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가전(假傳)에 대한 많은 논의 중의 하나가 가전의 장르론적 검토이다. 가전은 사물을 의인화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술문학과 서사문학 장르의 주변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가전의 어느 한 장르에 편입되기 모호하다는 말과도 상통할 것이다.
임춘, 이규보 등에 의해 고려 중기에 처음 나타난 가전은 원래 사마천이 《사기》 열전을 창시함으로써 시작된 일종이다.{이혜순 <한문학>. 《한국문학강의》}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어 가전의 탄생이 오롯하게 중국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고려 중기 이러한 가전이 나타난 것은 이미 전통적으로 <조신전>, 《고숭전》, 《삼국사기》열전 등의 사람의 일생을 서술하는 문학 갈래와 <화왕계>와 같은 의인 문학의 형태가 축적되고 있었고, 덧붙여 한유의 <모영전>을 위시해서 당·송의 가전이 당시 문사들에게 많이 읽혀진데서 연유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전의 장르가 모호한 이유와 가전의 소설과의 연관성을 무엇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까?
임춘의 <국순전>과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그 소재의 유사성과 함께 비교해 볼 여지가 많은 대표적인 가전 작품이다. 먼저 임춘의 <국순전>은 무신의 난 시기에 지어진 작품으로서 술을 의인화한 가전이다. 국순이라는 술이 그 조상으로부터 주인공인 국순에 이르러 어떻게 입전했고, 또한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걸었는가를 보여주며 작품의 말미에는 논평이 있어 서술자의 개입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이규보의 <국선생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선생전> 역시 주인공 국성 (맑은 술)이 평범하게 탄생했으나 그 비범함이 임금의 눈에 들어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누리다가 죽음을 맞는 입전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작품에는 모두 '술'이라는 사물을 통해 신화와 임금과의 관계, 나아가 사회 속의 인간관계를 꼬집고 있다. 이는 소설에서 흔히 중요한 특성으로 꼽히는 허구성과 소설의 풍자적 성격과 상통한다. 또한 의인화 되었다고는 해도 주인공의 출생과 성장, 쇠퇴의 이야기는 흔히 소설의 내용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보인다. 또한 나아가서 <국순전>과 <국선생전> 등의 가전에는 서술자의 개입 부분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허구의 개입으로 초래했을 진실성의 약화를 사관의 객관적인 공적 논평에 의해 보상하려는 서술자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바, 되려 이야기의 허구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한편 소설이 자아와 세계와의 갈등과,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것 역시 가전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임춘은 무신란에서 피해를 입은 구귀족의 잔존 세력에 속하나, 몰락을 겪고 구차하게 살아가느라 화려한 공상이나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 자기의 처지를 나타내는 방법을 찾았다 하겠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즉 술을 통해서 사람의 도리를 문제삼는 이면에 작가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고 보아도 합당할 것이다.
이후 가전은 조선조에 들어와 다양한 소재와 그들 사물 본연의 임무를 풍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가전이 작가의 위치변화나 시대정신의 변모와 병행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가전은 독립된 장르로 인식하기 보다 광의의 범위에서 소설의 범주에 편입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발견한다.
소설은 본래 여러 장르의 파생과 결합을 거쳐 이루어진 형태이기에 개방성과 모호성이 특성으로 언급된다. 우리의 경우를 보아도 소설이 구비문학에서부터 한문학, 교술문학에서까지 그 내용과 형식의 원천을 빌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가전이 교술문학인가 소설장르인가 하는 격렬한 논의도 결국은 가전의 본질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설은 한 시대를 끊고 새롭게 탄생한 문학 장르가 아니라 시대를 거쳐 여러 장르의 파생과 결합을 통해 형성된 서사 장르임을 앞에서 강조한 바 있다. 그러므로 가전 역시 나타났다 사라진 장르로 인식하기 보다 살펴본 여러 유사성을 기준으로 '가전체 소설'로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보다 풍성한 인식이라고 본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