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03월01일(일요일) [영덕군&경주시] 여행일정
07:00~07:40 숙소 객실에서 기상하여 세면 후 짐정리
07:40~08:30 아침식사
08:30~09:00 휴식
09:00~09:4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울진 백암온천 관광특구 숙소를 출발하여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에 있는 축산항으로 이동 [42분, 41.8km]
[축산항
축산항은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산봉우리의 산세가 해안까지 밀려 내려와 만처럼 쌓인 아름다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1924년 3월 조성된 항구이다. 인근의 여러 항으로부터 고기잡이 배들이 들어와 고기의 집하, 입찰 등을 총괄하는 곳이다. 강구항과 더불어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이며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으로 대게 원조마을과 함께 최고의 영덕대게 서식지로 인근 축산항 어시장에서 대게를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해맞이공원을 출발하여 대탄항-석리마을입구-대게원조마을-블루로드다리-죽도산-축산항-남씨발상지로 이어지는 영덕블루로드 B코스 구간의 일부이며, 특히 축산항은 BTS의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탐방지 : 영덕군 [해파랑길 21코스]
탐방일 : 2026년03월01일(일요일)
날씨 : 날씨 [영덕군 축산면 최저기온 도C, 최고기온 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1시간18분 소요)
09:42~11:00 해파랑길 21코스의 [죽도산전망대~경정해수욕장] 구간을 탐방 [1시간 20분, 4.8km]
[해파랑길 21코스 영덕 구간 르포] 바다와 가장 가깝게 걷는 ‘15.5km 알짜배기 해안선 길’
월간산 기사 입력 2013.08.16. 14:53
초병들이 걷던 길 다듬어 걷기 길로 조성
해안절벽, 솔숲, 나무데크 이어져 지루할 틈 없는 명품 걷기 길
제법 뜨거워진 햇살에 절로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해파랑길을 취재하러 영덕으로 향하는 차 안, 노래 한 곡을 찾아 틀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호~” 신나는 노랫가락에 에어컨까지 틀어 놓으니 제법 여름 피서 가는 기분이 든다. 등산복 대신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어야 할 것만 같다.
영덕에 도착해 해맞이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해파랑길 21코스의 시작점. 강구터미널에서 시작해 고불봉을 넘어온 해파랑길 20코스가 거친 숨을 고르며 “이제 네 차례”라고 말한다. 20코스가 주로 산길을 걷는 코스였다면 21코스는 명실상부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길’이다.
해파랑길 21코스는 ‘영덕 블루로드’의 B코스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길로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 해안선 771km를 이은 길이고, 블루로드는 영덕군에서 만든 길로 영덕대게공원에서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64.6km의 길이다. 이처럼 불리는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해파랑길 19~22코스와 블루로드 A~D구간은 거의 99% 일치한다.
해맞이공원에는 창포말등대가 서 있는데, 대게의 고장 영덕답게 대게의 집게다리가 등대를 떡하니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블루로드 B코스의 경우, ‘푸른 대게의 길’이란 이름을 따로 두었다.
바다를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걷기 길
이날 해파랑길 21코스를 함께 걸은 영덕군 관광협회 김경동 사무국장이 공원 조성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준다.
“1997년에 이쪽에 엄청 큰 불이 났었어요. 동네 꼬마들이 산에서 노는데 뱀 한 마리가 땅으로 기어들어가더래요. 요 녀석들이 나무꼬챙이로 후벼 파도 뱀이 안 나오니까 거기다 불을 논 거지. 그게 사단이 난 거예요. 작은 불이 삽시간에 나무로 옮겨 붙은 거지. 우곡리에서 난 불이 산을 넘어서 해안절벽까지 시커멓게 다 그을려 놨으니 말 다했죠.”
산불이 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니 보지 않았어도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가관이다.
“근데 세월이 지났으니 말이지만, 그 꼬마 녀석들 지금이라도 상을 줘야 한다니까. 그때 산을 홀라당 다 태워 버린 덕분에 일부러 나무를 베어 낼 필요도, 길을 새로 낼 필요도 없어졌지. 그래서 저기 풍력발전소가 들어선 거 아니겠소. 저 발전소에 있는 24개 발전기가 영덕군 전체가 1년 동안 쓸 전기를 만들어 내니 효자도 저런 효자가 없다니까.”
풍력발전소뿐만이 아니다. 2000년에는 불에 탄 해안을 다듬어 공원을 만들었다. 그곳이 바로 이 해맞이공원이다. 당시 공원의 계단도 화재로 쓰러진 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기구한 사연이야 과거지사고 지금의 해맞이공원은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민 그림 같은 정원이다.
창포말등대 바로 앞에 나무계단을 따라가는 길이 있지만 이곳은 코스가 아니다. 대신 해맞이공원 입구 큰길가로 난 걷기 전용 나무데크 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해맞이공원 정자가 있는 곳에서 해안절벽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해안절벽으로 들어서자 절경이 펼쳐진다. 속이 다 비치는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절벽 위로 보드라운 흙길이 나 있다. 길옆으로 밧줄을 이어 놓은 모습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풍광이다. 이제부터 질리도록 바다를 마주하며 걸을 일만 남았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갯바위들은 제각기 오묘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진다. 길가로는 초록색 풀들 사이로 야생화들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좌우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초록과 푸름의 연속이다. 눈이 편하다.
해안 길은 잠시 아스팔트 도로로 일행을 보낸다. 대탄해변과 오보해변을 지나 노물리까지 포장도로를 걷기도 하고 작은 어촌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이곳에 바다만이 볼거리가 아니라는 듯 여기저기 빨래처럼 널어놓은 생선들이 짠 내를 풍기며 풍취를 더한다. 갯바위에 서서 낚시하던 강태공은 입질이 없자 이내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고기 대신 세월을 낚는다.
“코스 거리는 15km 정도지만 외지인들이 걷다 보면 하루가 모자라다고 해요. 바다 구경도 해야지, 절벽 구경도 해야지, 촌마을 구경도 해야지, 여기저기 먹을 게 널렸으니 식도락도 해야지. 거기에 낚싯대라도 하나 들고 와 봐요, 시간이 청산유수처럼 지나가지요.”
바닷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야 매일 마주치는 일상이지만 도시에서 온 이들에게는 생선 말리는 것, 그물 손질하는 것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재미난 구경거리다.
해안절벽을 걷는 “최고 알짜배기”
석리방파제에 이른다.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엔 이미 열댓 명의 해파랑길 걷기꾼이 자리 잡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포구에서 산 듯한 말린 생선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는 모습을 보니 절로 군침이 돈다.
“여 와서 한 사발 걸치고 가이소!”
정자에 앉아 있던 무리 중 한 사람이 우리 일행을 불러 세운다. 이들은 대구의 산악회 회원들인데 이 길이 그리 좋다고 해서 일부러 영덕까지 올라왔단다. 산악회 회장님은 “제주올레도 가보고 여기저기 좋다는 걷기 길은 다 걸어 봤어도 이만큼 좋은 데가 또 없다”며 주저 없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지금부터가 알짜배기 중에서도 최고 알짜배기예요.”
김 사무국장은 이제부터 걸을 곳이 블루로드에서 가장 백미라고 귀띔한다. 또한 해파랑길 중에서도 이만한 절경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철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기 전 블루로드 스탬프를 찍는 곳이 설치되어 있다. 블루로드 지도에 각 구간에 있는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블루로드 완주메달을 받을 수 있단다. 해파랑길이면 어떻고 블루로드면 어떠랴, 일단 수첩에 스탬프를 꾹 눌러 찍는다.
계단을 올라 모퉁이를 돌자 입이 딱 벌어진다. 아까는 절벽 위를 걸었는데, 이번엔 위에서 바라다보던 그 절벽을 바로 걷는다. 바다 쪽으로 밧줄을 이어 안전펜스를 만들어 놓았지만 파도가 치면 그 여파에 옷이 젖을 정도로 바다가 가깝다.
해안절벽의 바위를 걷는 맛이 제법 스릴 있다. 발밑에서 파도가 부서지며 갯내를 한껏 내뱉는다.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넓어지자 보이지 않던 낯선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안초소다. 동해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그 해안초소가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바닷가 쪽이야 해안초소가 있는 게 당연한데, 영덕은 강원도 쪽보다는 군사 경계가 좀 덜해서 2006년부터 해안에 철조망을 거둬내고 탐방로를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민간인들은 다니지 못했던 길을 이제는 걸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아직 완전한 건 아니어서 해가 지면 민간인들은 이 길을 걷지 못해요.”
‘분단국가’란 현실은 잊을 만하면 이렇게 갑자기 그 형체를 드러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낮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걷기 길이 해가 진 후에는 적막이 감도는 해안선으로 모습을 바꾸니 어쩔 수 없이 ‘이중생활’을 해야 하는 해안길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하다.
해안절벽을 따라 걸으면 경정3리-경정1리-경정2리가 뒤섞인 순으로 이어진다. 그중 경정2리(차유마을)는 ‘대게원조마을’로 불린다.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 부근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칠 때 예주(지금의 영해면)의 호족들이 참전해 준 것을 감사히 여기고 경주로 내려갈 때 이곳을 순시했다고 해요. 그때 수라상에 이 마을에서 나는 대게를 올렸답니다. 이런 스토리를 발굴해서 이 마을을 ‘대게원조마을’로 정한 거예요.”
영덕대게의 발상지답게 매년 이 마을에선 영덕대게축제가 열린다. 보기엔 여느 어촌마을과 다름없듯 하지만 2008년에는 아름다운 어촌체험마을, 2011년에는 최우수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된 어촌마을계의 ‘스타’라고 한다.
동해안이 꽁꽁 숨겨 놓았던 길
경정2리에서 축산항까지의 4km 구간은 해안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오가는 길이라고 해서 일명 ‘초병의 길’로 불린다. 그러고 보면 21코스의 대부분은 민간인들이 다니지 못한, 군인들만 알던 꽁꽁 숨겨 두었던 길로 이어진 셈이다. 아직도 완전하진 않지만 그 진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죽도산 입구 해변까지는 이제까지 걸었던 해안절벽 길과는 달리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걷는다. 바위를 걷느라 잔뜩 뿔이 난 무릎이 푹신한 흙길을 만나자 조금 편안해진다. 뜨거웠던 머리도 소나무 그늘의 배려로 조금씩 식는다.
숲에서 빠져나와 현수교인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면 죽도산이다. 대나무가 많아 죽도산(竹島山)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꼭 들러 봐야 할 곳은 죽도산전망대. 360도 사방으로 관측이 가능한 전망대에 오르면 축산항과 드넓은 동해 바다의 풍광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다.
21코스의 종점은 영양 남씨 발상지지만 축산항 시내를 걷는 길이라 생략해도 좋다. 하지만 축산항 농협 앞에 블루로드 스탬프 찍는 곳이 있으니 전망대에서 내려와 스탬프 하나를 추가해도 좋겠다.]
[죽도산 전망대
죽도는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죽도라 하며, 1935년에 해발 80m 정상에 처음 등대가 세워졌다. 그 당시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서 축산으로 들어오는 어선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포항 장기와 울진 중간에서 북극성처럼 빛났다고 한다. 2011년 5월 동해안 푸른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죽도산전망대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망대에서는 축산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덕의 모습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다. 한쪽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경정2리 대게원조마을 – 차유어촌체험마을(車踰漁村體驗마을)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에 있는 체험 마을.
차유어촌체험마을은 영덕의 대게원조마을에 조성된 체험마을로 어촌생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명칭 유래
차유어촌체험마을은 축산면 경정2리에 자리하고 있다. 경정리는 흰빛 모래밭이 길고 넓게 펼쳐져 있어 ‘백불[白沙]’이라고 불리다가 ‘뱃불’로 변한 것으로 이후 ‘경정(景汀)’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 ‘차유진경정육리’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체험마을이 자리한 경정2리는 전설에 의하면 고려 충목왕 2년(1346) 예주부사 정방필이 임지를 순시할 때 소수레[牛車]를 타고 마미산(馬尾山)을 넘어 이 마을에 와서 대게를 비롯한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수레 ‘차(車)’와 넘을 ‘유(踰)’ 자를 따서 ‘차유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당시 영해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오매동과 차유동의 일부와 경정동을 합하여 영덕군 축산면에 편입하였다. 1945년 자연부락별로 뱃불은 경정1구, 차유를 경정2구, 지경과 오매를 경정3구로 하였다. 이후 차유는 1950년 경정2동, 1988년 경정2리로 개칭되었다. 한편 이 마을은 오래전부터 대게의 원조마을이라고 전해지고 있어 영덕대게축제의 현장이 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국토해양부에서 시행하는 2003년 어촌체험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되었다.
