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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태복음72*병자와 의사

작성자야곱과함께(withjacob)|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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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72*병자와 의사

마태복음 9장 9-13절 / 이상봉 목사

 

➤“9. ¶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금 받는 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그분을 따르더라. 10. ¶ 예수님께서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에, 보라,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하였으나 12.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13. 오히려 너희는 가서,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마9:9-13 KJV)

 

주님은 어느 날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는 세관 앞을 지나가시다가 거기서 일하고 있던 세리 마태(레위)를 제자로 부르셨다. 세리(稅吏)는 어떤 사람인가? 세리는 세금을 거두는 사람인데 어느 나라에서든지 세금 거두는 사람은 크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주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그들이 정복자 로마인과 그들의 꼭두각시인 압제자 헤롯에게 바치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무리하게 세금을 짜내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규정보다 많은 세금을 거두어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착복했기 때문이다.

 

마태는 그런 세리였다. 그러므로 그는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유대교의 '거룩한' 지도자들로부터는 더욱 멸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없었고 오직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여러 '죄인'들만 있었다. 주님이 그를 제자로 부르신 후 그는 자기 집에서 주님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그때 그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함께 식사를 했지만 그들은 다 동료 세리와 '죄인들'뿐이었다.

 

주님은 왜 이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바로 이런 죄인들을 건지러 자기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회복시켜서 자기 아들로 삼으시기를 기뻐하신다. 즉 주님이 마태를 부르신 것은 주님이 바로 마태 같은 자들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주님은 자신의 말대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이런 주님의 부르심에 마태는 즉각 반응하여 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딸았다. 참으로 주님은 은혜롭고 마태는 복(믿음)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이 세리를 그 나라의 기둥으로 쓰일 일군으로 부르신 것에 대해 오늘 우리는 특별한 느낌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마태 같은 자는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도 우리 안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보여주시는 바는, 이런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며 당연하며 순리적인 일이라는 사실이다.

 

➤“1.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도다. 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 행로를 따라 걸었고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3.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실 때 사용하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5. 참으로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6. 또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우리를 함께 앉히셨으니 7.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1-9)

 

하나님은 언제나 죄인을 불러 의롭게 하시며 거룩케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치 못한 사람은 없다. 도리어 큰 죄인일수록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 합당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일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비난하였다. 마태의 집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주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경건치 못한 자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했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그는 마귀 들렸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그는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 하도다. 그러나 지혜는 자기 자녀들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느니라. 하시니라.”(마11:18-19)

 

이에 대해 주님은 ➤“11.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하였으나 12.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는 말씀으로 답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은 그런 자들을 거절하거나 배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필요로 하며 그들을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의사에게는 환자가 필요하다. 마지못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맞이하며 환자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만 있다면 의사는 있을 필요가 없다.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 의과대학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의과대학에 가장 유능한 학생들이 지망한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는 건강치 못한 사람이 많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연약함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다 예비 환자이며 오고 오는 세대에도 항상 환자는 넘쳐날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알게 모르게) 다 환자이다,' 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병원에서 전 분야에 걸쳐 정밀 검사를 받는다면 우리 중 대부분이 환자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언젠가는 결국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의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육신의 형편이 이럴진대 영적 형편이야 두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정죄 되었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기 양심 앞에서 다 죄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주님은 자신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罪人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에는 죄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한 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 왕이 한 감옥을 방문하였다. 왕은 죄수들에게 '너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고 한 사람씩 물어보았다. 그때 모든 죄수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아무 죄도 없다고 말했다. 자기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잡혀 와서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그 중 한 죄수만이 자기의 죄를 인정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큰 죄인이며 여기서 내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간수장에게 '즉각 이 사람을 여기서 석방하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선하고 무죄한 사람들만 있는 곳이므로 죄인이 있기에 합당치 않다. 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 가운데 불의한 죄인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니 즉시 이 자를 여기서 내 보내라"

 

감옥에는 오직 죄인이 있을 뿐이다. 종류가 있다면 하나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죄인이고 하나는 자기의 죄를 인정치 않는 죄인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도 인류는 다 같은 죄인일 따름이다. 여기도 두 종류의 죄인이 있는데 하나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자복(自服)하는 죄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죄인이다. 혹 세상 감옥에는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인류의 죄인 됨에는 예외가 없다.

 

➤“19. 이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율법이 어떤 것들을 말하든지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나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나니 율법에 의해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롬3:19-20)

 

이것이 하나님의 진단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영적으로 볼 때 세상에는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온전한 사람, 의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죄인 곧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죄인과 그것을 모르고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며 멸시하는 어리석은 죄인만 있을 따름이다.

