록도,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고흥군의 주요 어업항으로 연근해 어획량의 약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깊은 수심과 넓은 수로를 가지고 있어 대형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며 항만 주변에는 여객터미널, 수산물 시장, 공영주차장 등이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녹동신항 건설 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구항과 신항으로 나뉘어 있다. 구항은 녹동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고, 신항에서는 제주도와 거문도 여객선이 운항 중이다.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 선어 등과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모든 해산물의 집산지로 고흥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름 80m, 둘레 251m의 인공섬으로 바다 위 떠 있는 정원을 형상화한 녹동항 바다정원과 돔 영상관, VR 체험관이 있어 녹동항의 이모저모를 경험할 수 있다. 매년 5월에는 녹동 바다 불꽃축제가 열린다. 주변 관광지로는 쌍충사, 소록도 중앙공원, 거금대교, 도양 해안일주도로 등이 있다.]

18:20~18:30   녹동항 근방에 있는 숙소로 입실하여 짐 정리

18:30~19:30   저녁식사

19:30~21:30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 후 휴식

21:30~        취침

 

2026년02월15일(일요일) 여행일정 

06:30~07:30   녹동항 근방에 있는 객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7:30~08:30   아침식사

08:30~08:5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녹동항 근방 숙소를 출발하여 전남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 678-3 번지에 있는 거금도 우두항으로 이동 [22분, 16.4km]

08:52~09:10   우두항에서 금당도로 가는 여객선 승선권 구입 후 승선하여 출항 대기

[왕복 승선요금 : 14,000원]

09:10~09:30   여객선을 타고 우두항에서 전남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에 있는 금당도 울포항으로 이동 [20분 소요]

 

탐방지 :  금당도 [금당적벽(金塘赤壁)&교암청풍(轎岩淸風)]   

 

탐방일 :     2026년02월15일(일요일)

 

날씨 :       날씨 [완도군 금당면 최저기온 도C, 최고기온 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09:30~09:40    금당도 울포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 산 134 번지에 있는 세포전망대로 이동  

09:40~11:30    금당도 금당적벽과 교암청풍길 탐방

[전남 완도 금당도 ‘금당적벽~교암청풍’

층층이 뽀얀 해안절벽…완도에도 ‘바다의 금강산’ 있었네

글·사진=이창우 산행대장 lcw1124@kookje.co.kr

국제신문 기사 입력 : 2025-06-18 19:03:06 |   본지 12면

- 울포항 원점회귀 12.5㎞ 코스

- 비견도·거금도·초도 등 조망

- 시루떡 포갠 듯한 ‘가마바위’

- 기기묘묘 바위벼랑 절경 황홀

- 유람선 타면 금당팔경 둘러봐

아침저녁으로는 그래도 아직 선선하지만, 한낮은 삼복더위가 무색할 만큼 무더워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시원한 바닷바람과 다도해 경치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찾아낸 섬이 요즘 한창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주가를 올리는 전남 완도군 금당도(金塘島)이다. 원래 ‘금당도(金堂島)’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자가 바뀌었다 한다.

금당도는 산행과 둘레길 탐방을 할 수 있고, 유람선을 타고 해안을 따라 들어선 금당팔경의 천혜 절경도 둘러보는 코스이다. 금당팔경은 병풍바위 부채바위 스님바위 교암청풍(轎岩淸風) 금당적벽(金塘赤壁) 초가바위 코끼리바위 학령낙조를 일컫는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코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꼭 산행이 아니라도 금당적벽~교암청풍 둘레길을 걷고는 유람선을 타고 금당도의 여덟 군데 경관을 꼭꼭 짚어 보는 관광을 해도 괜찮다.

■천혜 절경 금당팔경

산행은 공산(136m) 금당산(178m) 삼랑산(223m) 오봉산(176m) 봉자산(188.6m)을 잇는 금당도를 한 바퀴 도는 5산 종주 코스가 열려 있다. 최고 높이가 300m에도 못 미치지만, 봉우리마다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가팔라 무더운 날씨에는 산길이 만만찮다. 그런 때는 울포항이나 차우고개에서 출발해 공산을 올라 금당산까지 능선을 탄 뒤 두 산 사이 고개 안부에서 금당면소재지 방향의 해안 둘레길을 둘러보는 ‘공산제월(孔山霽月)길’을 걷거나 내친김에 개기재까지 연결하는 ‘사동효종(寺洞曉鐘)길’을 걷는 방법도 있다.

근교산 취재팀은 금당팔경 비경인 금당적벽~교암청풍길과 공산~금당산~삼랑산~오봉산 4산 종주를 2회로 나눠 근교산 애독자께 찾아간다. 취재팀은 녹동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금당도 울포항에서 다시 녹동항으로 되돌아왔는데, 금당팔경의 1경인 병풍바위, 2경인 부채바위, 3경인 스님바위를 보며 지나간다

금당도 금당적벽~교암청풍 둘레길 경로는 다음과 같다. 울포항~요망산 삼거리~당목재~129봉~전망대~장문재~하트전망대~세포전망대·노을적벽 갈림길~세포전망대~세포전망대·노을적벽 갈림길~송장굴전망대·노을적벽 갈림길~송장굴·용굴·목도 갈림길~송장굴~송장굴전망대·노을적벽 갈림길~노을적벽~콘크리트 임도~장문재~‘사장 넘’ 삼거리~정자~가마바위·교암청풍 갈림길~가마바위~가마바위·교암청풍 갈림길~교암청풍~세포마을·세포선착장 갈림길~세포마을~당목재~차우마을~금당면사무소 입구~울포항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산행거리는 약 12.5㎞이며 5시간 안팎 걸린다. 금당적벽과 교암청풍 일원 전망과 퇴적암층의 절경이 워낙 빼어나 예상 산행 시간은 큰 의미는 없다.

고흥 녹동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울포항에 취재팀을 내려주고 금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선착장 정면에 대기실과 ‘가고 싶은 섬, 금당’ 커뮤니티센터 건물이 있다. ‘금당적벽(적벽청풍)~교암청풍’ 가는 길은 이 건물 뒤편에 금당팔경길 등산로 안내판을 참고할 수 있는데, ‘울포귀범(鬱浦歸帆)길 입구’다. 울포귀범은 조선 후기 위세직(1655~1721)이 쓴 기행가사인 금당별곡(金塘別曲)에 나오는 8경 중 제4경인데 ‘울포로 돌아오는 만선의 돛단배’를 뜻한다.

약 70m쯤 임도를 가면 오른쪽에 ‘등산로 입구’ 팻말이 있다. 숲길을 빠져나가면 그리 크지 않은 해송 사이로 조망이 열린다. 약 10분이면 요망산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은 금당면사무소 앞에서 요망산을 거쳐 오는 길이다. 왼쪽 세포전망대(3.0㎞)로 꺾으면 안부에 내려서는데, 오른쪽 차우 마을에서 콘크리트 임도가 올라와 있다. 능선을 직진해 75봉을 넘어 약 20분이면 세포 마을로 가는 도로에 떨어진다. 왼쪽 가마바위 방향에 고개마루인 ‘당목재’가 보인다.

여기서 먼저 오른쪽 금당적벽(1.0㎞)길로 향한다. 직진은 세포마을(0.4㎞)·교암청풍(1.2㎞) 방향이다. 10여 분 산등성이를 타면 오른쪽 ‘각암목적(角岩牧笛)길’에서 오는 길과 만나 세포 전망대(1.5㎞)로 향한다. 왼쪽에 보이는 산줄기가 교암청풍 가는 길이며 오른쪽은 금당도의 다섯 봉우리인 봉자산 오봉산 삼랑산 금당산 공산이 둘렀다. 129봉을 넘으면 암반에 전망이 열린다. 정면에 평일도 뒤로 생일도의 최고봉인 백운산이 고개를 내밀고 그 오른쪽에 조약도(약산도)와 완도 상왕봉 등 선경이 펼쳐진다.

■금당적벽·교암청풍 둘레길 인기

발아래 다도해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약 15분이면 콘크리트 임도인 장문재에 닿는다. 1㎞ 떨어진 전망대로 직진해 덱 계단을 오른다. 6, 7분이면 119봉을 왼쪽으로 돌아 하트 전망 덱에서 교암청풍 뒤로 비견도와 거금도 적대봉 시산도 손죽도 초도 등 조망을 즐긴다. 평탄한 길을 걸어 10분쯤이면 노을 전망대 갈림길과 만난다. 먼저 왼쪽에 100m 떨어진 세포전망대를 갔다 온다.

정자와 덱이 설치된 세포 전망대에서는 발아래 바위 벼랑인 금당적벽은 볼 수 없었다. 코끼리 등에 올라 코끼리 전체 모습은 볼 수 없는 이치였다. 금당적벽 비경을 자세히 보려면 유람선을 타야 했다. 건너편의 교암청풍과 주변 경관을 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다시 노을 전망대 갈림길로 되돌아갔다. 왼쪽 노을 전망대로 꺾는다. 두 번의 전망대가 나온다. 한낮이라 저녁 낙조를 상상하며 바위 벼랑을 돌아가면 적벽 노을 갈림길에 이정표가 섰다. 왼쪽 송장굴 전망대를 갔다 온다. 다시 목도 갈림길에서 왼쪽 송장굴·용굴로 간다.

