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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마 15:21-28).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1.02.20|조회수4,144 목록 댓글 0

2021년 2월 20일(토)

 

* 시작 기도

주님...

모처럼 잠을 깊이 푹 잤습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 몸이 개운합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먼저 주의 말씀 앞에 앉아 생명의 양식을 먹기 원하오니 이 종의 심령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생명의 양식을 먹기에 합당한 바탕으로 만들어 주시어 주의 말씀이 쏙쏙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세우소서.

나는 주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의 긍휼입니다.

죄로 영원히 죽었던 나는 우리 주님의 보혈만이 나를 회복시킬 수 있사오니 이 시간도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푸사 주의 거룩하고 깨끗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주의 정결한 신부로서 주님 곁에 설 수 있게 하소서.

내 속에 숨어 있는 온갖 부정성과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자기 의, 그리고 내 속에 습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세상을 향한 정욕과 탐심 등 옛 사람에 속한 것들은 다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조명하사 주의 뜻을 더 잘 알게 하시고 내 뜻이 아닌 오직 우리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15:21-28

제목 :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저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가, 네 믿음이 크고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갈릴리 근처 가버나움에서 장로들의 유전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허접하게 만들어버리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꾸짖으시고 제자들에게 참 정결의 기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의 주무대였던 갈릴리 지방을 떠나 더 위쪽 지방인 이방 땅에 속하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들어가셔서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료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은 그 두로와 시돈 지역에 들어가셔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 여인은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등장한다.

이 여인의 딸은 더러운 귀신이 들려 그 딸이 영적 고통에 빠져 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마침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만사를 제쳐놓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자기 딸을 고쳐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 여자는 유대인도 아니고 헬라인으로서 수로보니게 족속에 속한 여인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자기 딸의 귀신을 쫗아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의 대답이 너무도 냉정하고 혹독한 것을 느낄 수 있다.

(26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자존심이 상하여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 만도 한데 그 여인은 자기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이렇게 말한다.

(27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기서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위대한 고백이 나온다. 마태복음에서는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향하여 부를 때 당신(헬, 쉬)으로 호칭하지만 마태복음에서 예수를 ‘주(큐리오스)로 부른 경우는 단 두 번 나온다.

곧 오늘 부른 수로보니게 여인과 마태 20장에 나오는 두 맹인들만이 오직 ‘주님’으로 부르고 있다.

(마 20: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여기서 두 맹인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주여라고 부른 것은 그들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신 것을 의미하며 또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도 이 두 맹인과 똑같이 고백하는 것이다.

(22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이렇게 강청을 하면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까지 하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 때 예수님은 전혀 이상한 행동과 말씀을 하신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드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자존심을 완전히 묵사발을 만드는 그런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말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이 개로 인정하면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받기를 원한다.

(27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 때 바로 주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면서 그 딸의 질병을 고쳐주신다.

(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나는 주님께 기도하면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 크고 좋은 것을 구할 때가 많았다.

그것을 주시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고 응답받지 못하면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자존심이 상하고 주눅이 들면서 기도와 멀어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나의 욕심이 낳은 불신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불신은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어 결국 믿음의 죽음으로 결론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나는 여기서 말하는 사망을 깊이 생각지도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데만 혈안이 되어 그것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그런 나는 이미 영적으로 사망에 이른 자로 살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만약 수로보니게 여인이었다면, 예수님께로부터 그런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는 쌍욕을 들었다면 자존심이 상해서 당장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마도 욕이나 실컷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와 자기의 딸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주여 옳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는 자기의 자존심과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치욕과 수치를 다 내려놓은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분명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귀신 들린 딸의 아버지가 와서 주님을 만나 귀신 쫓아내 주기를 요청하였을 때 예수님의 반응이 똑같았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자기 손에 들린 것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제기랄 이 아이를 고칠 곳이 여기밖에 없는 줄 알아?’ 하면서 당장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고백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습니다.’라는 가난한 마음이다.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시며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분이 어찌 우리에게 부스러기와 같은 그런 은혜만을 주시겠는가?

이는 분명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는 단계였음에 틀림없다.

그 여인도 자기의 자존심을 구기는 그 말에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면 딸의 병을 고칠 수 없었을 것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 모든 수치와 모욕을 참아내면서 자기 스스로 개가 되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 여인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수치와 모욕 그리고 자존심을 다 버려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 까?

이는 이미 우리가 당한 모욕과 저주 그리고 수치와 자존심을 구기는 그 모든 일을 우리 주님께서 먼저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오르셨다.

만인이 지켜보는 그 놓은 수치의 십자가 위에 알몸으로 오르셨지만 우리 주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아버지의 품속에 거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수치와 모욕 그리고 구겨진 자존심은 이사야 53장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 다 하였노라.

(사 53:7-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 수욕의 십자가요 질고의 십자가며 참혹하고도 온갖 수치를 담은 그 십자가는 다름 아닌 내가 져야할 십자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를 내게서 받으셔서 우리 주님께서 대신 지심은 그 모진 수욕을 우리 주님이 받으시고 나를 살리기 위함이다.

창세전에 나에게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신 그 약속을 그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잊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지켜주셨음에 그저 감사 감격할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습은 괴악하고 바라바와 같은 강도의 모습이었음에도 그리고 내가 예수님의 자리를 다 빼앗아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했던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에도 불고하고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아버지의 아들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피조물인 나에게고 아들 예수를 내어주셔서 그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게 하심은 무엇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으리요?

이 시간 나는 죽는다.

그러나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산다.

나는 죽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 위하여 죽는다.

내가 그동안 모래 위에 나의 모든 거짓되고 숱하게 쌓아왔던 외식과 허물의 성을 부순다.

나를 드러내려 했던 자기 의의 성,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남들과 주님을 속였던 위선의 성, 잠시 위기를 모면하고자 다른 이들의 눈을 속였던 거짓의 성 등등....

이런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질지라도 이것은 무너지는 것이 공의임을 믿는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의 날선 양날 검으로 개의치 않고 과감하게 부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신 반석 위에 새롭게 집을 짓는다.

그 집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기 않고 아름답지 않아도 가장 안전한 믿음의 집이요 하나님의 집임을 확신한다.

이런 나에게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를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영혼이 기뻐 춤을 추나이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어 지난 그 모든 중한 짐을 벗고 보니 슬픔 많고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보게 됩니다.

병원 독실에서 혼자 18일 동안 신선한 바깥공기 한 번 쐬지 못하고 있다가 퇴원하는 날 바깥 공기와 내게 내려쬐는 그 따스한 햇살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새삼 느꼈나이다.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비록 날씨는 차갑고 바람은 매서웠지만 집 주변에 있는 주천강을 한 바퀴 돌았는데 매서운 바람이 전혀 차갑지 않고 아주 부드러운 순풍처럼 느껴졌나이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죄로 얼룩졌던 나의 모든 삶을 이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오니 세상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정결함을 느낍니다.

이제 나의 소원은 오직 주님의 보혈로 정결해 지는 것이오니 내게 정결한 맘을 주옵소서.

정직한 영으로 날 새롭게 하옵소서.

작은 것도 거짓과 위선으로 나서지 않게 하시고 오직 생명의 말씀에 근거하여 정직과 선함, 인자와 신실이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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