 

요한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6. 만일 우리가 그분과 교제한다고 말하며 어둠 속에서 걸으면 우리가 거짓말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서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8.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따라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1서1:6-10)

 

무엇이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고 무엇이 어둠 가운데서 행하는 것인가? 요한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요한이 말하는 진실한 삶, 빛 가운데의 삶은 사람이 자기의 죄인 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은혜를 구하며 사는 것이고 반대로 거짓된 삶, 어둠 가운데서의 삶은 자기의 죄를 모르고 도리어 자기가 선한 줄 알고 형제를 멸시하며 교만히 행하는 것이다. 요한은 신자들이 형제를 사랑하며 용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이 글을 쓴 것이다. 요한(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교회에 형제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에는 생명이 없는 것이다. 신자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멸시하며 거절한다면 그는 생명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는 것이며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며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의 기초는 자기의 실상을 아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 즉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동정하고 용납하는 것은 그의 연약한 형편 곧 그의 죄인 됨을 이해할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며 용납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그러한 이해는 나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죄임임을 알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진실한 사람만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자기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그 사람만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다. 어두운 사람은 어두운 행동을 한다. 자기를 보지 못하니 남을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고 멸시하는 어이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요한은 교회에 이런 풍조를 만연하게 될까 우려하여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음을 우리가 아노라. 그러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요일3:14) ➤“20 어떤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니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요일4:20)

 

이것은 곧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거절하며 자기를 스스로 높여 교만하게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다. '죄 없다' 하는 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 중 말로는 자기가 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 '나는 죄인이고 인류는 다 죄인이다.' 라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이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나타난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불신앙과 무지(진리 없음, 어둠)가 밖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주님은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만일 우리가 형제를 죄인으로 멸시한다면 그것은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규정하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신 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죄인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죄인은 죄인이며 냄새나는 것이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고 은혜를 받더라도 오랫동안 죄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며 오래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피운다. 죄인이 죄인인 줄 몰라서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와 같은 죄인이기에 그리고 미쁘신(신실하신) 주님이 이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깨끗케 하시고 다루어 온전케 만드시기에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수용적이며 낙관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오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선을 원하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선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거기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만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다만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은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죄인)을 불러 의인을 만들려고 오셨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으라고 하셨다. 제사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서 즉 하나님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너희는 다 형제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같은 죄인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다 형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용납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나아와 은혜를 얻기를 바라신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고 거절한 것은 그들 안에 生命果(하나님의 생명)가 없고 善惡果(마귀에게 속은 거짓된 생각)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정죄하고 싸우고 분열하는 것은 바로 이 선악과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생명'에 있고 '사랑'에 있다.

 

그러나 사탄에게 속은 아담(인류)의 관심은 언제나 '선(善)'에 있고 '아름다움(美)'에 있고 '좋은 것'에 있다. 자기에게 무언가 선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그것을 추구한다. 자기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는데도 즉 자신은 더럽고 못났는데도 다른 사람에게서는 끊임없이 그것을 찾는다. 물론 한편으로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사람이 (아름답고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 깔려 있다. 그러나 지금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져 버린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선과 아름다움의 근원인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람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서 선과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안 나오면 정죄하고 멸시하고 비관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 안에서 선(아름다움)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신다. 내가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형제들이 함께 은혜를 받도록 사람들을 그 은혜의 세계로 이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제들 안에서 (선악 간에 판단하고 시비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며 생명을 목적으로 모든 일을 하기 원하신다. 사람을 살리는 수단은 긍휼과 자비이며 용납과 희생이며 섬김과 피차 가르치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은 인류는 항상 무언가 '크고' '멋지고' '힘세고' '잘나고' '잘하는' 것만 추구해 왔다. 그렇지도 못하며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좋고 나쁨을 따지고 잘하고 못하는 것만 따져왔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이것은 철저히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극단에 이를 때 히틀러처럼 자기 기준에 맞는 (좋은, 선한) 사람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없애버리는 일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사탄의 올무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죄인이나 세리가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대로 토색질하지 않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며 율법을 지킨 (바리새인 같은) 소위 '경건한 신자'가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같은 죄인이며 다 같은 사람이다. 다 하나님의 은혜(구원)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서로 정죄하고 멸시하고 거절해서는 안 된다.

 

멋진 제사(예배), 멋진 사업, 멋진 성전, 멋진 목사, 멋지고 완벽한 인간,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 사탄에게서 나온 소원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세상 종교를 이룰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우리 안에서 (사람이 살아나고 아들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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