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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1강
누가복음 1장1절-4절 / 황용현 목사
황용현 목사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미국 미시간 주립대원, 피츠버그 주립대(학사) 및 동 대학원(경영학 석사, MBA) 졸업, 국제 선교기관인 AMI(Antioch Missions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자 미전도 종족 선교에 앞장서 온 분입니다.
누가복음 기록자 루가(Λουκάς 루카스)는 어떤 인물인가?(눅1:1-4)
오늘부터 제가 선교사님들과 새롭게 누가복음 강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장1-4절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1. 우리 가운데서 매우 확실히 믿게 된 그 일들에 관해 2. 처음부터 목격자요 또 말씀의 사역자인 자들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전해 준 그대로 차례대로 제시하여 밝히 보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댔으므로 3.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4. 이것은 각하에게 이미 설명된 그 일들이 확실함을 각하께서 아시게 하려 함이나이다.” 아멘.
여기 보면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분을 ‘데오빌로(θεόφιλο)각하라고 그랬습니다. 데오빌로라는 분을 누군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각하’로 번역된 이 단어(κράτιστος)가 단순히 경칭의 의미인 ‘님’이나 ‘존귀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단어가 고위직의 호칭으로 단정하는 것은 힘들다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도 똑같이 수신자 이름이 데오빌로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두 가지 신학자들의 해석이 있습니다.
데오빌로하면 첫 번째는 이름대로 데오빌로 각하. 이 말은 로마정권에 높은 고관이 바울이나 루가를 통해서 기독교에 입문했는데 그분에게 기독교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인물로 보는 견해가 하나가 있고 두 번째 해석은 이 당시에 로마정권이 기독교에 대한 핍박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은유적인 상징적인 표현으로 데오빌로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나? 라고 보는 겁니다. 데오 라는 것은 하나님이고 빌로 하면 필레오 그래서 형제간의 사랑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석하느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렇게 그 당시에 살아있었든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이방기독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수신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라고 보는 견해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저에게 어떤 것이 목사님 맞습니까? 그러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개다 수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서로 싸움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은 24장까지 있는 아주 긴 책입니다.
우리가 긴 여정을 같이 걸을 테인데 성서학자들은 공관복음이라는 말을 씁니다. 공통적으로 본다. 라는 의미에서 뭐냐면 예수님을 보는 시각이 공통적으로 한 시각을 가지고 보는 그것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세 복음을 공관복음이라 그럽니다. 같은 시각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느냐면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인성차원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공관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공관복음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왕 중에 왕이시다 이런 측면에서 강조하고 마가복음은 이분이 성육신하셨는데 고난을 받는 하나님의 종이다 고난 받는 분이시다 고난 받으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이런 측면에서 썼습니다. 누가복음은 뭐냐면 이분은 인자시다 완전히 100% 하나님이시지만 100% 인성을 가지신 인간이시다. 라는 측면에서 강조한 것이 누가복음이다. 이렇게 신학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와 다르게 완전히 100% 하나님이시다 라는 측면으로 쓴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과 세 복음은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입니다. 그러면 성서는 저자다 몇 명이라고 그랬습니까? 저자가 신구약 합해서 약40여 명인데 그중에 모든 저자들이 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비 유대인 한분이 계신데 그분이 루가입니다. 헬라어 (Λουκάς 루카스)라는 분은 이방인으로써 성서를 기록하신 분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루가는 특별한 분이십니다. 차별성이 있고 독특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루가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인물의 배경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이 시간에 가지려고 그럽니다. 평소에 여러분들이 많이들은 부분도 있지만 또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이 새로운 각도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우리가 공부하는 거기에다가 더하여서 같이 상고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루가는 어떤 인물인가?
첫 번째 이분의 고향은 어딘가? 라고 물어보면 이것도 몇몇 학설들이 있지만 그것을 쉽게 말하면 안티오키아(Ἀντιόχεια) 고대 시라아출신의 이방인으로,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안디옥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딱 한군데 그 말이 나옵니다. 바울이 하신 말씀인데 골로새서 4장14절에 사랑을 받는 의사 루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자기 오른편 왼편에 항상 조력자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분은 디모데고 한분은 루가입니다. 루가는 항상 바울의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바울 옆에 계시다가도 바울이 필요하면 에베소로 가시오, 빌립보로 가시오, 하면 명령에 의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거기 계시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고를 드리는 분인데 루가는 그게 아니고 항상 바울 옆에 붙어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는 뭐라고 그르냐면 내 사랑하는 참 아들이다. 영적아들이다 또는 내 아들이다. 이런 표현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는데 누가에게는 그런 표현을 안 했습니다. 누가에게는 내 아들이다 그런 말을 안 했습니다. 왜 안했을까요. 바울이 누가를 존경했고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누가가 개종하기 전에 종교가 뭐였습니까? 시리아사람들의 그 당시의 종교는 바벨론종교를 믿고 있었던 분입니다.