이내 시멘트를 으깬 듯한 하얀 퇴적암 절벽 아래에 덱 쉼터가 있다. 송장굴은 해안으로 더 내려가면 높이 약 4m, 폭 약 10m 되는 상어 아가리 같은 반원형 석굴이다. 용굴은 해안가에 있지만 안 보인다고 한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나가 노을적벽으로 향했다. 화산암이 풍화작용을 받아 벌집 모양의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렸고 다양한 형태의 암석은 지질박물관을 보는 듯한 벼랑을 거쳐 콘크리트길과 만나, 20여 분이면 장문재 사거리에 다시 선다. 세포마을로 직진한다.

약 10분이면 ‘사장 넘’ 이정표가 선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교암청풍(0.8㎞)·가마바위(0.8㎞)로 튼다. 왼쪽은 세포마을에서 오는 길이다. 이내 정자와 만나 왼쪽 ‘교암청풍·전망 좋은 곳’ 방향이며 대나무 숲을 빠져나가면 해안가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사장 넘’ 갈림길에서 15분이면 교암청풍과 가마바위 갈림길에 선다. 오른쪽 가마바위로 향한다. 가마바위는 원래 섬이었는데 돌을 메워 이제 물때와 상관없이 언제든 건너갈 수 있다.

철 계단을 올라 시루떡을 포갠 듯한 가마바위를 돌면 건너편 세포전망대 아래 금당적벽 해안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연 절경에 더한 절경이었으며, 기기묘묘한 바위 벼랑은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海金剛)에 비유됐다. 앞에 지나온 갈림길로 되돌아 가 교암청풍으로 직진한다. 높은 습도에 지글지글 끓는 한낮 열기는 교암의 시원한 바람도 어찌하지 못했다. 오른쪽에 ‘교암청풍 전망 좋은 곳’ 이정표가 있지만 무더워서 갔다 올 엄두가 안 났다. 곧장 교암청풍 꼭대기의 63봉 전망대에 올라섰다.

시원한 조망을 뒤로하고 능선을 타면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 세포마을(650m)로 향한다. 오른쪽은 세포선착장 가는 길.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에 암반이 두른 세포선착장을 보며 고갯마루 정자에 내려선다. 사장 넘에서 세포마을을 넘는 고개다. 원래 포구가 길고 가늘어 ‘가는 개’라 했던 게 ‘세포(細浦)’로 바뀌었다 한다. 땀을 식힌 뒤 세포마을을 거쳐 찻길을 따라 당목재에서 취재팀이 앞서 왔던 길 대신 이번에는 직진해 울포항(1.2㎞)으로 향했다.

10분이면 소류지가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콘크리트길을 올라 왼쪽에 교회 건물이 보이는 차우 마을로 간다. 차우 마을 도로에서 오른쪽이다. 금당교회를 지나 고개를 넘어 금당도면사무소 입구를 통과해 출발했던 울포항에 도착한다.

◆교통편

- 배편 환승 맞추기 어려워…녹동신항 또는 우두항까지 내비 찍고 자차 이용 권장

대중교통을 타고는 금당도 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승용차로 가는 게 낫다. 승용차 이용 때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비봉로 266-16 ‘녹동신항연안여객선터미널’ 또는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 678-3 ‘우두항’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고 간 뒤 주차장에 차를 둔다. 주차 무료.

녹동신항연안여객선터미널과 우두항에서 금당도 울포항은 평화해운(061-843-2300) 여객선이 운항한다. 녹동신항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하절기 5시50분 한차례 있고, 우두항에서는 하절기 오전 9시 11시20분 오후 1시50분 4시30분에 출발한다. 녹동 신항에서는 약 45분, 우두항에서는 약 15분 소요. 산행 뒤 울포항에서 녹동 신항은 오후 5시5분 5시50분에 있고 우두항은 오후 3시20분에 떠난다.

녹동신항과 우두항 간은 이동이 쉽지 않다. 울포항에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전남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노력항(매표소 061-843-9717)에서 금당도 가학항으로 가는 배도 있으니 참고한다. 노력항 출발은 하절기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30분 오후 1시30분 3시30분 6시이며 모두 6회 다닌다. 약 30분 소요. 가학항에서 노력항으로 나가는 배는 오전 7시 9시 11시 오후 2시 4시 6시30분에 있다.

금당도에서 울포항과 가학항을 잇는 마을버스가 다니며 금당개인택시(010-5053-9451)도 울포항에 있다. 숙소는 금당도에서 유일한 여관인 대일장(010-5427-9727)과 여러 민박집이 있다. 울포항에서는 금당팔경을 유람하는 요트 투어(010-6556-1753)도 할 수 있다. 약 1시간40분 소요, 1인 3만 원.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울포항 인근에 ‘남해루(061-843-0073)’ 중국집이 괜찮았다. 해물이 넉넉한 짬뽕(사진)이 관광객과 등산객의 입소문이 났는데, 금당도에서 안 먹고 왔다면 금당도를 찾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정도다. 짬뽕 1만 원.

문의=문화라이프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11:30~11:40    식당으로 이동

11:40~12:40    점심식사

 

12:40~12:50    금당8경 해상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 [해상유람선 승선요금 : 2만원]

12:50~13:50    해상유람선을 타고 금당8경을 관람

[억겁의 세월이 빚은 자연풍광 - 금당8경

가학항에서 섬을 일주하는 배에 오르면 금강산 천불전을 닮은 천불전,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초가바위, 상여바위, 스님바위, 부채바위, 병풍바위 등 ‘금당8경'의 신비로운 자태에 탄성이 끊이질 않는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무인도를 징검다리 삼아 뜨고 지는 해돋이와 해넘이도 평생 기억할 추억의 장면이 될 것이다.

금당팔경은 억겁의 시간과 세월이 빚은 기암괴석과 신비로운 자연풍광을 가리킨다.

금당8경 해안일주(전남 완도 금당도갯벌섬마을)

체험비용 : 100,000원(1회 5인기준), 소요시간 - 1:00분

연락처 : 061-843-4077(센터), 010-9454-5439(위원장), 017-602-0261(팀장 신부길)

정보센터 및 위원장에게 연락주시면 예약가능합니다.

금당팔경 선상요트투어

위치 :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 64-12

연락처 : 010-6556-1753

내용 : 금당팔경을 둘러볼 수 있는 요트 투어를 제공. 특히, 계절에 따라 다양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

구 분    요 금

대인     30,000원(1인당)

소인(초등학생 이하)  20,000원(1인당)

단체(20인 이상)      25,000원(1인당)

단체(30인 이상)      20,000원(1인당)

단독투어      300,000원]

 

13:50~14: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울포항으로 이동

14:00~15:00    금당도에서 우두항으로 가는 여객선 승선 대기  

15:00~15:20    여객선을 타고 금당도에서 우두항으로 이동 [20분 소요]

15:20~15: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우두항을 출발하여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29-8 번지에 있는 국립소록도병원주차장으로 이동 [15분, 10.4km]

15:35~17:00    소록도 탐방

[소록도(小鹿島)

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의 아름다운 섬

요약 :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하고 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의 아름다운 섬으로 면적 4.42km2, 인구는 600여 명이다.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소록도에는 현재 5개의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

고흥반도의 서남쪽 끝 녹동항 앞바다, 이 앞에 면적 4.42km2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 소록도가 있다.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더 유명해졌다.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가진 자에게는 낭만의 장소이자 한편으로는 고립의 장소다. 이 섬은 갇힌 장소 즉 구분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어 온 대표적인 곳이다. 일제시대에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을 모은 것은 이들을 격리하기 위함이었다.

섬의 모양이 작은 사슴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한편으로 현재의 녹동항 부근은 과거 녹도라는 섬이었다고 한다. 그 녹도에 비교하여 작은 녹도라 해서 소록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예쁜 이름과는 달리 한센병 환자의 애환이 깃든 사연 많은 섬이다.

국립소록도병원은 1917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여, 1941년에는 6천명이 살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600여 명이 살고 있다. 문둥이는 차에 태울 수 없다는 이유로 버스에서 강제로 내려져 일주일을 걸어도 도착하기 힘들었던 섬이 ‘소록도’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가야 했지만 지금은 걸어서도 갈 수 있다. 같은 민족의 이웃을 단지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그리도 차별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것이 통했다.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는 지난 2008년 6월 준공됐다. 이제는 격리 대신 육지와 소록도를 이어주는 소록대교를 통해 소통을 상징하는 섬이 되었다. 이 대교를 건너서 뭍과 소록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소록도는 환자생활지역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섬이 되었다.

