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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역설의 진리, 기독교의 생명의 진리(마 19:13-22).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1.03.02|조회수189 목록 댓글 0

2021년 3월 2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요양 차 온 강릉은 어제 함박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하얀 눈꽃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주신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주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 나라가 기대가 됩니다.

오늘 하루를 이 땅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주장해 주옵소서.

내가 겉으로는 주님의 뜻에 반하는 죄를 짓지 않을지라도 내 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은 요동하는 내 마음의 바다가 있사오니 이 마음을 주의 영, 성령으로 꼭 묶어주시고 주님께 복종하는 순종쟁이가 되게 하옵소서.

내 마음에 솟구치는 나의 의로 발동되는 자기주장의지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앉으려는 아주 악한 생각이며, 악의 분노 비방 등 이런 부정성은 옛 사람으로 행해지는 것들이오니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옛 사람은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요, 영적 하루살이로 사는 것에 만족하며 하늘의 기쁨이 내 안에 가득 넘치게 하소서.

차드로 떠난 복음의 일꾼들을 지켜주시고 주의 은혜가 필요한 이들이 주의 진리를 벗어나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으며 영과 생명으로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19:13-22

제목 : 예수님의 역설의 진리, 기독교의 생명의 진리.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의 그 겸손함과 낮아짐을 배울 것을 요구하신다(본문 13-14절).

(마 18:3-4)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한편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를 의롭게 나타내 보이려고 자기 나름대로 대단한 영적 질문을 한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왜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다시 그 청년이 묻는다. ‘어떤 계명들입니까?

예수님 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5-10계명까지를 말씀하셨다.

이 때 청년이 말하기를 ‘선생님, 내가 이 모든 것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가요?’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네가 만약 온전하고자 한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을 가진 재물이 많은 관계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갔다.

 

나는 인간적으로 어린 아이를 참 좋아한다.

아이들의 그 순수함과 해맑은 웃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모습이 아니라 성인들 대부분의 모습일 게다.

특히 어린 손주를 둔 할아버지를 보면 그 사랑하는 마음이 철철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린 소주에 대한 어떤 이해관계가 아니라 그에 대한 거창한 기대나 욕심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다 내어줄 만큼 사랑하는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런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자기 자식이 공부도 잘 해야 하고, 하는 모든 것을 다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마음이어서 자기 자녀가 다른 친구에 비해서 좀 못하고 부족하면 속부터 상한다.

하다못해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치기조차도 잃거나 지는 것을 싫어한다.

무엇을 해도 잘 하고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은 그 자녀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자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 안에서 자녀들이 자라날 때 순수함과 남들을 배려하는 낮아짐의 성품을 가진 자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자녀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자녀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어린 아이의 특성이 아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겸손한과 낮아짐이다.

그런 것이 바로 천국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셨겠는가?

 

그리고 어떤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곧 자기를 의롭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주장의지로 질문하는 내용이다.

그의 속셈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너는 왜 선한 일을 나에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청년은 안 그래도 자기는 어려서부터 이 십계명을 철저히 잘 지키는 자였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말하기를 그런 계명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노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무언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등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율법 곧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것을 보니까 그 청년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지켜오던 그 계명에 대하여 당당하게 말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영생에 대한 확신이 모호하던 차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모호한 영생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는데 예수님의 말씀에 자기가 가장 자신이 있는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그는 아마도 ‘이제 됐어’ 하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적어도 그 청년은 자기가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이 모호한 상태였는데, 예수님까지도 계명을 지키라고 말을 하니까 그의 확신은 더 굳어졌다.

 

그런데 그 뒤에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 그렇다면 네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청년은 이 말을 듣고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간다.

그가 잠시나마 가지고 있던 영생의 확신이 금세 근심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이는 물질적 부자들은 자기들의 그 재물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어 그 재물을 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재물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한다.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전해지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재물이 많으면 이를 지키기 위해서 근심과 염려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그곳은 도둑도 없고 갉아먹는 동록도 없으며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하늘창고이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은 곧 너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과 같다.

그럴 때 진짜 보화인 영생이 그에게 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청년이 그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도 많이 존재한다.

그 청년은 적어도 계명을 철저히 지킬만큼 신앙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또한 재물까지 많은 부자였다.

그는 세상의 물질과 신앙을 동시에 거머쥔 성공한 자이다.

이런 청년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돈과 명예를 많이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선한 존재는 아니다.

선한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도 선한 분이시다.

하지만 그 부자 청년에게 참된 진리를 말씀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높인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말씀하신 것은 부자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자기가 아무리 십계명을 잘 지켰다 할지라도 그는 자기의 소유 곧 재물을 내려놓는 계명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 돌아간 것이다.

 

오늘날 역시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곧 하늘에 그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진리안에서 선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 그가 알지 못하는 참된 보물인 영생을 얻게 된다.

부자 청년의 선한 행위는 마치 못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으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자기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좋은 나무 같아보였다.

자기의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과연 누구인가?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렘 17:9).

 

나는 오랜 세월 신앙의 표본을 이 부자 청년으로 삼았다.

이 땅에서 돈을 많이 벌어 부자도 되고 게다가 신앙도 좋으면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난 후에는 적어도 나와 같은 또래에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했었다.

번듯한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에, 교회에서는 기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그런 자였기에 많은 이들의 칭찬과 인정이 나를 추켜 세웠다.

나야말로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한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난 물질과 신앙 등 성공한 인생에 매몰된 채로 살았던 자이다.

그러다가 소명감이 있어서 학원을 정리하고 신학을 하여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나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부자 청년과 같이 나의 선한 행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 가고자 하는 원욕(헬, 휘브리스, 원천적인 욕심)이 있었다.

물론 이는 나만의 욕심이 아니라, 이 시대의 부자 청년을 예시하는 다수의 군중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생명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로서의 비존재로 거하길 원한다.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한 나는 주님을 돌아서서 집으로 간 부자 청년과 같이 주님의 품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만 맴도는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그저 사람들이 입발림으로 주는 그런 칭찬과 인정만 먹으면서 말이다.

이런 나는 영생이 아니라 정 반대인 지옥의 아랫목을 향하여 걸어가는 자였다.

그런 나를 우리 주님께서는 가만 두지 않으시고 나를 새로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심판을 하셨다.

그 심판이 나를 살렸다.

주님의 심판은 나를 진멸로 이끌어가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셨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이다.

나 역시 그 진리를 믿는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겉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나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전부이시다.

 

* 묵상 후 기도

나의 전부이신 주님...

그동안 낡아질 수밖에 없는 겉사람으로 살아왔던 인생을 주님께서 심판하심으로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으로 살게 하심은 주의 은혜입니다.

이런 주님을 통하여 아버지 품에 거할 수 있게 하심 또한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나이다.

나를 나 되게 하심도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땅의 재물에 치심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외적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시는 주의 영,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 날마다 주님의 나라를 누리며 경험하는 자 되게 하소서.

어린 아이와 같은 낮아짐과 겸손함이 나의 성품이 되게 하시어 주님을 닮아가는 주의 자녀로 삼으소서.

주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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