누가가 언제 바벨론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가 역사를 보면 지금 이분이 안디옥에서 의사를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을 바울이 언제 만났을 것 같습니까 안디옥에서 제일 먼저 만났다면, 사도행전 16장10절에 보면 동행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라는 단어를 썼다고 그랬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사도행전을 쓰시면서 그 전에는 저희가 하는 삼자적인 표현을 쓰다가 사도행전 16장10절부터 2차 여행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디로 갔다 우리가 라는 말은 자기와 바울과 또 다른 분을 다 포함합니다.
적어도 1년 정도는 선교사 훈련이 필요했을 겁니다. 50년에 개종했다면 무리가 있는 겁니다. 왜냐면 훈련과정이 없는 겁니다. 우리가 훈련받는 식으로 적어도 1년은 훈련받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훈련을 받은 기간을 생각한다면 48년이나 49년에 이분이 개종했을 것으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이분이 얼마동안에 바울과 동역을 했을까? 지금 바울과 동역이 시작이 된 게 주후50년입니다. 주후 50년 2차 선교여행이 시작되고 52년에 2차 선교여행이 끝났습니다. 그때도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2차 선교여행 끝나고는 잠깐 안디옥에 왔다가 또3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게 주후 53년에서 57년까지3차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이때도 항상 루가가 바울 옆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울이 4차 선교여행을 할 때 63년부터 67년까지입니다. 이때 잠깐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냐면 이분이 시도행전을 쓰시기 때문에 잠깐 떨어져 계셨지만 주로 바울과 같이 동행 했습니다. 그리고 67년에 바울의 유언의 서신인 디모데후서를 쓸 때 이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는 말이 있습니다. 디모데야 너는 에베소에 있는데 내 옆에 루가만 나와 같이 있다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4장11절에 이 말을 보면 디모데는 사역지 여기저기 다니지만 누가는 항상 바울 옆에 있음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68년에 바울이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현장 옆에도 분명히 루가가 계셨을 겁니다. 디모데도 같이 계셨을 겁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나라에 가시고 루가가 바울의 이 사역을 받아가지고 열심히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다니면서 복음 사역을 하셨는데 문서에 의하면 루가가 23년을 더 사역을 했습니다. 바울이 주님나라에 가신 이후에 91년에 로마에서 교수형을 받고서 순교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개종해서부터 바울순교까지가 18년에서 20년 바울과 같이 동역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는 또 23년을 더 바울신학으로 가르친 분이니까 약40년에서 43년 꽤 많은 시간을 바울과 동거했던 사람으로 바울에게는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으로 시리아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루가는 어떤 동역의 관계가 있었습니까? 그러면 첫째로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였다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떠나지 않으신 겁니다. 왜냐면 바울이 육신적으로 몸이 약했던 분입니다. 하나님이 약한 분을 쓰셨습니다. 일부로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7절에 주후55년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말이 자기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다. 그래서 어디가 약한지 모르지만 눈이 안 좋았다고 보는 분들의 견해가 많습니다. 시력이 약했다. 라고 보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면 이분이 가끔 성서를 대필하게 했습니다. 본인이 주로 썼지만 몇몇 성경들은 대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가시 이것 뿐 아니라 이분이 육체적으로 상당한 고난을 받았던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1-28절에 고난의 내용을 바울이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21. 나는 마치 우리가 약한 자들로 지내 온 것처럼 모욕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어떤 일에든 담대하면 (내가 어리석게 말하지만) 나도 담대하니라.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정도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고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고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지치고 아프며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며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28.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들을 위해 염려하는 것이라.”
