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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사

시마즈일족

작성자케벨로스|작성시간04.01.20|조회수130 목록 댓글 0

☞ 시마즈 요시히사 (島津義久)

1533∼1611

최종 관직은 수리 대부(修理大夫). 1566년의 상속 계승 이래, 큐슈 통일에 힘을 쏟은 시마즈가 제 16대 당주.

뛰어난 동생들을 적절하게 잘 사용할 줄 아는 뛰어난 군주였다. 그것은, 조부 · 시마즈 다다요시(島津忠良)의 훈계가 있었다고도 전해지는데, 그의 모습은,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절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요시히사는, 기자키바라(木崎原)에서 이토가(伊東家)를 격파하고, 오오스미(大隅)의 키모츠키(肝付)씨를 복속 시켜, 마침내 이토가를 구원 출진한 오오토모 소린마저 미미카와(耳川)에서 무찔렀다. 또, 아리마(有馬)씨와 짜고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를 沖田輟에서 죽여, 큐슈에서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오토모 소린의 요청으로 온 도요토미군과, 마침내 맞닥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토츠기강(戶次川)에서 도요토미군의 선봉인 시코쿠세력을 상대로 적의 군감 · 센고쿠 히데히사(仙石秀久)의 실수를 틈다 대승을 거두었지만,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가 도착한 후로는 연전연패했다. 마침내, 요시히사의 삭발로 시마즈가는 항복했고, 사츠마(薩摩)와 오오스미(大隅)의 2국, 휴가(日向)의 일부만이 안도되어 큐슈 통일의 야망은 좌절되고 말았다.

☞ 시마즈 다다요시 (島津忠良)

1492~1568

시마즈가 제 10대 당주. 시마즈가의 분가 출신이지만 아들 다카히사를 종가의 후계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영내 봉건질서를 확립, 가신단의 통솔에 힘써 영지를 확대시켰다. 또한 1545년에는 이로하 노래(いろは歌)를 지어, 사풍 강화에 노력했다. 시마즈가의 중흥의 조(祖) 라고 불린다.

☞ 시마즈 요시히로 (島津義弘)

1535~1619

시마즈 다카히사(島津貴久)의 차남이자, 시마즈가 17대 당주. 시마즈가를 큐슈통일로 이끈 맹장. 이토가, 오토모가, 류소지가와의 싸움에서 작은 병력으로도 그들을 잇따라 쳐부수었고, 임진왜란에도 참여해 명나라 대군을 격파해 '석만진(石曼津)'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성을 명나라까지 떨쳤다고 한다. 세키가하라전투에서는 원래 동군에 서기 위해 후시미성으로의 입성코자 했으나 거부당하고, 어쩔수 없이 서군에 서게 됐다. 그러나 서군의 편에 서서 패색이 짙어지자 이에야스군을 정면돌파하고 퇴각한 일은 특히 유명하다.

 

☞ 시마즈 다카히사 (島津貴久)

1514~1571

시마즈가는 가마쿠라시대에 사쓰마 수호로 임명된 이래 오오스미, 휴가를 더해 남큐슈 3개국을 메이지시대까지 지배했던 명문 무가이다. 그리고 당시 그 시마즈성을 칭하는 각가문이 3개국에 분립되어 있었는데, 그 시마즈 분가의 다다요시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 다카히사이다. 그는 종가의 까쓰히사(勝久)의 양자로 들어가 시마즈 제 16대 당주가 되었으며, 적대세력를 제거하며 영내의 통일을 이루었고, 철포의 사용과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 전국 다이묘 시마즈가의 기초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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