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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명소 ㅡ청계산 능선 산행 ㅡ이수봉 545m,석기봉 595m ㅡ 정상 망경대 618 m ,선녀폭포 산행 ㅡ 서울 서초구와 경기 과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2.11.14|조회수658 목록 댓글 0

청계산 淸溪山 

 

이수봉 547m 

석기봉 595m

 

정상 망경대  618 m 

선녀폭포 산행 

청계산 淸溪山 코스 

 

청계산 입구역 ㅡ옛골 입구 ㅡ

이수봉 ㅡ석기봉 ㅡ망경대 ㅡ

 

혈읍재 ㅡ선녀폭포 ㅡ

옛골 입구 ㅡ원점 산행 

약 10 km  약 6시간 산행 

청계산 淸溪山 

 

서울 서초구와 경기 과천시·

의왕시·성남시 경계에 있는 산.

서울시 서초구 남쪽에 있는

산이며 높이 618 m이다.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남시와 과천시

그리고 의왕시의 경계를 이룬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

푸른색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두고 청룡산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청계산은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이어지는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 618m)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

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망경봉은 고려가 망하자

충신이었던 조윤(趙胤,

후일 이름을 조견으로 바꿈)이

청계산 정상에서 북쪽

고려의 수도인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수봉은 무오사화

(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추사 김정희는 청계산 옥녀봉

북쪽 자락에 초당을 짓고 살았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

538m)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쪽으로 높이 약 10m의

수종폭포가 있고 그 아래

물웅덩이인 소를 이룬다.

청계동 골짜기에는 신라시대

창건한 청계사가 있고

고려시대에 들어 크게 

중창된 사찰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청계사를 중심으로

은거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청계산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데다 서쪽 기슭에

국립현대미술관,

테마놀이공원인 서울랜드와,

동물원인 과천서울대공원,

서울경마공원,

국립과천과학관을 안고 있어 

많은 휴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등산로는 강남 서초에서 오르는

청계골, 개나리골,

양재화물터미널과

원지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원지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가장 인기가 높다.

그리고 과천 막계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고 의왕시 청계동에서

국사봉을 지나 이수봉 망경대로

오르는 길이 인기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서울추모공원이

있고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

으로 지난다.

청계산 이수봉 545m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경기도 의왕, 과천, 성남과

서울 양재동에 걸쳐진 청계산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지키는

좌청룡 우백호로 알려진

명산이다.

사계절마다 풍경이 확연히

달라져 4계절 내내 산악인

들에게 인기가 좋다.

산세가 수려하고 2km에

이르는 계곡에는 항상 물이

넘쳐흐르고

숲이 울창하여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산은 등산로가 완만하여

가족단위의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청계사 입구에 들어서면

맑은 숲공원이 있어 산책을

하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 계곡, 절, 공원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절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푸른 용이 승천했다 하여

'청룡산'이라 불렸던

이 산의 정상은 망경대로

고려 말에 조윤이 올라

개성(송도)를 바라보며

슬퍼하였다는 곳이며

그 외에도 매의

머리모양을 한 매봉과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옥녀봉이 있다.

 

청계산 석기봉 595m 

 

청계산

석기봉 정상앞에 있는 

암벽바위

물개 바위로 유명하다 

석기봉 절벽 아래는 

신선대이다 

 청계산 만경대설화 

 

관악산은 진산(鎭山)이고

청계산은 청룡산(靑龍山)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옛날에는 비가 오려고 하면

진산과 청룡산이 함께 울었

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천지개벽을 할 때

배를 타고 다니며 돌을 주어

망경대를 만들었는데,

관악산 꼭대기인 영주대

(연주대)에 배를 대고 돌을

모았다고 한다.


큰 비가 와서 홍수가 났는데,

관악산 꼭대기만 빼고는

모두 물에 잠겼으므로

배를 탔다는 것이다.


청계산 정상의 이름은 이 때

여러 경치를 주워 모아서

만들었다고 하여 만경대

(萬景臺)라고 불렀던

것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왕씨를 치고

조선을 건국한 후

"충신은 불사이군이다,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조준의 동생 조견이

청계산으로 은거했다.


조견은 당시의 실력가로

꼭 회유해야 민심을

수습시키고

이성계가 정치를 할 수 있는데,

은거해 버렸으니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조견과 이성계는

친구 간으로 조견은 장관,

이성계는 군사령관이

었다고 할 수 있다.

하루는 이성계가 방원과 함께

조견이 여막을 짓고 은거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청계산 망경대 望京臺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산72-2임의 청계산 정상부에

있는 대(臺).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과 과천시 모계동의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의

주봉우리를 가리킨다.

망경대라는 명칭은 조선이

건국한 뒤 고려의 유신(遺臣)

조견(趙狷)이 이곳에 올라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開京,

지금의 개성)을 바라보면서

통곡으로 나날을 보내며

멸망한 고려를 그리워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여 사람들이 망경봉

(望京峰)을 망경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당시 이를 내용으로 하는

〈망경대가(望京臺歌)〉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견은

조선이 개국하는 데 협력하여

개국공신(開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조정에 출사

(出仕)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므로 그가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

하였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한편, 망경대와 더불어 청계산

산줄기를 이루는 국사봉

(國思峰)의 명칭은

조견의 형 조준(趙浚)이

이곳에 올라 고려의 멸망을

슬퍼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도심의명소청계산ㅡ
개나라골 입구 옥녀봉ㅡ

매바위 매봉 582.5m ㅡ
선녀 폭포 옛골 하산 ㅡ

여러곳의 청계산 ㅡ
청계산 청주교 성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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