한때 ‘천형(天刑)의 땅’으로 차별받던 소록도는 지난 2007년에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 보도된 적이 있다. 소록대교가 완공된다는 소식과 함께 편견과 슬픔으로 얼룩졌던 소록도의 역사를 돌이킨 것이다.

소록대교를 지나 소록터널을 지나기 전 오른쪽으로 이어진 차선을 타면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빠진다. 제2안내소에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가는 길은 탄식하는 장소 즉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리던 길이라고 한다. 한센병에 감염되지 아니한 미감아인 자식과 한센인 부모가 한 달에 한 번씩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서린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원 앞에서 숲길을 달리다 자혜의원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숲길을 통과하면 한센병 환자들 중 범죄자를 수용하기 위한 특수형무소인 교도소가 나타난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구북리 가는 길이다. 정문에서 서쪽으로 가장 먼 곳에 위치한다. 시설의 특성에 맞게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낡은 철제로 된 교도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정문 입구에는 경비실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아치에는 ‘희망의 마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양쪽 기둥에는 시설명이 있었을 것인데 다 떨어져나가고 없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일제의 인권유린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구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 여사동’이다. 한센병 여성 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건립한 교도소 건물이다. 이곳은 현재 비어 있다. 당시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빨간 벽돌 건물인 교도소 마당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진 감옥이 있다. 그 안쪽으로는 실험실이 있다.

다시 삼거리로 나와 반대쪽 즉 북쪽 방향의 길을 가면 해안이 나타난다. 이곳이 구복리가 있는 해안으로 모래밭이다. 해안 뒤로 소나무가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해변 한쪽에 현대식 건물이 한 채 들어서 있는데 바로 화장장이다. 그리고 이 앞으로 난 시멘트포장길을 걸어가면 해안 쪽에 옛날에 만들어진 붉은 벽돌의 건물이 있다. 그러나 아무 표시가 없다. 이 앞은 잡초로 무성한 밭이다. 그 옆으로 구북리사무소가 있다. 번지수는 ‘공회당길 191-2’. 그 뒤로 마을 정자인 쉼터가 있다.

구북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어 왼쪽으로 돌아서면 역시 길이 갈라지면서 가운데에 동산을 만들었다. 향나무와 함께 비석 그리고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제2대 원장을 지낸 하나이 원장 창덕비다. 소화 5년 즉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앞면에는 ‘화정원장창덕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한문으로 된 공적 내용을 새겨두었다. 안내판은 한글과 일문으로 되어 있다.

환자들이 직접 경비를 마련하여 세운 이 비석도 수난을 당했다. 해방 후 자유당 정권에 의해 비석이 폐기될 상황이 되자 환자들이 몰래 땅에 묻어두었다가 1961년 5.16 이후 다시 발굴하여 중앙공원에 세운 뒤 1988년에 원래의 위치인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다. ‘하나이(花井善吉)’원장은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재직하면서 이곳에서 사망했다. 일본인이면서도 조선 환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1917년 설립한 한국인 한센병 환자들의 잔혹사가 시작된 ‘자혜의원’이다. 일본 황실에서 제공한 임시 은사금이 재원이라고 한다. 화장실 외 두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내문에 의하면 자혜의원 본관은 원래 T자형이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변형이 되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목재와 벽돌로 골재를 이루고 기와를 올린 모임지붕의 형식이며 비늘판으로 벽채를 마감하였다. 사무실과 치료실, 진료실 그리고 예배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1916년 7월 10일 일본인 아리까와는 초대 원장으로 발령을 받고 150여 가옥과 9백여 명의 원주민이 남아있는 가건물에 자혜의원이란 간판을 붙여놓고 설계도에 의한 나요양소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치료소, 직원 관사, 사무본관, 예배당, 목욕탕, 취사장, 병사 등을 준공하고, 1917년 5월 17일을 기해 자혜의원 개청식을 거행했다. 자혜의원은 지방에서 강제 모집되어온 약 40명 환자를 남녀 병사에 각각 수용하고 일본식 생활방식으로 훈련시켰다. 자혜의원은 치료와 사무를 보았으며, 1935년 치료본관이 신축된 이후에는 서생리 치료실로 사용되었다.

남성리에 들어서면 도로 왼쪽에는 남성교회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고 아래에는 밭과 함께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있다. 소나무가 주위를 둘러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록도에는 현재 5개의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 예전에는 제법 많은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에 처음 교회가 생긴 때는 1922년 10월 8일이다. 2대 원장으로 부임한 하나이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구북리교회가 창립됐다.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중앙교회, 신성교회, 동성교회, 남성교회와 북성교회 등 5개 교회가 있다. 서성교회와 장성교회는 마을이 중앙리로 이주하면서 폐쇄됐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길이 왼쪽으로 꺾여 들어가는데 오른쪽에는 ‘남성리치료실’이 있고 왼쪽에는 남성리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툭 튀어나온 둔덕에 위치한 사무소가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주변의 무성한 소나무 숲과 옹기들이 잘 어울린다. 이 앞으로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린다. 여기서 남쪽으로 비포장도로는 소수의 집이 있고 거금대교가 바라보인다. 남성리는 이 아래로 모래해변을 낀 마을이다.

해변길을 따라 조금 가면 선착장이다. 그 입구에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이 도로 양쪽에 있다. 그 중 바다 쪽에 위치한 건물은 1940년대에 만들어진 ‘갱생원 식량창고’다. 역시 문화재등록 건물로 안내문에 의하면 바닷물 속에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아 조수간만의 차에 의한 공기순환을 유도하여 내부에 보관하는 식량이 잘 보존되도록 설계되었다. 바다에 접한 부분은 해수의 영향으로부터 수중 기초를 보호하기 위하여 벽돌을 쌓고 외부에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기둥 모양의 초석을 만들고 그 위에 아치를 튼 다음 벽돌로 벽을 쌓아 올라갔다. 창고 앞에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고 옆으로 선착장이 있어 이곳을 통해 식량이 수송되었던 듯싶다. 이곳이 동생리선착장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희망마을이 나타난다. 동생리에 위치한 ‘희망마을’은 한센인들이 기거하던 노후 병사들을 철거하고 신축한 거주 단지로써 대우조선해양 그룹이 후원 · 시공해 만든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거리로 왼쪽에는 연두색 건물의 ‘양지회기념관’이 있고 오른쪽에 성당이 있다. 1973년 10월에 성실고등공민학교 학생 16명은 육영수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였고 이후에도 육 여사는 원생들의 노후생활을 염려하여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자 기부금을 희사하였는데, 이 기부금으로 74년 11월 양지회기념관이 준공되었다. 양지회기념관 앞에는 육 여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원생들의 순수한 모금액으로 공덕비가 세워졌다.

양지회기념관 뒤쪽으로 숲에 가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건물 한 채가 있다. 바로 ‘우촌복지관’이다. 이곳 화단에는 교황방문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84년의 일이니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교황의 소록도 방문을 반대했지만 교황은 끝내 5월 4일에 소록도를 찾았다. 교황은 “여러분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왔다”며 “병고에 지친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영혼의 생명인 저 희망에서 위안과 힘을 찾게 되기를 빈다”고 원생들을 위로하고, 성금과 십자가를 기증하였다. 이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를 이곳 우촌복지관 화단에 세운 것이다.

성당은 제법 규모가 큰 편이다. 부속건물 포함하여 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옆으로 길이 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중앙공원 입구가 있다. 초록의 철제 울타리를 친 공간으로 문이 열려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공원이 나오는데 작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수목원의 느낌이다.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6천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전국에서 강제로 수용된 나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만들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으나 소나무, 향나무, 철쭉과 종려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 위에 심어져 있다.

후문 입구에서 바로 옆으로 철제로 만들어진 장미터널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길이 양 옆으로 나뉘지만 몇 미터 가지 않아 만난다. 그 만나는 지점에 탁한 물로 가득한 호수가 조성되어 있으며 물 위에는 십자가상이, 호수 뒤 뒷동산에는 성모상이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비석이 세워진 영역이 나타난다. ‘개원제40주년기념비’다. 그 옆에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이 강제노역을 시키고 환자들한테서 거둔 돈으로 자신의 동상을 세워 참배케 하다가 환자에게 살해당한 4대 수호 원장의 동상이 있었던 자리다. 안내문에 의하면 ‘수호(周防正季)’원장은 제4대 원장으로 1933년에서 1942년까지 8년 9개월 동안 재직한 일본인이다.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을 동원하여 소록도 내의 각종 공사를 추진하였다고 한다. 환자들로부터 기금을 강제 징수하여 재임 중 1940년 8월 20일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거기에다 이날을 기념하여 매월 20일을 ‘보은감사일’로 지정, 환자들로 하여금 참배하게 하였다. 그런데 2년 후인 1942년 2월 감사일에 참다못한 이춘상이라는 젊은이가 칼을 빼들었다. 환자에 대한 대우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이춘상은 사형에 처해졌고, 원장 동상은 태평양전쟁 물자로 징발 철거되었다고 한다. 원래 동상은 3.3m이고 단을 포함한 전체 높이는 9.6m였다고 한다. 안내문에는 참배하는 환자들의 모습과 철거되기 전의 동상 사진이 새겨져 있다.

