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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 시대와 한국교회음악의 과제

작성자찬양경배자|작성시간07.12.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새 시대와 한국교회음악의 과제


내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우리 주위에는 지금 인사동 골목에 가서야 볼만한 골동품들이 즐비했었다.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절구통이라든지, 팥이나 콩을 가는 맷돌, 다듬이 돌, 다리미, 화로, 축음기, 임금님 묘지에서나 볼 수 있는 석등, 석상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새로운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깨트려져 콘크리트 기초 자재로 값싸게 쓰여지거나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아니면 쓰레기로 버려졌다. 옛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이제야 비로소 그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알고 안타까이 찾아 나서지만 이미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카톨릭 교회와 영국 감독교회 그리고 루터교회에서는 예전(禮典)을 중시하여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의식과 상징들, 그리고 예술품들을 잘 간직하고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칼빈 파의 종교개혁에 이르러서는 개혁자들이 과거의 유산을 방기(放棄)해 버려 스코틀랜드, 영국, 그 밖의 유럽 각지에서 진기한 종교 예술품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스코틀랜드에는 종교개혁 이전에 켈트식 십자가가 360개나 있었는데 종교개혁이래 오늘에 이르러서는 두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칼빈은 시나 음악으로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허락하였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금하였다고 한다. 로마 카톨릭을 반대한 나머지 이러한 유산들을 '미신'이나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배척하게 되었고, 교회음악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16C 음악의 화려한 꽃을 피웠던 그 아름답고 엄숙한 다성음악(多聲音樂)을 금하고, 성경말씀으로만 된 새로운 형식의 시편가를 창안해 낸 것이다. 우상타파의 도전적인 태도가 예배의식에 있어서 미적(美的) 감흥이나 상상력을 배제시킨 나머지 맹숭맹숭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온갖 예술품들로 만들어진 성물(聖物)로 가득했던 예배당은 성경책 한 권만 뎅그러니 놓여졌고, 음악은 단선율의 읊조림만이 남았다. 이에 다시금 빈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 제단에 집회를 알리는 광고물이나 성경귀절로 된 표어요, 1,2차에 걸친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과 '대부흥 운동', '구도자의 예배'(Seeker's Service)를 이끈 부흥사들의 복음송가와 지금의 소위 '경배와 찬양'인 것이다. 오히려 쓸어버리기 이전보다 더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소위 교회성장을 위하여 문화고 전통이고 이것저것 돌아볼 여지없이 숨가쁘게 뛰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교회는 교회일치와 예전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격했던 개혁자들에 의해 잃어버린 옛 교회유산을 찾는 운동이 그래도 이곳 저곳에서 일기 시작하였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죠지 F. 맥클레오드 목사와 그의 동료 목사들과 평신도들은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의 허락을 얻어 '아이오아회'라는 종교 친교단체를 만들어 서부 스콧틀란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의 아이오와에서 파괴된 중세의 수도원과 예배당을 수리하고 오랫동안 버려 두었던 베네딕트 제단에 촛불을 켜고 은으로 만든 아름다운 켈트식 십자가를 세웠다. 성소의 경건미를 맛보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엄숙한 예배를 드리는 이 일은 예전회복운동의 새로운 전환의 계기임이 틀림없다.

한편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 형제도 칼빈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음에도 예배의식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요한 웨슬레는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200년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공동기도문들을 모아 '상용 기도집'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의 서문에서 과거의 기도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킹 제임스 흠정역만큼 그 문체나 영향력에 있어 우수함을 피력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오던 세계교회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일치를 위해 노력하여 왔다. 드디어 1982년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총회에서 채택된 "세례. 성만찬. 교역"(영어의 첫 자를 따서 BEM이라고 약칭)이라는 소위 '리마 문서'(Lima Documents)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 논제"에 버금가는 것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교회의 갱신을 의도했지만 결과적으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한 16C '95개 논제'는 다시금 '리마문서'로서 교회의 갱신과 더불어 일치가 구현될 사건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리마 성만찬 예식서'(Lima Liturgy)는 1983년 캐나다의 뱅쿠버에서 모였던 제6차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열린 최초의 공동 성찬예식인 것이다. 러시아 동방 정교회 대주교가 기도를 인도하였고, 독일 카톨릭 주교가 성경봉독을 했으며, 남인도교회의 한 감독이 설교를 하였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찬예식을 주재했는데 거기에 보조자들로 덴마크 루터교회, 인도네시아의 개혁교회, 베닌의 감리교회, 헝가리의 침례교회, 자마이카의 모라비안 교회의 목사들과 캐나다 연합교회로부터 온 여자 목사가 선택되는 등 동·서방의 교단이 협력하여 한 식탁에 앉은 사건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을 믿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한 찬송가를 한 입으로 불러 하나님을 찬양"할 화합의 21세기의 서광을 비추는 사건이 아닐 수 없기에 1회 예식을 위하여 제정된 이 '리마 예식서'를 많은 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함께 예전회복운동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으며, 카톨릭에선 말씀의 예전이, 개신교에선 성만찬의 예전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전통교회의 예배유산으로서 옛 기도문과 시편찬송의 발굴과 교회력 등이 서서히 교회예배의식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찬송가 편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 구원과 속죄, 회개 등 복음송가 일색의 우리찬송가의 편집과는 달리 독일교회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표현하는 다양한 예식 자료로서 재편집되며 바뀌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이러한 흐름을 외면한 채 기독교 문화와 전통, 연합과는 무관한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싶다. 색깔을 비롯한 여러 상징들이 성의나 강대보 등에 채택되고 교회 건축을 비롯한 공간에서도 다소 발전적 양상으로 보이지만,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찬송가나 성가대의 찬양(Anthem), 송영 등 교회음악 분야에선 손 댈 수 없을 만큼 대책 없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미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이제 한국교회는 주관적이고 감정주의적인 예배를 지양하고 공동체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경건한 예전과 음악을 지향해야 한다. 재미 위주의 합리적이고 오락주의적인 예배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고 하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의 경건을 되찾아야 한다. 교회음악의 유산을 귀히 여기어 옛 교부들이 남긴 전통적인 찬송시와 기도문을 사랑하고 아껴야 할 것이다. 교회력과 시공간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는 성가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 정서가 넘치는 찬송으로 고유한 우리 음악어법을 개발하고 전승해야 할 것이다

출저:김명엽 교수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새문안음악교육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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