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회원 묵상

눅 6: 39-49 먼저 들보를 빼면 티를 빼리라.

작성자조 용 호|작성시간21.01.18|조회수372 목록 댓글 2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시작기도: 창세전에 시작된 사랑, 창세전에 약속하신 생명, 그 놀라운 사랑과 생명을 주셨으니, 주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리며 알며 찬송하며 경배하게 하옵소서. 지식으로 알 수 없고, 힘으로 능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복종하게 하사 아들안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은총을 맛보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보며 경배하는 묵상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의 보혈로 하나님의 대적하여 높아진 마음과 오염된 영혼을 씻어 주십시오. 성령의 조명과 충만하심으로 벌거벗은 자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며, 영원한 대제사장의 은총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서 경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 해

*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12사도를 택한 후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제자들에게 평지설교를 하셨다.

- 가난하고 슬픔으로 인하여 주님을 찾는 자는 복이 있고, 인자로 인하여 미움과 버림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 날에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반면, 부요하고 웃음으로 주님을 찾지 않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거짓 선지자들처럼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도 화가 있다.

-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듣는 자들(복 있는 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며 선대하라는 ‘이종사랑’을(love comes from God, 요일 4:7) 하라고 하셨다.

- 제자들은 “죄인들”처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같이 인자하라고 하신다.

-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다.

 

1. 예수님은 비유로 예수님의 제자라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외식한다면 맹인의 상태라고 말씀하신다.

1) 그러므로 제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자만하지 말고 선생님의 온전함에 이르러야 한다.

- 선생님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온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말씀해 주신다.

2) 예수님의 온전함에 이르려면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쌓은 선에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한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

1) 그러므로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여 맹인들에게 빛을 주며, 맹인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한다.

2) 그러나 제자들이 영적인 맹인이 되면 맹인을 인도할 수 없다.

눅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3. 예수님의 제자가 맹인이 되는 이유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1) 그 들보가 제자의 눈을 가려서 영적인 맹인, 생명의 길을 가는데 맹인이 되게 한다.

- 들보가 제자의 눈에 있으면 그 제자는 구덩이에 빠지고, 제자가 인도하는 맹인도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2) 제자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제거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 그러나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제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고,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야 한다.

3)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뺀 제자는 영안이 열려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어 줌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눅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눅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는 순서가 매우 분명하다.

5. 첫 번째,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고 보아야 한다.

1)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따르는 제자라 하여도 들보가 반드시 있다.

-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으니 들보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2)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들보를 깨달아야 한다.

3) 제자에게 가장 흔한 들보는 “외식”하는 것이다. “자기 의”를 쌓는 것이다.

-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독보적인 봉사를 할수록 “외식이라는 들보”가 눈에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보혈과 복음의 말씀으로 자신의 들보를 깨달아야 한다.

 

6. 두 번째,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야 한다.

1) 우리는 스스로 들보를 빼낼 수 없다. 우리의 들보를 인정하고, 십자가로 나아가 주님께 아뢰고, 주의 말씀에 복종할 때, 주님께서 우리 눈에서 들보를 빼 내어 주신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 그 말씀의 검으로 보란듯한 무화과나무 잎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벌거벗은 자로 서는 것이 “들보를 빼는 과정”이다(히 4장).

 

7. 세 번째,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뺀 후에 밝히 보게 된다.

1) 하나님과 아들을 밝히 보는 영생을 누리게 된다.

2) 아들안에서 아버지의 영광,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을 밝히 보게 된다.

 

8. 네 번째,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어 주는 제자가 된다.

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맹인의 눈을 열어주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

2)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모든 족속에게 제자삼으라고 하시는 지상명령을 준행하는 제자가 된다.

 

9. 예수님의 제자여도 바리새인들을 눈먼(맹인 된) 인도자가 될 수 있다.

1) 바리새인들이 당시에 제자들을 판단한 것처럼, 제자들도 바리새인들을 판단만 하고 자신의 들보를 빼내지 못하면 바리새인처럼 외식하게 되고, 맹인이 되고 만다.

2) 진리를 아는 제자는 다른 사람을 비판(심판)하는 일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 자기 눈의 들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자는 ‘맹인’이다.

3) 참제자는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볼 때, 자기는 그보다 더 많은 죄와 허물이 있음을 깨닫는 자이다.

4) 제자는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가는 자들이다.

 

10. 43-45절은 열매와 나무의 비유이다.

1) 나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가 없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알게 된다.

2) 좋은 사람은 마음 속의 좋은 곳간에서 좋은 것을 내고 나쁜 사람은 마음 속의 나쁜 곳간에서 나쁜 것을 낸다.

3) 좋은 열매를 맺는 제자는 들보를 뺀 제자이며, 그들은 말로 생명을 전하는 자다.

 

11. “어떻게 온전한 제자직에 이르는가”에 대하여 46-49절에서 말씀해 주신다.

1) 예수님은 ‘주여 주여’라고 하면서 그가 가르치는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를 경고하신다.

2)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마치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을 들이닥치더라고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기초가 깊고 반석 위에 놓여진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땅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물살이 들이치면 곧 집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대단할 것이다.