이 앞에 반듯한 반석이 놓여있는데 그 유명한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다. 초등학교 시절 참으로 많이도 외웠던 시, 반송들에 둘러싸인 한하운의 ‘보리피리’시비가 육중한 몸을 누인 채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ᄅ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ᄅ닐니리.

이 주위로 두 기의 공적비가 있다.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하였던 이들의 공덕비다. ‘개원40주년기념석’ 부근에 위치한 것은 세 명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로 여기에는 40여 년 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수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세마(3M)공적비’다. 1972년 5월 17일에는 개원 56주년 기념식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온 수녀 마리안느, 마가렛, 마라리아 세 사람의 이름이 ‘마’로 시작한다고 하여 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마공적비를(이들은 62년부터 영아원을 운영하였고, 영아원이 없어진 이후에는 아동치료실을 운영하며 다미안 재단과 합류하여 일하기도 하였다.), 중앙공원의 너럭바위에는 미리 새겨둔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를, 유판진 5.16 민족상 수상 기념비를 제막했다. 이에 유판진과 오스트리아 수녀들이 희사한 기금으로 중앙공원 상단에 동물원을 만들었다.

또 다른 공적비는 벨기에 사람들에 대한 다미안 공적비다. ‘다미안’은 일반인이었다가 스스로 한센인이 된 ‘한센인의 목자’가 된 신부다. 이 비는 1971년 다미안 재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정부는 1966년 4월 15일 벨기에 자선단체인 다미안 재단과 향후 5년간 우리나라 구라사업 지원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재단은 열악한 의료환경에 있던 소록도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물리치료실과 입원실 마련, 정형수술 등으로 원생들에게는 많은 의료혜택을 주었다.

시비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공원 중앙부분 지점에 우뚝 솟은 탑이 있다. ‘나병을 구원하는 탑’이란 뜻의 ‘구라탑(救癩塔)’이다. 천사가 악마를 제압한다는 동상이 서 있고,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쓰인 탑이다. 이 탑은 1963년 국제워크캠프 남녀 대학생 133명이 도덕면 오마도 간척지 근로봉사를 기념해 세운 탑이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공원 정문이 있다. 안내판 뒤로 세 동의 건물이 있다. 전시관이다. 두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된 생활자료관이다. 소록도자료관 제2실에는 한센병 환자의 수술 · 시술기구들과 처치에 필요한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입구에서 약간 내려오면 소록도자료관 맞은편 아래 왼쪽으로 몇 동의 건물들이 있다. 물론 이들 건물들은 등록문화재 건물들이다. 이곳엔 아직도 그 시기 지어진 건물이 제법 남아 있다. 길 양편으로 붉은 벽돌 건물들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원장이 이곳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검시실이다. 창살이 있고 방은 시멘트 바닥이다. 변기도 덩그러니 있다. 벽에 걸린 시들은 아픔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환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툭하면 감금, 감식, 체벌의 징벌을 받았다.

붉은 벽돌 담 안에 쇠창살을 단 ‘감금실’ 건물은 교도소를 방불케 한다. 이곳 벽에는 김정균의 ‘감금실’ 전문이 액자에 실려 있다. 이춘상이 수정 원장을 살해할 당시 김정균이 남긴 글이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이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검시실’은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관 수술과 시체 해부를 했던 곳이다. 검시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검을 검사하는 곳이란다. 지금도 수술대와 세척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의 수술대 · 검시대 · 세척 시설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옆방에는 나무로 만든 기구가 있다. ‘단종대(斷種臺)’다. 말 그대로 ‘생식을 중단시켜 버리는 곳’이다. 정관수술이다. 죄를 지은 자들에게 강제로 시술을 했던 곳이다. 단종대가 있는 옆방 벽에는 4대 수호 원장의 명을 거역해 스물다섯 한창 나이 때 ‘단종 수술’을 당한 이동(李東)이란 사람의 ‘단종대’라는 시가 걸려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여기서 나오면 가운데에 큰 나무가 있고 그 앞에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바로 소록도병원 본관 건물과 이어진다. 큰 길 중심으로 본관 옆에 있는 것이 노인전문병동이고 그 뒤로 ‘선물의 집’이라는 매점이 있다.

현재의 소록도병원은 원래의 모습은 아니다. 일찍부터 한센병 환자 치료를 위해 건설된 국립소록도병원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본관이 개관된 것은 지난 1987년 5월 15일이다. 그리고 국립소록도병원 본관 건물이 지어진 지 20여년 만에 현대식 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지난 2011년 4월이 되어서이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는 1916년에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1910년 외국 선교사들이 소록도에서 운영하던 ‘시립나요양원’에 나병환자들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13년에 발족한 조선나병근절대책연구회를 모태로 1916년 2월 당시 금산면 소록도를 매수, 건물 47동을 건축하고 소록도자혜원이라 하고 1917년부터 환자를 수용했다(1917.5.17). 일본 황실의 기부금을 종잣돈 삼아 1916년 ‘소록도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으며, 1960년부터 수용위주에서 치료위주로 관리정책을 전환하였다. ‘소록도갱생원’, ‘국립나병원’ 등 여러 이름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소록도갱생원이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바뀐 것은 1960년 정부령에 의해서다. 이후 정부는 국립소록도병원을 제외한 국립익산병원, 국립부평병원을 폐쇄하고, 국립소록도병원은 국립나병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그러나 원생들은 ‘나병’ 혹은 ‘나환자’ 등과 같이 나(癩)로 불리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1982년 12월 31일이었고 이듬해 1월 8일에 현판식을 가졌다.

본관을 지나면 큰 길이 나온다. 여기서 큰 길 건너편 바닷가 쪽으로 가면 ‘애한의 추모비’가 눈길을 잡아끈다. ‘추모비’엔 1945년 해방되자 자치권을 요구하다 학살당한 원생들에 관한 기록이 간략하게 정리됐다. 해방 직후 자치권을 요구하는 한센병 환우 84명을 죽창과 총으로 학살해 묻었던 참혹한 현장이라고 한다. 그해 8월 84명이 죽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과 착취에 시달린 한센인들의 수난사가 섬 곳곳에 새겨져 있다.

추모비 옆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해안을 낀 산책로로 나무 데크로 만들어졌다. 이 산책로는 이리저리 휘어진 곰솔이 있는데 해안을 따라 소록도 입구까지 이어진다. 중앙공원까지는 주차장에서 1.3km를 걸어야 한다. 찻길 옆 해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해송 숲 사이로 난 길은 운치가 있고 걷기도 좋다.

바로 옆은 모래해변이다. 저만치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하얀 연륙교인 소록대교가 보인다. 어둠이 깔리면 형형색색의 조명이 인근 바다에 뿌려져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추모비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비석이 하나 있다. ‘개원50주년기념비’다. 5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비로 이 비 뒷면에는 시인 한하운의 축시를 새겼다.

희(噫) 50년 <소록도병원 50주년 기념에>

천형 섬에는

납골탑이 확답.

끝내 <나병은 낫는다>는 신화가

우악한 산하에도 불어오는가.

모질게 살아 온 목숨들이

이제 뭍으로 신천지를 찾는

찬란한 슬픔의 소록도.

아으, 50년

해방.

자유가 있는

아, 새 세상.

50주년기념비 옆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님’이란 타이틀에 사진 넉 장과 함께 설명문이 새겨져 있다. 넉 장의 사진 중에는 중앙공원의 공적비도 있다. 두 장의 사진은 수녀님의 사진이고 한 장은 두 수녀님들이 살았던 관사 사진이다. 추모비 건너편에는 관사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수녀님들이 살았던 그 관사다. 소록도에서 43년 간 봉사하다 홀연히 본국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의 사연이 적혀 있다.

이들 ‘벽안의 천사’들이 소록도에 들어온 것은 1962년 6월이었다. 그리스도왕의 수녀회 소속으로 간호사 자격을 가진 20대 후반의 두 수녀는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나던 한센병 환우를 돕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이들은 당시 국내의 열악한 치료 여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보내온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온갖 사랑을 베풀었다. 환우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등 헌신적인 치료 활동을 했다.

두 수녀는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환우들의 재활의지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한센병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 등 정부도 나서지 않은 일을 해냈다.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두 수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한글까지 깨치는 등 완연한 ‘한국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그들을 ‘할매’라고 불렀다. 하지만 평생의 선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렸다. 1996년의 국민훈장 모란장, 이들이 받은 전부다.

두 사람은 떠나기 하루 전, 병원 측에 이별을 통보했다. 주민들에게는 아픔을 준다며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가져간 짐이라고는 낡은 여행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편지에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며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빈다”고 말문을 흐렸다.

