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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

"제도적 모순이 낳은 병리적 현상- 사씨남정기"

작성자교육*박현진|작성시간02.08.25|조회수1,081 목록 댓글 0
"제도적 모순이 낳은 병리적 현상 - 처첩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Ⅰ. 서론

사씨남정기는 구운몽과 함께 김만중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한 양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가정 내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을 통해 당대 사회의 문제와 가치관의 문제 등을 지적하고 있다.

Ⅱ. 본론

1. 서포는 왜 사씨남정기를 창작하였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씨남정기는 西浦 김만중의 작품이다. 물론, 저작경위를 살펴보면 사씨남정기가 서포의 증손인 北軒 김춘택이 지은 것이라는 기록도 보이지만, 이것은 당시 한문을 문자로 생각해 온 데서 김춘택의 번역을 문자로 지은 것으로 본 기록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포의 한글 소설은 여럿 되는데, 그 중에서 많은 작품이 한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렇듯 소설이 한글과 한문본 모두 공존하는 것도 우리 문학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씨남정기는 작자가 확실한 작품이기 때문에 작자에 관한 논의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이 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학탄생의 목적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다. 논의를 종합해보면, 숙종(1661~1720)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이자, 서포가 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서포 김만중은 어떤 인물인가? 김만중은 장희빈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려는 사건에 연루되어 己巳換局으로 인해 남해로 유배를 갔다. 이렇게 정치적인 보복으로 풍토병이 심한 남해로 귀양간 서포는 혹독한 유배생활을 하다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서포가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사씨남정기를 지었고,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실제로 숙종이 장희빈을 내쫓고 민비를 복원시켰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사씨남정기가 한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해서 이를 풍간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이규경에 의해서이다. 이를 근거로 김태준은「조선소설사」에서 "이 소설은 필경 숙종의 마음을 감동시켜 폐비 민씨를 다시 복위케하고 임시로 妃位를 빼앗고 있던 장씨를 다시 희빈을 삼아 방출시켰다"라고 하여 '목적소설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소설사와 소설론에서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사씨남정기는 가정소설인 동시에 풍간소설 혹은 목적소설로도 분류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통설에 반박을 하고 나온 주장도 있어 눈길을 끈다. 즉, 서포의 작품을 북헌 김춘택이 목적성을 가지고 이용했거나 뒷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씨남정기를 독립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아야 하며, 순수한 문학적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은이 서포가 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 많은 인생을 살었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인생관과 체험이 서포의 소설의 바탕이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후자보다는 전자의 목적소설론이 더 타당하다 하겠다.

