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전화는 언제나 처럼 들 떠 있었지만
왠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처럼 들리기도 했다.
"원선이 아빠,
이사 오기 전에 우리 동생 네 집에 강아지 한 마리 주고 오소
내가 전에 감매에서 살 때 강아지 한 마리를 사준다고 했는데
못 사주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러니
진돗개 좋은 걸로 한 마리 주고 오소.
그러면 내가 서운치 않게 계산은 해 줄 테니..."
비록 무정한 동생이지만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책임지려는
그분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마침 새끼를 밴 진돗개가 있으니 새끼 낳으면 한 쌍으로 주겠다며
염려하지 마라고 한 뒤 건강하시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며 이사 가면 꼭 같이 살자고
다시 다짐을 하신 후 전화를 끊으셨다.
그것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
그럴 줄 알았으면 아내에게도 바꿔주고
아이들에게도 바꿔줘서 인사라도 하게 했을 텐데...
3, 4일이 지났을까.
제법 저녁이 다 된 시간에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원선이네 집 맞죠?"
"네, 그런데요"
"이 전화를 해야 하는지 며칠 동안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했어요"
몇 년 전에 권행림 할머니가 함평을 떠날 때
함평까지 내려와서 짐을 싣고 갔던 그 부부였다.
"할머니가 입만 여시면 원선이 아빠 이야기를 하셔서
저희 부부가 할머니를 모시면서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제 오후에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 가셨어요"
"그제요? 그제 할머니랑 통화를 했는데?"
아직도 나는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이 귀에 들어 오질 않았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내내 남편이랑 고민했어요.
원선이 아빠에게 알려야 할지 답이 서지 않아서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내일 아침이면 출상이라서요..."
수화기 속의 여자가 말을 하다 말고 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직도 한 집에서 함께 살자 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그렇게 말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그 날 전화를 걸고 목욕을 다녀와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주무시다가
고통 없이 그대로 숨을 거두셨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미 10시가 넘은 밤이었지만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함평에서 평택까지 3시간 정도면 빈소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뒷자리에서 연신 훌쩍 거리고 있었지만
왠지 내가 도착하면 할머니가 살아 날 것 같은 기분에
자꾸 엑세리더가 깊이 밟아지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한 밤중의 고요를 깨고
암울하게 나를 대신해서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