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 토벌에 일어선 제후들
189(중평 6)년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온 동탁은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온갖 횡포를 자행한다. 이 전횡에 반발한 원소, 조조 등은 고향에 돌아와 동탁을 타도할 준비에 착수한다. 12월 조조가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고 전국의 유력 제후에게 동탁 토벌의 격문을 띄운다. 위서 무제기에 의하면 다음해 정월 격문에 응하여 곧바로 병사를 일으킨 자는 맹주가 된 발해태수 원소를 필두로 하여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 하내태수 왕광, 진류태수 장막,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 제북상 포신 등이다. 이 밖에도 유주목 유우, 장사태수 손견, 형주자사 유표, 요동태수 공손도 등이 가담한다.
2월 동탁은 천자를 옮기고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를 강행한다. 궁전에 불을 지르고 부호들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어 재산을 몰수하고 황제 무덤을 하나하나 파헤쳐 금은보화를 약탈하는 등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그러나 동탁과 그 군대는 여전히 낙양에 주둔한다. 반동탁 연합군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장막,교모,원유,유대는 산조에, 원술은 남양에 ,공주는 영천에, 한복은 업에 각각 주둔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감히 선두에 나서서 강력한 동탁군과 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조는 단독으로 낙양 서쪽 성고를 점거하려고 진군하지만 형양의 변수에서 서영의 군세와 만나 격전 끝에 패배한다. 한편 북상한 손견이 낙양 근처 노양에 진을 치자, 동탁은 그 곳에 대군을 파견한다. 하지만 손견군의 사기가 높은 것을 보고 공격하지 않고 퇴각한다. 손견은 양 동부에 군영을 설치하고 일단 동탁군에게 패하지만 다시 군사를 수습하여 양인에서 동탁군을 격파하여 화웅을 토벌한다. 동탁은 사수관과 호뢰관에 원군을 파견하여 수비를 강화하자, 전투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된다. 191(초평2)년 4월 마침내 동탁은 낙양을 포기하고 장안으로 철수, 사숙관과 호뢰관도 함락된다. 연합군은 낙양에 입성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폐허뿐, 그 후 각 제후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합군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