2. 제도적 모순이 낳은 피해자 사씨와 교씨

사씨남정기를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바로 사씨가 자청해서 유한림에게 후사를 볼 것을 권유하는 부분이다. 사씨는 어째서 스스로 교씨를 받아들이고, 이후 교씨에 의해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사씨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사대부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십년이 지나도록 후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사씨는 재색을 겸비한 위에 부덕까지 갖춘 조선시대 여인의 이상형으로 그려진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사대부 아녀자가 결혼한 지 십년이 되어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쫓겨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만약, 生男을 하지 못하면 남편에게 소실을 얻도록 주선하는 것이 정실된 이의 부덕의 소치인 것이다. 유교적 가르침 속에서 자라난 사씨는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존귀한 남성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첩을 얻는 일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씨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외부적인 제약이 아닌, 스스로 부덕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고의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사씨가 이렇듯 현모양처의 전통적 여인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서포의 여성관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조선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다. 현실과의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효심과 미덕을 지닌 사씨의 태도는, 조선후기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지녀야 할 최선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씨는 사회제도의 모순에 따른 피해자이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것은 사씨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남정'으로 인한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내는 점이다. 결국, 사씨는 '선(善)은 이기고 악(惡)은 망한다'는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여성이 받는 가부장제에 따른 억압은 계속해서 유효하게 남아있게 한다.
한편, 교씨는 사씨남정기의 사건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사씨와 대립관계에 있는 교씨는 철저하게 악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교씨가 처음부터 교활하고 맹랑한 여성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 "가난한 선비의 처가 되느니 부귀공명을 누리는 집안의 첩이 되는 편이 낫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교씨의 발언은 여러모로 생각할 만한 문제를 가진다. '깨끗함'과 '안락함'은 누구나가 바라는 것이지만, 이 둘이 양립할 수 없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다. 사씨처럼 '깨끗함'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교씨와 같이 '안락함"을 택할 수도 있다. 후자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씨는 비난받아야 마땅한가? 그렇지 않다. 사씨남정기에서 후실로 들어오는 교씨는 처음부터 악한 인물로 표현되지 않는다. 정작 그녀가 악랄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사씨가 아들을 낳은 이후부터이다.
교씨가 아들 장주를 낳은 뒤. 희한하게도 사씨 역시 아들 인아를 낳는다. 이때부터 교씨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사씨가 아들을 낳아 자신의 아들은 적통을 이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씨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까닭은 무엇이가? 여기에 신분에 따른 차별이 숨어있다. 교씨는 첩의 신분으로 유씨 가문에 들여진 인물이다. 첩은 남자의 지위, 신분에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았던 서얼이라는 자식을 낳아야 했다. 그러니 첩인 교씨가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교씨의 불안이 더욱 심화된 것은 정실 사씨가 낳은 인아와 교씨가 낳은 장주를 유한림이 편해한 것에서 오는 반감 때문이었다. 정실인 사씨가 아들을 얻음으로써 교씨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의식이 더욱 높아졌고, 정실의 아들을 편애하는 남편에게서 일종의 배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교씨가 동청과 같은 인물과 합세하여 자신의 아들 장주를 죽이면서까지 사씨를 축출시킨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교씨가 이러하 행동을 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다처제의 제도적 모순에 따른 병리적 현상의 측면에서 볼 때, 교씨 또한 사씨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인 것이다.
그리고 사씨남정기에서 교씨는 사씨를 더욱 선의 인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교씨가 동청과 냉진을 두루 돌아가면서 사통을 즐기는 모습은 당시의 인간의 윤리를 완전히 무시해버린 요악한 인물의 표상인 것이다. 결국, 간악한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던 교씨는 유한림에게 잡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교씨가 비록 악인의 화신이 되어 인생을 처참하게 마감하지만, 처첩간의 갈등을 그린 가정소설에서 그녀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의미를 살펴볼 때, 사씨남정기는 당대의 오늘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3. 사씨남정기의 문학사적 의의

사씨남정기는 우선, 조선조의 일부다처제가 빚어졌던 처첩간의 갈등을 소설화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전까지는 조선 중기 임병양란을 겪으면서 많은 군담 소설이 등장하여 국가를 위한 충이 강조되었다. 군담소설을 위시한 이른바 영웅소설이 전란 후 있었던 백성들의 상처를 정신적 승리로 보상해 보려는 시대적 산물로 나타난 것이었다면, 안정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점차 가정적인 이야기가 관심거리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또한 당시의 시대적 산물에 다름 아니다.
사씨남정기가 등장한 것은 임병양란을 겪고 난 후 효종, 현종대를 지나 숙종대에 이른 시기로, 전쟁의 상흔이 점차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는 시기였다. 국가가 태평해지게 되자 충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순전한 가정문제만을 중심으로 하는 처첩간의 갈등이나 전실 자식과 후처와의 갈등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기에 사씨남정기가 출현하게 되어 가정소설의 영역을 개척한 셈이 된 것이다.

Ⅲ. 결론

사씨남정기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이 소설이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매우 강하게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소설이 목적소설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강요된 의무가 너무 강하게 표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 속에는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색깔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은 처첩간의 갈등이 국가적인 갈등으로 확대됨을 보여주고 있지만 소설 내부적으로 지워지는 여성에 대한 유교적 의무가 너무도 과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해 본다면(물론, 유교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분명 이 소설은 홍계월전이나 방한림전 등의 여성영웅소설 보다 덜 발달된 소설이라고 평가될 것 같다. 물론 유교적 질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교적 질서의 옹호라는 커다란 주제를 말하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여성을 또 다른 소외의 상자 속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이 봉건적이며 유교적인 가치관을 담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소설 속 여성에 대한 시각을 문제 삼는 것이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이 소설을 바라볼 때 과연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참아야만 선하고 유덕한 인물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이 소설을 통해 제기할 수 있는 유교적 질서 자체에 대한 의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직까지 무조건 참고 용서하는 인간상을 선과 덕을 소유한 인간상으로 규정하는 현실 속에 살면서 진정한 선과 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참고문헌
김귀석, 조선시대 가정소설론, 국학자료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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