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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곧 자녀이다(요일 5:1-12).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1.01.08|조회수357 목록 댓글 0

2021년 1월 8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코로나의 맹위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리고 국민들은 국민들 나름대로 코로나를 극복하고자 온갖 애를 쓰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지극히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작디작은 병원균으로 인해서 전 세계가 난리이기에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그저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나의 교만과 부정성 그리고 정욕으로 인한 죄됨을 고백하오니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여주옵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로 살게 하소서.

영적 싸움에서 넘어질지라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은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임을 믿사오니 오늘 이 하루가 영적으로 산길이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로 성전의 휘장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요일 5:1-12

제목 :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곧 자녀이다.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란 헬라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이는 히브리어 ‘메시야’와 같은 의미이다.

특별히 그리스도는 종말에 구원을 이루실 최종적인 구원자임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데살로니가전서에 잘 나와 있다.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설명이다.

 

이와 같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다.

나아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아들이 말씀으로 태어나셨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창세전에 아버지의 생명을 직접 받아서 태어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그리스도시다.

이처럼 아버지의 생명을 독보적으로 받은 자이신 아들 그리스도만이 독생자이시며 그가 창세전 언약대로 흙으로 만든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는데 그 분이 곧 예수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의 무엇을 믿는가?

그것은 아담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담은 창세전 언약(딛 1:2)에 근거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흙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만들어진 생명(made of God)이라 부른다.

그러나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생명을 직접 받아 태어난 생명(born of God)이 된 것이다.

만들어진 생명과 태어난 생명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이는 아예 차원을 달리 한다.

아담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고,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태어난 존재이다.

 

이제 흙으로 만들어진 생명인 아담은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영생을 얻게 되는 것 곧 영생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아담은 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선물로 받은 복인 말씀(창 1:28)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았다.

그들 부부는 비록 벌거벗었으나 하나님의 품안에 있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 2:25).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하와가 뱀으로 등장한 사탄의 꾀임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은 후에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고 말았다.

그 이후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 사이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곧 하나님의 품에서 살아야 할 자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는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 분리된 채로 고아가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 없이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창세전에 아들과 함께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아담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찾아가셨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징계하시고 그들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해주신다(창 3:15, 21절).

창 3:15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인 복음을 말하고, 21절의 가죽옷은 메시로서의 구속사건 곧 행위적인 복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창 3:21절의 가죽옷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로서의 행위적인 복음 곧 구속사건을 믿는 것이다.

이 행위적인 구속사건의 복음은 고린도전서 15:3-5절에 상세히 나와 있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복음과 무덤에 장사되신 장사복음 그리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복음과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현현복음 4가지이다.

 

이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아담이 입은 무화과옷이 아니라. 그 옷은 벗어야 할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 입혀주신 가죽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이며 이를 가리켜 갈라디아서 3:27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옷이라 일컫는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해서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사건으로서의 복음을 우리가 믿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 분명히 맞다.

하지만 이 복음은 또한 우리들도 함께 행해야 한다(롬 6:4).

“예수님이 날 대신하여 죽으셨으니까 나는 됐어!”라고 믿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나의 연합이다.

주님과의 연합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나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이며,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되셨으므로 나도 그와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므로 우리도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 아들의 생명으로 날마다 영생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이는 관념도 지식도 결코 아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이 이와 같이 주님과 함께 복음으로 연합된 영생의 삶이어야 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십계명을 지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십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곧 영생을 얻은 자의 삶은 자연스럽게 십계명을 지키는 삶이 된다.

이런 삶을 가리켜 영생의 삶이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창세전 언약에 근거한다.

따라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되는 것이며 이런 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친 아들 곧 독생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제 영생은 사전적인 의미의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며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인 신자들 안에 있는 생명이다.

이 생명으로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 날마다 사귐과 교제를 갖는 것이 진짜 영생인 것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에서 ‘아는 것’이란 교제와 사귐을 뜻하는데 이는 부부나 가족이 날마다 함께 살면서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처럼 존재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가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교제와 사귐이 있는 자에게는 아들의 생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아들의 생명이 없다.

(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나는 아들의 생명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기에 아들의 생명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마치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성 여인과 같이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갈한 영혼을 축이고자 생수를 찾아 이것저것을 찾아 헤매는 자였다.

수가성 여인이 날마다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신 것처럼 아무리 그 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다시 목마르고 말았다.

그런 나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죽게 되었다.

그런 중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생수가 부어졌다.

그 생수의 복음을 듣고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 마디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창세전 언약이 나에게도 임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비록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열정은 타는 목마름과 같았다.

그 사모함을 아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찾아오셨고 생수의 복음을 주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세상 것을 구하는 목마름은 없다.

오직 아들의 생명으로 날마다 주님과 교제와 사귐으로 연합하여 영생을 누리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생명을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 그리고 영광을 올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는지요?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우연히 아닌 것은 창세전부터 이미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하심이 있으셨음을 믿습니다.

창세전 영생의 약속은 우연이 아니라 언약이었기에 나도 그 언약 안에 속해 있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나로 하여금 믿는 자의 집안에서 나게 하시고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이 못난 자식도 하나님의 자녀요 아들이 되었나이다.

오늘도 나의 입을 벌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내 영을 다 쏟아 부어 주를 송축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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