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성가대 변천사
성가대의 기원은 교회음악의 기원과 같으며, 그 기원은 구약성서 안에서 발견된다.( 레위 23, 23-25 참조) 유대인들의 생활에서 음악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례 안에서 음악을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요구하셨기 때문이었다.(레위 23, 23-25 참조)
다윗 시대에 이르면, 그의 지도로 전례음악이 나름대로 완성되고 전례 안에서 성가의 위치가 매우 향상된다. 다윗은 전례를 위해 4천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를 조직하였으며(1 역대 23, 3-5; 6, 16 ), 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1 역대 15, 27-29 )
교회음악이 구약시대에 이미 하느님의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율법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오직 완성하러 오신"(마태 5, 17) 예수의 뜻대로 교회 음악 역시 율법 전체의 완성과 함께 완성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실상 예수께서도 당신 생애의 극적인 순간마다 율법에 정해진 시편을 충실히 노래하셨다. (누가 2, 41-42, 4, 17; 마태 11, 29; 마가 14, 36 )
초대 교회에서는 유대교의 회당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사도 5, 12; 5,20, 5, 24 ) 신약에서 음악의 위치는 구약의 그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했으며, 사도들은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서 특히 성가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것을 그대로 따랐으며 (행 2, 46-47), 전례의식 안에서 성가에 중점을 두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렇게 초대 교회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다 함께 성가를 부르는 것이 일치의 특별한 표시로 간주되었었다. 아침, 저녁에 -특별히 주일에- 모든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찬미와 환호로써 그들 공통의 신앙을 '한 소리'(Una Voce)로 노래했던 것이다. 참석한 모든 신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힘을 지닌 전체 회중의 노래에 대한 깊은 애착에도 불구하고, 4세기말에 여성 성가대와 소년 성가대가 등장하게 된다. 많은 개종자들을 확보하려는 몇몇 이단자들의 야심으로 태어난 여성 성가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한 정도에 불과했던 데 반해, 소년 성가대는 계속 성장해 갔다. 동, 서방 교회의 증언에서 미사 때 Kyrie eleison을 노래한 소년 합창단의 활동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신앙의 자유를 허락 받은(313년) 교회는 전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고 장엄한 예식을 집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은 성가대가 필요하게 되었고 성가 대원들의 교육은 로마의 성가학교(Schola Cantorum)에서 이루어졌다. 이 성가학교를 그레고리오 1세(Gregorio I) 교황(재위 590-604) 혹은 비탈리아노(Vitaliano) 교황(재위 657-672)이 설립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최종 구성은 7세기 말에 이루어졌다고 음악가들은 본다. 이 성가학교에는 4명의 차부제가 있었는데, 네 번째 위치의 차부제, 즉 제 4 Precentor는 Archicantor(수석 가수)이라 하여 성직자들, 복사들, 성가학교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맡았었다. 또 그들은 로마 교회 음악의 사도로서 성가보급을 위해 해외로 파견되기도 했었다.
성가학교 학생들은 교황의 미사 중에 시편 등을 노래하였는데 그들은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던 만큼, 그들의 노래는 상당히 예술적이었다. 그러나 교황 미사에서 그들만이 따로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그때까지도 미사의 통상부분(Ordinarium Missae) 만큼은 신자 모두에 의해 제창되었다는 증거가 많이 남아 있다. 이곳 출신 교사들은 서유럽으로 나가 Metz나 Chartres 그리고 Soisson 같은 도시에 새로운 성가학교를 세웠다.
이러한 성가학교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이들이 나중에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어 교회음악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음악 기보법이 나타나 차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口頭傳承으로 내려오던 성가에 대한 애착심과 열정이 서서히 식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성가학교의 쇠퇴를 가져오는 큰 원인이 되고 만다.
이미 7세기 후반에, 모든 신자들에 의해 불려지던 Sanctus가 성가학교의 차부제에 의해 독창으로 불리어지게 되고, 중세기에는 주교가 부르던 여러 가지 노래도 옆에서 조례하던 다른 성직자들이 부르게 되었다.
15세기부터는 미사통상문의 노래, 즉 Kyrie, Gloria, Credo, Sanctus, Agnus Dei가 한 벌로 묶여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회중의 노래였던 미사통상문의 노래마저 점점 성가대에 의해 불려지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전례를 보다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욕구와 처음으로 등장한 다악장의 미사곡 형식을 모든 음악가들이 작곡하고자 하였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일반 신자들은 라틴어를 몰랐고 곡의 예술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전문 음악인이 아닌 신자들은 노래부를 능력이 없어 침묵을 지키기에 이르면서 모든 노래를 성가대에게 빼앗겨 버렸다.