자연환경
동해와 연접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일출 명소로 유명하며 해안선이 길다. 미역·전복 양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편, 차유마을과 경정마을 사이의 해안가에는 경상북도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에 포함된 경정리 백악기 퇴적암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차유어촌체험마을에는 통발체험장, 맨손잡이체험장, 따개비체험장, 풍등체험장, 산림욕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가능한 구역을 설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2003년에 조성된 체험마을에 다양한 어촌관광 기반시설들이 들어서 있어 도시와 어촌의 교류 확대와 여가공간 제공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덕 경정해수욕장
위치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영덕대게로 1726
영덕 경정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며 파도가 잔잔한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을 지닌 해수욕장으로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맑은 물 덕분에 소라, 물고기 등을 볼 수 있는 스노쿨링도 즐길 수 있으며 모래찜질과 모래놀이하기에도 좋다. 7번 국도인 해안도로와 인접해 있어 동해안의 유명한 관광지는 거의 다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며 경치 좋은 트레킹 코스 영덕 블루로드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11:00~12:13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경북 영덕군 축산면 영덕대게로 1749 번지에 있는 경정해수욕장을 출발하여 경북 경주시 황남동 31-1 번지에 있는 경주 대릉원으로 이동 [1시간 13분, 90.1km]
[경주 대릉원은 경주시 노동동과 황남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말하며 노동동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황남동 고분군, 황오동 고분군, 인왕동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동 고분군은 고신라 시대 무덤들로, 봉황대, 식리총, 금령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밑둘레 230m, 직경 82m, 높이 2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으로 덧널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노서리 고분군은 넓은 평지에 크고 작은 고분 14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규모가 있고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해 1921년에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26년에 일본 방문 길에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들러 발굴을 조사 참관한 서봉총이 있다. 194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됐으며 신라 고분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과 은평총, 쌍상총, 마총 등도 있다. 쌍상총에서 토기 조각, 마총에서 말뼈와 안장 조각이 출토됐다. 황남동 고분군은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가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문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천마총은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발굴조사됐다.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 짓고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황오동 고분군은 크고 작은 신라시대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랜 세월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고분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10여 기에 이른다. 이 무덤들은 인접 지역에서 발굴된 무덤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주로 4~5세기경의 왕족 또는 귀족을 묻은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추정한다. 인왕동 고분군은 경주 중심부 평야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 중 가장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13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고 새로 10기의 고분이 더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분 중 일부를 발굴조사 했는데, 삼한과 삼국시대의 무덤 양식이 확인됐다. 이른 시기부터 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봉토가 남아 있는 삼국시대 고분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출토유물이나 유구의 크기 등으로 보아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20세기 소녀>
<20세기 소녀>에서 보라가 수학여행 자유시간을 보낸 곳으로 고분들이 밀집된 공원이다. 약 20여 기의 큰 고분들이 마치 능선을 그리는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고분 사이에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이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는 천마총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경주 역사유적지구
최근 수정 시각: 2025-09-25 17:45:41
목차
1. 개요
2. 목록
2.1. 남산지구(Mt. Namsan Belt)
2.2. 월성지구(Wolsong Belt)
2.3. 대릉원지구(Tumuli Park Belt)
2.4. 황룡사지구(Hwangnyongsa Belt)
2.5. 산성지구(Sansong (Fortress) Belt)
3. 세계유산 등재 기준
1. 개요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1000년 고도인 경상북도 경주의 유적 밀집 지구이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즈에서 개최된 제 24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총 5개의 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불교 미술의 보고이자 포석정이 있는 남산 지구, 신라의 궁궐터인 월성 지구, 신라의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릉원 지구, 신라 사찰의 정수인 황룡사 지구, 수도 방어 시설의 핵심인 산성 지구로 구분되며 총 52개의 문화유산을 포함하고 있다.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 2010년에 따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에 있지만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2. 목록
※ 순서와 영문 명칭은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을 참고했다.
2.1. 남산지구(Mt. Namsan Belt)
경주시 남쪽에 있는 남산과 그 주변 지구이다.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경주 나정부터 신라 멸망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주 포석정지 등이 있으며 또한 산을 따라 수많은 탑과 불상이 분포하고 있다.
경주 남산 일원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남간사지석정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선각육존불
경주남산입곡석불두
경주침식곡석불좌상
경주열암곡석불좌상
경주약수계곡마애입불상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
경주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
경주 배동 삼릉
경주 일성왕릉
경주 정강왕릉
경주 지마왕릉
경주 경애왕릉
경주 포석정지
경주 남산신성
경주 서출지
경주 나정
경주남산동석조감실
백운대마애불입상
보리사마애석불
2.2. 월성지구(Wolsong Belt)
신라의 왕궁이었던 경주 월성과 그 주변 지역이다. 신라 김씨 왕가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경주 계림,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 시설인 경주 첨성대 등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 외에도 인근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다.
경주 계림
경주 월성
경주 내물왕릉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첨성대
2.3. 대릉원지구(Tumuli Park Belt)
경주시 중심부에 있는 대릉원과 그 주변 지역이다. 신라의 왕과 귀족 같은 고위 계층들의 무덤들이 대규모로 위치하고 있으며 구획 구분에 따라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노동리고분군, 경주노서리고분군으로 나눌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경주 대릉원 일원
경주 미추왕릉
경주황남리고분군
천마총
황남대총
계림로 고분군
경주노동리고분군
봉황대
금령총
식리총
경주노서리고분군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경주 오릉
경주 동부 사적지대
경주 재매정
2.4. 황룡사지구(Hwangnyongsa Belt)
경주시 동쪽에 있는 경주 황룡사지와 그 주변 지역이다. 경주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분포하고 있다. 현재는 터만 남았거나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발굴을 통해 웅장했던 대형 사찰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약 40,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경주 황룡사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2.5. 산성지구(Sansong (Fortress) Belt)
경주시 동쪽 보문관광단지 인근에 소재하고 있는 경주 명활성 일대다. 왕경 방어 시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 명활성
3. 세계유산 등재 기준
기준 (ⅱ) :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건축 및 생활 문화와 관련된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해 있다.
기준 (ⅲ) : 신라 왕실의 역사는 1,000년에 이르며, 남산을 비롯해 수도 경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신라 문화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
탐방지 : 경주시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경주 황리단길&첨성대&동궁과 월지&국립경주박물관]
탐방일 : 2026년03월01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4시간47분 소요)
12:13~13:00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에 있는 [천마총&황남대총&미추왕릉]을 탐방
[대릉원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53
천마의 영혼을 담는 언덕
40㏊의 넓이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23기의 봉분들은 푸른 잔디로 뒤덮여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모습이 무덤이라기보다 마을 뒷동산을 찾는 포근함이 있다. 천 년 신라의 봉분은 그 모습만으로 또 하나의 작품이다. 황홀한 조명이 신비로움을 주는 야간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소나무 숲길과 어우러져 너른 터를 산책 삼아 거닐며 아침에 찾아보는 대릉원은 더욱 상쾌하다.
두 겹의 능선이 마치 낙타의 등처럼 보이는 가장 대규모인 황남대총과 《삼국사기》에 ‘대릉원’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미추왕릉의 모습도 둘러보기에 좋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백미는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는 천마총에 있다. 황남대총을 연구하기 위한 발굴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신라 고유의 봉분 축조방식인 적석목곽분의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의 금관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출(出)자형 금관과 더불어 허리장식과 금반지 등 황금 유물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마도는 말에 올라탈 때 종아리를 보호하는 가리개로 자작나무 껍질에 백마를 새겨 놓았는데 구름 위를 날아가는 상상 속 말의 모습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무르익은 완숙미를 보여주는 고대 미술의 백미이다.
입장요금
어른/개인 3,000원, 어른/단체 2,400원
어린이/개인 1,000원, 어린이/단체 800원
군인.청소년/ 개인 2,000원, 군인.청소년/ 단체 1,600원
황남빵, 경주의 달콤함을 맛보다
일명 경주빵으로도 불리는 황남빵. 3대에 걸쳐 60여 년 동안 오로지 황남빵만을 만들어온 곳이 대릉원 인근에 있다. 얇은 겉옷을 입힌 달콤한 팥소가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갓 구운 빵을 한입에 넣어보자.
문의 054-749-7000]
[대릉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261 등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고분군
면적 : 602,314㎡
지정연도 : 2011년 7월 28일
건축시기 : 신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지정번호 : 976, 등재연도 : 1995년)
목차
1. 개요
2. 역사
3. 고분군
3.1. 황남동 고분군
3.2. 계림로 고분군
3.3. 노동동 고분군
3.4. 노서동 고분군
3.5. 황오동 고분군
3.6. 인왕동 고분군
4. 입장료
5. 매체
6. 기타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황남동)에 위치한 옛 신라의 왕, 왕비, 왕족,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 밀집 지역. 2011년 7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약 150여 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미추 이사금을 대릉(大陵)에 장사 지냈다.'라는 글귀에서 따 와 대릉원(大陵苑)이라고 지었다. 대릉원이라고 하면 좁게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는 황남동 고분군 쪽을, 넓게는 바깥쪽의 금관총이나 봉황대와 같은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등을 포함한다. 일단 규모가 큼지막한 데다가 경주시 시가지에 있어 접근하기 좋고, 천마총처럼 신라 왕릉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고분도 있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거의 필수로 찾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 중 대릉원 지구가 있다. 단, 여기에는 오릉처럼 대릉원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주변 지역이 좀 더 포함되었다.
원래는 지금의 담장 둘러쳐진 구역의 대릉원은 황남리 고분군(40호)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에 문화재청에서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노서리 고분군(사적 39호), 황오리 고분군(사적 41호), 인왕리 고분군(사적 42호)을 통합하여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하였다.
넓은 의미의 대릉원 일원에서 현재까지 6개의 황금관이 발견(출토)되었다. 아직 미발굴 고분에서 금관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2. 역사
경주 분지 한가운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신라 당시에도 수도 서라벌 시가지 가운데에 있는 국가 묘역공원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추정한다. 대릉원과 바로 옆에 붙은 쪽샘지구에서 발굴 조사해 보니, 신라 당시의 도시 기반 시설과 건물 터가 대릉원 주변 지역에는 빼곡하게 차 있음에도 대릉원 일대에선 거의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시가지로 가득찬 대도시 가운데지만 대릉원부터는 건물을 못 짓게 개발제한구역으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 멸망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관리가 부족해지자 조선 시대~일제강점기에는 대릉원 무덤과 무덤 사이까지 사람들의 주거지가 생겼지만 현대에 들어 정비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대릉원의 무덤들은 문자로 표기된 기록이나 비석류가 일절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편년을 알기는 힘들다. 대릉원의 무덤들은 무덤의 주인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지석도 출토되지 않아서 무덤 주인의 이름이 밝혀진 무덤은 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된 금관총이 유일하다. 하지만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 때문에 도굴이 어려워서 많은 유물들이 별 손실 없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다. 이 유물들을 측정하여 대략 4-6세기에 걸쳐 조성했다고 추정한다. 6세기 이후에는 왕릉이나 기타 무덤들을 대릉원처럼 서라벌의 중심부가 아닌 산이나 도시 외곽 쪽에 만들었기 때문에, 대릉원은 아무리 늦어도 7세기 초반 이후로는 더 확장되지 않았던 듯하다.
황남대총 등의 왕릉에서 로만글라스, 사산글라스 등의 유리 유물이 발굴되었다. 링크, 기사. 그러한 로만글라스, 사산글라스들의 주요 생산지, 대량 출토지를 따지면 신라가 중동과 교역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3. 고분군
가장 좌측 위의 구역이 노동리, 노서리 고분군, 가장 가운데가 지금의 대릉원(황남리 고분군), 대릉원의 동쪽이 황오동 고분군과 쪽샘지구, 가장 아래 쪽의 구역이 인왕동 고분군이다. 노서리 130호가 서봉황대, 노동리 125호가 봉황대라고 불리는 왕릉이며, 가장 가운데의 황남동 98호가 바로 황남대총이다. 그 아래의 106호는 전 미추왕릉이고 지도 가장 아래의 119호가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내물왕의 무덤으로 거론되는 인왕동 119호이다.
대릉원 일원은 월성로 고분군(또는 구역)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미 다른 무덤들에 비해서 출토되는 부장품의 위계가 높아서 왕 내지는 왕족, 귀족들의 무덤군으로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월성로 구역 및 황오동 일대에서 비교적 먼저 대형 무덤들이 만들어지다가 5세기 중엽부터 봉분의 규모가 독보적이라 왕이 묻혔음이 명백한 황남대총 또는 인왕동 119호분, 전 미추왕릉이 축조되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5세기 후엽-6세기 무렵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이 있는 쪽으로 전개되었다고 추측한다.
노서리,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서봉황대 고분을 끝으로 경주 분지 외곽의 서악동 고분군으로 임금들이 묻히는 곳이 이동했다.
3.1. 황남동 고분군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90호분 - 황남대총 인근에 소재한 연접분. 인교동 119호분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분이다. 이종선은 실성 마립간의 왕릉으로 비정했으나 다수설은 아니다.
