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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와 같이 하라*배의신 목사

작성자야곱과함께(withjacob)|작성시간26.06.09|조회수1 목록 댓글 0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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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25-37절 / 배의신 목사

 

➤“25. ¶ 보라,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그분을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까? 하매 26.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율법에 무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하시니 27.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매 28.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대답하였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 하시니라. 29. 그러나 그가 자기를 의롭게 만들려고 예수님께 이르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나이까? 하니 30.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매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반쯤 죽인 채 버려두고 떠났느니라.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갔고 32. 또 그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가 그곳에 있을 때에 와서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갔으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을 하다가 그가 있는 곳으로 와서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즙을 붓고 그의 상처를 싸매며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 떠날 때에 이 데나리온을 꺼내 주인에게 주며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을 돌보아 주라. 당신이 얼마를 더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느니라. 36. 이제 너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들을 만난 자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 하시니 37. 율법사가 이르되,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25-37 KJV)

 

※ 들어가는 말

 

지난 주일에는 ‘네게 무슨 상관이냐?’라는 주제로,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리스도인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가정 안에서의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정립해 봅시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것이어서 신앙적인 정립이 꼭 필요합니다. 주께서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 들어 있는 산상수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1-2절입니다. “1.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도록 판단하지 말라. 2.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내 판단으로 헤아리는 일을 너무도 쉽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 정립은 중요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어느 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인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잘 아는 율법 교사이기 때문에 ‘너는 율법의 가르침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목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답변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핵심 신앙의 법입니다. 율법 교사다운 정확한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요약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할 정도면 율법의 의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비유 속의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아는 만큼 행동하지를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11:46절입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 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를 가르치십니다.

 

※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한 시대를 호령했던 거대한 나라 로마는 국가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파괴되면서 무너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도 가정의 파괴 정도가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한국 개신교인의 교회 활동과 신앙의식’이라는 자료집을 내어놓았습니다. 이 자료에서는 1000명을 표본으로 조사했는데, 이혼 문제에 대하여 64.1%가 해서는 안 되고, 34.2%가 상황에 따라 할 수 있으며, 1.7%가 해도 무방하다고 답했습니다. 비기독교인들과는 불과 7%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가정생활의 만족도도 조사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만족한다.’는 65.7%이고, 비 기독교인들은 65.5%로 조사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는 ‘도덕 불감증과 가정의 파괴’였습니다. 로마 가정들의 붕괴와 함께 역사가 무너져 가는 그 마지막 황혼을 지켜보면서 한 철학자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 그리고, “신이여, 기도하는 가정을 로마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율법 교사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가 대답한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목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2장37-40절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요약하여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목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구약의 율법은 613가지인데, 그 기초가 십계명입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기초인 십계명을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십계명의 1-4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법이며, 5-10계명이 이웃과의 관계에 관한 법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았고, 여기서 살펴야 할 사항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이웃 사랑’입니다. 거대한 로마제국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면서 노예를 만들어서 자신들을 섬기게 했습니다. 로마 인구의 3분의 2는 노예들이며, 시민은 3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가정생활을 버리고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의 난잡한 삶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일인 가정이 전체 가정의 거의 절반에 이릅니다. 그런데 결혼은 줄어드는데, 이혼이 더 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이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았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결혼 19만 3천 건, 이혼 9만 건, 이혼율 47.3%. 우리나라도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동성애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황당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동성혼, 성전환자 등. 이는 나라가 멸망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가지라고 하십니다.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의 첫 번째는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16절입니다. “16.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나는 아내 버리는 것을 미워하노라. 사람이 자기 옷으로 폭력을 덮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영을 조심하여 배신하지 말라.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하시느니라.” 가정에 관한 가장 잘 알려진 말씀인 에베소서 6장1-4절을 봅시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3. 이것은 네 일이 잘되고 네가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4.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주 안에서의 순종과 양육’이라고 하십니다.

 

부부 사이에 관하여는 에베소서 5장22-33절에 비교적 긴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요약하여 22, 25, 33절을 봅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이 말씀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그 정도로 부부의 관계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와 부모와 자녀가 이루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성실하게 행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에게 본을 끼치고 따르는 하나 된 구성체를 말합니다. 특히 이 구성체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이 시대의 가정을 표현하여 ‘위기의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52-53절입니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특히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복음으로 인한 불화와 분쟁을 말씀합니다. 이런 시대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으로 본이 되고 본을 따르는 신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두 번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물었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이웃에 대한 정의를 알 수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삶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이나 성전의 일을 하는 레위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천대하는 사람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신분이나 지위를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보십니다.

 

누가복음 18장9-14절에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특히 세리는 죄인으로 낙인을 찍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교만한 기도가 아니라,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세리의 기도를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람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즉, 우리는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 재력이나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의 진정성과 신실한 행위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기초여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서 모든 것을 잃고 거의 죽게 된 사람을 자기 시간과 노력, 돈까지 들여서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행하기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는 시대를 초월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좀 더 실천 가능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를 보여주시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31-46절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40-45절을 봅니다.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곧 내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41. 그때에 그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며 43.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히지 아니하였으며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리니 44. 그때에 그들도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를 섬기지 아니하더이까? 하리라. 45. 그때에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이웃관계는 우리 주변에서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사랑과 정성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사랑과 정성으로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합니다. 즉 나에게 좀 더 유익한 방향으로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외되고 보잘것없고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사랑과 정성으로 대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당에서조차 이런 차별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1-4절입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집회에 금반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오고 또한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3. 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에게 이르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그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거기 서 있든지 여기 내 발 받침 밑에 앉으라, 하면 4. 너희가 너희끼리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는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골로새서 3장23-24절에서는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차별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부임하게 된 예레미야 스티펙(Jeremiah Steepek) 목사가 그 교회의 신앙적인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임하는 주일 아침에 홈리스(노숙자)로 변장하고 그 교회 입구에서 30분간 교회에 들어오는 교인들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7000명 이상의 교인들 가운데 단 3명이 ‘hello’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배가 고파 음식을 사려하니 잔돈을 좀 달라.”라고 구걸을 했지만,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당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는 맨 앞자리로 갔습니다. 하지만 예배 위원들의 저지와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뒤에 앉아 모든 진행 상황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장로들이 일어나 새로 부임하는 목사를 소개했습니다. “Jeremiah Steepek!” 성도들은 기대에 넘쳐 박수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때 맨 뒷자리에 있던 스티펙 목사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랐고 교인들은 경악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곧장 마태복음 25장31절-40절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교인들은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흐느껴 우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타펙 목사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예배를 마쳤다고 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우리도 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서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는 주님 앞에 서기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의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잘 정립하여 부끄럽지 않은 신앙으로 세워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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