이렇게 발전한 성가대는 20세기 초까지 자신들의 기능 내지는 일차적인 역할을 좋은 음악을 연주하여 전례를 더 풍요롭고 또 품위있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상 간단히 살펴 본 성가대의 기원과 변천에 관한 역사에서 보아, 전례와 음악은 그 성질상 상호 보충하면서 원칙적으로 일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로 별개의 것으로 독립을 이루고 있었다. 전례나 성가, 두 가지 모두가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비오 10세는 전례음악이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임을 깨닫고 전례 부흥을 위한 결정적 개혁을 시작했다. (1903, Motu proprio, Tra le sollecitudine, 목자의 역할을 다 함에 있어서).
그 이후 전례 부흥 운동은 다만 "과거에 있었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전례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쇄신"하고자 하였고 전례헌장, 21항 참조) 그 쇄신의 일환으로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 114항을 할애하여 성가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밝혔다.
성가대의 전례 교육 덕분에 요즘들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각 교회에서 불러지게 되어 있는 성가 곡은 아직도 중요성을 모르는 교회들 탓으로 전국적으로 매 예배 때마다, 평일 예배때를 포함해서, 환호송이 꼭 노래로 울려 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성가들은 노래로 해도 그만, 기악으로 해도 그만인 성가이며 심지어는 생략할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전례음악적으로 볼 때 행렬을 수반하는 기능을 가진 노래(찬미가)이기 때문이며, 성가의 중요성을 따져 볼 때에도 이런 환호성가는 환호성이나 찬미가 보다 우선적이지 못하다.
원래 가톨릭의 전통은 찬미가(hymn)를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아침, 저녁기도 (성무일도)의 첫 부분에서만 노래하였다. 성무일도의 다른 부분이나 미사를 위해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Liber Usualis"라는 책에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더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의 미사에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성직자와 성가대에 의해 불리어졌으며, 신자들은 미사 때 성가를 부를 기회조차 없었기에 지금 우리가 성가집에서 보는 찬미가 형태의 노래는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이에 반하여 개신교는 그 창시 때부터 신자들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회중찬미가 (Congregational Hymn)를 모국어로 노래하도록 장려하였다. 이런 독일의 개신교 전통이 가톨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가톨릭에서는 미사 간간이, 그것도 미사의 기도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가사를 노래하였다. 다시 말해서 미사 부분 중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 즉 미사의 시작 행렬때, 혹은 봉헌 행렬, 아니면 말씀 전례가 끝나고 성찬 전례가 시작하기 전의 예물 준비 시간 동안에 신자들로 하여금 찬미가를 부르게 허락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각 나라의 모국어로 된 전례성가를 장려하게 되지만 전례문에 맞춘 성가를 미쳐 준비해 두지 못하였던 우리 나라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런 찬미가 형태의 곡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난지 벌써 35년이 흐른 지금, 다른 나라 교회는 대부분 새 전례가 요구하는 전례문을 바탕으로 한 성가들을 많이 준비하였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그리 많은 환호송을 준비하지 못하였고 아울러 이 네가지 행렬성가 중심의 전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미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노래부르도록 요구하는 성가는 바로 환호송(acclama tion) 들이다. 즉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 거룩하시도다, 신앙의 신비여, 주의 기도 직전의 마침 영광송(아멘)이다. 그 중에서도 "거룩하시도다" 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일 미사 전체를 통해 성가 한 곡만을 노래해야 한다면 단연코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해야 한다. 또 "알렐루야" 같은 경우, 이 복음환호성을 노래로 하지않을 바에는 아예 침묵을 지키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위에서 언급한 네가지 행렬성가와 신심성가(성모 노래, 성월 노래, 성체 찬미 노래 등)가 미사 때 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성가집에는 복음 환호성 3곡, 신앙의 신비여 4곡, "Amen"이 6곡이 실려 있는데 비해 성모신심 노래는 30곡이 넘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사 때는 사용하지도 못하는 성체찬미 내지 흠숭의 노래'Tantum ergo' 등도 상당수가 실려있다.
