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용두리 / 해얀 김유순
밤새
삼월 보름달이 다녀간 논두렁엔
아버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차로통 차로통 논물 고이는 소리
겨우내 메말랐던 논배미마다
조용히 물길이 들고
삽자루 짚은 아버지의 등도
빗속에서 천천히 젖어간다
말수 적은 아버지 속마음 대신
논물부터 먼저 들여놓으시던 사랑
저 차로통 거리는 물소리가
평생 가족을 품어온
아버지의 속마음 같아
한참 동안 듣는다
비는 내리고
논은 물을 받아들이고
세월은 또 한 계절을 맞는다
메아리의 방 / 해얀 김유순
- 치매
어느 날 고운 눈매를 가진
꾀꼬리 한 마리가 내 방에 날아들었다
이름을 불러도
눈을 맞추어도
다른 하늘을 보고 있다
예뻐라 고와라
옷매무새를 다독이며
손을 내밀어 보지만 닿지 않는다
말은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가슴 속으로 떨어지고
방 안에는 메아리만 차곡차곡 쌓인다
오늘도 이름을 부른다
혹시라도 그 한 음절이
길을 찾아 돌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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