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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찬송가의 역사

작성자찬양경배자|작성시간07.12.18|조회수26 목록 댓글 0
찬송가의 역사


찬송가의 기원은 멀리 구약시대로 소급된다. 그리스도교의 모체가 된 유대교에서는 예배 때 구약성서에 있는 150편의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는 그리스도교회의 찬송은 다음과 같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당시의 찬송은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예수 승천 이후의 신약시대에는 시편 이외에 대송영(大頌詠:Gloria in Excelsis Deo:루가 2:14), 소송영(小頌詠:Gloria Patri), 삼성창(三聖唱:Sanctus:이사야 6:3, 요한묵시록 4:8), 할렐루야, 즈가리야의 찬송(Benedictus Deus Israel:루가 1:68~79),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s:루가 2:29~32) 마리아의 찬송(Magnificat:루가 1:46~55), 테 데움(Te Deum laudamus) 등이 추가되었으며, 바울로 서신에 몇 개의 찬송이 소개되어 있다(에페소 5:14, Ⅰ디모테오 3:16, 6:15∼16, Ⅱ디모테오 2:11∼12).

동방교회의 경우 로마 통치하에서 그리스어를 쓰며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방(비잔틴·아르메니아·시리아 ·알렉산드리아 등)에서는 그리스의 힘노스(hymnos:그리스의 신이나 영웅 등에 대한 찬가)가 들어와 많은 찬송가를 만들어 냈다.

서방교회(로마교회)는 제1회 니케아회의(325) 무렵부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라틴어가 세계어로 등장하면서 라틴어에 의한 최초의 찬송가 성 힐라리우스(315?∼367?) 이후 많은 찬송가가 나타났다.

그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를 통합, 집대성하여 서방교회 전례성가의 기초가 되는 단선율의 그레고리오성가를 펴냈다. 이것이 온 유럽교회에 보급되었는데 13세기경부터는 이 성가도 복음악적(複音樂的)으로 처리되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서 발단한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무수한 자국어 찬송가(독일 코랄)를 만들어냈다. 독일 코랄 가사는 전통적인 가톨릭성가(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과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적 민요 등을 개신교용으로 개작한 것, 그리고 새로이 창작한 것 등이 있었고, 곡조 역시 전래의 가톨릭성가곡과 옛 종교민요 그리고 일반의 세속 곡조도 채용하는 외에 새로 창작도 하였는데 대체로 부르기 쉽고 선율적인 곡이 많았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칼뱅의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하여 로마교회의 전례나 음악을 철저히 거부하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도 시편을 프랑스어로 부르는 것만 허용하였다. 이것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기 때문에 《제네바 시편가》라 불리며 멜로디는 프랑스 민요나 발라드, 독일 코랄 등에서 채용하였다.

영국에도 시편의 운문화가 퍼져서 《구역 시편가》(16세기 중반), 《신역 시편가》(17세기 후반) 등이 간행되었다. 18세기 초엽,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합교회의 I.와츠(1674∼1748)가 영국 찬송가의 기초를 세웠다. 이어서 웨슬리형제와 뉴턴, 그리고 비국교회에 의하여 주관적·신앙체험적인 영국 특유의 찬송가가 18세기에 탄생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다시 국교회파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문학적으로 우수한 찬송가가 많이 나타났다.

미국 교회에서는 17세기 이후 영국의 《구역 시편가》에 이어 《신역 시편가》를 사용하였으나 독립전쟁을 치른 뒤 한동안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주관적 ·신앙체험적인 찬송가도 창작되었다.

미국찬송가의 특색은 19세기 후반 신앙부흥운동의 물결을 타고 대량 생산된 복음찬송으로서, 이는 가사나 곡조의 예술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반면, 그 직설적이고 통속적인 표현과 멜로디 때문에 널리 애창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인구원적이기보다 사회구원적인 내용의 찬송가가 많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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