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도립공원
Namhansanseong Fortress ,
南漢山城 유네스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코스
단대오거리역 ㅡ남한 산성 입구역
ㅡ남한산성 유원지 ㅡ남한산성남문
수어장대 ㅡ남한산성 서문 ㅡ
연주봉 웅성 ㅡ마천역 하산 ㅡ
약 10km 약 5시간 산행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하남시에 걸쳐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남한산성 남문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 남쪽의 성문으로
정식 명칭은 지화문이다.
중앙에 홍예문을 두고
그 좌, 우로는 자연석을
막돌쌓기로 면바르게 쌓되
수평줄운을 맞추어 쌓았으며
그 높이가 매우 높아 성벽의
안전을 위해 위로 올라가면서
석축 면에 구배를 두어
점점 안으로 들여 쌓았다.
밑에는 큰 돌을,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을
쌓는 것은 성벽축조의
일반적인 예이며
상부 여장에는
총안을 설치하였다.
문루는 장주초석을 세우고
초익공계양식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南漢山城 守禦將臺
남한산성에서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서장대라고도 불렸으며,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여
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굽어볼 수
있는 관측소의 역할을 하였다.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개축할 때
함께 건립되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이괄의난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조정은 왕실의 보전과
한성의 수비를 위한 보장처
(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성과 가깝고 방어요새로
적합한 남한선성을 왕실의
보장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정비하고,
조선 왕실의 보장처로 갖추어야 할
여러 행정,
군사 시설을 설치하면서 군사
지휘소인 수어장대도 함께
건립되었다.
남한산성 우익문
南漢山城右翼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이다.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문은 반원형 홍예문이며
높이 2.5m·폭 2.1m로 작고 좁다.
연주봉 웅성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성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옹성을 먼저 통과하도록 하였고,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소의
옹성이 있는데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소씩 설치되었다.
맛난 점심 식사 시간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간(間) 반,
하궐(下闕) 154간이었다.
재덕당(在德堂)은
1688년(숙종 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
(客館:人和館)은 1829년
(순조 29)에 수리되었다.
관아로는 좌승당(坐勝堂)·
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
제승헌(制勝軒) 등이,
군사기관으로는 비장청
(裨將廳)·교련관청(敎練官廳)·
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을
비롯한 20여 시설과 더불어
종각(鐘閣)·마랑(馬廊)·
뇌옥(牢獄),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묘(溫祚王廟),
서낭당·여단(厲壇) 등이 들어서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僧軍)을 총괄하였다.
당시에 나라를 지키는 성군(聖軍)
으로서의 불도(佛徒)의 힘은
대단히 컸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산성의 축성에도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8도의 승군(僧軍)을 동원하였고,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전부터 있던 망월사(望月寺)·
옥정사(玉井寺) 외에
개원(開元)·한흥(漢興)·
국청(國淸)·장경(長慶)·
천주(天柱)·동림(東林)·
동단(東壇)의 7사(寺)가
창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경사만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용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
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前)·좌·중·우·후의
5영(營)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
(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陣)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守禦將臺
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 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고,
위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八作)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板門)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틔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單層)
문루(門樓)를 위엄있게 올려 세웠다.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
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도립공원ㅡ
유네스코 등제ㅡ
남한산성 행궁 ㅡ
남한산성 안에 있는ㅡ
조선시대의 행궁ㅡ
조선 시대 행궁은 총 19개 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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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ㅡ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ㅡ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ㅡ
만남의 광장ㅡ
고구려 정해맞이광장ㅡ
아차산정상 단풍산행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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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국립 공원 ㅡ
중머리제 608mㅡ
중봉 915mㅡ
서석대1100mㅡ
천황봉 정상 1187mㅡ
9월 4일 금요일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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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국립공원 ㅡ
향적봉 정상 1614mㅡ
백암봉 1503mㅡ
중봉 1594m 눈꽃 산행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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