검총 - 100호분. 미추왕릉 지구에 소재한 고분으로, 신라 대릉원 일대의 고분 중 최초로 학술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무덤에서 철검이 출토되어서 검총이라고 명명되었으며, 그 외에도 쇠투겁창, 숫돌, 굽다리긴목항아리 등이 출토되었고 후세에 따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몇 점도 출토되었다. 고분 자체는 지름 44.5m, 높이 9.7m 정도로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고, 적석목곽묘로 조성되어 도굴도 매우 힘들었을 텐데 그에 비해 출토 유물이 매우 빈약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검총에서 나온 철검은 적석목곽묘보다 이른 토광묘 시기에서나 출토되던 유물로, 기존 신라 적석목곽묘에서 출토된 전례가 전혀 없다. 이 경우 출토 유물의 연대가 오히려 무덤보다 빠르다는 실로 기괴한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검총을 마립간기 왕들의 선조들 중 하나의 무덤으로 보는 설도 존재한다. 후대 마립간기에 들어 가계 신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적석목곽묘가 아니었던 선조들의 무덤을 적석목곽묘 스타일로 개축했다는 것이다. 마침 눌지 마립간 19년에 선대의 능침을 수리했다는 기사가 있으니 개연성도 충분하다.
3.2. 계림로 고분군
지금의 대릉원의 담장 동쪽에 계림로 공사를 하면서 조사된 구역이다. 계림로 고분군이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이 계림로 공사 구간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고분들을 계림로 00호라고 지칭한다. 특히 계림로 14호분에서는 유명한 경주 계림로 보검이 출토되었다. 대릉원 담벼락의 길을 거닐다 보면 계림로 14호분이 있던 자리에 작은 안내판이 자리잡아서 황금 보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3.3. 노동동 고분군
봉황대
금령총
식리총 - 노동동 126호분으로, 금동 신발이 출토되어 식리총이라 명명되었다. 고분의 규모와 금동, 은제 위주의 출토품들로 보아선 고위 귀족의 무덤으로 짐작되며,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어 남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3.4. 노서동 고분군
서봉황대 - 노서동 130호분으로, 노서동 고분군 내에서 제일 큰 무덤이자 봉황대 다음 가는 규모의 초대형분이다. 아직 발굴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왕릉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다. 무덤의 주인은 소지 마립간 등이 거론된다.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노서동 134호분 - 서봉황대 근처에 위치한 고분으로, 황남대총, 서봉총, 90호분처럼 두개의 고분이 합쳐진 연접분이다. 대릉원 내에서도 대형고분으로 손꼽히는 119호분, 90호분과 비교해 보아도 딱히 꿇리지 않는 규모의 초대형분이며, 대릉원 왕릉급 고분의 형성 순서로 보아 왕릉 혹은 그에 버금가는 유력자가 묻힌 무덤으로 지목된다. 묘주는 지증왕 정도가 거론되는 편.
은령총 - 노서동 139호분으로, 이 무덤에서 나온 순금 금귀걸이의 은구슬 장식에서 따와 은령총이라고 명명되었다. 호우총과 매우 연접해 소재하고 있어서 연대와 양식은 호우총과 대략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호우총과 연접분이었다고 추정하지만 두 무덤 다 발굴할 당시부터 봉분이 크게 훼손되어 있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가락바퀴가 출토되는 부장품의 내용으로 봤을 때 묘주는 귀족 여성으로 추정되며, 호우총의 묘주와 부부관계라는 설도 있다.
쌍상총 - 노서동 137호분으로, 특이하게도 돌무지덧널무덤이 대부분인 대릉원에서도 인근에 있는 마총과 함께 굴식돌방무덤 양식으로 조성된 몇 안되는 무덤이다. 연대는 대략 7세기 중엽 정도로 비정된다. 굴식돌방무덤 특성상 이미 모조리 도굴되어 나온 유물은 별로 없으며, 내부에서 2개의 덧붙여진 주검 받침대가 발견되어 쌍상총이라고 명명되었다. 묘주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보통 부부합장묘로 간주된다.
마총 - 노서동 133호분으로, 쌍상총과 함께 몇 안되는 굴식돌방무덤이다. 무덤에서 말 뼈와 마구 등이 출토되어 마총이라 명명되었다.
우총 - 노서동 131호분으로, 마총 인근의 횡혈식석실분이다. 이 무덤 역시 도굴되어 특이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고, 소 뼈가 출토되어 우총이라 명명되었다. 봉분을 복원하지 않아서 현재는 석실 일부만이 남아 있다.
3.5. 황오동 고분군
옛날 경주군 시절에 지어진 이름 황오리 고분군이라고도 불리며 위의 고분군들에 비하면 별로 유명하지 않다.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무덤이 일부 깎여나갔고 무덤 바로 옆에 민가가 있고... 인도 사거리 바로 옆에 고분이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이 고분군의 존재는 모르고 위의 주요 고분군만 둘러보고 가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인적이 별로 없고 한가하다. 시간이 나면 한 번쯤 산책 삼아 들러보는 것도 좋다. 다만 조금 변두리에 있어서 불편하긴 하다.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는 길에서 반대로 걷다 보면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무덤 70여 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봉분이 깎여나가 무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10여 기 남짓만이 정확히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된 무덤은 1호분·4호분·5호분·16호분·33호분 등으로, 신라의 일반적인 무덤 형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이 근처도 건물을 지으려고 하면 유물이 계속 나오므로, 무덤의 봉분만 없어졌을 뿐 도굴까지는 당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황오리 39호분 - 황오리 고분군 중에서도 크기가 제일 큰 대형분. 규모는 대략 검총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다.
월성로 고분군 - 전체 대릉원, 지금의 월성 주변의 경주 시내 가운데서 가장 빨리 만들어진 구역이다. 위의 계림로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팔우정 로타리에서 월성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해당한다. 신라토기의 전개 과정상에서 가장 빠르고, 대형 봉토를 갖춘 왕릉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으로도 추정한다.
쪽샘지구 - 황오동 남쪽에는 '쪽샘지구'로 불리는 고분 밀집 지역이 포함된다. 2002년부터 시작하였으며, 2010년부터는 쪽샘지구 44호분의 발굴을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발굴 전시관을 설치하였다. 참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999년 당시에는 이 지역이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때여서 경주역사지구에 포함되지 않고 고도제한구역으로만 지정되었다.
쪽샘지구 44호분
황오동 고분군은 경주 시내에 있는 다른 무덤들보다는 규모가 작고, 출토 유물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돌무지덧널무덤의 전 단계인 덧널무덤(토광목곽묘)를 비롯 다양한 무덤 형식들이 조사되어 경주 무덤들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3.6. 인왕동 고분군
지금의 인왕동 일대의 고분군으로 위의 지도에서 가장 대릉원의 밖, 가장 아래에 남쪽에 동떨어져 자리하고 있는 고분군이다. 이전에 인왕동 고분군이라고 말하는 지점과 지금 현재 인왕동 고분군이라고 표현된 지점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 특히 대릉원의 남쪽 월성의 서북쪽에 해당하는 지점은 원래는 교동 고분군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사적은 아니었다. 사적 512호로 일괄 통합 변경되면서 사적 구역에 해당하지 않았던 범위도 일부 포함되고 혼용되기도 하였고 고분군의 명칭이나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이 복잡하다 보니 개편된 명칭을 떠나서 원래 이름대로 부르는 경향 때문에 "인왕동 몇 호분"이라는 식의 명칭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인교동 119호 - 인왕동 고분군 군집의 가장 대형분이자 경주 시내 신라 왕릉들 가운데서도 빼박 왕릉으로 손에 꼽히는 고분이다. 대릉원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에 대릉원 안쪽은 아닌데 엄청나게 큰 고분이 보이는 데 그것이 바로 이 119호분이다.
학계에서는 황남대총의 묘주가 내물왕인가 눌지왕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었다. "황남대총의 묘주가 눌지라면 내물왕의 무덤은 어디인가"라고 했을 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인교동 119호분이다. 삼국유사에서도 내물왕을 첨성대의 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실제로 인교동 119호분도 첨성대의 남쪽편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비록 발굴되지는 않은 고분이지만 황남대총의 묘주 문제로 인하여 생각보다 학계에서 자주 거론된 고분이기도 하다.
전 내물왕릉 - 위의 인교동 119호와는 별개로 내물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비정은 조선시대 전승이나 종친회의 결정, 문화재의 관리 차원 등에서 정해진 것으로 실제로 역사고고학적 맥락에서 보면 인교동 119호분이 내물왕릉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의 경주 시내 왕릉들은 대부분 5세기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5세기 신라 왕릉은 매우 크다. 전 내물왕릉의 크기로서는 상대적으로 너무 작은 규모라는 점에서 진짜 내물왕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전 내물왕릉의 봉분에는 삐져나온 호석들이 일부 보이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서악동 고분군에서 보이는 것으로 비교적 늦은 시기인 6세기 신라 왕릉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교동 64번지 고분 - 정확하게 교동 64번지 고분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64번지 고분은 정식 발굴된 고분이 아니라 과거 도굴꾼이 소형 금관과 귀걸이, 환두대도 등을 도굴하였던 경찰이 압수하면서 취조 후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이 도굴품들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으나 지금의 대세론적인 결론은 진품으로 보는 편이며, 진품이라는 전제 아래에 금관의 크기로 보았을 때 왕족 남자아이의 무덤에서 도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입장료
입장료는 무료이며,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만 요금을 받는데, 입장료는 2023년 성인 기준 3천원.
2023년 5월부터 첨성대처럼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다만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만 예외적으로 요금을 받는데, 요금은 아래와 같다.
성인 3,0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경주시민(신분증 제시), 장애인복지카드, 국가유공자증 소지자는 입장료가 면제된다.
대릉원은 무료 해설사가 정해진 시간별로 해설을 한다. 단, 코로나19로 임시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 출범을 맞아 15~19일 닷새간 무료 개방이 되었다.
5. 매체
-덴마 - 대릉원: 한자로는 大陵園이라고 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 4회: 경주가 고향인 유시민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다. 당시엔 대릉원이 유적지도 아니었으며, 여기 산치고는 작지 않냐면서 놀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나 관리가 미비해서, 어린 유시민이 고분 위에 올라가서 뒹굴며 논 적이 많았다고 한다. 후반엔 접시 같은 유물들도 사람들이 막 썼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도 물건들이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분 위에서 동네 애들 몇 명 노는 거랑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가서 셀카 찍는 거랑 다르기 때문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7회에서 다니엘 린데만이 친구들을 데리고 우여곡절 끝에 경주시에 갔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
6. 기타
황남대총의 뒷쪽, 정확하게는 황남대총 동쪽 포인트가 대릉원에서 인기 있는 사진 찍는 장소로 유명해졌다. 원래는 역사 유적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으로서 그 구도가 알려졌는데, 이후 신라 고고학과 관련된 연구 저서의 표지에도 같은 앵글에 밤에 찍은 사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고 한참 후에 SNS를 통해서 사진찍는 포인트로 유명해져 줄 서면서까지 찍는 포인트가 되었다. 황남대총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황남대총을 경주 지역에서 가장 큰 고분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대릉원 지구 내에서도 황남대총보다 큰 봉황대가 있고, 외곽 지역에도 서악동 고분군, 금척리 고분군 등 다양한 유적지에 황남대총과 크기가 비슷한 왕릉들이 꽤 있다. 다만 이중에서 현재까지 발굴한 곳이 황남대총 하나뿐이라 다른 곳은 다 듣보잡이 되어서 그렇다. 황남대총도 4공 시절 국가 규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발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돌무지덧널무덤 특성상 컨베이어 벨트까지 동원해서 봉분을 통째로 다 들어내야 하기 때문.
조선시대 당시 파견온 러시아 군인의 기록을 보면 대릉원 역시 그 시절 조선 내에 많이 퍼져 있는 고려장 전설로 알려진 듯하다.[20]
경주근교에는 나무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고분들이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이 고분들은 2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 노인의 나이가 일흔 살이 되면 이곳에 산 채로 매장했다고 한다. 우리가 보았던 무덤 열기 안에는 분명 불쌍한 노인들이 적잖이 매장되었으리라 -V.P 파르네프 <<내가 본 조선, 조선인>>
봄이나 여름에 가면 꼬꼬마 텔레토비의 동산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대릉원을 보고 텔레토비 동산을 떠올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천마총의 경우에는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더더욱 텔레토비를 연상시켰다. 외국인들도 대릉원의 사진들을 보고 텔레토비 동산을 떠올렸다.
경주시 홈페이지에서 인근 카페에서 판매하는 '대릉원 타르트'를 소개해 놨다. 이는 무덤을 녹차가루 등으로 재연한 것이다. 숟가락도 삽 모양이다※ 이후 영화 파묘가 뜨자 관련 드립이 간간이 나오고 있다.]
[천마총(天馬塚)
이칭 : 황남동 제155호분
목차
정의
개설
분구(墳丘: 封土)
내부시설
껴묻거리(副葬品)
장법(葬法)
피장자(被葬者)와 연대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세계문화유산.
개설
천마총(天馬塚)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조성한 고분공원[大陵苑] 안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관리되어 왔다. 당시 정부의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거 황남동 제98호 고분의 내부를 공개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제98호분은 한국 최대형 고분이므로, 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이 고분보다 소형의 고분을 발굴하여 경험과 정보를 얻은 후, 제98호분을 본격적으로 발굴한다는 방침을 세워 제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 1973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제155호분 천마총도 대형에 속하는 고분이고, 당시까지 발굴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거의 완형에 가까운 고분이어서 신라의 왕릉급 대형고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였다.