전례가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성가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보물처럼 여기는 행렬을 위한 노래들이 아니고, 매일 미사 때에도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하는 바로 환호송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국가의 행사 때 애국가를 노래하지 않고 그냥 읽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 애국가를 다같이 외우겠습니다"하는 법은 없다. 생일축하식 때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 꼭 불리어 지듯이, 미사 전례자체가 노래로 요구하는 것들이 바로 환호송이다. 또 이 환호송은 모든 신자가 환호, 기쁨 중에 노래하는 것이기에 조금 빨리 노래하여야 하며 그 곡조는 신자들이 부르기 쉬운 선율이어야 하고 경쾌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런 환호송의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느리게, 맥없이 부르고 있는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카톨릭 신문에서 일부 발췌
성가대의 기원은 교회음악의 기원과 같으며, 그 기원은 구약성서 안에서 발견된다.( 레위 23, 23-25 참조) 유대인들의 생활에서 음악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례 안에서 음악을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요구하셨기 때문이었다.(레위 23, 23-25 참조)
다윗 시대에 이르면, 그의 지도로 전례음악이 나름대로 완성되고 전례 안에서 성가의 위치가 매우 향상된다. 다윗은 전례를 위해 4천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를 조직하였으며(1 역대 23, 3-5; 6, 16 ), 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1 역대 15, 27-29 )
교회음악이 구약시대에 이미 하느님의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율법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오직 완성하러 오신"(마태 5, 17) 예수의 뜻대로 교회 음악 역시 율법 전체의 완성과 함께 완성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실상 예수께서도 당신 생애의 극적인 순간마다 율법에 정해진 시편을 충실히 노래하셨다. (누가 2, 41-42, 4, 17; 마태 11, 29; 마가 14, 36 )
초대 교회에서는 유대교의 회당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사도 5, 12; 5,20, 5, 24 ) 신약에서 음악의 위치는 구약의 그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했으며, 사도들은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서 특히 성가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것을 그대로 따랐으며 (행 2, 46-47), 전례의식 안에서 성가에 중점을 두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렇게 초대 교회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다 함께 성가를 부르는 것이 일치의 특별한 표시로 간주되었었다. 아침, 저녁에 -특별히 주일에- 모든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찬미와 환호로써 그들 공통의 신앙을 '한 소리'(Una Voce)로 노래했던 것이다. 참석한 모든 신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힘을 지닌 전체 회중의 노래에 대한 깊은 애착에도 불구하고, 4세기말에 여성 성가대와 소년 성가대가 등장하게 된다. 많은 개종자들을 확보하려는 몇몇 이단자들의 야심으로 태어난 여성 성가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한 정도에 불과했던 데 반해, 소년 성가대는 계속 성장해 갔다. 동, 서방 교회의 증언에서 미사 때 Kyrie eleison을 노래한 소년 합창단의 활동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신앙의 자유를 허락 받은(313년) 교회는 전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고 장엄한 예식을 집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은 성가대가 필요하게 되었고 성가 대원들의 교육은 로마의 성가학교(Schola Cantorum)에서 이루어졌다. 이 성가학교를 그레고리오 1세(Gregorio I) 교황(재위 590-604) 혹은 비탈리아노(Vitaliano) 교황(재위 657-672)이 설립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최종 구성은 7세기 말에 이루어졌다고 음악가들은 본다. 이 성가학교에는 4명의 차부제가 있었는데, 네 번째 위치의 차부제, 즉 제 4 Precentor는 Archicantor(수석 가수)이라 하여 성직자들, 복사들, 성가학교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맡았었다. 또 그들은 로마 교회 음악의 사도로서 성가보급을 위해 해외로 파견되기도 했었다.
성가학교 학생들은 교황의 미사 중에 시편 등을 노래하였는데 그들은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던 만큼, 그들의 노래는 상당히 예술적이었다. 그러나 교황 미사에서 그들만이 따로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그때까지도 미사의 통상부분(Ordinarium Missae) 만큼은 신자 모두에 의해 제창되었다는 증거가 많이 남아 있다. 이곳 출신 교사들은 서유럽으로 나가 Metz나 Chartres 그리고 Soisson 같은 도시에 새로운 성가학교를 세웠다.
이러한 성가학교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이들이 나중에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어 교회음악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음악 기보법이 나타나 차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口頭傳承으로 내려오던 성가에 대한 애착심과 열정이 서서히 식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성가학교의 쇠퇴를 가져오는 큰 원인이 되고 만다.
이미 7세기 후반에, 모든 신자들에 의해 불려지던 Sanctus가 성가학교의 차부제에 의해 독창으로 불리어지게 되고, 중세기에는 주교가 부르던 여러 가지 노래도 옆에서 조례하던 다른 성직자들이 부르게 되었다.
15세기부터는 미사통상문의 노래, 즉 Kyrie, Gloria, Credo, Sanctus, Agnus Dei가 한 벌로 묶여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회중의 노래였던 미사통상문의 노래마저 점점 성가대에 의해 불려지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전례를 보다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욕구와 처음으로 등장한 다악장의 미사곡 형식을 모든 음악가들이 작곡하고자 하였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일반 신자들은 라틴어를 몰랐고 곡의 예술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전문 음악인이 아닌 신자들은 노래부를 능력이 없어 침묵을 지키기에 이르면서 모든 노래를 성가대에게 빼앗겨 버렸다.
