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제주도 여행

제주도 여행 ㅡ송악산 104m ㅡ송악산은 낮은 오름이다ㅡ 가파도 올레길 트레킹 ㅡ부속 도서 중 ㅡ네 번째로 큰 섬이다.ㅡ

작성자청 솔|작성시간22.02.06|조회수1,057 목록 댓글 0

제주 송악산 104m 

가파도 트레킹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大靜邑) 가파리를 이루는 섬.

 제주 송악산104m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뒤로 하고

이어지는 해안길은 푸른 바다 위에

 

조각처럼 오똑 떠 있는 형제섬을 끼고

돌아 송악산으로 연결된다.

송악산은 104m밖에 안되는 낮은 오름이지만,

동서남 세면이 바닷가 쪽으로 불거나와 

곧추선 10~14m의 기암절벽으로,

 

에누리없는 해발고도이다.

 송악산은 ‘절울이’,

즉 제주말로 물결(절)이 운다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인데, 

바다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우뢰같이 울린다는 이 말뜻이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절울이’ 정상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우뚝 솟은 산방산과 단산 그리고

 

사계리부터 서귀포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해안선이, 

서쪽으로는 모슬포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는 마치 바다에 놓은

징검다리 같은 가파도1)와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동쪽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형제섬은

보는 방향에 따라 하나 혹은 두 개로

보이고 그때마다 표정도 각각 다른데,

 

그중에서도 송악산 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제일 인상적이다.

송악산은 이처럼 주변 풍광이

뛰어난 관광 명소이지만, 

지질학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이중 분화구로 된 독특한 화산지형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가 어떻게 도륙

당했는지를 알려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송악산과 관련된 전설로는,

송악산이 크고 작고 완만한

9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만 더 있었다면 큰 인물이

났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바닷가 절벽 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제주사람들을 동원해 뚫어놓은

인공 동굴 15개가 있다.

 ‘일오동굴’이라 불리는 이 굴들은 일본군이

소형의 특수 잠수정을 숨겨두었다가

 

연합군 함정이 접근해오면 어뢰를 싣고

돌진해서 자폭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제주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강제노역의 참상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송악산으로 오르는 산길 오른쪽으로도

일오동굴과 같은 목적으로 판 산굴이

듬성듬성 보인다.

송악산 정상에는 둘레 600m

깊이 69m의 제2분화구가 있으며,

 

주봉 너머 북서쪽에는 이보다

넓으나 깊이는 얕은 제1분화구가 있다.

송악산은 차례로 수중 분화와 육상

분화라는 2중 폭발을 거친 화산으로,

큰 분화구 안에 두번째 폭발로 주봉이

생기고 주봉 안에 깊은 제2분화구가

형성된 것이다.

마치 국을 담는 대접 안에 오목한

밥공기를 넣은 것처럼 보인다.

오목한 밥공기에 해당하는 제2분화구

안에는 검붉은 화산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괜시리 화산 폭발의

뜨끈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제2분화구와 주봉 주변에는 난을

키우는킹는데 좋은 화산토인 송이가많다

아쉽게도 주봉에서 제1분화구로

가는 길목에 철조망이 있어

일반인은 출입할 수가 없다.

제주도 주변에는 조그만 섬이 많이 있다.

무려 62개의 섬이 마치 본섬인 제주도를

호위하는 병사들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8개 유인도와 54개 무인도가 있다.

어미 섬인 제주 본섬과 아주 가까운 유인도는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우도이며,

현경면에 있는 차귀도는

 

1970년대말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금은 무인도가 되었다. 

제주도 본도와 48km 떨어진 추자군도에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힁간도, 추포도가 있다. 

추자군도의 4개 섬들은 해남 반도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지막 빙하기 때

물속에 잠기면서 남은 땅이다.

제주도 주위에 있는 우도나 비양도,

마라도와 가파도 등의 섬들은 화산섬이다.

 

가파도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km 떨어진 섬이다. 

하루에 3회 여객선이

운행되는데 약 20분 걸린다.

36톤급의 작은 여객선은 성수기를

제외하고 하루 세 번 뭍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총면적 0.9km2, 해안선 길이는 4.2km,

최고높이가 20.5m에 불과하다.

 가파도는 마라도의 2.5배 크기에

129가구 246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지 않은 섬이다. 

