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 홍공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려했으나 서자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온갖 천대와 구박을 받다가 집을 나가서는 도적의 두목이 된다. 의적 길동은 지방 수령들의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이상국인 율도국을 건설한다.
이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홍길동전의 줄거리이다. 이렇게 잘 알려진 그대로의 줄거리를 따르자면 홍길동은 적서차별이라는 사회 제도에 의해 피해를 본 장본인이며 그러한 사회적 부조리를 완전히 없앤 이상국을 건설하여 당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 완벽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홍길동전을 뒤집어봐도 역시 홍길동은 영웅적인 인물일까?
흔히 영웅으로 잘 알려진 홍길동이 정말 영웅적인 인물이 맞는지, 당대 사회적으로 횡행했던 부조리와 악습에 정면으로 맞서 대항한 결과로 영웅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 맞는지 한 번 살펴보자.
먼저 길동은 서출(庶出)이라는 것에 대단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길동은 지체높은 양반 집안의 서자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길동의 아버지가 한낮에 청룡이 하늘에서 달려오는 꿈을 꾸고나서 내실로 들어가서 부인의 손을 잡으니 부인은 '상공은 신분이 높으시거늘 어찌 어리고 경박한 사람의 비루한 일을 하고자 하십니까?' 라며 합궁을 거절한다. 길동의 아버지가 양반이었기 때문에 길동은 서모로부터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하여 서자로 태어난 길동은 그래도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자신이 서자라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 부모 모두가 낮은 신분이기 때문에 빼어난 능력을 아예 발휘해볼 기회초자 박탈당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길동은 그래도 양반집 자제로 그래도 아버지의 핏줄을 타고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조금을 열려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한 채 사회에 불만만 품은 것이다.
즉, 길동은 서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았어야 했다. 실제로도 그 시대를 산 사람들 중에서 서자이면서도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이 적잖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길동은 자신이 서출이라는 강박에 얽매여 자신의 위치에서 더 이상의 발전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해버릴 것이 아니라 절름발이식이라도 출세할 길을 모색했어야 했다.
적서 차별이 횡행한 사회제도에 불만을 품은 길동이 집을 나와서 선택한 길은 '의적'이다. 그러나 선의의 도적질이건 악의의 도적질이건 도적질을 한다는 자체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이 점에서 역시 '홍길동'이 영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빼어난 재주들을 가진 길동이가 기껏 도적질을 해서 사람들을 도와준 점은 길동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가장 소극적인 방식으로 해결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공통점인 '범상치 않은 재주'를 어차피 가지고 있다면 보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어야 옳다.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지고 기껏 환영받지 못할 도둑질을 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비난받아야 할 점이다.
홍길동전이 갖는 커다란 의의 중에 하나가 최초로 해외진출 사상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율도국이라는 곳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당시에 횡행했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해소한 이상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누차 길동의 범상치 않은 능력이나 신통력이 강조된다. 평범한 가운데 머리나 재능이 비상한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없는 여러 가지 도술까지 있으며 게다가 의협심도 강한 길동이라면 그토록 모순된 당대의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동은 그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기어이 그 모순된 사회로부터 탈출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이상국을 건설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개인기가 뛰어난 길동은 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생각은 아니하고 결국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데리고 해외로 진출하여 스스로가 '짱'을 먹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결국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사회로부터 도피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홍길동이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첫째, 서출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히 입신양명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고 둘째, 어떤 의도에서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도적질을 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셋째,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건설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던 당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개선하여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서 크건작건 간에 불만을 가지고 산다.
결국 그러한 불만을 해결하는 노력을 하느냐, 아니면 그냥 순응하며 사느냐의 차이에 따라서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의 부류가 나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류를 하기에 앞서서 누구나 '나라면 이러한 문제는 이런식으로 해결할텐데.. 나라면 이러한 문제점은 이런식으로 해결할텐데..'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구나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제도나 관습 등을 모두 때려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간다면 차라리 편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가지 제도를 고치고, 거기서 파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또다른 제도를 수정하고, 또 다른 문제점을 해결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또다른 문제점을 보완하고...
홍길동전은 전자와 같은 문제해결 방식을 제시한 셈인데, 얼핏 이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더 쉽고 간편한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홍길동전에 보낸 찬사 중에는 다시 거둬들여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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