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2코스 ㅡ아차산 망우산 연계산행ㅡ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ㅡ경기도구리시에 걸쳐 ㅡ서울특별시 중랑구ㅡ 망우동 산 69-1 일
작성자청 솔작성시간23.06.17조회수1,249 목록 댓글 0아차산 峨嵯山 295.7m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
망우산 281.7m 산행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 69-1 일대
아차산 망우산 코스ㅡ
광나루역 ㅡ아차산 입구ㅡ
아차산 폭포 ㅡ해돋이 전망대
ㅡ구리 둘레길 ㅡ아차산 정상
ㅡ망우산 ㅡ망우리 시립묘지
ㅡ망우산 정상 ㅡ구리 약수터
ㅡ구리 경찰서 하산 ㅡ
약 10km 약 6시간 소요
아차산 295.7m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
에께산·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지(京畿誌)》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지금의 영화사)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성계의 휘(諱)가 '단(旦)'
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서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면서 단(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
(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씨를 고쳐 썼다고 한다
그밖에 산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룬다.
온달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
짜리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려 때는 광나루와 함께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으며,
은석사(銀石寺)·범굴사(梵窟寺)·
영화사(永華寺) 등 여러
사찰이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 일대가 목장으로만
개발되어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하였으며,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임금의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근대 이후 산기슭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게 되었고,
뛰어난 조망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세워졌다.
197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가
일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
용마돌산공원 등
도시자연공원을 조성하였고,
산자락에 주택가와
들어서 있다.
문화재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 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사적 234), 아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 15),
창건한 영화사(永華寺) 등이 있다.
그밖에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보루 유적이 있고,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 암굴 외에
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유적이 많다.
구리시 아치울에서는 해마다
온달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산행은 용마봉과
연계한 코스가 많은데,
구의동에 있는 영화사를
기점으로 팔각정을 거쳐
아차산 정상에 오른 후
용마봉을 거쳐
내려오는 2시간 30분 코스,
광장동 동의초등학교 옆 주차장을
기점으로 능선을 타고 팔각정과
아차산 정상을 거쳐
용마산 긴고랑체육공원으로
내려오는 1시간 50분 코스,
용마산길의 아성빌라·선진연립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마을의
무료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2시간 코스 등이 있다.
아차산
4보루는 누가 축성하였나?
보루나 성곽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기간 토목공사로 구축된
것이므로 현재 남겨진 보루는
초축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아차산 일대에서 조사된
고구려유적은 군사요새와
같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봉우리
정상을 중심으로 입지하고 있다.
주변지역 특히 한강 남안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일대를
조망하기 위한 것으로
이들 보루군은 아차산과 용마산
줄기를 따라 2줄로 배치되어
있으며,
보루들 사이의 거리는 400~
500m 가량으로 비교적
일정한 편인데,
구의동 보루 발굴 당시 유적
아래쪽 능선에 목책 구덩이로
보이는 시설이 확인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각 보루는
목책(木柵) 등의 시설로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유적들 사이에는 소규모
석축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렇게 입지상
강남의 중심지를 향하고 있고,
고구려 토기편 외에 발견되는
유물이 거의 없으며,
같은 구조의 구의동 보루와
아차산 제4보루의 형태유적이
고구려의 중심지인
집안지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고구려에 의해 축조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차산 4보루 출토유물
아차산 4보루에서는 모두 26개
기종 538개체분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들 토기류는
모두 실생활용이며,
각 기종별 출토량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 유적이 폐기된 후
다른 세력에 의해 점유된
바가 없으므로 거의 당시의
토기상을 반영한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망우산(서울)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 69-1 일대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산은 해발 281.7m이며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이 묘지는 1933년에
공동묘지로 지정되었으며,
아동문학가인 소파 방정환과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인
독립운동가인
오세창, 한용운 그리고 천연두
보급의 건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등이 안장되어있다.
이 후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옹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연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거북비로 불려오던
조선중기의 문신인 신경진의
신도비(서울 유형문화재 제 95호)가 있다.
또한 망우리공원 내의 순환도로
5.2km를 아스콘포장하여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98년 5월‘사색의 길’로
정하여 불리고 있다.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나무정자, 약수터 등의
시설이 있으며,
수목 관리가 잘 되어있고,
공기가 맑아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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