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송사
2026년 6월 9일 화요일
고린도전서 6:1-11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성도가 세상의 가치관에 함몰되어 서로 고발하는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하늘 시민권자로서 지녀야 할 영적 권위와 사랑의 법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성도를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다스릴 '거룩한 통치의 동반자'로 세우셨습니다. 종말에 성도는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릴 것입니다. 이 명예를 아는 우리는 눈앞의 작은 갈등에 매몰되기보다 영원한 통치자로서의 위엄과 안목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은 이미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9-11절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건지시고, 성령으로 씻어 거룩하고 의롭게 하셨으며, 이로써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습니다. 고린도 성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의 불의한 삶에서 돌아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교회 안에서 이권 다툼을 벌이며 송사하는 것은 나를 씻기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진흙탕에 처박는 일 입니다. 이것 역시 다른 불의처럼 버려야 마땅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6절
당시 로마 법정은 지위와 부에 따라 판결이 굽기 일쑤였습니다. 바울은 그런 불의한 자들 앞에 형제를 세우는 행위가 교회의 수치임을 지적합니다. 이는 오늘 날의 사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문제를 복음의 원리로 해결할 '영적 자정 능력'이 부재 함을 꼬집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이 최소한의 도덕 이라면, 복음의 법은 최대한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신앙 공동체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세상의 논리보다 성령의 조명 아래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문제를 품고 치유할 하늘의 지혜가 있는지 먼저 자문 하며 공동체의 거룩한 질서를 세워 가야 합니다.
7-8절
'지극히 작은 일' 하나 양보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해 이기려 드는 모습은 교회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만 증명한 셈입니다. 희생과 사랑을 말하면서 이득을 위해 서로 싸우는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세상은 교회가 말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손해를 당하고 속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작은 이득을 챙기는 것보다 교회다움을 지켜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 드리는 것이 교회의 더 중요한 사명입니다.
기도
공동체- 공동체 안에 갈등이 없게 하시고, 문제가 있더라도 사랑으로 해결할 지혜를 주소서.
열 방- 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 에게는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더욱 요구된다. 선교사들이 불교 문화권 사람들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