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이전(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광복 직후까지)의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은 압록강을 끼고 있는 평안북도의 대표적인 국경지대이자 산악 지역이었습니다.
●현재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1949년)으로 자강도 위원군에 속해 있지만, 1950년대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평안북도'의 중심 군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기 위원군의 역사, 지리, 인구, 문화적 특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역사적 변천
조선 시대 (군 설립): 본래 여진족 등이 살던 곳이었으나 고려 말 공민왕 때 수복되었습니다. 이후 1443년(세종 25년) 국방 강화를 위해 이산군(지금의 초산군)과 강계부의 땅을 나누어 위원군을 처음 설치했습니다.
근대 및 일제강점기: 1896년 전국 13도제 개편으로 평안북도 위원군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에는 밀산면과 위원면이 합쳐져 '위송면'이 되는 등 면 단위의 행정구역 통폐합이 있었습니다.
광복 직후 (도 변경): 해방 당시까지도 평안북도에 속해 있었으나, 1949년 1월 북한이 강계군, 위원군, 초산군 등을 묶어 자강도를 신설하면서 평안북도에서 자강도로 편입되었습니다.
●2. 지리와 행정구역 (해방 전 기준)
지리적 환경: 위원군은 군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남산맥을 비롯해 숭적산(1,984m), 백암산(1,823m) 등 험준한 고봉으로 둘러싸인 산악 지대였습니다. 북서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며 중국(만주)과 국경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행정구역 (7개 면): 해방 전 위원군은 군청 소재지인 위송면을 비롯해 대덕면, 봉산면, 서태면, 성간면, 숭정면, 화창면의 7개 면, 4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인구: 1944년 통계 기준 군 전체 인구는 약 4만~5만 명 안팎으로, 험한 산세 때문에 면적이 넓은 것에 비해 인구 밀도는 낮은 편이었습니다.
●3. 산업 및 지역 특산물
임업과 광업: 땅의 대부분이 험한 산지였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목재 생산(임업)**이 매우 활발했습니다. 압록강을 이용해 뗏목으로 목재를 운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납, 아연, 철, 흑연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했습니다.
조선 시대 명품, 위원 벼루: 위원군의 가장 유명한 특산물은 **위원이석(渭原이石)**으로 만든 벼루였습니다. 읍내 덕암동 냇가에서 나는 청색·보라색의 단단한 판석으로 만들었는데, 먹이 잘 갈리고 쉽게 마르지 않아 조선 시대 왕실에 진상품으로 바쳐지던 최고급 명품이었습니다.
●4. 독립운동과 역사적 사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길림성 집안현 등)와 접해 있어,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군의 주요 활동 무대이자 국내 진공 작전의 요충지였습니다. 대한통의부, 참의부 등 무장 독립군들이 위원군으로 잠입해 일본 주재소를 공격하거나 군자금을 모집했습니다.
화창면 대학살 사건 (1924년 8월 8일)
위원군 화창면 주민들이 독립군에게 은신처와 음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6가구 28명이 방화로 현장에서 순국하는 등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항일 역사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5. 유물 및 문화적 특징
고구려 고분군: 서태면 신천동 압록강 연안에는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총과 석총(돌무지무덤) 37기가 분포해 있어 고대부터 압록강 유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보여줍니다.
●명도전 출토: 1927년과 1932년 숭정면 용연동 일대 도로 공사 중, 중국 전국시대의 화폐인 명도전(明刀錢) 무더기와 고대 청동기·철기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어 낙랑이나 중국과의 고대 교역로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단오 씨름대회: 위원군 주민들은 매년 단오가 되면 큰 규모의 '단오씨름' 축전을 열었는데. 이는 단순한 동네 시합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난 장사(力士)들이 모여드는 큰 문화 행사였다.
●우리 위원군 후손들이 자긍심을 같고 할아버지,할머니 와
아버지,어머니 에게 감사하며 위원군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