이런 모든 육제적인 고통에 대해서 기록을 한 것이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매 맞고 퉁퉁 붇고 다리가 부러지고 하면 누가 와서 옆에서 도울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누가가 항상 약과 붕대 들고 다니면서 바울의 뒷바라지를 하였음이 틀림없는 겁니다. 육체적인 병만이 아니고 바울은 또 혼적인 병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이분에게도 쓴 뿌리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왜냐면 이분이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외로움이 엄습해오고 주변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이단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비난하고 자기와 같은 종족들이 특별히 자기를 무시하고 또 같이 사역했던 분들 중 일부는 배반하고 떠나버리고 이분에게도 좌절이 있고 마음에 아픔이 있는 겁니다. 그런 아픔 속에서 주님께서 그분에게 위로해주고 성경의 말씀으로 위로해주고 그래서 이분의 편지 속에 그게 다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영적인 아픔입니다. 영적인 아픔이 있을 때마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려서인지 바울을 위로해주지 못하지만 분명 누가는 바울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소망을 부어주고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울이 이런 육적인 아픔 또 혼적인 아픔을 빌립보교회에 피력한 것을 잠깐 볼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24-25절에 바울이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은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23. 이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좋으나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
나 정말 이 세상 살기 싫어 너무 힘들어 육적으로도 힘들고 영적으로도 힘들고 그런데 내가 육신으로 하고 있는 이것이 왜 그러느냐면 너희들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이분이 대단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지금 저쪽 동네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울은 저쪽 동네를 구경을 다 하신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1-4절에 보면 저쪽 동네 3층천구경을 다 하고 오신 분입니다. 주후41년에 저쪽 동네를 구경을 다하시고는 지금 빌립보서는 61-62년입니다. 20년 후에 이분이 괴로울 때마다 나 저쪽 동네에 빨리 가고 싶은데 이곳에서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느냐?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겁니다. 바울에게는 그런데 주님은 너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분들을 네가 섬겨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과의 동역관계 첫째 부분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주치의였다. 육적병과 영적병을 고쳐주는 주치의였다. 그런데 두 번째 영적 병의 주치의를 지금 우리표현으로 말하면 바울의 카운슬러(counselor)였다 어더바이저(adviser)였다고 우리가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4장14절에 보면 바울이 누가를 이야기할 때 나의 유일한 내가 존경하는 내 카운슬러(counselor)다. 이렇게 우리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가라는 이분을 바울이 상당히 육적으로도 기대고 있고 혼적으로도 기대고 있고 어려울 때마다 카운슬러(counselor)받고 도움을 받고 격려를 받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역적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역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누가가 바울을 도와주었는가? 첫째는 성령님이 바울에게 너 여기에다가 편지를 쓰라 하면 바울이 편지를 쓸 그 당시에 우리처럼 좋은 환경에 있지 않고 노트도 좋지 않고 여러 가지로 환경이 나쁜데서 쓰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파피루스에 쓰기도 하고 별로 안 좋은 환경 속에서 글을 쓸 터인데 그럴 때 누가가 대필을 해준 것들이 있습니다. 바울서신 중에서 몇 개를 그러니까 루가는 교육을 받은 분이시고 헬라어도 잘하시고 영적으로도 아주 성숙하시고 이러니까 바울서신에 대필을 루가가 기록한 몇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가 갈라디아서입니다.
주후 49년에 갈라디아서 6장11절에 보면 바울이 네가 친필로 쓴 것을 보라 그러니까 마지막에 문안하실 때는 바울이 친필로 사인하는 식으로 하셨습니다. 둘째 서신은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주후51년에 데살로니가후서 3장17절에 보면 바울이 내가 친필로 이 문안을 한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대필해 주었다는 겁니다. 셋째는 고린도전서도 그렇습니다. 주후55년에 고린도전서 16장21절에 보면 똑같이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골로새서는 주후 60-62년인데 골로새서 4장18절에 이렇게 했습니다. 로마서는 주후57년에 썼는데 로마서도 바울이 직접 쓰지 않고 로마서 16장22절에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랬듯이 나머지 바울서신들은 바울이 직접 쓰셨지만 앞에서 제가 명시한 이 성경들은 메시지는 바울이 다 받으셨지만 바울이 구두로 이분들에게 말하여 쓰게 한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의지하고 바울을 도왔던 분이 여기 보면 누굽니까, 누가입니다 이렇게 누가는 누가복음을 이분이 쓰실 때도 그렇고 사도행전을 쓰실 때도 그렇고 바울이 살아계실 때거든요 누가복음은 언제 썼느냐면 주후 60-62년에 썼습니다. 이게 언제냐면 바울이 1차 로마가택연금 될 때입니다. 그때에 로마에 같이 있으면서 바울은 자기 가택연금 당하셨고 누가는 그 안에 안계시고 딴 곳에 계시면서 바울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가르침을 받아가면서 바울이 주는 모든 정보를 받아가면서 또 격려까지 받아가면서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곁에 항상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주는 모든 경험담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누가복음을 기록했는데 누가복음을 쓴 그 기간은 주전4년에서부터 주후30년까지 예수님탄생부터 예수님 부활승천까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처음12장까지는 베드로를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바울을 부각시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항상 뒷전에서 그림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특별한 종들을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똑같이 누가복음에서도 34년 동안에 모든 역사들을 볼 때 예수님을 부각시키는 일을 이분이 집중적으로 합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신기한 것은 누가복음에서도 절대로 자기 이름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면 