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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

가전과 소설사이..

작성자교육*송호진|작성시간02.08.25|조회수182 목록 댓글 0
가전(假傳)

1. 개념
가전이란 어떤 사물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하여 그 가계(家係)와 생애 및 개인적 성품, 공과(攻過)를 기록하는 전기(傳記) 형식의 글을 말한다. 실전(實傳)이라 하지 않고 가전이라고 한 것은 '가(假)'가 허구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은 고려 무신 정권에 상대적으로 위축된 문신들이 현실에 대한 우의적인 풍자의 방법으로 사물의 일대기를 허구적으로 의인화(擬人化)하되,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중국 고사들에 비유하여 읊어낸 서사 구조물이다.
가전의 장르는 설화의 발전, 소설문학을 전개시키는 과도기적 문예장르, 의인문학, 교술문학장르 등 다양하게 언급되었다. 명칭도 '가전체', '의인체', '의인 전기체 작품' 등으로 일컬어져 온 실정이지만, 가전이 갖는 전기적(傳記的)인 속성에 맞추어 가전기(假傳記)의 약칭인 가전이라 확정함이 무방하리라 본다.

2. 근원
가전의 근원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같은 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우의적인 수단이 동원되어 완적(阮籍)의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이 저작되었고, 당대(唐代)에는 백거이의 <취음선생전>이 저작되어 이규보의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을 산출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본격적인 가전들의 우리나라로 전래되기는 고려 초기를 약간 지나면서부터라고 추측된다. 기록상 완전한 가전의 효시는 고려시대 임춘(의종~명종대)의 <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이다. 이어 이규보(1168~1241)의 <국선생전(麴先生傳)과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석혜심(1229년경)의 <죽존자전(竹尊者傳)>과 <빙도자전(氷道子傳)>, 이곡(1298~1351)의 <죽부인전(竹夫人傳)>, 이첨(1345~1405)의 <저생전(楮生傳)>, 석식영얌(1340년경)의 <정시자전(丁侍者傳)>등의 가전작품이 나왔다. 이런 작품은 선초의 식물 및 심성의 의인류, 더 나아가서는 영정조 시대에 많이 나온 동물우화소설로 맥을 이어갔다.
가전은 당송의 가전과 마찬가지로 구류(龜類)를 의인화한 <청강사자현부전>을 제외하면 모두 무정지물(無情之物)에 성정(性情)을 가탁한 의인법을 쓰고 있음이 공통점이다. 분량도 당송 가전과 마찬가지로 임춘의 <공방전>(약1,000자)을 제외하면 모두 700자 전후에서 900자 정도의 것으로 송대에 나온 가전과 유사하다.

3. 특징
가전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주제의 풍자성, 소재의 의인화, 수사의 함축성, 표현의 해학성이다.

(1) 형식
고려 중기 이후 설화를 수집 정리, 창작하는 과정에서 의인체의 가전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전체의 문학의 발달은 무신란 이후에 등장한 사대부들의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개관적 관념론자인 그들이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인간 생활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려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가전작품의 형식은 사전체(史傳體)를 답습했고, 작품의 구조도 당송의 가전과 마찬가지로 도입부, 전개부, 논평부의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다만 전개부를 양분하면 기, 승, 전, 결의 한시의 4단 구조와 합치된다. 도입부는 장황한 신분 가계의 기술 부분이고, 전개부는 주인공의 행적을 허구화한 것이며, 논평부는 작자의 주관이 개입되거나 공과(功過)를 논하는 총평의 부분이다. 그런데 석식영암의 <정시자전>만은 작품 말미의 논평부가 없음이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또한 <저생전>의 '태사공왈(太史公曰)'과 <죽부인전>의 '사씨왈(史氏曰)'을 제외하면 모두 '사신왈(史臣曰)'로써 시작하여 작자의 주관을 첨부하고 있음이 공통적이다.

(2) 목적
가전은 계세징인(戒世徵人: 세상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일깨워 줌)을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다. 그러므로 설화의 경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초창기의 소설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가전은 작자의 창의(創意)가 가미된 허구적인 창조 문학으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3) 의의
가전은 객관적 사물에의 관심과 사기(史記)의 형식 및 풍부한 고사 등과 결합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사물에의 관심을 통한 우의적인 날카로운 비유는 철학적으로 체계화되어 세계관적 기초를 더욱 튼튼히 했고, 한편으로는 당송의 많은 가전에 힘입어 문장표현과 수사에서도 고사 원용의 허구화를 통해 높은 문학적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창의성이 상당히 가미된 허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설 문학에 한 단계 접근한 문학 양식으로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구실을 하였다.

3. 작품
(1) 국순전(임춘, 명종 시) : 술을 의인화하여,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함
(2) 공방전(임춘, 명종 시) : 돈을 의인화하여, 재물을 탐하는 것을 경계함
(3) 국선생전(이규보, 고종 시) : 술과 누룩의 의인화. 군자의 처신을 경계함
(4) 청강사자현부전(이규보, 고종 시) : 거북을 의인화하여 어진 사람의 행적을 기림
(5) 죽부인전(이곡, 공민왕 시) :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절개를 나타냄
(6) 저생전(이첨, 고려말) : 종이를 의인화함
(7) 정시자전(석식영암, 고려말) :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자기 처지를 알아야함을 강조함


한국 한문소설의 시원(始源)은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설화는 아직 단순한 이야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설화적 차원에 작가의 창작의식이 개입되고,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에 비로소 소설양식으로 이행되었다고 하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전'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사물을 의인화하여 독창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삶의 문제에 근접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가전'에 이어 나타난 조선시대의 '의인체소설'은, 심성을 의인화한 천군계소설과 동식물을 의인화한 다수의 작품이 조선말기까지 계속 나타났다. 심성을 의인화한 천군계 소설로는 김우옹의 <천군전>, 임제의 <수성지>, 정태제의 <천군연의>, 정기화의 <천군본기>, 유치구의 <천군실록>이 있다. 임영의 <의승기>, 이옥의 <남령전> 등도 작품의 성격상 포함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천군을 주인공으로 삼고 충신형과 간신형으로 대조되는 인물의 성격이 갈등을 이루는 구성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소설의 필수조건인데 가전의 영향을 받은 의인체소설에서 역시 그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식물을 의인화한 작품으로는 임제의 <화사>, 이이순의 <화왕전>, 정수강의 <포절군전>, 이덕무의 <관자허전> 등이 있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와 그 뒤에 계속 이어진 국문소설이 당대의 비판적 지성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어서 당대 현실의 모순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개조의 의지가 문학을 통하여 반영된다. 가전 역시 그러하다. 가전은 사물자체의 속성과 잡다하게 동원한 고사를 통해서 작품외적 세계를 계속 작품 안에 끌어들이면서, 그 모든 요소를 사람의 일생을 서술해나가는 전의 형식에 따라 배치하고 있다.
사물을 의인화해서 사물과 사람이 전혀 별개의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사물의 속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물의 쓰임새를 비유의 매체로 삼아 사람의 운명을 문제삼기도 하는 이중의 표현을 개쳑했다. 그래서 잘못된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사람이 사는 바른 길을 찾자는 생각까지도 나타낼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의 반영과 잘못된 것을 비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은 소설과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가전의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가전은 관념론적인 나열, 사물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서술적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가전은 소설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소설의 범주에 끼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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