가파초등학교는 전교생이 7명이며,

마라도에 있는 초등학교는

 

가파초등학교의 마라도분교로

현재 1명이 공부하고 있다.

 

가파도는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전체적인 섬 모양이 가오리가 넓적한

팔을 한껏 부풀리며 헤엄치는 형상이다.

그래서 섬 이름도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는

데서 따온 ‘개도(蓋島)’를 비롯하여

 

‘개파도(蓋波島)’, ‘개을파지도

(蓋乙波知島)’, ‘더위섬’, ‘더푸섬’ 등이다.

이외에도 하멜의 캘파트(Quelpart)는

제주도를 가리키는 표기인데 가파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섬의 최고점은 높이 20m 정도로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이다.

 

섬이 작고 나무가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해수담수화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물 사정은 좋다.

가파도는 1750년(영조 26) 제주 목사가

나라에 진상하기 위하여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소들을 키우려고 40여

가구 주민들의 섬 출입을 허가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인도였던 가파도에

이때부터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되었다

고는 하나 실은 그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왜구들의 약탈로 인하여

해상 방위 목적으로 아예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했다.

 70-80년대 남북대치가 극에 달하던 시절,

인구가 아주 작은 섬들은 간첩들의

잦은 출몰로 인한 피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들을 육지나

큰 섬으로 이주시킨 사례가 적지 않았다.

현대판 공도 정책인 셈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제주 한경면에 있는 차귀도이다. 

옛날에 어렵게 섬에서

밭을 개간하여 터전을 잡았지만,

공도 정책에 의해 제주 본도로 쫓겨나갔다. 

멀고 외딴 섬들의 역사는

자주 단절되는 수난을 겪었다.

국가의 공도 정책으로 섬에 살던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섬을 탈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주의 자유가 제한된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야만 했다.

제주도는 1629년부터 1830년까지

소위 ‘출륙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가혹한 공납과

관리들의 수탈에 못 이겨 본도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것이 특징이다.

. 출륙 금지령은 제주도 주민들을 섬사람

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전체 주민들의

 

거주 자유까지를 통제함으로써 마치 모든

주민을 유배인으로 취급한 것이다.

가파도는 고부 이씨를 비롯해 경주 김씨,

김해 김씨 등이 많고 과거에는 섬내

 

혼인이 자유로워 겹사돈을 맺는 경우도

많아 친인척들로 구성된 ‘남이 안 사는 섬’이다.

 

특히 가파도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살았던 내력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 내에는 18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을 정도다.

가파도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이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의 고인돌로

판석도 없이 지하 묘실을 만든

다음에 돌을 놓고

그 위에는

큰 덮개돌을 올려놓은것이 특징이다.

가파도는 문헌사료의 기록을 보면 가파도

(加坡島), 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

 

개파도(盖波島)로 시대에 따라서 지명이

다르게 변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파도에 소와 말을 기르는 목장이

설치된 배경에는 방문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섬 지형이 평탄하고

풀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바다가 자연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의 말은 전쟁할 때나

사람이나 집을 운반할 때, 

파발마로 사용되는 것으로 오늘날의 차나

탱크 역할을 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그래서 고려나 조선조때에는 섬에

말을 많이 키우는 목장들이 많았다.

가파도에 소와 말을 기르는 목장이

설치된 배경에는 방문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섬 지형이 평탄

하고 풀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바다가 자연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의 말은 전쟁할 때나

사람이나 집을 운반할 때,

 파발마로 사용되는 것으로 오늘날의

차나 탱크 역할을 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그래서 고려나 조선조때에는 섬에

말을 많이 키우는 목장들이 많았다.

한라산국립공원ㅡ
돈네코 영실 코스 산행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SVfc/45?svc=cafeapp

 

 

한라산국립공원ㅡ
성판악 백록담 정상ㅡ

관음사 하산ㅡ
한 라산 눈산행 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SVfc/46?svc=cafeapp

 

 

땡겨ㅡ
최강 노래ㅡ

한라산 백록담 정상ㅡ
마지막 깔딱 오르는중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4sb/481?svc=cafeapp

 

 

 

 

  찔레꽃ㅡ
이 미자노래ㅡ

한라산 철쭉꽃 ㅡ
영상입니다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eFx/3129?svc=cafeap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