이렇게 발전한 성가대는 20세기 초까지 자신들의 기능 내지는 일차적인 역할을 좋은 음악을 연주하여 전례를 더 풍요롭고 또 품위있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상 간단히 살펴 본 성가대의 기원과 변천에 관한 역사에서 보아, 전례와 음악은 그 성질상 상호 보충하면서 원칙적으로 일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로 별개의 것으로 독립을 이루고 있었다. 전례나 성가, 두 가지 모두가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비오 10세는 전례음악이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임을 깨닫고 전례 부흥을 위한 결정적 개혁을 시작했다. (1903, Motu proprio, Tra le sollecitudine, 목자의 역할을 다 함에 있어서).
그 이후 전례 부흥 운동은 다만 "과거에 있었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전례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쇄신"하고자 하였고 전례헌장, 21항 참조) 그 쇄신의 일환으로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 114항을 할애하여 성가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밝혔다.
성가대의 전례 교육 덕분에 요즘들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각 교회에서 불러지게 되어 있는 성가 곡은 아직도 중요성을 모르는 교회들 탓으로 전국적으로 매 예배 때마다, 평일 예배때를 포함해서, 환호송이 꼭 노래로 울려 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성가들은 노래로 해도 그만, 기악으로 해도 그만인 성가이며 심지어는 생략할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전례음악적으로 볼 때 행렬을 수반하는 기능을 가진 노래(찬미가)이기 때문이며, 성가의 중요성을 따져 볼 때에도 이런 환호성가는 환호성이나 찬미가 보다 우선적이지 못하다.
원래 가톨릭의 전통은 찬미가(hymn)를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아침, 저녁기도 (성무일도)의 첫 부분에서만 노래하였다. 성무일도의 다른 부분이나 미사를 위해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Liber Usualis"라는 책에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더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의 미사에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성직자와 성가대에 의해 불리어졌으며, 신자들은 미사 때 성가를 부를 기회조차 없었기에 지금 우리가 성가집에서 보는 찬미가 형태의 노래는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이에 반하여 개신교는 그 창시 때부터 신자들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회중찬미가 (Congregational Hymn)를 모국어로 노래하도록 장려하였다. 이런 독일의 개신교 전통이 가톨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가톨릭에서는 미사 간간이, 그것도 미사의 기도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가사를 노래하였다. 다시 말해서 미사 부분 중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 즉 미사의 시작 행렬때, 혹은 봉헌 행렬, 아니면 말씀 전례가 끝나고 성찬 전례가 시작하기 전의 예물 준비 시간 동안에 신자들로 하여금 찬미가를 부르게 허락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각 나라의 모국어로 된 전례성가를 장려하게 되지만 전례문에 맞춘 성가를 미쳐 준비해 두지 못하였던 우리 나라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런 찬미가 형태의 곡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난지 벌써 35년이 흐른 지금, 다른 나라 교회는 대부분 새 전례가 요구하는 전례문을 바탕으로 한 성가들을 많이 준비하였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그리 많은 환호송을 준비하지 못하였고 아울러 이 네가지 행렬성가 중심의 전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미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노래부르도록 요구하는 성가는 바로 환호송(acclama tion) 들이다. 즉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 거룩하시도다, 신앙의 신비여, 주의 기도 직전의 마침 영광송(아멘)이다. 그 중에서도 "거룩하시도다" 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일 미사 전체를 통해 성가 한 곡만을 노래해야 한다면 단연코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해야 한다. 또 "알렐루야" 같은 경우, 이 복음환호성을 노래로 하지않을 바에는 아예 침묵을 지키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위에서 언급한 네가지 행렬성가와 신심성가(성모 노래, 성월 노래, 성체 찬미 노래 등)가 미사 때 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성가집에는 복음 환호성 3곡, 신앙의 신비여 4곡, "Amen"이 6곡이 실려 있는데 비해 성모신심 노래는 30곡이 넘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사 때는 사용하지도 못하는 성체찬미 내지 흠숭의 노래'Tantum ergo' 등도 상당수가 실려있다.
전례가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성가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보물처럼 여기는 행렬을 위한 노래들이 아니고, 매일 미사 때에도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하는 바로 환호송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국가의 행사 때 애국가를 노래하지 않고 그냥 읽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 애국가를 다같이 외우겠습니다"하는 법은 없다. 생일축하식 때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 꼭 불리어 지듯이, 미사 전례자체가 노래로 요구하는 것들이 바로 환호송이다. 또 이 환호송은 모든 신자가 환호, 기쁨 중에 노래하는 것이기에 조금 빨리 노래하여야 하며 그 곡조는 신자들이 부르기 쉬운 선율이어야 하고 경쾌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런 환호송의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느리게, 맥없이 부르고 있는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카톨릭 신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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