소록도는 섬 전체가 한센 환자들이 생활하고 치료하는 병원이다. 그러나 병원과 행정동의 1번지와 한센인들의 주거지인 2번지로 구분돼 있다. 제2안내소를 중심으로 그 영역이 갈린다. 우체국부터 교회, 성당, 사찰까지 그럴 듯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매점도 여러 군데 눈에 들어온다. 각종 의료시설 및 복지시설을 비롯하여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풋풋한 솔숲과 눈이 시릴 만큼 깨끗한 소록도해수욕장 뒤로 아담한 초등학교도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초등학교는 섬의 동쪽인 해수욕장 뒤편에 위치한다. 1930년 개교한 소록도 분교에는 한때 수백 명이 다녔을 정도로 학생이 많았다. 하지만 소록도병원의 환자가 줄면서 직원도 함께 줄어 현재는 겨우 5명뿐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국립소록도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자녀다. 학교 앞에 위치한 모래해변이 바로 소록도해수욕장이다.

제2안내소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 내리막이 시작되면 왼쪽으로 원불교 교당이 보인다. 원불교 교당 경내에는 일본신사가 있다고 한다. 그 주변에 집들이 몇 채 있고 그 아래에 초등학교가 있다. 섬에 포근히 파묻힌 전원주택들은 모두 직원들이 머무르는 관사들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다세대 주택이 보인다. 일반인들이 사는 미니아파트다. 그 맞은편에 성당이 있으며 계속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 녹동에서 소록도로 오는 길목이다. 소록도병원 전용도선, 일반용 도선도 매일 수시로 운항했던 곳이다.

선착장에는 치안센터가 있고 그 옆으로 자전거보관소가 자리하고 있다. 대합실이라고 하여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바람막이 정도의 시설과 그 옆에 있는 나무의자가 전부다. 그 옆에 아주 오래된 안내도가 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선착장이다. 오른쪽 해안 끝에는 긴 방파제가 있다. 녹동항에 들어설 때 만나는 하얀 등대가 있는 그 방파제다. 소록도 최동단에 위치한 이 방파제 주위 해안은 역시 모래해변이다.

배를 타는 선착장 양쪽으로 철부선이 닿을 수 있는 경사제가 있고 그 옆 경사제에는 ‘국립소록도병원행’을 알리는 철부선 ‘소록호’가 정박해 있다. 물론 지금은 운항하지 않는 배다. 소록대교가 생기기 전엔 세상과 유일한 소통로는 바로 이 철부선이었다. 주민들은 그동안 소록도와 녹동항을 하루 40차례 왕복했던 선박(도양 7호)을 이용했다.

소록도 선착장에 닿으면 맨 먼저 만나는 게 아치식의 정문이고 그 기둥에 ‘국립소록도병원’ 표지석이 있다. 그 앞쪽에 건물 한 채가 있는데 바로 제1안내실이다. 이 문을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공터에 공원 조성과 함께 ‘전남 503호’라는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행정선으로 역시 지금은 유물로 남은 상태다.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그 뒤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조성하고 끝에 소나무에 가린 비석이 하나 있다. ‘순록탑’이다. 6 · 25전쟁 당시 한센병 원생들을 지키다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병원 직원들을 기리는 탑이라고 한다. 북한군들은 이곳에 들어와 인민위원회를 조직, 예배당을 약탈하여 ‘공회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인민공화국 노래를 가르쳤으며, 타종은 물론 기도와 찬송을 폐지시켰다. 당시 목회자인 김정복 목사는 교회를 사수하던 중, 9 · 28 수복으로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난사한 총탄에 맞아 순교했다. 당시 순직한 10여 명의 신도들을 추모하는 탑이 순록탑으로 남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지난 2011년 4월에 국민가수 조용필이 한센인을 찾아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되었던 단절과 닫힘의 섬, ‘소록도(小鹿島)’. 2009년 3월 2일, 한센인이 격리 수용된 지 93년 만에 뭍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가 개통된 것이다. 소록대교가 건립되면서 이곳에도 상수도가 들어왔다.

한편 소록도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슴과 관련된 섬이다. ‘아기 사슴의 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사슴이 많다. 그래서 야산에서는 사슴 떼를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이 섬에 사슴이 처음 들어온 건 1992년 가을이다. 서울에 사는 백모 씨가 한센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사슴 3마리를 기증했다. 이후 사슴은 20여 마리로 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슴들은 모두 울타리를 쳐 만든 농장 안에서 사육됐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개체 수는 불었고, 동시에 사료값도 늘어났다. 주민들은 결국 이들을 야산에 풀었다. 10여 년 전부터 섬 야산에는 사슴 무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야산에 풀어놓은 사슴이 급격히 늘어나 ‘생태계 파괴범’으로 돌변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슴 개체 수가 추정치로 100마리가 넘으면서 사슴은 더는 주민들의 ‘볼거리’가 아니었다. 애써 가꾸어놓은 고구마 등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골칫거리’로 뒤바뀌었다. 이에 주민들이 다시 그들을 생포해 농장에 가둬 키우기로 결정하기에 이를 정도란다.

소록도에 관한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 속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목표를 가진 지도자와 늘 먼먼 곳에 켜 있는 등대불처럼 깜박거리는 민초들의 희망 사이에 무엇이 있어야 갈등을 줄여 서로 웃는 얼굴로 일할 수 있을까. 당신들의 천국을 위한 고통일지라도 그런 시련 속에서 소록도는 이처럼 먼 남해바다에 하나의 보석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을까. 만일 함께 소통해 가면서 행복한 미래를 가꾸어 왔었다면 지금의 소록도는 어떤 모습일까. 절망 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을 꿈꾸는 이들은 한번쯤 이곳에 들러볼 일이다. 단체 속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남는지 알고자 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록도 [小鹿島] - 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의 아름다운 섬 (한국의 섬 - 강진군·고흥군·보성군·장흥군, 2021. 04. 30., 이재언)]

 

17:00~18:2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국립소록도병원주차장을 출발하여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2길 1 번지에 있는 진송관광호텔로 이동 [1시간 20분, 103.3km]

18:20~18:20    객실로 입실하여 짐 정리   

18:20~19:20    저녁식사

19:20~21:30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 후 휴식

21:30~         취침

 

2026년02월16일(월요일) 여행일정 

06:30~07:30    객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7:30~08:30    아침식사

08:30~09: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산 67-9 번지에 있는 장흥 정남진전망대 공영주차장A로 이동

[30분, 24.7km]

09:00~10:00    높이 45.9m의 타워에 오르면 득량만 일대의 고흥 소록도,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는 장흥 정남진전망대(장흥 126타워) 탐방 [입장요금 : 성인 2,000원]

[장흥 정남진전망대(장흥 126타워)

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정남진해안로 242-58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는 장흥에 있다. 득량만 일대의 고흥 소록도,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밤에는 다채로운 조명으로 빛나는 황홀한 야경을, 아침에는 섬 사이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탑의 높이는 45.9m로, 상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중층은 황포돛대를, 하층은 파도를 형상화했다. 전망대 외에도 북카페, 문학영화관, 추억여행관, 축제관, 이야기관 등 다양한 전시와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입장료

[개인]

- 어른 2,000원

-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 어른 1,500원

-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 어린이 500원

※ 무료 - 군민]

[장흥126타워 - 득량만의 풍경을 한눈에 담는 전망대

장흥군 관산읍에 위치하며,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높이 45.9m의 타워에 오르면 득량만 일대의 고흥 소록도,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낮에는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풍경을, 밤에는 다채로운 조명으로 빛나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외에도 북카페, 문학영화관 등 다양한 전시와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출처 : 중앙이코노미뉴스(https://www.joongangenews.com)]

10:00~10:2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산 225 번지에 있는 장흥 소등섬으로 이동 [22분, 14.1km]

[장흥 소등섬 2월16일 오후 간조시각 : 16시10분]

10:22~11:20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촬영지였던 장흥 소등섬을 탐방

[장흥 소등섬

위치 :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산225

소등섬은 남포마을 앞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이다. 먼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가족들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 하여 소등섬이라 불린다고 한다. 소등섬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출 명소이며 득량만의 일출, 일몰과 같이 어우러졌을 때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소등섬을 중심으로 장수와 부를 상징하는 구돈산(거북, 돼지) 도투곶이와 우리나라 육지의 남쪽 끝이라 하여 1996년 정남진 표지석이 세워졌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섬 맞은편에 등불, 희망, 소원을 상징하는 천지인 조형물과 당 할머니 상과 제단을 건립하였다. 소등섬은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비로운 섬으로 하루 두세 차례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빠지고 섬으로 이어진 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가로질러 나타난 길로 소등섬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천천히 5분 정도 걸으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때 시간은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등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11:20~11:43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우암길 24 번지에 있는 보성 율포해수욕장으로 이동 [23분, 15.1km]

[율포해수욕장

소재지 : 전남 보성군 회천면 우암길 24 번지

율포해수욕장(솔밭해변)은 폭 60m, 길이 1.2km에 이르는 고운 은빛 모래밭과 해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변이다.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해변 뒤쪽으로는 100년생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청정해역인 득량만 바다를 끼고 있어서 깨끗한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 대한다원 등 유명한 관광지가 있어 이와 연계하여 해수욕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많아졌다. 또한,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전국 유일의 해수녹차탕과 약 3,000평 규모의 인공 해수풀장인 율포해수풀장이 있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격이다. 그래서 사철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낭만과 감성 흐르는 ‘율포솔밭해수욕장’ & ‘율포해수녹차센터’ 

율포솔밭해수욕장

보성 인증샷 핫플레이스를 꼽자면 ‘율포솔밭해변’이다. ‘율포솔밭해변’은 잔잔한 푸른 바다와 폭 60m, 길이 1.2km의 은빛 고운 모래밭에 100년생의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선물한다.