고분이 소재한 곳은 경주분지 내의 거의 중심지이며, 주위는 논과 밭, 그리고 민가가 밀집되어 있는 평탄지에 속하고, 서천(西川)과 남천(南川)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토질은 사질토(沙質土)와 냇돌로 이루어졌다.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분류된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金冠) · 금제관모(金製冠帽) · 금제과대(金製銙帶)가 1978년 각기 국보로 지정되었다.
분구(墳丘: 封土)
고분의 규모는 분구 높이 12m 70cm, 분구의 바닥지름 47m인 원형의 봉토분(封土墳)이다. 분구의 자락에는 돌로 쌓아 만든 호석(護石)이 돌담 형식으로 돌려 있다. 호석은 현 지표로부터 1.2m 높이에 있고, 직경은 약 20cm 내외의 냇돌[천원석(川原石)]를 사용하였다. 분구의 토층은 황갈색 점토를 지표에서 75cm까지 쌓고, 그 위부터 4m 높이까지는 황갈색 흙과 직경 약 10cm 정도의 자갈이 섞였다. 분구의 4m 이상부터 정상부까지의 적토(積土)는 흙과 자갈이 혼합된 층인데, 이 층은 내부 중심을 향해 경사지고 높이 올라갈수록 경사도가 급해졌다. 적석부(積石部) 상위 봉토의 두께는 6.2m이다.
적석부는 냇돌로 형성되었으며, 상단은 동서 15.5m, 남북 13m의 타원형이었고, 그 중앙에 동서 8.8m, 남북 7.5m의 함몰부(陷沒部)가 있다. 적석부 표면은 분구 정점에서 2.6m 높이까지 약 15∼20cm 두께로 점토층이 피복되었고, 외면의 경사도는 50∼60° 정도로 다소 급한 편이다. 적석부의 측벽 바닥의 너비는 동서에서 각각 8m 50cm이고, 전체 적석부의 바닥 직경은 23.6m이고, 높이는 6m로 적석부 위 봉토 두께와 같다. 적석부의 평면은 대체로 방형(方形)을 띠고 있는데, 전체 형상은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으로 마치 고구려의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비슷하다. 적석부의 바닥은 목곽(木槨)의 바닥보다 38∼39cm 정도 낮다.
내부시설
목곽부(木槨部)는 분구의 중심부 적석의 하부에 설치되었고, 무덤의 핵심부를 이룬다. 규모는 장변 6.6m, 단변 4.2m, 높이 약 2.1m(복원치)로 벽과 천정이 목재로 짜여진 목실(木室)이다. 목곽의 밑은 두께 40cm를 인두대의 냇돌과 자갈을 깔아 상면을 고르게 하고, 그 위에 목재로 관대를 마련하였다. 벽면은 판재가 아닌 통나무[原木]를 통째로 사용하였는지 또는 쪼갠 것을 사용하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벽면이 서로 접하는 네 귀퉁이는 귀틀짜기 식으로 결구(結構)하였다.
그리고 당초에는 목곽의 전체에 붉은 옻칠을 한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그것은 목곽의 상면(床面) 판재를 붉은 옻칠을 하였고, 또 목곽 주위의 냇돌에서 붉은 옻칠 흔적이 다수 발견되는 점으로 추측할 수 있다. 목곽의 바닥 유물층에 도달하기 직전에 쇠막대기[환두철봉(丸頭鐵棒)] 2개가 동서 길이 2.2m, 남북 너비 1.2m의 범위로 발견되었는데, 이 범위가 천정부에 설치한 출입문[開口部] 시설이고, 쇠막대기는 문의 빗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목곽은 목실 형식이고, 이 출입문을 통하여 관과 궤(櫃)를 격납하고, 작업 인부(人夫)가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목곽 내에는 목관과 껴묻거리수장궤[副葬品收藏櫃]가 안치되었는데, 목관은 목곽의 중심에 동서 축선에 길이로 놓이고, 그 동쪽에 수장궤를 남북으로 놓아 관과 T자형을 이루게 하였다. 목관의 크기는 유물의 배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동서 길이 2.2m, 남북 너비 80cm로 추정된다. 수장궤는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m, 높이 약 80cm이다.
껴묻거리(副葬品)
고분 내에서 유물이 출토된 곳은 ①분구 내부, ②목곽 상부, ③목관의 주위와 내부, ④껴묻거리수장궤 안 등 4곳이다. ①과 ②의 유물은 껴묻거리라기보다는 고분축조와 관련된 의식용(儀式用) 유물이라고 할 수 있고, ③과 ④의 유물이 시체매장과 수반된 유물로 진정한 의미의 껴묻거리, 이른바 부장품이다.
①에서는 분구 정상부의 표토 아래 1.9m 지점에서 마구류(馬具類) 일괄유물과 유자철기(有刺鐵器) 철제낫 · 철모 · 유리옥 등이 발견되었다. ②에서는 적석부의 함몰 부분 아래의 목곽 측벽 위에서 철제 공부(銎斧)와 일렬로 배치된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남측 벽에서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2쌍, 금제세환이식(金製細環耳飾) 3쌍이 출토되었다.
③에서는 우선 목곽 주위에서는 환두철봉(環頭鐵棒) 2개, 관모(冠帽) · 과대(銙帶) 및 요패(腰佩) · 옥류(玉類) 등 장신구류, 자작나무껍질[白樺樹皮]관모, 은제이형요패(銀製異形腰佩), 은제우각형구(銀製牛角形具), 대형은제요패(大形銀製腰佩) 2조, 은제과판(銀製銙板) 32개, 대소(大小) 옥류 5,000여개 등 장신구와 대형 철정(鐵鋌), 소형 철정, 대도(大刀), 측도부은도(側刀付銀刀), 삼지모(三枝矛), 유경삼각형철촉(有莖三角形鐵鏃), 금은장삼환대도(金銀裝三鐶大刀) 등 무기류와 철제등자(鐵製鐙子), 교구(鉸具), 금동제복륜(金銅製覆輪), 금동제선형구(金銅製扇形具) 등의 마구류가 발견되었다. 목관 내부에서는 금관(金冠)은 삼수지형입식(三樹枝形立飾) 3개와 녹각형입식(鹿角形立飾) 2개 및 수식이 달려 있었다. 금제세환이식, 목걸이[頸飾], 금제과대(金製銙帶), 금제팔찌[金製釧], 은제팔찌[銀製釧], 금제가락지[金製環], 금동투조조형수식(金銅透彫鳥形垂飾) 등 장신구와 봉황두식금동제대도(鳳凰頭飾金銅製大刀) 등이 출토되었다.
④에서는 금제조익형관식(金製鳥翼形冠飾), 금제나비형관식, 금동관(金銅冠), 금동투조금동관모(金銅透彫金銅冠帽), 금동경갑(金銅頸甲), 금동투조신발[金銅透彫靴] 등 장신구류와 은장복륜(銀裝覆輪), 청동제마탁(靑銅製馬鐸), 금동투조판식죽제장니(金銅透彫板飾竹製障泥), 자작나무껍질천마도장니[白樺樹皮天馬圖障泥], 서조도채화판(瑞鳥圖彩畵板), 기마인물도채화판(騎馬人物圖彩畵板), 금동판피말안장[金銅板被鞍橋], 목심금동판피발걸이[木心金銅板被鐙子], 금동경판(金銅經板), 말재갈[馬銜], 운주, 옥개형금동구 등과 청동제초두(靑銅製鐎斗), 철제솥[鐵製鼎], 은제대합(銀製大盒), 금동제대합(金銅製大盒), 금동제소합(金銅製小盒), 금동제대형고배(金銅製大形高杯), 우각형금동잔(牛角形金銅盞), 국자형칠기, 칠기잔류(漆器盞類), 찬합칠기(饌盒漆器), 토제구슬[土製玉] 159개 등 마장식구류(馬裝飾具類)와 기기류(器機類)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상의 유물의 수량은 장신구류 8,767개, 무기류 1,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 총합 11,526개이다.
위의 껴묻거리 중에서 금관은 실용관이라기보다 의식용관(매장용 등)이라 할 수 있고, 금모(金帽)는 실용관이라 할 수 있다.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의 천마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고구려벽화의 무용총(舞踊塚) 수렵도(狩獵圖)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천마의 말꼬리와 천마 주위의 당초문(唐草文)과 운문(雲文) 등은 고구려벽화와 양식적인 면에서 분명 유사한 점이 많다. 신라 지역의 거의 유일한 영주 태장리의 고분벽화와 함께 고구려벽화고분의 영향을 잘 나타내 준다.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고분벽화가 별로 없는 신라의 회화자료로서 천마총의 천마도는 매우 귀중하다고 하겠다. 근자에 천마에 대하여 기린이라는 이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장법(葬法)
천마총은 분구의 지름이 47m나 되고 높이도 12.7m가 되는 거대고분에 속한다.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장법은 바로뉘어묻기[앙와직지신전장(仰臥直肢伸展葬)]를 채택하였고, 홀로묻기[單葬]이다. 순장(殉葬)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발굴보고서에서는 분구 중에서 발견된 마구는 말 순장의 전통을, 목관 위의 세환이식(細鐶耳飾)과 수장궤(收藏櫃) 위의 태환이식(太環耳飾)은 남녀 순장의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삼국사기(三國史記)』지증왕(智證王) 3년조에 순장금지 기사가 있어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점과 많은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식의 과다한 수량을 해석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그리고 목곽(장변 6.6m, 단변 4.2m, 높이 2.1m)의 공간이 그 안에 안치한 목관(동서 2.2m, 남북 80cm)과 수장궤(동서 길이 1m, 남북 너비 1.8m, 높이 약 80cm)가 들어가고도 과도하게 넓은 공간이 남아 있는 점, 목곽 안벽에 잇대어 돌담이 돌아가면서 축조되었고 다시 목관의 주위에도 석단이 돌려 있는 점, 돌담과 석단 그리고 목관과 수장궤 상면의 공간 등 여러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목곽은 적석부 봉토와 같은 단순한 목관 보호의 외피시설의 기능만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즉 이 목곽은 당초 목관을 안치하고 빈전(殯殿)으로 사용하다가 빈장(殯葬)기간 후에 적석과 봉토를 올려 분구를 완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목곽을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지상에 묘단을 축조하고 그 위에 설치한 점은 더욱 더 빈전이었을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피장자(被葬者)와 연대
이 고분의 축조 연대에 관하여 잠시 말하여 두고자 한다. 목관편(木棺片)의 방사성탄소측정(원자력연구소 검사) 연대는 서기 340년±70년이므로 축조 연대는 서기 270년∼410년 사이에 들어간다. 이 연대는 다소 이른 감이 드는데, 그것은 아마도 목관재료 자체의 연대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발굴보고서에서는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과 지증왕을 이 고분의 피장자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분지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이 지증왕대까지 축조되고, 그 다음 법흥왕(法興王)대부터는 서악동 무열왕릉(武烈王陵)의 후방 왕릉군(王陵群)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황남동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의 연대는 6세기에 끝났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 천마총의 묘단 · 목곽부 · 적석부 · 분구 등 구성요소의 규모가 합리적 비례를 취하고 있고, 목곽 · 수장궤 및 천마도 · 금관이식 등은 다른 무덤에서 볼 수 없는 발달된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황남동에서는 최후 단계인 6세기 초의 무덤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지증왕의 왕릉으로 추정하여 둔다.
입장요금
어른(개인) 3,000원, 어른(단체) 2,400원
군인/청소년(개인) 2,000원, 군인/청소년(단체) 1,600원
어린이(개인) 1,000원, 어린이(단체) 800원]
[황남대총(皇南大塚)
이칭 황남동 98호분
목차
정의
개설
내용
의의와 평가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 돌무지덧널무덤·쌍무덤.
개설
황남동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2만 2,908㎡이다. 이 고분군 내에 있는 황남대총의 일련번호는 ‘황남동 98호분’이다. 황남대총은 1973년 7월과 1975년 10월에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조사단이 발굴조사하고, 1980년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붙여진 별칭으로 황남동에 소재한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의미다.
내용
현재 외형이 복원되어 있는 황남대총은 2개의 원분(圓墳)이 남북으로 연접된 표형분(瓢形墳)으로 동서 지름 80m, 남북 지름 120m, 남분 높이 22m, 북분 높이 23m에 이르는 신라 최대의 봉토분(封土墳)이다. 황남대총 남분의 피장자는 남자, 북분의 피장자는 여자이며 신라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봉토와 봉토의 기저부(基底部) 주위에 쌓은 바깥 둘레돌[護石]의 남 · 북분 연접상태로 볼 때, 먼저 남분이 축조되었고 뒤에 북분이 남분에 잇닿아 축조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남 · 북분 각각 봉토의 중심부에 덧널과 돌무지[積石]가 설치된 고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다.
두 고분 모두 돌무지 부분 내부에서 나무기둥을 줄지어 세웠던 기둥구멍과 기둥 사이를 연결했던 횡가목(橫架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목조가구(木組架構)를 먼저 설치하고 그에 맞춰 돌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돌무지 부분 안에 설치된 이러한 목조가구는 고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을 계보상으로 북아시아 덧널무덤과 더욱 가깝게 접근시키는 중요한 근거로서 주목받고 있다.
