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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세상ㅡ3월 26일은 ㅡ그 우울한날 ㅡ

작성자임 경운|작성시간22.04.03|조회수323 목록 댓글 0

풍경이 있는 세상
3월 26일, 그 우울한 날

흰 한복을 입은 여인과 그 무릎에 안기고 곁에 선 두 사내아이의 사진 한 장. 그 사연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할 계획으로 망명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떠
나며 동지 정대호에게 부탁하여

진남포에 거주하는 부인 김아려
여사 와 두 아들을 하얼빈으로
데려오도 록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지막으로
만나고 작별을 준비하고자.

그러나 이들은 의거 다음 날에야 도착하는 바람에 가족 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이들의 행적을 수상히 여긴 일본 경
찰이 세 모자를 일본 영사관으로 연
행해 찍은 사진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안타깝게 여긴 뤼순 감옥 관리가 사진을 비단으로 만든 사진첩에 정승스레 담아 전달하였고

,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때까지 이
것을 품속에 간직하며 수시로 꺼내 보았을 사진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112년 전 뤼순 감옥에서 만 30세로 사형을 집행당해 순국하신 날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지 불과 40일 만입니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다가

받은 형벌이니 항소하여 일 본에 목숨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는 어머니의 당
부로 항소하지 않아 판결아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안중근 의사는 일본
관헌들 의 부탁으로 유묵을
200여 점 써주 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안 의사를 존경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가운데 '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
이라는 유묵이 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그의 신앙 고백을 스스로를
위로 하며 썼겠지요.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와 아내
등에게 이승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천당에서 만나 즐거운
얘기를 나누자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유묵과 사진을, 안 의사
를 존경하여 서울에서 열리는 추모

식에도 가끔 참석하는 한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관여하는 '사단법인 안중근의
사숭모회' 는 유묵 등을 기증받기 위
해 틈틈이 그분을 설득하였습니다.

원래 아버지의 유산이라 본인 마음
대로 처리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한 점에
7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실정이
기도 합니다.

저는 2018년 도쿄에서 그분을 만나 "기증해 주시면 소중히 잘 관리함은

물론 선생의 귀한 뜻을 기리고 이를 널리 알려 한일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특히 유묵 내용은 인
구의 30% 정도에 이르는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라며 설득하였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노력해보겠노라는
답변을 들었고,

그 후로는 예의에 벗어
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1월 기증하겠노라
고 연락이 와서 받아왔습니다.

조건은 단 한 가지. 모든 것을 비공
개로 조용히 처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묵의 내용, 전달 경과 등 아
름다운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참았습니다.

곧이어 코로나 만연으로 양국 왕래
가 사실상 두절되었고 얼마 후 기증
자가 뜻밖에 작고하셨습니다.

숭모회로서는 유묵을 기증받을 마지
막 기회를 잡은 셈이지만 그분에게

예우해 드릴 기회를 잃은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볼 작정입니다.

지금 유묵이나 사진첩은 세월 탓에 손상되어 있습니다.

삼성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최고 전문가들이 자원봉사로
나서서 보존 처리하고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 공개할
예정입니다.

적은 말수에 조용히 웃기만 하던
그분을 추모식에서 더 이상 볼 수
도 없게 되어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래저래 3월 26일은
저에게 우울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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