자기이름이 그기에 없습니다, 내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도대체 이 내가가 누구냐 또 두 번째 역사성인 주후30년에 예수님의 승천부터 시작해서 바울이 1차 로마감옥까지 그때까지 약30년 이야기가 사도행전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예수님 탄생부터 주후60년까지의 60년의 초대교회의 역사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인 겁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복음입니다, 우리 신학자들이 볼 때 이 두 권이 없으면 성경을 우리가 해석하기가 불가능하고 기독교를 해석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루가가 썼는데 신기하게도 루가는 누가복음 전체 34년 그런데도 썼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처음 12장까지는 다시 말하면 사도행전 주후30년부터 이 사람이 언제 사도행전을 쓰게 되었냐면 주후50년까지 50년에 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글을 썼잖아요, 그래서 첫20년 스토리는 사도행전에 루가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누가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50년부터 60년까지 10년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그때 10년 동안 실제로 사역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역사를 이분이 쓰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신 이분이 자기 이름을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자기이름을 거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바울서신을 쓰실 때도 될 수 있으면 루가의 이름을 숨겼습니다. 바울서신에도 자기 제자들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디모데이름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이름은 숨겨놓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나중에 문안 이야기할 때 그러니까 누가가 이런 엄청난 사역을 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내 옆에 있는 너희들에게 문안한다, 그런 아주 단순한 문안적인 메시지 몇 군데 이야기할 때 누가이름을 거명하였습니다, 골로새서4장14절에 디모데후서4장11절에 빌레몬서24절에 여기 세 군데 문안에 관계되는 내용을 말할 때 누가이름을 거명하였습니다. 그만큼 성령님도 바울을 통해서 누가를 숨겼습니다, 누가는 스스로도 숨기고 그러기 때문에 누가는 아주 대표적인 지도자를 조력해주는 부교역자로써 아주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에 “29.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들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알았다는 겁니다. 미리 아신 것만이 아니고 예정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때가 되어서 불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영화로운 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과거에 이미 다 그렇게 해놓았다는 겁니다. 똑같이 이방인을 향해서 만들어야 되는 이 역사책을 이미 한 사람을 미리 다 과거형으로 준비해놓았다는 겁니다. 바울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이분이 누구십니까? 바울이 지금 눈독을 들여서 이런 사람을 찾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이 예정한 예비 된 기록자는 이런 이방인을 향한 역사교과서를 만들 집필가가 되려면 적어도 10가지의 자격을 구비해야 됩니다.
성령께서 기록자를 택하는 기준은?
첫 번째는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부르심이 있어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이 하면 나중에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주님의 예정하심과 부르심이 있어야 됩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이방인을 상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방인크리스천이어야 합니다. 유대인들 가지고서는 안 되는 것은 마태를 보고 안 겁니다. 셋째 바울과 같이 일하는 바울의 동역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바울의 영성을 공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2중언어가 가능해야 하고 헬라어에 능통해야 됩니다. 여섯 번째 문장력이 있어야 됩니다, 헬라어를 아무리 잘해도 문장력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일곱 번째 균형 잡힌 지식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식인은 지식인인데 균형 잡힌 외골수나 이러면 안 됩니다.
여덟째 선교현장을 아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아홉째 역사적 안목을 가진 자여야 됩니다. 열째 연구가로 표본조사와 분석적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열 가지의 고려 상황이 있는 겁니다. 이방인을 향한 역사책을 써야 되는 사람은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는 이 가이드라인 안에서 이분이 보니까 성령님이 바울에게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자기가 루가라는 의사를 개종시켜서 같이 지내다보니까 이 사람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성령님이 바울에게 감동을 준 겁니다. 바울이 지금 이방인을 향한 역사책을 써야 되는데 이 많은 이방인들을 섬기려는 역사책을 싸야 되는데 누가 쓸까 했는데 누가와 같이 교제하면서 보니까 누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딱 바울이 느낀 겁니다.
제가 이런 눈높이 교육을 하는 이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이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 받으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여정이 성공을 향하는 영적으로 성공을 향하는 여정이지 우리의 삶은 고달픕니다. 왜냐면 우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사람은 내가 죽어야 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고달픕니다. 내 의지로 되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굵고 주님 저에게 예수님의 한 알의 죽은 밀알처럼 예수님도 예수님의 그 문화를 포기하시고 인간문화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목적을 겸손히 가지는 자들이 되려면 우리가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해야 되고 나의 삶이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누가복음]을 같이 섭력하면서 우리 예수님의 이 모습을 루가를 통해서 또 루가의 이 모습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제가 질문합니다. 루가는 도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출처: 황용현 목사 강해설교-Ⓗ💗
녹취 / 김은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