남분의 돌무지 부분 안에는 으뜸덧널[主槨]과 딸린덧널[副槨]이 동서로 배치되어 T자형을 이루고 있었다. 장축방향은 으뜸덧널이 동서로, 딸린덧널은 남북으로 두었다.
으뜸덧널은 원지표를 약 45㎝ 파고 냇돌과 잔자갈을 깔아 구축한 바닥 위에 세운 내외 2중의 덧널으로 되어 있었다. 바깥덧널[外槨]은 동서 길이 6.5m, 남북 너비 4.1m, 높이 약 3.5m이고, 안덧널[內槨]은 동서 길이 4.7m, 남북 너비 2.3m, 높이 약 1.8m이다. 안 · 바깥덧널 사이에는 잔자갈이 채워져 있었다.
안덧널의 가운데에는 내외 이중의 널[木棺]이 동서로 놓여 있었다. 바깥널[外棺]은 동서 길이 3.6m, 남북 너비 1m, 높이 약 0.8m이다. 안에 칸막이를 세워 동쪽은 껴묻거리 수장부[副葬品收藏部]로 되어 있었고, 서쪽에는 안널[內棺]이 안치되어 있었다.
안널 안에서는 60세 전후의 남자로 판단되는 피장자의 유골 일부가 출토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피장자가 착장했던 금동관 · 금제관드리개[金製冠垂飾] · 금제목걸이 · 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가슴장식, 금제허리띠[銙帶]와 띠드리개[腰佩]등의 장신구, 금동장고리자루큰칼[金銅裝環頭大刀]1개가 출토되었다.
껴묻거리 수장부에는 윗부분에 금제관식 · 금동관 · 은관(銀冠) · 은모(銀帽) · 금동신 · 은제허리띠와 띠드리개 · 금은반지 ·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10여 개의 금은장고리자루큰칼, 은제정강이가리개[銀製脛甲]가 놓여 있었다.
그 밑에는 각종 금속용기, 칠기(漆器), 봉황머리모양병[鳳首形甁]등의 유리용기 등이 담겨 있었다. 바닥부분에는 쇠솥과 각종 토기들이 놓여 있었다.
껴묻거리 수장부 · 윗부분의 바깥널 뚜껑 위에도 금동제 정강이가리개, 비단벌레날개로 장식된 금동허리띠 등이 놓여 있었다. 바깥널과 안덧널 사이의 잔자갈층 위에서도 각종 토기와 철기가 출토되었다.
으뜸덧널 내부에서는 순장(殉葬)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자의 유골 일부도 발견되었다. 바깥덧널의 뚜껑부분에도 금제귀걸이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와 토기, 철제무기, 마구류가 배치되어 있었고, 새무늬[鳥文]가 새겨진 청동제거울 1점도 출토되었다.
딸린덧널은 으뜸덧널과 3m 두께의 냇돌벽을 사이에 두고 그 서쪽에 설치되었으며, 규모는 남북 길이 5.2m, 동서 너비 3.8m, 높이 약 1.3m이다. 흙바닥에는 각종 껴묻거리가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딸린덧널 안에서는 7구분의 안장틀[鞍橋]과 거기에 부속된 각종 마구류, 300여 점의 철제무기와 이기(利器), 1,500여 점의 각종 토기가 출토되었다.
그 중 안장틀을 비롯한 1세트의 마구는 모두 용(龍)무늬가 투조된 금동판 밑에 비단벌레 날개를 깔아 장식한 호화찬란한 것이었다. 500여 점에 달하는 쇠투겁창[鐵矛]는 형식이 10여 종이었다. 쇠스랑 · 가래끝 등의 농기구도 30여 점 포함되어 있었다.
북분은 남분의 북쪽 끝 봉토 일부를 절개하고 축조한 돌무지 부분 가운데에 장축을 동서로 둔 덧널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었다. 동서 길이 6.8m, 남북 너비 4.6m, 높이 약 4m 규모의 외덧널[單槨]로 되어 있는 덧널의 바닥은 지반을 약 50㎝ 파고 냇돌과 잔자갈을 깔아 구축되었다.
덧널 안에는 동쪽을 제외하고 잔자갈로 쌓은 너비 80㎝, 높이 55㎝의 ‘ㄷ’자형 석단(石壇)이 돌려지고 그 안에 널이 놓여 있었다. 널은 남분과 같은 구조의 이중 널으로 길이 3.3m, 너비 80㎝, 높이 약 80㎝였다.
바깥널의 서쪽 부분에 안치된 안널 안에서는 동쪽에서부터 금관과 3쌍의 금제관드리개, 금구슬과 유리구슬로 된 목걸이, 금제허리띠와 띠드리개, 11개의 금팔찌, 12개의 금반지 등 피장자가 착장했던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안널에서는 장신구만 출토되었으며, 허리띠의 좌우 양편에 5쌍의 귀걸이형 장신구가 띠드리개와 함께 수장되어 있어 이채로웠다.
바깥널의 동쪽 부분인 껴묻거리 수장부에서는 윗단에서 각종 장신구, 그 아래에서 금은장고리자루큰칼, 타출무늬은잔[打出文銀杯]등의 금속용기, 4개의 유리잔, 중국 육조시대의 흑갈유자기소병(黑褐釉磁器小甁) 등이, 바닥부분에서 쇠솥과 각종 토기, 그림이 그려진 가락바퀴[紡錘車]가 출토되었다. 타출문은잔
덧널 뚜껑부분에도 각종 장신구, 토기,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마구류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북분의 출토유물은 남분에 비해 장신구가 월등히 많은 반면, 무기와 마구가 적었다. 또한 피장자가 큰칼을 착장하지 않은 대신 덧널 내에서 가락바퀴가 출토되어 피장자가 여자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껴묻거리 수장부에서 ‘부인대(夫人帶)’의 명문(銘文)이 있는 은제허리띠의 끝장식이 출토된 것도 이 고분의 피장자가 여자였음을 뒷받침해준다. 결국, 이 표형분은 부부총(夫婦塚)임을 알 수 있다.
남 · 북분 모두 봉분 정상부에 마구류를 위주로 하는 일괄유물이 매장되어 있었다. 이것은 고분조성 마지막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매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유물의 출토상태는 고분 조성 당시 덧널 내부, 덧널 상부, 봉분 정상부 등 당시의 장의절차에 따라 단계적으로 부장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을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황남대총은 그 형태가 표형분에 속하는 부부총으로서 어울무덤[合葬墳]이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신라에 있어서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 상한연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발굴조사자는 무덤덧널 형식의 변천, 고식(古式) 마구(馬具)의 등장시기, 신라토기의 편년, 북분에서 출토된 중국제 흑갈유자기소병(黑褐釉磁器小甁)의 매납시기 등을 근거로 남분은 4세기 중엽경, 북분은 4세기 말∼5세기 초경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반하여 고구려남정설이라는 고대사 연구성과를 근거로 삼는 연구자나 중국에서의 고식 마구 출현에 대한 다른 해석을 근거로 삼는 연구자들은 황남대총 남분을 5세기 중 · 후반, 북분을 6세기 초로 편년하기도 한다. 이밖에 또 다른 해석으로는 사료상에 나오는 왕세계와 혼인관계 등을 비교하여 남분의 피장자를 나물마립간(내물마립간)이나 눌지마립간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제시되어 있다.
[전 미추왕릉
지정명 : 신라미추왕릉(新羅味鄒王陵)
지정번호 : 사적
소재지 : 경북 경주시 황남동(皇南洞) 89-2
일반정보
미추왕릉은 『삼국유사』에서 죽현릉(竹現陵)․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부른다고 하였다. 현재 신라 제13대 미추왕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는 고분은 경주고분공원으로 조성한 대릉원(大陵苑) 내의 106호분이다. 내부구조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여겨지는데, 당시에 적석목곽분이 조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전문정보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미추이사금 23년조에서는 “왕이 재위 23년에 돌아가니 대릉(大陵)(또는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함)에 장사지냈다(二十三年 冬十月 王薨 葬大陵(一云竹長陵))”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미추왕(味鄒王) 죽엽군조(竹葉軍條)에서는 미추왕이 “왕위에 있은 지 23년 만에 죽었으며 능(陵)은 흥륜사(興輪寺) 동쪽에 있다(在位二十三年而崩 陵在興輪寺東)”고 하였다. 또한, 14대 유례이사금 14년에 이서고국(伊西古國: 지금의 청도(淸道))이 금성(金城)을 쳐들어왔을 때 귀에 대나무잎을 꽂은 죽엽군(竹葉軍)이 갑자기 신라군을 도와 이들을 물리친 일이 있는데, 이들 병사들이 돌아간 곳을 찾아보니 미추왕릉 위에 대나무잎이 쌓여 있어 선왕(先王)의 음덕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 설화 때문에 미추왕릉은 대묘(大廟) 혹은 대릉(大陵)․죽장릉(竹長陵)․죽현릉(竹現陵)이라 칭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경주시내 평지고분군 가운데 미추왕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을 통해서는 “대릉(大陵)”의 자세한 내부구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문자 그대로 고총고분(高塚古墳)을 의미한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현재 제13대 미추왕의 능이라 전해오는 왕릉은 경주 분지내 마립간시기의 집단묘역인 노서동고분군, 노동동고분군, 황남동고분군 내에 있으며, 왕성인 월성과는 남북으로 근접하였다. 주변에 대형분이 밀집하여 있으며, 천마총과 황남대총은 그 북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다. 봉분 직경은 56.7m, 높이 12.4m로 경주시내 평지고분 가운데에서도 대형분에 속한다. 능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유석이 있고, 남쪽에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삼문을 따라 담장이 돌려져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으나 모두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또 능 전방 가까운 곳에 왕을 제사하기 위한 숭혜전(崇惠殿)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에 불탄 것을 조선 정조 18년(1794)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러한 표면상의 특징은 전미추왕릉의 묘제가 대릉원내의 다른 대형분들과 마찬가지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며, 규모로 보아 피장자의 신분은 최상위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왕 또는 왕족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능이 실제 미추왕의 능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미추왕릉의 조영시기인 3세기말에 과연 적석목곽분이 발생하였는지의 여부가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미추왕대 고총고분이 조성되었다는 연구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첫째, 『삼국사기』의 대릉(大陵) 기사를 토대로 미추왕릉을 가장 초기의 적석목곽분으로 보는 견해이다. 여기서는 미추왕의 즉위, 곧 김씨족의 출현이 신라가 실질적인 왕국 단계에 도달한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적석목곽분의 발생을 미추왕릉과 연계시키는 것으로서 이 묘제가 김씨계의 왕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미추왕, 나물왕 등 김씨왕이 나타나면서 교동과 황남동을 왕릉지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노서동․노동동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 경주 중심지 남부 일대의 거대한 봉토묘군은 미추왕대인 3세기 말경에서부터 조성된 김씨계 왕족의 분묘임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적석목곽분의 기원은 시베리아 적석총-신석기시대 적석총-영남지방의 다곽식지석묘-경주 적석목곽분이라고 하는 일련의 계통을 정립하여 외래적 요소를 강조하였다.(김원룡, 1986)
둘째, 적석목곽분을 김씨족과 연관된 외래적인 요소로 보고 그 기원을 추적하여, 김씨족을 소백산맥의 재지세력으로 보면서, 이들이 경주에 진출하는 시점 즉 3세기 중반 미추왕대에 경주 지역에서 적석목곽이 출현하였다고 본 견해가 있다. 여기서는 적석목곽을 말갈과 연결지으면서, 그 전파경로를 동해안을 중심으로 말갈 침입기사와 연계시켰다.(박영복, 1992)
셋째, 적석목곽분이 미추왕대에 활발히 보급․전파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는 탈해조의 석총(石塚) 기사와 예맥과의 접촉기사를 근거로 당시 압록강 연안의 고구려 적석총이 신라에 전파되었으며, 이것이 3세기 경에 이르러 활발히 보급되었다는 입장이다.(강인구, 1984)
넷째, 미추왕이 죽었을 때 비로소 “대릉”(고총고분)이 조성되었다면, 이는 당시 신장된 왕권을 반영하는 것이며, 또한 대외적으로 고구려와의 폭넓은 문화교류도 상정해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곧, 당시 고구려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조성되었던 고총고분의 묘제가 3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신라에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전파의 경로였던 소문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구도-미추 세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흡수․동화시킨 것으로 보았다.(박순교, 1993)
다섯째, 미추왕대에 적석목곽분이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위와 동일하나, 미추왕의 재위년대인 262년-283년을 부정하고 미추를 나물마립간과 동일하게 보는 견해이다. 곧, 적석목곽분을 4세기 무렵 즉 나물왕대에서부터 6세기 지증왕대에 이르는 마립간 시기의 묘제로 보아, 적석목곽분의 개시 시기를 마립간 시기의 시작과 일치시키기 위해 미추를 나물마립간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경주일원에만 존재한 적석목곽분의 기원에 대해서는 시베리아 쿠르간 계통의 묘제로 보고 있다.(최병현, 1992)
이 견해에 의하면, 적석목곽분은 대형일수록 시기가 빠르고 시기가 내려올수록 규모가 축소되면서 세부구조가 간략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전 미추왕릉은 5세기말 6세기 전후로 보고 있는 천마총과(이종선, 2000) 비슷한 규모를 보이고 있으므로, 그 시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3세기말 경주분지에 실재한 미추왕의 묘제는 봉분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목곽묘 단계이므로, 실제 미추왕릉은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문헌과 고고학적 상황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고고학계에서는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눌지마립간 19년조의 “19년(435) 봄 정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2월에 역대(歷代)의 왕릉을 수리하였다. 여름 4월에 시조묘에 제사지냈다(十九年春正月 大風拔木 二月 修葺歷代園陵 夏四月 祀始祖廟)”는 기사를 참고하여, 전 미추왕릉이 3세기말에 일단 만들어졌다가 후대에 개축 또는 개수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먼저 2월의 기사를 “역대 왕릉에 새로이 봉토를 입혔다”고 해석한 후, 이를 토대로 당시에 눌지왕 이전의 18대에 이르는 왕과 왕비들의 능 30여기를 오늘날과 같은 외형을 가진 고총고분으로 개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기도 하고,(강인구, 1984) 원래 미추왕릉은 목곽묘 단계로서 봉분의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 151년 후인 435년에 와서 정변으로 왕위에 오른 눌지왕이 내물계의 직계 조상묘들에 대해 당시의 묘제인 적석목곽분과 같은 외형으로 수축하였다고 보기도 한다.(최병현, 1992)
경주분지 고분군 내에 존재하는 30여기의 대형분 가운데에서, 밑지름 56.7m, 높이 12.4m인 중형급인 106호분만 피장자가 미추왕이라는 분명한 전승과정을 지키고 있다면, 『삼국유사』 권1 기이1 미추왕(味鄒王) 죽엽군조(竹葉軍條)에 따라 전 미추왕릉과 동서방향을 이루고 있는 경주공업고등학교 일원의 절터가 흥륜사지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삼국사기』에서 법흥왕 이전 왕들의 장지 관련 기록을 보면, 박․석․김 3성 시조왕들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관련기사가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조 혁거세부터 통일초 어느 시점에 이르기까지는 왕들의 장지가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일기에 이르면 사서 편찬 과정에서 왕들의 장지를 기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미추왕릉의 장지를 언급한 ‘대릉(大陵)’ 역시 구체성이 결여된 표현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후대의 필요에 의해 소급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시기는 대체로 신라 하대 또는 고려 초일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의 미추왕릉은 중대에 지정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유는 혜공왕대에 이르러 오묘제(五廟制)를 개정하면서 미추왕이 김성 시조의 자격으로 오묘의 수위(首位)로 모셔지기 시작한 것과 아울러 미추왕릉을 “대묘(大廟)”라 칭했다는 점이(『삼국유사』 권1 기이1 미추왕 죽엽군) 주목되기 때문이다. 즉, 신라 중대에 이르러 전대의 역사를 새롭게 편찬하는 과정에서 미추왕을 실질적인 김성 시조로 결정하면서부터 미추왕릉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8세기 중엽에 이르러, 3세기말의 고고학적 상황과 무관하게 미추왕릉이 고총고분 가운데 지정되었고, 곧이어 왕실에 의해 “대묘(大廟)”로 추숭(追崇)되었다고 보았다.(이근직, 2002) 조선 전기 경주지역에 전해오던 신라 왕릉을 직접 조사한 후에 기록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 능침조에서는 혁거세릉․미추왕릉․법흥왕릉․진흥왕릉․선덕여왕릉․효소왕릉․성덕왕릉․헌덕왕릉․흥덕왕릉 등 9기의 왕릉과 김유신묘 등 모두 10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미추왕릉에 대한 전승은 『삼국유사』 권1 기이1 미추왕 죽엽군조 이후 조선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13:00~13:06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대릉원을 출발하여 경북 경주시 사정동 183 번지에 있는 경주 황리단길 공영주차장으로 이동