특히 율포솔밭해변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예쁜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손하트, 액자포토존, 달 벤치, 입 맞추는 짱뚱어 두 마리, 배 등 다양한 포토존과 조형물들이 많아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인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 ‘손 하트’ 조형물이 핫하다. 손 하트에 앉아 찰칵, 연인이 하트 안에 쏙 들어가 서로 마주 보고 각양각색 포즈를 취하고 찰칵. 막 찍어도 화보 같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여기에 해질녘 붉은 노을이 깔리면 감성 인증샷을 제대로 남길 수 있다.  

율포솔밭해변은 일출·일몰 풍경도 아름다워 새해 일출·일몰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또 율포오토캠핑장도 있어 캠핑 낭만에 빠져볼 수도 있다. 

율포해수녹차센터

율포솔밭해변 바로 옆에는 율포해수녹차센터가 있다. 면적 4,424㎡ 규모의 율포해수녹차센터는 지하 120m 바다에서 끌어올린 해수와 보성 차잎을 우려낸 녹수를 이용한 녹차해수탕이 있어 지친 심신 달래며 피로를 풀기 좋다.

1층 특산품판매장, 카페, 2층 목욕탕, 3층 노천탕과 체험방(찜질방)으로 구성돼 있다. 야외에서 노천욕 즐기며 남해안 정취, 일출·일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출처 : 투어코리아(https://www.tournews21.com)]

11:43~12:00    율포솔밭해수욕장 탐방

12:00~13:00   점심식사

13:00~13:24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보성군 득량면 역전길 28 번지에 있는 보성 득량역으로 이동 [24분, 20.5km]

13:24~14:20   득량역 추억의 거리 탐방

[득량역 추억의 거리

70~80년대 읍내의 모습을 재현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열차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1930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경전선은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 사이를 잇는 대한민국 남해안 횡단열차다. 개통 당시에는 화물 등을 옮겼으나 인구감소, 산업의 발달로 점점 역할이 약해져 지금은 여객 수송과 득량~보성역 퇴행 열차 입환을 하고 있다. 입환은 차량의 분리, 결합, 선로 교체 등의 작업을 뜻한다.

현재 득량역은 폐역이 되었지만 레트로한 물품 전시와 함께 철도 역무원 유니폼 착용 체험 포토존을 설치하였고, 반세기 넘게 영업 중인 이발소, 1977년 문을 연 행운다방, 오래된 방앗간 그리고 득량초등학교와 만화방, 오락실 등 7080시절의 거리를 조성하여 기성세대와 젊은 층,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해준다.]

14:20~14:48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장흥군 장흥읍 우드랜드길 180 번지에 있는 정남진편백숲우드랜드로 이동 [28분, 33.0km]

[숲길을 걷고, 나무를 만지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 장흥 편백숲 우드랜드 [두시기행문]

서울신문 기사 입력 2025.12.30. 10:10, 수정 2025.12.30. 10:10

정남진 장흥은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이 어우러진 남도의 대표적인 생태고을로 꼽힌다. 이 가운데서도 초록의 향기와 상쾌한 바람으로 여행객의 발길을 붙드는 곳이 바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다. 장흥읍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억불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40~60년 이상 자란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상의 피로감을 없애주는 곳이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약 120ha 규모의 광활한 편백 숲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림휴양·체험 공간이다.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한 편백나무 숲 속에는 친환경 자재로 지은 생태건축체험장과 목재문화체험관, 전통한옥 형태의 펜션 단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순히 숲을 걷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목재와 숲이 지닌 가치를 보고 배우며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드랜드의 대표 볼거리는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무장애 데크로드 말레길이다. 억불산 정상과 이어지는 이 길은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부담 없이 숲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치유의 숲, 난대자생식물원,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숲 풍경이 이어져 산책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을 선사한다. 전남목공예센터에서는 지역 목공예 작품과 전통 목재 문화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 역시 다양하다. 목재문화체험관에서는 나무의 특성과 활용을 배우는 교육과 간단한 목공 체험이 가능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이와 함께 우드랜드를 대표하는 시설로 편백소금집 찜질방이 있다.

천일염과 편백으로만 조성된 이 온열 치유 공간은 숲속 휴식의 마무리 코스로 제격이다. 특히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편백효소톱밥찜질은 15분간 따뜻한 톱밥 속에서 땀을 낸 뒤 스크럽과 세정을 하는 방식으로,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체험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찜질방 이용객은 무료 셔틀을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우드랜드 인근에는 숙박과 먹거리도 잘 갖춰져 있다. 숲 안에 자리한 전통한옥형 펜션과 생태 숙소는 자연 속 하룻밤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며 장흥읍과 관산읍 일대에는 다양한 숙소가 분포해 선택의 폭이 넓다. 먹거리는 장흥을 대표하는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곁들인 ‘장흥 삼합’이 단연 으뜸이다. 이 밖에도 겨울철 별미인 매생이국과 해산물 요리, 남도식 백반까지 여행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글.사진 김희중 칼럼니스트]

14:48~16:00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 탐방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정남진 장흥은 산과 바다와 강이 있는 아름다운 생태고을이다. 그중에서도 초록의 상쾌한 바람과 아름드리 40년생 편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장흥읍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억불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우드랜드는 목재문화체험관, 전통한옥 등 아름다운 펜션 단지 생태건축체험장과 전남목공예센터 그리고 치유의 숲과 편백소금집(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입 장 료

[우드랜드]

- 어른 개인(만 19~64세 이하) : 3,000원

- 청소년 개인(만 13~18세) : 2,000원

- 어린이 개인(만 12세) : 1,000원

- 어른 단체(20인 이상) : 2,000원

- 청소년 단체(20인 이상) : 1,500원

- 어린이 단체(20인 이상) : 500원

- 유아(만 6세 이하), 경로(만65세 이상), 군민 : 면제 ]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편백소금집 이용요금

구분     개인   단체

어른     8천원  6천원

청소년   6천원  5천원

어린이   5천원  4천원

군민     5천원  4천원

유아     2천원

편백효소톱밥찜질 : 2만원(비할인)]

 

16:00~16:11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1길 53 번지에 있는 정남진장흥토요시장으로 이동 [11분, 4.2km]

16:11~17:20    장흥삼합으로 저녁식사

[장흥삼합

장흥 삼합으로 불리는 한우·키조개·표고버섯 요리는 장흥을 대표하는 별미이다.]

17:20~17:30    숙소로 이동

17:30~21:30    숙소 객실에서 샤워 후 휴식

21:30~         취침

 

2026년02월17일(화요일) 여행일정 

07:00~08:00   객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8:00~09:00   아침식사

09:00~09: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도암면 월곶로 473 번지에 있는 가우도 망호출렁다리 주차장으로 이동 [35분, 33.4km]

09:35~10:40    가우도 탐방

[출렁다리 넘어 섬으로, 강진 가우도

전남 강진군 수정일 : 2020. 5. 20.

산 넘어 남쪽, 봄기운을 가득 품은 섬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2.5km 남짓한 산책로가 펼쳐져 있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뇌리에 담긴다. 마을 식당에서는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요리하는 손길이 바쁘다. 섬으로는 보기 드물게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까지 모두 갖췄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곳, 가우도 얘기다.

강진은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다. 해남과 장흥을 양쪽에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지만 유명하다 할 만한 것은 쌀, 딸기, 파프리카 등 바다와 별 상관없는 것들이다. 첫 손에 꼽는 음식도 해산물이 아닌 한정식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나 왕족들이 강진에 유배 갈 때 수라간 궁녀들이 따라가 궁중요리를 전파했다는 설이 있다. 군의 형상도 그렇다. 남쪽의 강진만이 군의 핵심부까지 깊게 들어와 대구면과 도암면을 갈라놓았다. 지도로 보면 그 모습이 바지나 말굽을 연상케 한다.

