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헐벗고 배고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면
권행림이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는 지를 알면서도
야심한 시간을 틈 타 불갑산을 내려와서
먹을 것을 받아 들고 갔을까
끝내 권행림은
평생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일을 하고 만다.
그가 오기로 한 날짜와 시간을 경찰에게 알려주고 만 것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다 주고
당신은 방바닥에 엎드려 있으시오.
절대 내다보거나 몸을 일으키면 안되오"
그런 명령을 받고 권행림은 그가 가져갈 마지막 밥을 짖고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서 부엌에 내 놓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살을 애이는 추운 겨울 바람 소리만 솔 가지를 뒤흔들 뿐
고요하기만 하던 밤이 지나고
잠깐 잠이든 사이 먼 귀퉁이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깬 행림은
조심스럽게 부엌 문이 열리는 소리와
가마솥 두껑을 열고 꾸역 꾸역 밥을 먹는 소리,
그리고 밥을 퍼서 담은 후 옷가지를 싸 놓은 봇다리를 들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 뒤 분간을 할 수 없는 총 소리가 났고
총알은 행림이 엎드려 있는 창문에도 수십 발이 날아와
창호지를 너덜거리게 찢어 놓았다.
자욱한 화약 연기에 기침을 하며 찢어진 창문 사이로 밖을 내다 본 행림은
담을 넘다 말고 만신창이로 총탄 세례를 받은 젊은이의 시체를 보았다.
왜 그 때라도 달려나가 그를 끌어안고 울지 못했던가.
권행림 할머니는 그 대목에서 목 놓아 우셨다.
대 , 여섯 명의 경찰이 담 벼락에 걸쳐진 시체를 끌어 내려서
피가 낭자하도록 큰 길가로 끌고 갈 때까지
그저 창살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단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말로도 치를 떨며 정서가 불안해진 할머니는
한참을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거리며 얼굴을 설레설레 흔드셨다.
그 후 할머니는 남동생이 감매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서 평택에서 일생을 홀로 사시다가 말 년에 이르러
고향으로 내려 오셨다.
그러나 빨갱이를 도와준 누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탓일까.
그의 동생은 돌아온 누님을 그다지 살갑게 대하지 않은 것 같았고
나중에 동생 집을 나와서 해보면 면소재지 뒤쪽
어느 작은 집을 얻어서 혼자 사셨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함께 얼마 살지는 못했지만
고인이 된 그 분 이야기를 좀 더 하자니 마음이 우울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