[6분, 2.1km]
[경주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길로,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진 단어로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 사정동 일대의 지역을 일컫는다.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이다.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분위기 좋은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들이 들어섰다. 초기에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섰는데 황리단길 외연이 확장되면서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가 되었으며, 인근의 첨성대, 대릉원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경주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13:06~14:00 황리단길에 있는 식당에서 자유매식으로 점심식사
14:00~14:04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황리단길 공영주차장을 출발하여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번지에 있는 경주 첨성대로 이동 [4분, 1.1km]
14:04~15:00 경주 동부 사적지대에 있는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를 탐방
[경주 동부 사적지대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동서는 안압지로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반월성 남쪽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신라 왕도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반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물왕을 위시한 수십 기에 달하는 신라시대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일대의 면적은 668,121㎡(202,46평)이다.]
[첨성대(瞻星臺)
별의 운행을 관측하기 위하여 쌓은 대(臺). 별의 관측 목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의 길흉(吉凶)을 점(占)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법(曆法)을 만들기 위해 일월오성(日月五星)의 운행을 관측하는 것임. 현존하는 첨성대는 경주에 있는 것으로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국보) 이 첨성대는 선덕왕(善德王) 때에 건축된 것인데, 네모형의 받침대 위에 큰 벽돌처럼 다듬은 화강암을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허리가 가는 원형으로 쌓아 올렸음. 맨 위에는 사각형의 틀을 두겹으로 올렸는데, 그 위에 여러 가지 천문 관측 기구를 놓고 별의 운행을 관측한 것으로 추측됨. 밑받침대는 한 변이 6m이며, 각 변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데, 밑받침의 중심부는 몸체의 중심부와 일치함.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517 번지 일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79년에 궁궐을 매우 화려하게 고쳤다고 하였고, 804년(애장왕 5), 847년(문성왕 9), 867년(경문왕 7)에는 임해전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697년(효소왕 6) 9월과 769년(혜공왕 5) 3월, 860년(헌안왕 4) 9월, 881년(헌강왕 7) 3월에는 군신들이 연회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931년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위급한 정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별궁이었지만 신라 정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궁궐 안에는 현재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본따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고, 연못을 파고서 그 안에 전설 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고서 꽃을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이 연못은 바다를 상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 뒤 1974년 11월에 안압지 준설 및 주변정화공사가 추진되었다. 이 때 기와 조각과 와당 조각이 많이 출토되었기에, 1975년 3월∼1976년 12월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신라시대에 축조한 연못이 거의 완전하게 확인되었고, 특히 연못 주변에 쌓았던 호안석축(護岸石築)도 매우 양호한 상태임이 밝혀졌다. 연못에 물을 대는 입수구와 수로, 물이 빠져 나가는 배수구 등의 시설도 잘 남아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한편 안압지 서쪽에서는 건물터와 행랑터가 확인되었으며, 그보다 더 서쪽에는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큰 건물터도 드러났다. 행랑은 안압지 남쪽으로도 연결된 듯 보이지만, 그 북쪽과 남쪽은 철로와 차도에 의하여 많이 손상되었기에 전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안압지 바닥에서는 금동불상을 비롯한 금동 제품과 목조 건물의 부재 등이 출토되었고, 특수한 모습의 기와도 적지 않게 발굴되었다. 특히 기와에는 679년인 ‘의봉4년(儀鳳四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임해전터에서 출토된 680년인 ‘조로2년(調露二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보상화(寶相華) 무늬의 벽돌과 함께 문무왕 때 임해전이 건립되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신라 고분에서 흔히 발견되는 굽다리접시〔高杯〕나 긴목항아리〔長頸壺〕과는 다른 것으로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원지(苑池)로 복원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참조하여 복원되었다. 그밖의 건물터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
입장요금
어른/개인 3,000원
어린이/(7세~12세) 1,000원
어른/단체 2,400원
어린이/단체(7세~12세) 800원
군청소년 개인 2,000원
군청소년 단체 1,600원]
15:00~15:0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경북 경주시 인왕동 517 번지에 있는 동궁과 월지를 출발하여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번지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동
[2분, 0.5km]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대표적 국립박물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여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대표적 국립박물관으로서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 3동의 상설전시관과 1동의 특별전시관, 어린이박물관이 있다. 신라역사관에는 기원전 57년에서 기원후 935년까지 한반도 동남쪽에 있었던 천년왕국 신라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며, 신라미술관은 불교미술과 화룡사실과 기증실인 국은기념실의 4개실에서 700여 점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월지관은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30,000여 점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중에서 엄선한 약 300여 점의 문화재를 주제별로 전시하여 통일신라 문화, 특히 왕실의 생활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옥외전시장에는 석조품 1,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람 안내
10:00~18:00(일요일 및 공휴일 1시간연장)
10:00~21:00(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3월~12월 매주 토요일)
휴관일
매년 1월1일, 설날, 추석
입장료
무료(상설전시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
* 단, 유료 특별전시는 제외
주소 :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전화 | 팩스 : 054-740-7500 | 054-740-7522]
15:02~17:00 국립경주박물관 관람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기관이다. 1975년 8월 20일 발족하였으며,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에 위치하고 있다. 관장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에 속하는 학예연구관으로 보한다.
역사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 건물을 이용하여 진열관을 열었다. 이후 진열관은 1926년 6월 20일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경주분관으로 바뀌었으며,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였다.
1961년에는 신관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 12월에는 인왕동에 신박물관(본관, 제1별관)을 신축하였다. 1975년 5월 27일에는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건물을 새로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겼다. 당시 동부동에서 인왕동으로의 박물관 이전은 경주에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는데, 특히 성덕대왕신종의 이전은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행사로 유명하다. 1975년 당시에는 본관(지금의 신라역사관)과 별관(지금의 특별전시관)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을 위한 종각이 지어졌다. 설계자는 이희태(1925 ~ 1981)이다. 외부에 기둥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누각 형태의 본관은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0일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 7월 19일에는 김수근(1931 ~ 1986)의 설계에 따라 안압지 출토품을 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지금의 월지관)을 지었다. 벽돌과 나무로 된 벽에 기와를 올린 단순한 외관은 전통적인 창고에서 이미지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5월 11일에는 국은기념실을 개설하였으며, 2002년 5월 22일에는 미술관을 신축하였다. 대표 설계자는 이상은(1954 ~ )이다. 전시와 더불어 박물관 교육과 연구 관리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2004년 11월 30일에는 수묵당을 신축하였으며, 다음해 1월 31일에는 어린이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13년 11월 12일에는 신라역사관의 내진 보강 및 재개관이 이루어졌으며, 2015년 6월 7일에는 특별전시관을 개·보수하였다.
2025년 11월 천년미소관에서 APEC 경주 정상 회의에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의 무대로 활용되었던 장소로서,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체험전시관'으로 새롭게 탈바꿈할 예정이다.
본 공간은 전통문화와 디지털 체험, 그리고 국가 간 문화교류 전시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더불어 역사적 상징성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시민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전시 및 행사 공간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2016년 12월 31일 기준 소장품 현황
금속 토제 도자기 석 유리&보석 초제 나무 골각&패갑 지 피모 사직 종자 기타 계
12,551건 54,885건 3,623건 4,824건 1,052건 4건 422건 170건 56건 7건 6건 5건 7건 77,612건
28,093점 89,784점 5,025점 8,013점 1,590점 4점 629점 387점 788점 7점 6점 5점 23점 134,354점
국보
28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29호 성덕대왕 신종
38호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88호 천마총 금관
189호 천마총 관모
190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
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275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보물
202호 의성 관덕동 석사자
314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3~4
315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617호 천마총 금제 관식
618호 천마총 금제 관식
619호 천마총 목걸이
620호 천마총 유리잔
621호 천마총 환두대도
622호 천마총 자루솥
623호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624호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625호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
628호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629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630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
632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633호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634호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
636호 서수형토기(미추왕릉지구)
884호 삼안총
1151호 청동 옻칠 발걸이
1152호 경주 죽동리 청동기 일괄
1410호 금동 당간 용두
1411호 임신서기석
1475호 안압지 출토 금동판 불상 일괄]
17:00~17:13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경주 국립박물관을 출발하여 경주 보문단지로 이동 [13분, 9.0km]
[경주 보문단지
경주 보문 단지는 경주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정도 떨어진 명활산 옛 성터에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보문관광단지는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컨벤션시티로의 육성,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감포 관광단지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등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 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경주 보문 단지는 총 8,000,036m²(242만 평)의 대지에 국제적 규모의 최고급 호텔, 가족단위의 콘도미니엄, 골프장, 각종 수상시설, 산책로, 보문호와 고사분수 등 수많은 위락시설을 갖춘 경주의 사랑방이라고 일컫는 종합관광 휴양지이다. 경주지역에는 특히 벚나무가 많다. 어느 특정 지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인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4월 개화기 때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벚꽃 천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곳 보문호 주위와 불국사 공원 벚꽃이 한층 기염을 토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경주 보문단지에 뜬 ‘코스믹 리조트’…개관 한 달 만에 3만5천명 ‘대박’
장성재 기자
영남일보 기사 입력 2025-10-23 11:37 | 발행일 2025-10-23
첨단 기술과 예술 결합한 복합 미디어 공간…경주 관광의 새 중심지로 급부상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최근 문을 연 '코스믹 리조트(Cosmic Resort)'가 개관 한 달 만에 누적 방문객 3만5천 명을 돌파하며 경주의 새로운 문화·예술 명소로 떠올랐다. 천년고도의 유산과 첨단 기술이 만나는 이 공간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미래형 문화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다.