최근에는 가우도라는 작은 섬이 강진의 특별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섬의 위치는 예컨대 강진이 바지라면 무릎 사이 즈음이다. 소머리와 생김새가 흡사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구수 14호, 인구수 33명의 작은 섬이지만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4~5년 전 섬 양쪽에 출렁다리가 놓인 뒤로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의 핵심 관광자원으로 급부상해 해마다 수십만 명의 발길을 붙잡는 중이다. 출렁다리라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면 위험할까봐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튼튼한 나무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를 도보로 횡단하는 일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지역이라지만 군데군데 걸린 구명튜브와 스릴을 노리고 만들어 놓은 유리바닥 구간을 보면 더 그렇다. 다리는 대구면 쪽으로 연결된 저두 출렁다리(438m, 도보 10분 소요)와 도암면 쪽으로 연결된 망호 출렁다리(716m, 도보 15분 소요)가 있다. 걸어서 입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우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자동차는 드나들 수 없지만 섬 주민들이 외부에서 생필품 등을 사 나르기 위해 이용하는 사륜 전동 카트는 통행이 허락된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은 저두 출렁다리로 입도한다고 가정했을 때, 왼쪽으로 나무 데크길이 보인다. 이 데크길은 가우도의 서쪽 해변을 따라 0.77km 가량 이어져 있다. 해변의 생김새에 따라 들쭉날쭉 깔린 길이지만 남해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데크에 설치된 조명은 일몰 후 섬이 어둠에 잠길 때 등대 역할을 한다. 데크길이 끝나는 곳엔 망호 출렁다리가 있다. 출발지였던 저두 출렁다리 왼쪽 데크길이 트래킹 코스라면 망호 출렁다리 인근에는 마을식당이나 낚시터, 매점, 펜션 등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른 봄을 즐기러 온 향춘객들은 이곳에서 가져온 물을 나누어 마시며 다음 코스를 생각한다. 선택은 두 가지. 해변길을 따라 나머지 1.66km를 걷느냐, 마을이 있는 샛길로 빠져 섬 중앙부로 들어가느냐다. 해변길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나무 데크길이 아닌 콘크리트 도로와 흙길로 이루어져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선택하기 나름이겠지만 지금까지 해변을 따라 걸어왔으니 마을로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14호 뿐인 작은 마을이라 방심하는 순간 지나쳐버릴 수 있다. 새마을 깃발을 휘날리는 빨간 벽돌집이 마을회관인데, 이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과거에는 분교까지 들어선 북적이는 마을이었단다. 이렇게 마을을 통과해 저두 출렁다리로 가는 길은 해변길로 돌아가는 길보다 약 700m 짧다. 만약 샛길로 빠지지 않고 해변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돈다면 1시간~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코스의 이름이 바로 함께해(海)길이다. 섬을 한 바퀴 휘감는 생태탐방로 함께해길이 어르신들의 인기 코스라면 젊은이들은 청자타워 짚트랙을 찾는다. 청자타워는 가우도 산 정상에 위치한 청자모양 타워다. 함께해길과 연결된 등산로를 통해 10~15분 내외로 찾아갈 수 있다.

이곳의 짚트랙은 약 1km 길이로 해상체험시설로는 전국에서 가장 길다. 라인이 3개라 연인, 가족 단위 손님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타워 1층에서 안전장비를 갖춘 뒤 6층 정상에 올라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직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청자타워 높이만 해도 25m에 이른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발밑에 펼쳐진 까마득한 풍경 속으로 어떻게 뛰어들어야 할지 막막하지만 몸은 이미 와이어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안전펜스가 젖혀진 후 발판이 천천히 내려앉는 구조라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체험자들이 동시에 활강을 시작한다. 체험 시간은 1분 남짓. 손발이 저릿했던 공포는 어느새 성취감으로 바뀌어 마음을 흥분하게 만든다. 짜릿한 활강이 끝나면 저두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아예 섬 밖으로 나간 셈이 되므로 가우도에 더 이상 볼일이 남지 않은 때에 색다른 탈출 방법으로 이용하면 좋다.

가우도

-짚트랙 운영시간 : 09:00 ~ 18:00 / 개인 25,000원

-복합낚시공원 이용시간 : 일출 후~일몰 전/ 1일 사용료 성인 15,000원 (5월~11월까지만 운영)

-가우도 편의시설 : 화장실, 마을식당, 펜션, 포차, 매점

-저두, 망호 출렁다리 시작점에 있는 주차장 무료 이용 가능.

주변 음식점

-예향 : 한정식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186-61 / 061-433-5777

-설성식당 : 돼지불고기백반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92 / 061-433-1282

제공 : 한국관광공사

※ 위 정보는 2020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10:40~11:2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317-3 번지에 있는 병영돼지불고기거리로 이동 [42분, 37.8km]

11:22~12:20    점심식사

[불 맛이 최고인 '강진 병영돼지 불고기 거리'

전남 강진군 병영면 남삼인길

금나래 기자 pine9969@hanmail.net

우리문화신문 기사 등록 2023.10.06. 11:03:56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병영돼지불고기거리는 강진에서 이름난 맛 골목이다. 조선 시대에 새로 부임한 병마절도사가 집안 어른인 강진현감을 극진히 대접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전라병영성과 병영5일시장 일원에 식당이 여럿 있다.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올리고 연탄불에 구워 불 향을 입히며, 재료나 양념이 조금씩 달라도 매콤한 맛과 한정식처럼 푸짐한 상차림은 같다.

10월 28일까지 병영5일시장 일원에서 ‘불금불파’가 이어진다. ‘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의 줄임말로, 매주 금·토요일 야외 돼지불고기 파티가 열린다. 지역 가수와 EDM DJ, 사의재(다산 정양용이 강진에 유배돼 처음 묵은 곳) 마당극을 옮겨 온 〈장사의 신〉등이 흥을 돋운다. 여유롭게 식사에 집중하고픈 이는 인근 식당이 편하고, 동네잔치처럼 어울리고픈 이는 불금불파가 낫다. 불금불파는 인근 식당보다 반찬 수는 적지만 1인당 9000원으로 저렴하고, 광주에서 병영5일시장까지 금·토요일 각 2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강진 전라병영성(사적)은 성곽을 따라 거닐기 좋다. 사의재에서는 재현극 ‘조만간(조선을 만나는 시간)프로젝트’가 신명을 더한다. 갈대가 절정인 강진만생태공원도 가을에 꼭 들러볼 만하다.

문의: 강진군청 관광진흥팀 061-430-3313]

12:20~12:47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09-1 번지에 있는 설록다원강진으로 이동 [27분, 21.5km]

12:47~13:40    설록다원강진 탐방

[설록다원강진

녹차 하면 하동, 보성, 제주가 먼저 떠오르지만 강진에도 유명한 다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설록다원이다.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월출산의 뾰족한 암봉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 풍경은 무심한 발걸음을 자동으로 멈춰 세울 만큼 아름답다. 주변에 찻집이나 녹차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지만, 입장료 없이 호젓하게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진이 녹차 명소가 된 데에는 월출산이 큰 몫을 한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월출산이 큰 일교차와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 품질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강진 유배 시절 차 맛에 반한 다산(茶山) 정약용이 서울에 복귀한 이후에도 강진 차를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만큼 그 역사도 깊다.

국내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가 탄생한 곳도 강진이다. 어린 시절부터 차를 만들던 이한영(1868~1956)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현실에 대응하고자 고유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의미가 담겼다.

설록다원 인근에 위치한 백운차실은 이한영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 공간 겸 차실이다. ‘한상차림’ 예약 시 월출산이 보이는 온돌방에서 백운옥판차와 양갱, 한과, 떡 등 곁들이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백운옥판차는 찻잎 크기와 제다 방법에 따라 네 등급으로 나뉘는데, 계절이나 생산 현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 오늘의 차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발효차인 떡차다. 묵직한 향과 은은한 단맛이 곁들이 음식으로 제공되는 수제양갱과 특히 잘 어울린다. 차의 상큼한 끝맛을 느끼며 월출산을 바라보면 온 몸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듯하다.

백운차실 (이한영 차 문화원)

-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 (강진 달빛한옥마을과 700m 떨어진 곳)

- 문의 : 0507-1345-4995

- 홈페이지 : https://www.1st-tea.kr/

- 운영시간 : 10:00~18:30

- 예약 : 떡차 이야기(제다체험), 백운옥판차 이야기(다도체험), 한상차림(월출산이 보이는 차실에서 다과 체험)]

13:40~13:48    걸어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번지에 있는 백운동원림으로 이동 [0.4km]

13:48~14:30    백운동 원림 탐방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보이는 이곳에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 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었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은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으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강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진] 월출산을 품은 백운동원림의 사람들

서울풍수 김규순 2021. 8. 2. 12:28

공간은 시간을 품는다.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에 따라 주인공들이 바뀌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강진 금당리에 살던 이담로가 월출산 옥판봉 아래에 전통 정원을 갖춘 별장을 지었으니, 그의 호를 따서 백운동원림이라 한다. 그로부터 조선 후기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강진 백운동 원림(대한민국 명승115호)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원림이다. 산과 계곡 그리고 울창한 숲 속에 집을 짓고 화단에 꽃을 심고 마당에 계곡수가 흐르게 하여 인공적 공간이 자연과 만드는 조화의 극치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전통 원림이다.

