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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과 사상

이문열의 선택-사상 노혜진

작성자[사상]노혜진|작성시간02.08.25|조회수136 목록 댓글 0
우선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선택'이라는 책을 읽을 접했을 때의 첫 느낌을 말하자면 이문열->잘 알려진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적인 작가 그리고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로 시작하는 책의 서두 내용들은 나로 하여금 반페미니즘적인 면을 충분히 느끼게끔 쓰여졌다. 이문열이라는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논리 정연한 분석이 뛰어난 소위 말하는 '말재주꾼'이라는 말로도 묘사될 수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왜 이러한 책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선택은 이미 세계의 문학이라는 문학계간지에 첫 회를 내보내면서부터 반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조선 선조시대에 태어나 숙종시대에 세상을 떠난 정부인 장씨라는 여인이 후세의 여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며 당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면 우선 조선시대라는 전근대적인 사회를 살아간 여인의 시각으로 현대 사회를 보고 현대 사회의 문제 특히 여성들의 풍속과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함에 아울러 현대인들이 이 소설의 화자인 장씨가 산 시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현대의 여성들이 지난 시대의 여성들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상당한 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 때문에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적인 여성들의 반발을 일으켰다고 본다. 작가는 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 이 작품을 구성한 의도를 유리 삶의 본보기가 될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내는데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우리가 양반문화에 대한 고의적이고 잘못된 편견에 대한 바로잡음을 어느 정도 의도하고 있는 듯 싶다. 예전의 양반문화는 위선과 기만이 가득한 민중을 탄압할 수 있는 수구적인 세력의 대표문화였고 옛날 여인들은 유교적인 규제와 봉건적 잔제의 탄압 속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가련하고 불쌍한 삶을 살았다고 알고 있는 현대인들의 선입견에 대한 일종의 저항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작가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었다. 바로 '현실성'이다. 장씨 부인이 살던 조선시대와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시대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잇는 듯 싶다. 장씨 부인이 살던 시대는 현모양처 이외에는 달리 특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이고 지금 시대는 평생을 공부해도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론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강 지나치고 살아가도 이 세상을 사는데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그러한 사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현모양처 아니면 굳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 당시 상황에서 보면 장씨의 선택은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요구에 대한 순수한 응함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복잡하고 문란해진 현대 생활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도록 교훈을 주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또 하나의 잘못을 하였다고 본다. 이 책을 남자들이 아니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말 그대로 여성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중반에 출산으로 가사의 노동량이 늘어나고 특히 양육의 수고로움이 오직 여성에게만 부과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부나 일을 핑계로 여성의 출산기피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정조의 의무라든가 임신 회피, 가사 분담 등을 놓고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는 여성의 출산 기피만큼이나 임신을 회피하거나 임신을 하고 나서도 아빠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남성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남자 여자가 맞벌이를 함으로서 가사를 분담한다던가 쌍방의 합의에 의해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작가는 아니 작가가 설정한 장씨라는 여인은 책 속에서 한 여자가 태어나서 출산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라는 형상에 대하여 지나친 미화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남편을 '여성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기꺼이 그의 수단이 되고 싶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지 알 수가 없다. '일생을 한 집안에서 함께 할 사람,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언제나 익숙한 사람, 피와 살을 합쳐 태어난 자손들로 인해 죽은 뒤조차 나누어지지 어려운 존재' 그는 남편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미화시킴으로서 당연히 예를 가지고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작가의 한계이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이고 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에는 그러한 사회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곰같은 순종적인 현모양처를 원하기도 하지만 여우같이 똑소리나는 남자와 같은 존재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작가는 왜 직시하지 못했을까? 물론 가정에서 자녀 교육에 힘써야하고 집안 가사를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봉건적 사회 속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인 여성상을 이야기하면서 요즘 현대 여성들의 평등에 대한 요구와 사회 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 작가는 반페니즘적인 성향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종의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아닐까?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성향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유교라는 봉건적 틀 속에서 더구나 양반이라는 계층의 며느리라는 설정을 하여 요즘의 현대 여성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 신문에서 이 작품이 전업주부의 사회적인 소외감을 절묘하게 포착했고 주인공 장씨의 말을 빌려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왜이며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여성들의 기분을 씁쓸하게 그리고 불쾌하게 했음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부 0010041 노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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