코스믹 리조트는 디지털 콘텐츠 기업 이지위드(대표 양정하)와 미디어아트 기업 퓨처라이징(대표 김선곤)이 협업해 만든 초대형 복합 미디어 테마파크다. 약 1천400평 규모의 전시관은 '우주(Cosmic)'와 '리조트(Resort)'를 결합한 콘셉트 아래 빛과 음향, 예술이 어우러지는 몰입형 공간으로 구성해 지난 8월 개관했다.
이곳의 핵심은 '참여형 전시'다. 관람객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인터랙티브 기술과 AI 기반 콘텐츠가 결합돼, 관람객이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체험을 선사한다. 13개의 테마 공간 가운데 '코스믹홀'은 5면 맵핑 영상쇼로, '문라이트 풀'은 별빛이 물 위에 쏟아지는 장면으로, '아스트룸'은 700개의 키네틱 오브제가 춤추는 미디어쇼로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서는 이미 '경주핫플, 인생샷성지' 해시태그가 확산 중이다. 전통 유적 중심이던 경주 관광에 '체험과 감성'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더하며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까지 흡수하고 있다.
코스믹 리조트는 이달 18일부터 11월 16일까지 '코스믹 할로윈'을 진행 중이다. 전시관 전체를 핑크·퍼플·블랙 톤으로 꾸미고 코스튬 방문객에게는 간식과 럭키드로우 혜택을 제공한다. '트릭 오어 포토' SNS 인증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코스믹 리조트 관계자는 "감각과 상상이 깨어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경주의 역사와 첨단 콘텐츠를 잇는 상징이 될 것"이라며 "국내외 관광객 모두가 오감으로 즐기는 특별한 가을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7:13~18:00 숙소로 입실하여 짐 정리 후 휴식
18:00~19:00 저녁식사
탐방지 : 경주 야경 투어
탐방일 : 2026년03월01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2시간 소요)
19:00~21:00 동궁 월지 야경 투어 / 보문단지 야경 투어
[경주의 아름다운 야경, 이색 야간투어 코스로 인기
기자명 경주/이명진 기자
대경일보 기사 입력 2018.08.23. 20:08
발길마다 시선마다 문화유산으로 가득 찬 도시. 이천년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도시의 개성이 된 역사문화도시 경주에 어둠이 내리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늦은 밤까지 도시를 환하게 밝히는 눈부신 화려함은 아니지만 달빛과 어우러진 은은하고 아늑한 빛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시간을 거슬러 역사의 향기를 고스라니 느낄 수 있는 천년고도의 밤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슴 뛰는 서라벌의 밤, 경주문화재야행
천년고도의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특색 있는 야간문화행사인 ‘경주 문화재야행’ 2차 행사가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경주 교촌한옥마을에서 한번 더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지난달 열린 1차 행사는 교촌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유산과 체험 컨텐츠를 하나로 묶어 여름밤 특화된 이색 야간문화체험의 장으로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경주문화재야행은 전통 한옥마을인 교촌마을을 주 무대로, 동궁과 월지에 이은 야경명소로 새롭게 복원된 월정교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상징인 경주 최부자댁, 신라 국학의 산실인 경주향교를 중심으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품은 야사를 비롯해 야로, 야설, 야화, 야경, 야숙, 야식, 야시 등 8야(夜)를 테마로 다채로운 야간문화 향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특히 보름달이 뜬 고즈넉한 밤 정취 속 직접 만든 청사초롱을 들고 해설사와 함께 신라문화 속 조선시대 한옥마을 곳곳에 산재한 역사와 신화, 전설을 들으며 걷는 ‘교촌 달빛 스토리 답사’는 야행의 하이라이트다. 이외에도 교촌광장에서 월정교에 이르는 골목 사이사이 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전통놀이, 골목 버스킹 공연, 인형극, 십이지유등 소원지 달기, 아트마켓 등 다양한 공연과 체험 콘텐츠로 가득 채워져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만이 가진 역사성과 문화유산을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함께 밤이라는 이색적인 시간속에서 새로운 야간문화를 만들어냈다”며, “문화의 향기를 통해 천년고도의 아름다움 밤 정취를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 야경의 필수 코스,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지 않고는 경주 여행을 말할 수 없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도 쓰였다. 입장 후 보이는 목조건물은 임해전이고, 바로 옆의 큰 연못에는 3개의 섬이 세워져 있다.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한 옛 신라인들의 뛰어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된 동궁과 월지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누각과 연못, 숲이 불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연못에 반사된 전각과 나무의 생생한 빛이 아련한 느낌을 불러온다.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에 한참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맘때면 주변으로 연꽃단지가 또 일품이다. 탐스럽게 피어있는 연꽃 속 지그재그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아한 연꽃의 자태에 취하고, 은은한 향기에 또 한번 취한다.
◈왕릉과 조명의 조화, 첨성대 동부사적지 & 꽃 단지
경주는 고대 왕들의 꿈이 묻혀 있는 능의 도시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능과 고분이 발견돼 있지만 이곳 동부사적지에 산재한 신라시대의 능만큼 많지도 거대하지도 않다. 1천400여년이나 지났어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첨성대가 천년을 이어온 고대 신라의 흔적 위에 우뚝 서 있다. 너른 잔디광장을 지나 첨성대 가까이 다가가면 4만8천㎡ 부지의 야생화 단지가 온통 샛노란 황금물결의 황화코스모스가 만개해 장관을 연출하고, 울긋불긋한 백일홍이 꽃물결 일렁이는 바다를 보는 듯하다.
노을이지기 시작하는 첨성대를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이지만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8가지 빛깔의 조명이 더 해져 또 다른 아름다움이 얼굴을 내민다. 동궁과 월지가 곱게 치장한 화려함을 품었다면 첨성대의 야경은 우아하고 고요하다. 고아한 곡선이 부각되며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한다. 야간 조명을 받은 황화코스모스와 백일홍 꽃 단지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절경이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 월정교
첨성대 동부사적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알록달록한 빛으로 물든 계림 숲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숲 속 커다란 나무 아래 산책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보면 골목마다 돌담이 멋스럽게 이어지고 고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교촌마을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남산을 바라보면 왕경복원 프로젝트의 첫 성과로 새롭게 복원된 월정교가 시선을 압도한다. 고대 신라 교량 건축기술의 백미로 교각 자체도 멋스럽지만 양쪽 끝에 문루가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날이 저물어 화려한 조명이 더해지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동궁과 월지에 이은 경주의 새로운 핫한 야경 명소다. 혹자는 야경에 대해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서려있는 월정교에 오르면 교촌 한옥마을의 풍경이 또 색다르게 다가온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 문루에 오르면 일대 전경이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도심 야간투어 명소, 봉황대뮤직스퀘어 & 프리마켓 봉황장터
고도의 시가지로 들어서면 커다란 고목이 자라난 고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주의 단일고분 중 가장 큰 규모인 봉황대다. 이 봉황대 일원이 최근 핫 플레이스 황리단길과 도심상가를 잇는 새로운 야간투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세계 유일의 고분 콘서트인 ‘봉황대 뮤직스퀘어’가 열린다.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으로 천년고도의 대표적 야외공연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4일은 태풍 영향으로 열리지 않고, 8월 마지막 밤인 31일에는 폭발적인 에너지 넘치는 인디밴드 ‘크라잉 넛’이 남다른 여름나기 비법을 공개한다.
경주의 옛 모습과 현재의 감성이 공존하는 이곳에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이면 프리마켓 봉황장터가 열린다.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시장형 야간관광콘텐츠로, 황리단길을 찾는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악세사리, 중고상품에서 다양한 수제 먹거리와 감성충만한 버스킹 공연, 트릭아트 광장 등 이색적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주변으로 탁 틔인 잔디밭이 있어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삼삼오오 자리잡아 천년고도의 달밤- 정취에 빠져든다.
◈천년고도 밤의 완성, 보문호반길 & 물너울교
경주에 왔다면 보문 호반길을 둘러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보문관광단지 보문호수를 온전히 한바퀴 돌아 볼 수 있는 호반길은 시민들의 운동코스로, 관광객들의 힐링코스로 인기만점이다. 약 8km의 평탄한 호반길은 친환경 점토와 황토 소재로 포장돼 걷기로만 따지면 전국 최고다. 햇살이 비치는 아침, 노을 지는 저녁, 그리고 달빛을 따라 호젓한 밤 산책까지 언제 걸어도 좋은 곳이다.
특히 밤이 되면 보문 호반길의 매력은 절정에 달한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멀리서도 눈에 띄는 물 너울교는 풍경 자체로 마음은 평온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길이다. 보문호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전체적으로 반지형태로, 물너울교는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연인과 함께 물너울교를 건너며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해 보자. 사랑 고백은 타이밍과 분위기가 핵심이다.]
[경주 야경 10Pick
경주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신라의 달밤, 달빛은 운치를 더하고 경관조명은 신라의 화려하고 빛나는 유산을 더욱 반짝이게 돕는다. 밤의 경주에 꼭 찾아야하는 동궁과 월지부터, 과거의 유산에 현대의 기술을 더한 경주타워까지. 경주 곳곳의 야경명소를 10곳 모았다. 낮보다 아름다운 경주의 밤에 취해보자.
#1 동궁과 월지
해질녘이 되면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쉴 사이 없이 모여 든다. 경내로 들어서면 차례로 보이는 복원 건물 3곳을 지나 뒤쪽으로 향한다. 월지 주변으로 내어진 관람로를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을 따라 간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바로 거기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가장 예쁘게 담을 수 있는 포인트. 통일신라시대 태자가 기거하던 별궁이 있던 자리이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장소로 쓰였던 곳 ‘동궁과 월지’.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할 수 있는데, 2011년부터 원래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연못 월지와 복원 건물에 조명이 스미는 일몰 후부터의 시간, 화려했던 천 년 전의 신라로 시간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동궁과 월지 관람정보
위치 :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관람시간 : 09:00-22:00(매표 마감 21:30)
관람료 : 성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2 첨성대
신라의 밤, 관측자들은 첨성대 중앙에 난 창문에 사다리를 걸고 첨성대로 올라갔다. 태양, 달, 별의 움직임을 살펴 농사일을 운용하는데 활용하고, 나라의 길흉을 점쳤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첨성대’가 월성 앞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처럼 가로등, 상가의 불빛이 전혀 없었을 터이니 탁 트인 공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 보기 최적의 장소였을 듯하다. 첨성대는 몸소 하늘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뜻한다. 첨성대를 구성하는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돌단과 꼭대기 정자석까지 총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뜻한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상징한다. 천 오백년 간 한 자리를 지키며 신라의 역사를 새긴 첨성대에서, 오늘 우리의 역사를 담는다.
첨성대 관람정보
위치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관람시간 : 09:00 –22:00(동절기 21:00까지), 연중무휴
관람료 : 무료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3 월정교
10년에 걸친 복원 사업 끝에 2018년, 월정교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남천(문천)위의 아름다운 목조교량으로 신라시대에는 왕궁인 월성과 서라벌 남쪽을 잇는 관문이었다. 지금은 경주의 밤과 밤사이를 잇는 야경 명소이다. 월정교 앞에 설치된 징검다리를 건너보자. 강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월정교의 자태에 시선을 빼앗길 수 있으니 걸음 조심하는 것은 필수. 밤 10시까지 교량 내부가 공개되니 교량 내부를 거닐어도 좋다. 야경 감상 후 2층에 마련된 문루 전시실에서 월정교의 복원과정과 출토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가자.
월정교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교동 274
관람시간 : 09:00-22:00(문루 전시관 10:00부터)
관람료 : 무료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4 경주읍성
경주 시가지 중심부에 최근 새로운 야경명소로 떠오르는 경주읍성이 있다. 천년 신라의 중심지가 월성과 그 일대였다면, 신라 이후의 천년은 경주읍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쌓았다. 조선시대에는 성 둘레가 2km가 넘고, 동서남북에 출입문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고, 동쪽 성벽만 100여m 남아 있었다. 신라 이후 천년 경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경주 시내권 관광콘텐츠로 활용하고자 경주읍성의 복원이 시작되었다. 남아 있던 동쪽 성벽을 이어 쌓고 동쪽 성문인 향일문을 짓고, LED경관조명을 설치하여 2018년 11월 1차로 복원을 마쳤다. 차차 남은 동쪽 성벽과 북성벽, 북문인 공신문까지 복원이 계획되어 있다고 하니 읍성의 야경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워질 것이다.