조선후기 남도의 핵심문화공간

월출산 옥판봉에서 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져가다가 지기가 머무는 곳에 백운동원림이 있다. 백운동별서는 계곡과 바위, 숲이 우거진 외원과 사람이 생활하는 담장 안의 내원으로 구성되는데, 자연과 인공이 서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자기안(自己案)을 갖춘 사신사를 구비하여 풍수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이다. 영성이 뛰어난 도인은 풍수를 배우지 않아도 지형을 보면 명당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백운동 별서에서 주인의 풍수경지를 헤아려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별서의 주산이 기암괴석과 암릉으로 이어져 도가의 신선이 선호하는 산이다. 따라서 백운동별서는 공동체 생활이 아닌 신선이 노니는 공간이다. 도가의 입산(入山)은 형식적인 면은 다르지만 불교에서 출가(出家)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선 사대부가 절에서 수행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백운동이란 공간에 도학적 연구와 도가적 수행을 조화시킨 선비가 백운동별서 주인이다.

이곳을 만든 첫 주인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의 본향은 원주이다. 이담로(李聃老)는 노자(老子)의 호가 담(聃)인데 이름에서 도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의 6대조 이영화(1430-1517)는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멸문지화를 피해 배를 타고 처가가 있는 해남의 마포로 숨어들었다. 그의 후손들은 높은 벼슬은 지양하되 학문의 끈은 놓지 않는 초야의 도학자를 지향했다. 강진 입향조는 무장현감을 지낸 이영화의 손자 이남(1505-1555)이다.

이담로의 백운동별서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선경(仙景)으로 유명해져 조선 후기 남도의 핵심적인 문화공간이 되었다. 백운동은 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낸 신명규, 3대 정승집안의 김창집과 김창흡 형제 등 정승 판서를 배출한 한양 권세가 사람들을 맞이했고, 송익휘, 정승 김재찬, 정승 이경억의 손자 이하곤 등도 방문하여 남긴 시가 전한다. 김재찬과 이하곤 외에는 주로 유배객으로 온 방문객이었다. 그들의 안목이 백운동주와 견줄만했다는 뜻이다.

사의재(四宜齋)

강진읍성 바깥에 있는 주막집.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도착하자 주모가 숙식을 제공한 곳으로 다산은 이곳에서 4년을 지내면서, 당호를 사의재라고 불렀다. 사의란 생각과 용모와 말과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하라는 경구이다.

다산초당

정약용은 주막(四宜齋)과 보은산방, 이학래의 집 등에 거처하다가, 외가인 해남윤씨의 도움으로 다산초당을 지어 안착했다. 그는 다산초당에서 18제자를 양성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저술했다.

다신계(茶信契)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와 다산초당에서 제자를 길렀는데, 이 때 제자들과 차의 재배와 생산을 위한 다신계를 만들었다. 다신계를 통하여 사제지간이 더욱 돈독해졌다.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남양주에 기거하면서도 이시헌에게 떡차[茶餠]를 보내달라고 하며 떡차를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적어서 보냈다(1830년). 편지의 내용을 보면 스승과 제자이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 이시헌은 매년 곡우에 차잎을 따서 만든 떡차를 다산에게 보냈다.

이것은 우리 전통차의 복원이었다. 떡차를 만든 사람은 이시헌이지만, 떡차를 만드는 방법은 다산이 자세히 알려주었다. 다산이 사는 남양주는 차나무가 살수 없는 지역이었으니 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의 제다법은 만불사의 만불차, 보림사의 죽전차로 전승되었고, 중국의 보이차와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월남사지와 이한영 생가

월남사지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현재 폐사지이며, 삼층석탑(보물298호)과 진각국사탑(보물313호)이 있다. 이한영 생가의 원래 자리는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주위이다. 이한영을 위시한 3형제가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빙둘러 집을 짓고 살았다. 삼층석탑이 마당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월남사지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므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생가를 이전 복원하였다. 옛날 이한영 생가에는 추사의 글과 초의선사의 그림, 소치의 그림도 벽에 붙어 있었으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달라고 졸라대니 집안에 흔한 것이 글과 그림이라 그것이 보물급인지 알지 못한 조모께서 하나씩 떼어 주었다고 한다.

백운옥판차 - 200년 가업의 상표등록상표

백운옥판차는 1920년에 이한영이 만든 우리차 최초의 등록상표이다. 이한영이 일본의 차문화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잠식하자 우리차의 브랜드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도안하였다. 월출산 옥판봉 아래 백운동에서 자란 차란 의미의 <백운옥판차>상표 옆에 꽃문양을 넣고 화제로 ‘백운일지 강남춘신(白雲一枝江南春信)’이라 적었다. 이한영이 독립자금을 모으던 사천 도솔사 효당스님과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볼 때 ‘춘신(春信)’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의 봄과 상통한다고 추론할 수 있으니 그의 저항정신을 엿보게 한다. 또한 백양사 방장 수산스님께서 이한영과 며느리에게 백운옥판차의 제다법을 배워 선종차로 맥을 잇게 하였으니, 백운옥판차는 유형무형의 문화재인 셈이다.

이한영의 현손 이현정 박사

다부(茶父) 이한영의 현손 이현정 박사가 월출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원주이씨 문중소유의 야생차밭에서 차를 따서 <백운옥판차>와 <월산차>를 만들어 200년 가업을 잇고 있으며, 생가 옆에서 이한영茶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 중 조상의 게시(?)로 월출산 떡차로 박사학위를 따고 가업을 이었다. 백운옥판차 홈페이지  www.1st-tea.kr

이시헌(1803-1860)은 이담로의 6세손으로 9살 때 다산초당에 입문하였으니 다산 정약용의 막내제자였다. 스승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이시헌에게 다성(茶聖)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김유 등 명사들과 이어주었다. 이시헌은 다산이 죽은 후에도 다산가(茶山家)에 매년 떡차를 보냈고 이일은 이시헌의 증손 이한영(1868-1956)때까지 지속되었다. 다산은 백운동의 정경에 매료되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여 백운동을 노래한 시와 엮어 <백운첩>을 만들었다. 백운동원림은 다산의 <백운첩>에 의거하여 복원하였으니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200년동안 지속되었다.

월출산 무위사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이다. 건립시기가 1430년(세종12년)으로 조선시대 불교건축물로 가장 오래되었다.

월출산 정기를 피어나게 한 원효

강진에 천년고찰 무위사와 백련사가 있다. 무위사는 원효가 창건하였다. 신라의 원효가 백제지역에 절을 창건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효와 의상은 인도를 순례한 이름난 고승이었던 현장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에, 원효가 밤에 목이 말라 마신 물리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아침에 알게 되었을 때 ‘일체유심조’의 깨우침을 얻어 당나라 유학을 중단한다. 삼국전쟁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당전쟁이 진행되어 온 백성이 상흔으로 피폐해진 시기에 의상은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였고, 원효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부처님의 손길로 백제와 고구려의 망국민들을 위로하였다. 혹자는 화엄경에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을 10등급로 나누는데. 원효는 8등급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그의 수행경지는 매우 높았다.

여수 향일암의 원효대, 무등산의 원효봉과 원효사, 변산의 원효굴, 대둔산 태조사, 삼각산의 원효봉과 원효사, 소요산 자재암, 남양주 묘적사, 삼성산 삼막사, 예산 가야산의 원효봉과 원효암, 곡성 도림사 등등 신라영역 밖에 산재한 원효사명과 원효지명에서 그의 활동영역은 전국적이다. 원효가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 첨예한 지역인 변산과 예산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강진의 월출산에서도 백제인의 저항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가 창건한 사찰과 그의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백제망국민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덕산 백련사

무염이 창건한 천년고찰. 고려시대 8명의 국사를 배출한 고찰로 유명하다. 강진의 무위사, 백련사, 월남사, 수정사 등과 해남의 대흥사, 미황사 등과 장흥 보림사, 광양 옥룡사 등 천년고찰이 남도 해안지역에 즐비했던 것은 왜구의 침탈이 잦은 고장이라 이를 방어하기 위한 호국불교가 주된 이유이었겠지만, 차 생산지가 가까이 있어 차를 구하기 쉬웠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랑생가

강진은 ‘모란꽃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1903-1950, 김해김씨) 시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강진군청 우측 뒤에 영랑의 생가가 있어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영랑생가는 그 자체로 뛰어난 풍수지형이지만 안산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만약 실개천이 생가를 감싸고 동출서류 하였다면 최고의 명당이었을 것이다.]

 

14:30~19: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백운동 원림을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귀경 [4시간30분, 346.3km]

 

 

 

 

강진군 [설록다원강진&백운차실]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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