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를 하면서
박노산
겨우내 웅크린 창문틀에
새순처럼 하얗게 햇살 돋는 날
세상의 한 구석지에
도배를 한다.
하얀 벽에 속눈썹처럼 박힌
아들놈의 어린 키를 가슴에 옮겨 새기고
딸들이 심어둔 빛바랜 꽃잎
벌거벗은 바람에게 속옷이나 하라 던져주고
듬성듬성 패인 주름
질척거리는 풀칠로 메워 가며
풀에 젖은 촉촉한 가슴
다시 마르는 날에
더 높은 곳에 키눈이 돋고
더 화려한 꽃과 함께 나비도 날겠지만
더 길어진 주름을 따라서
그렁그렁 눈물도 배이겠지만
응어리처럼 맺힌 차가운 벽에 맞서
볕 한 줌 드는 날이면
어느 봄엔들 또,
새살 돋듯 도배를 하지 않겠는가!
*산다는 것이 늘 도배하는 기분입니다. 어제 더럽혀진 몸을 오늘 깨끗이 씻어내고, 오늘 더럽혀진 마음은 내일 또 새롭게 닦아내고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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