4)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생명을 주는 복음을 듣고 복종하는 것이다.

- 집을 한순간에 짓는 것이 아니듯이, 제자도 생명의 복음으로 땅을 깊이 파고, 복음의 말씀으로 주초를 반석 위에 놓고, 집을 짓는 자다. 오랜 과정을 통해 집을 지어가는 자다.

5) 복음을 통하여 생명(하나님과의 사귐)에 이르는 지속적인 사귐을 통해 좋은 집은 지어진다.

 

◈ 나의 묵상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예수님과 대치하며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더 닮아가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로 부름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광스러운 부르심이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다. 그러나 복음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랜 세월 하다 보니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너무 잘 보이고, 너무 크게 보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고 한다. 종종 티를 빼내는 방법도 알아서 그 티를 빼어 주기 위하여 생각이 쉬지 않고, 대화를 하면 입이 쉬지를 않는다. 가르치는 것이 습관을 넘어 습성이 된 나는, 설교단을 내려 와서도 일상에서도 가르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형제의 티를 빼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온갖 사람에게서 온갖 티들이 보이며, 무의식적으로 그 티를 빼내어 주려고 한다. 선한 의도 같고 도움을 주는 일 같지만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런 외식하는 짓을 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남의 티를 빼주는 데는 전문가가 되어져 갔지만, 오히려 내 눈의 들보를 깨닫고 빼내는 데에는 미련한 자가 되어갔다. 판단하고 고쳐주려는 들보로 인하여 맹인이 되는 것이 사역자들의 일반적인 병이다. 그리고 나도 예외 없이 판단하고 티를 빼 주려는 병, 외식의 병, 자기 의의 병, 맹인이 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내 눈의 들보를 전혀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의 들보를 보고 빼내려 하다가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면 모든 생각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데 몰입이 되어서 내 눈에서 들보를 빼는 일을 중단한다. 결국, 이런 일의 반복을 통하여 내 눈에서 들보는 빠지지 않고 있다.

 

형제의 티, 형제의 죄와 허물을 보고, 형제의 자아중심성을 통해서 나의 들보를 보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아는 자처럼,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처럼 그 티를 빼내려고 가르치는 자리,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외식하는 자다. 맹인된 자가 맹인을 인도하고 있으니 이 죄와 짐을 어떻게 할꼬!!!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녀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는 죄에서 저를 건져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탄식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들보를 빼낼 수 없다. 나의 들보를 아시고도 인자하게 대하시는 주님께 내 눈의 들보를 맡긴다. 맹인 된 나의 눈, 내 눈의 들보를 맡겨 드린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말씀, 성령님의 조명으로, 회개하는 영을 부어 주사, 외식하는 들보, 자만한 들보를 빼 내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말씀 묵상, 복음을 통해서도 벌거벗은 자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지 못하는 이 외식, 이 맹인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님께 부탁한다. 말씀을 통해 한 꺼풀을 벗으면, 그 안에 또 외식하는 치마를 입고 있는 자이다. 양파 껍질처럼 외식으로 겹겹이 싸인 내 영혼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시는 주님께 맡긴다.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들보를 다 아시고 보시고, 치료하시는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긴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내 안의 들보가 뿌리 채 뽑혀져 나가고, 내 마음곳간에 쌓인 악이 씻겨 나가길 간구한다.

 

오늘도 십자가만이 나의 소망이다. 이런 나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신 십자가가 나의 소망이다. 그리고 공의로 심판하심으로 나의 들보를 보게 하시는 주님이 소망이다. 내 눈의 큰 들보를 가지고 형제의 티를 빼려는 자를 여전히 용납하시면서 연단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에 내 영혼을 맡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짐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연단에 내 영혼을 맡긴다. 신실하게 내 눈의 들보를 빼내시는 주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 다윗처럼 범죄하고 낭패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손에 빠지고, 주님의 처분을 받아들이는 자 되기를 원하며 내 영혼을 아버지 손, 선하신 손길에 의탁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이 맹인된 자가 맹인을 인도하는 일을 왜 용납하시며, 치리하지 아니하시는지요. 목회와 가르침을 벌써부터 멈추었어야 할 맹인된 인도자입니다. 주님, 제 눈의 들보를 빼려고 수없이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긍휼히 여기사 제 눈의 들보를 빼 내어 주십시오. 외식을 벗고, 벌거벗은 자로 심판대에 서며,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명예와 영광으로 아는 하늘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로 인하여 구덩이에 빠지고, 정죄 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의 길, 아버지 품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잘 지어진 집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흙 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을 홍수로 무너뜨리신 주님의 공의로운 사랑을 감사하게 하소서. 그리고 날마다 복음의 말씀으로 땅을 깊이 파고, 반석위에 주초를 놓는 언약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경민 | 작성시간 21.01.18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에서 누구와 같은것을 너희에게 보인다는말이.. 무슨말인지..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자는 하나님과의 교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일까요?
  • 작성자조 용 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1.19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48절에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탁류가 부딪혀도 요동하지 않는 제자죠. 고난이 와도 요동하지 않는 자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은 사람의 의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요 15장 10절에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이기도 하구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