경주읍성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동문로 31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관람료 : 무료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다음 날 일출 전
#5 봉황대&봉황로 문화의 거리
대릉원 북쪽에 대릉원일원 노동리고분군과 노서리고분군이 있다. 그 중 노동리고분군에는 ‘봉황대’로 불리는 거대한 고분이 우뚝 솟아 있다. 단일 고분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고분 비탈면에 고목이 여러 그루 자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밤에 경관조명이 더해져 야경 인생샷 명소로 알려져 있다. 봉황대의 야경을 담은 뒤, 봉황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 ‘봉황로’로 향해 보자. 황리단길이 시작되는 내남사거리부터 경주법원 건너편까지 경주 시가지를 관통하는 길을 ‘봉황로 문화의 거리’라고 부른다. 최근 ‘천년의 미소, 천년의 빛을 밝히다’라는 주제로 약 500여m 길이의 봉황로 문화의 거리에 루미나리에 경관조명이 설치되었다. 금관, 얼굴무늬수막새 등 경주의 아이콘들을 활용한 다채로운 조명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봉황대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노동동 261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관람료 : 무료
메모 : 봉황대에서 봉황로 문화의 거리 루미나리에까지 도보 2분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6 보문호반길&보문정
운치 있는 호수의 밤길을 거닌다. 특급호텔, 리조트, 콘도, 관광시설이 모여 있는 종합관광휴양지 보문관광단지에 약 50만평 규모의 거대한 인공호수 보문호가 있다. 보문호 둘레를 일주할 수 있는 ‘보문호반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야간 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도 거닐기 좋은 곳이다. 약 7km의 구간으로 일주를 해도 좋고, 특정 구간만 선택해 짧게 거닐어도 좋다. 특히, 매년 봄이면 수령 30년이 넘은 벚나무들이 흐드러져 아름다운 벚꽃길을 만들어 낸다. 봄날, 그리고 밤. 잊지 못할 보문호반길 야경 산책을 선사한다. 보문호반길 중, 우양미술관과 힐튼호텔이 있는 쪽에서 지하보도를 통해 호수 반대편으로 가면 아담한 연못과 정자가 있는 보문정에 닿는다. 낮은 물론, 밤에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보문호반길&보문정 이용정보
보문호반길 위치 : 경주시 보문로 424-33(보문호반광장)
보문정 위치 : 경주시 신평동 150-1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 10번 버스 탑승,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보문단지 정류장 하차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3:00 (계절별로 소등시간 유동적)
#7 서출지
경주 동남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연못 서출지. 통일전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서출지라는 이름은 ‘나라를 이롭게 하는 글(글 서:書)이 나온(날 출:出 ) 못(못 지:池)’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름에 전하는 삼국유사 속 설화가 하나 있다.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동남산을 찾았다가 못 한가운데에서 나온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편지가 담긴 봉투를 건넸는데, 편지에는 ‘거문고갑을 쏘라.’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 일을 범상치 않게 여긴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았는데, 그 안에는 왕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이 숨어 있었다. 왕은 못에서 나온 편지로 목숨을 구했고, 이후 그 못을 서출지라 불렀다. 서출지는 매년 여름 연꽃과 배롱나무가 수놓아 수려한 풍광을 뽐낸다. 연못둘레의 나무와 정자인 이요당에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알음알음 소문난 야경명소이다.
서출지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남산1길 17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관람료 : 무료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 11번 버스 탑승, 통일전 정류장 하차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8 금장대
형산강을 지나던 기러기들이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쉬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누각 금장대에서 경주 시가지의 야경을 담아 보자. 경주에는 세 가지 진귀한 보물과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을 뜻하는 ‘삼기팔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그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 중 ‘금장낙안(金丈落雁)’은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예기청소 위 금장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취해 기러기도 쉬어갔다는 이야기이다. 금장대는 지난 2012년 중창하여 문을 연 암벽위의 누각이다. 누각에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있고, 누각에서 형산강과 경주 시가지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장대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석장동 산 38-9
관람시간 : 06:00-22:00
관람료 : 무료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 40번 버스 탑승, 동국대병원 정류장 하차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9 감은사지
감은사는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운 절이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호국사찰로 절을 짓기 시작한 문무왕이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이어 신문왕이 완성했다. 건물지였던 금당터를 확인할 수 있고, 그 앞에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아파트 3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두 탑은 신라시대 1탑에서 통일신라시대로 넘어가면서 쌍탑을 이뤘던 가람배치의 전형을 보여 준다. 밤이면 동서삼층석탑이 경관조명으로 빛난다. 주변이 어두운 편이라 밤하늘과 석탑을 함께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감은사지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동해안로 1248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문화관광해설시간 10:10-16:30, 성수기 17:00까지)
관람료 : 무료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 150번 버스 탑승, 탑마을·감은사지 정류장 하차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10 경주엑스포공원 경주타워&루미나 나이트워크
체험, 전시, 공연, 휴식을 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서 야간 볼거리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공원 내의 전시관, 미술관, 체험관은 대부분 18시까지 운영하지만, 공원 개장은 22시까지로 새로운 야간콘텐츠를 즐기는 것은 물론, 밤의 공원을 거닐 수 있다. ‘2019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를 계기로 행사의 한 콘텐츠였던 ’신라를 담은 별, 루미나 나이트 워크‘ 어트랙션이 상시로 운영된다. 경주타워 뒤쪽 언덕에 관람로를 따라 홀로그램과 다양한 조명이 어우러진 빛의 길이 펼쳐진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화한 전망대 ’경주타워‘도 은은한 조명이 비춰 야경이 아름답다.
경주엑스포공원 관람정보
위치 : 경주시 경감로 614
이용시간 : 10:00-22:00(전시,체험관은 18:00까지) / 루미나 나이트워크 17:00-22:00(매표마감 21:00)
입장료 : 통합입장료 성인 8,000원(‘19.12.31까지 적용) / 루미나 나이트워크 성인 5,000원(17:00이후 공원 입장료 포함)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 0번, 100번, 150번 버스 탑승,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정류장 하차
야간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 후 ~ 22:00]
[경주야경투어(Lite)
경주야경투어(Lite)는 아름다운 경주의 야경을 즐기실 수 있는 합리적이고 낭만적인 코스입니다. 아름다운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상호명 : 경주시티투어 천마관광(주)
대표 : 서병조
주소 : 경북 경주시 태종로685번길 6 2층 (노서동 243-15)
사업자등록번호 : 505-81-00300
통신판매업신고 : 2013-경북경주-00100
관광사업등록증 : 제 2009-000001호
대표전화 : 054-743-6001
팩스 : 054-743-6009
코스안내
동궁과 월지 대형주차장~동궁과 월지~첨성대~계림~교촌마을(최부자댁)~월정교~동궁과 월지 대형주차장
운행안내
· 운행일 : 매일· 시간 : 19:20 ~ 22:00· 최소출발인원 : 15명· 인원 미달로 운행이 취소될 경우 당일 16시 이후 사전 연락드립니다.
요금안내
· 1인 (5세~) : 17,000원
입장요금 안내
입장료 포함
시작시간/장소안내
· 19:20 동궁과 월지 '대형주차장' 안내판 앞 (당일 18시 이후 담당해설사가 연락드립니다.)
안내사항
· '경주야경투어'를 첫번째 방문지에서 합류해 진행하는 상품입니다. (동궁과 월지 합류)· 투어 종료 후 동궁과 월지 또는 다른 장소에서 하차 가능하며 당일 담당해설사에게 전달 바랍니다.· (하차장소는 '탑승장소/시간 > 야경투어 탑승시간' 탭에서 확인) 바로가기· 저녁식사 후 투어 참여 바랍니다.· 투어 중 해설은 한국어로만 진행됩니다.·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당일 취소 및 투어 불참 시 환불이 되지 않습니다.(환불규정 참고)· 개인여행자보험은 포함되어있지 않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직접 가입 후 참여 바랍니다.]
[동궁 월지 야경 투어
동궁과 월지는 경주 야경의 대표 명소로 09:00~22:00 운영하며 입장 마감은 21:30입니다.
관람 정보
입장료는 성인 3,000원·청소년 2,000원·어린이 1,000원이며, 6세 이하·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주차는 무료이며 공간이 넓습니다.
경관조명은 일몰 후부터 관람 종료 시까지 점등됩니다.
연중무휴로 운영합니다.
야간 투어 팁
야경은 일몰 후 20분~1시간 뒤가 가장 아름답고, 둘러보는 데 30분~1시간 정도 걸립니다.
주말 혼잡을 피하려면 평일 저녁이나 해질 무렵 방문을 권합니다.
입구보다 안쪽이 한적하고, 끝 쪽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이쁘다는 후기가 있습니다.
황리단길에서 도보 5~7분, 시내와 접근성이 좋아 뚜벅이 코스로도 인기입니다.
월정교와 함께 야경 코스로 묶어 방문하기 좋습니다.]
[보문단지 야경 포인트
경주타워-물레방아 광장-보문 콜로세움-보문정-플래시백 계림
경주타워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안에 있고 황룡사 9층목탑을 음각으로 조각한 타워다.
보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인 82m와 같은 높이에 목탑의 외형을 음각화하여 지은 전망 타워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 선생이 디자인하였다. 82m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4면의 전면 유리창에 가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을 통해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라 왕경의 부활을 주제로 한 미디어 전시가 펼쳐진다.
미디어 전시 시간 외에는 4면의 유리창 밖으로 보문호와 보문관광단지, 경주엑스포대공원 전경을 한눈에 담는다.
한층 아래로 내려가면 신라왕경도의 복원 모형 전시를 AR과 함께 만날 수 있다.
그 밖에 야외 옥상정원, 전망대 카페 등 휴식공간도 있다.
-입장료 :
입장료 성인 12,000원 / 청소년 및 어린이 10,000원
연간 회원권 35,000원
-주차정보 : 경주엑스포대공원 주차장 (무료 이용)
-운영시간 안내
5월, 9월 (10시 ~ 19시)
6월,7월,8월 (10시 ~ 20시)
물레방아 광장 : 물레방아광장은 경주 보문단지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지름 13m의 커다란 물레방아가 있는 광장이다. 이 물레방아는 덕동호에서 수로를 타고 흘러내리는 자연 수압으로 돌아간다. 물레방아의 물받이가 108개로 백팔번뇌를 씻고 행복을 나누어 갖자는 뜻이라고 하며 주변의 대나무숲과 조화를 이루며 인공 폭포와 작은 호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원이다. 봄이면 벚꽃의 만개로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며 밤에는 오색조명의 화려함에 야간 사진 명소로도 유명하다. 보문호 관광단지 내 시설 보문호수, 목월공원도 있고 차로 5분 거리에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경주 바니베어 뮤지엄과 경주엑스포대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보문 콜로세움 : 보문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보문콜로세움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모티브로 만든 건물로 카페, 음식점, 키덜트 뮤지엄 등이 입점되어 있는 복합상가건물이다.
보문호수를 배경으로 조각상이 놓여있는 정원카페와 음식점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식사 할수 있다. 카페는 로마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이국적인 건물과 조경이 아름다운 야외 테라스가 있어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공간이며, 1층과 3층에 위치한 키덜트뮤지엄은 장난감, 영화, 음악을 주제로 구성된 이색 박물관으로 클래식한 수집품부터 트렌디한 장난감, 굿즈가 전시되어 있다. 최초의 영사기인 촛불 영사기, 에디슨의 발명품인 전축과 축음기등이 전시된 1층 전시장과 스타워즈, 마블시리즈, 픽사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인형과 옛 만화영화 속 토이를 모아놓은 아트토이전시관, 버려진 물건을 재조립하여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정크아트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물여울공원, 동궁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보문정 : 벚꽃으로 유명한 곳.
보문정은 CNN에서 ‘한국의 비경’으로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팔각 정자와 2개의 연못 주위로 벚나무, 단풍나무 등이 식재되어 어느 계절 하나 빼놓지 않고 풍경을 감상해야 할 곳이다. 봄이면 보문정 주변을 수놓는 새하얀 벚꽃들로 빼어난 경치를 선사한다. 특히, 수양버드나무처럼 꽃가지가 축 늘어진 수양벚꽃을 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여름이면 보문정 앞 연못에 수련이 그득 피어나 절경을 더한다. 단풍 물드는 가을은 화려하고, 운 좋게 설경을 만난다면 겨울의 보문정도 꼭 담아야 한다. 어느 계절이건 아름다운 덕에 이곳은 사진작가들이 사랑하는 장소로도 손꼽힌다.]
플래시백 계림
경주시에 위치한 플래시백 계림은 신라의 건국부터 통일 신라까지 아우르는 지역의 고유한 서사를 기술·공간·빛으로 재구성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인 1,700평, 최고 층고 11미터의 공간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신라의 신화·설화 속 세계를 직접 걸으며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초대형 프로젝션과 고해상도 미디어, 몰입형 사운드가 어우러진 전시는 13개 공간이 하나의 대서사로 연결되어 전통과 현대 기술이 어우러진 연출로 시간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남로 14 (신평동) 플래시백 계림
문의 054-705-3700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https://flashbackground.co.kr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flashback_gyerim
휴무일 : 연중무휴
이용시간 10:00~20:00
이용요금
- 성인 25,000원
- 청소년 21,000원
- 어린이 17,000원
- 유아 무료]
21:00~22:30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 후 휴식
22:30~ 취침
해파랑길 21코스(축산항~영덕해맞이공원) 지도
경주 관광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